테크놀로지 제 1187호 (2018년 08월 29일)

도전하고 사업하는 회사, 누리고 지배하는 회사

[경영전략]
-전략 경영의 핵심은 ‘기회를 만드는 인재’…맹목적 근면성은 독 될 수도

게티이미지뱅크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경영에는 사람이 우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필요할까. ‘기업이 찾는 인재’ 등의 제목이 달린 기사들을 보면 창의·도전·혁신·리더십 같은 좋은 말이 다 나온다. 유행에 따라 인문학적 소양이나 건강한 체력이 추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좋은 점을 다 갖춘 훌륭한 사람만 모아 경영을 할 수 없거니와 회사의 모든 일에 그런 ‘현인(賢人)’들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인재 중심’이라는 좋은 말에 장단을 맞췄을 뿐이다.

생각을 조금 바꿔 세상의 변화를 읽고 사업 기회를 만들어 실행하는 ‘전략 경영’을 위해서는 어떤 인재가 필요할지 생각해 보자. 묵묵히 땀 흘려서 되는 일이 아닌, 세상을 읽고 기회를 찾지 못하면 버려지는 가혹한 현실이 드러난다.

◆최고경영자와 작전참모의 역할

전략 경영을 위한 인재, 흔히 말하는 ‘전략가’는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조직 단위를 맡아 여러 가지 일을 만들고 책임지는 ‘전반 경영자’ 역할이다. 통찰력·리더십·의지력 등으로 조직을 이끌어야 한다. 둘째, 최고경영자(CEO)의 전략을 전문적으로 돕는 역할이다. 사업적 기회와 위협을 읽어 대안을 찾고 실행의 포인트를 조언하는, 역사물에 나오는 ‘책사(策士)’ 혹은 현대 군편제의 작전참모(G3)에 해당된다.

모든 능력을 다 갖춘 사람은 없다. 따라서 일정한 장점이 있다면 살리고 부족한 점은 다른 사람과 함께 채워 갈 수밖에 없다. 비전이 있고 사람을 이끄는 힘도 있지만 세밀하고 창의적인 기획이 부족하다면 전문적으로 돕는 팀을 두거나 일정 부분 외부 전문가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상징적 인물’을 내세워 문제를 풀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삼국지’에서 유비와 제갈량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전략에 대한 전문적 판단과 기획을 돕는 전략 전문 스태프에게는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주요 국가의 작전참모 전문 과정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답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투철한 의지와 창의적 발상을 최우선으로 강조한다. 창의력·판단력·분석력 같은 당연한 말을 넘어 정말로 필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답을 찾는 자세라는 얘기다. 만약 전략 스태프에게 이런 의지와 창의력이 부족하다면 CEO가 어떻게든 그 틈을 채워 내야 한다.

◆세상을 읽어 기회를 만들려면

압도적 기술 역량을 갖추면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전략적 우위를 가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다양한 사업자와 사용자가 맞물려 사업적 가치가 만들어지는 사업 생태계에서 주도권은 이들의 관계를 잇고 만들어 주는 주체가 갖게 된다. ‘사용자 접점’을 확보한 사업자는 그 관계의 중심을 장악하게 되며 ‘사용자 경험’에 대한 이해는 이를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된다.

압도적 기술 역량을 갖추더라도 사용자 경험과 사용자 접점을 장악한 사업자에게 종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생각해 보자. 세계 최고의 전자 상거래 솔루션을 만들면 아마존을 넘어설 수 있을까. 사용자가 그 수월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용자 경험의 핵심을 잡아 사용자 접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다양한 변화를 읽고 그 변화 속에 사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융합과 통섭의 능력인데, 사업 생태계는 전 세계적 범위에서 진화하므로 더 넓은 시야가 필요해진다.

구글과 애플이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세상이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은 디자인에 승부를 걸고 있다. 자동차 회사 중역들은 뉴욕과 파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미술과 전시의 세계를 모르면 무능한 사람이 되기 쉽다.

또한 사업 생태계에서 가치는 ‘단일 기업 조직’이 아닌 다양한 사업적 관계 속에서 이뤄지므로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생각해야 한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회사를 지키며 충성을 다짐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사용자의 다른 얼굴은 생활인이고 유권자다. 사업 생태계의 규칙은 법이고 정치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여기에 작동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서 ‘잘못된 세상’을 탓한다면 경영자로서는 자격 미달일 뿐이다.

전략 경영의 세계에서 외곬으로 시키는 일만 하는 맹목적 근면성은 독이 된다. 새로운 가치를 위한 전략, 이를 위한 인재가 필요하다면 맹목적 근면성에 대한 애착부터 버려야 한다.

새벽부터 회사 버스 타고 출근해 구내식당에서 밥 먹고 늘 얼굴 보는 사람들과 시키는 일 같이하다가 밤늦게 퇴근하는 성실한 직장인이 있다. 신문의 심층기사 하나를 읽지 못하고 남들 다 아는 영화나 예능 프로도 신기할 뿐이다.

믿음직한 부하일 수는 있겠지만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지 못하고 다른 생각과 삶을 대하면 불편할 뿐이다. 회사 사람 모두가 일은 안 하고 쓸데없는 일만 생각하며 자리를 지키지 않고 나다녀도 문제지만 반대로 모두가 맹목적 근면성에 승부를 걸어도 문제다.

◆‘무능한 눈치 10단’으로 죽어가는 회사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만들면서 사용자의 콘텐츠 선호도나 사용 패턴을 모른다면 기술적으론 좋을지 몰라도 쓰기에는 불편한 제품이 나오게 된다. 경제와 산업의 동향, 대중의 감성이 ‘나와 상관없는’ 언론에나 나오는 얘기라면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세상의 흐름을 읽을 수 없다.

연구자는 특정한 과제에 대해서만 일하고 마케팅·금융 등 전문적 분야도 외부 인력을 활용하는 실리콘밸리 기업과 달리 우리 기업들은 일정한 성과를 내면 승진을 통해 신분과 보상을 함께 제공하는 곳이 아직 많다.

스타 투수에게 감독 자리를 줘 보상하는 셈인데, 어느 순간 잘 모르는 타자에게까지 간여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따라서 귀한 시간을 할애해 인재 개발(HRD)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하고 경영자가 직접 임직원들을 지도하며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갖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창의적 도전은 원래 잘 모를수록 불안한 일이고 널리 알아보고 생각하는 일은 맹목적 근면성에 대한 애착을 거스르게 된다. 인재 개발을 얘기하지만 ‘애사심이 충만한 성실한 인재’를 만드는 일이 훨씬 쉽고 마음 편할 수밖에 없다.

회사가 남다른 전략으로 사업 기회를 만들기보다 안정적 지배 통제에 몰두할수록 더욱 그렇다. ‘연수생 만족’을 위해 내용이 없지만 재미는 있는 이벤트가 점점 늘고 조금이라도 인화성이 있는 민감한 토론은 자취를 감춘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인재 개발은 직접 일하는 현장에서 이뤄진다. 경영자의 회의와 지시, 과업 수행 과정의 토론과 수정은 가장 중요한 학습 수단이다. 인재 개발은 전문적 서비스를 제공할 뿐이다.

그런데 사업보다 지배 통제가 더 중요해진 회사일수록 인재 개발은 사업 현장과 멀어지고 나름의 정치를 시작한다. 사업을 해서 가치를 만드는 일보다 조직에 대한 헌신이 강조되고 맹목적 근면성과 복종심이 모범 사례로 부각된다. 전략을 위한 인재와는 방향이 다르다.

회사는 사업을, 군대는 전쟁을 하는 조직이다. 안정적 지배 통제는 본연의 일을 하기 위한 수단적 조건일 뿐이다. 회사를 마음 편하게 대대손손 누리는 수단으로 삼으면 사업해 돈 벌려는 회사로부터 밀려난다. 이런 ‘누리려는 회사’를 보호하는 나라는 경제가 망가진다.

한때의 성공이 유산으로 남은 크고 복잡해진 조직, 시장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끼리끼리 손잡고 작은 권력을 만들어 버티는 사람들, 사업을 잘 모르거나 제대로 할 의지가 없이 회사를 누리는 수단으로 삼는 경영진…. 이런 회사에서 세상을 읽고 가치를 만드는 전략은 설 자리가 없다. 작은 일도 여기저기 얽혀 복잡해지고 서로 사정 봐 눈감고 짜 맞추려면 회의와 문서만 급속도로 늘어난다. 하루 종일 회사 안에서 매일 얼굴 보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

무능함이 근면과 성실로 포장돼 심지어 성공 신화가 되고 사업의 가치를 몰아낸다. 회사를 누리는 수단으로 삼는 경영진과 그 틈에 서식하는 눈치 10단 회사 공무원들의 이해가 맞으면 관료제의 폐해들이 그대로 펼쳐진다.

구체적 내용을 잘 모르는 고위층에게 설명하기 위한 3장짜리 보고서를 위해 각 단락마다 만들어지는 20장짜리 외주 컨설팅 보고서, 그 한 줄마다 필요한 상호 조율과 탐문…. 전략의 핵심인 기밀과 신속함은 사라지고 변명거리만 갖춰진다. 목숨 건 자기 사업이라면 그렇게 할까. 그 비용은 누구의 돈으로 지불할까. 돈 버는 회사와 누리고 지배하는 회사를 가리는 일, 경제 살리기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7호(2018.08.27 ~ 2018.09.0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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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9-0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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