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1리터 팔면 17원씩 손해…커피숍·편의점 더한 ‘복합 주유소’로 변신

한때는 ‘돈 되는 장사’로 명성을 날리던 주유소들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으로 도로변마다 주유소들이 우후죽순 들어선 때문이다. 최근에는 마트주유소·알뜰주유소 등 경쟁자들이 늘어나면서 주유소들의 수익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위기 속에서도 색다른 변신을 통해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주유소들이 적지 않다. 주유소 아르바이트생을 정직원으로 고용해 업무 환경을 개선하고 주유소에 편의점이나 세탁소 등을 더해 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불황 속에서도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주유소의 현재를 들여다봤다.
[SPECIAL REPORT] 폐업 속출 주유소, ‘달라야’ 살아남는다
“우리 부부는 시골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유소라면 다들 부자라고 생각하는데 주유소는 마진이 아주 적습니다. 매출 20억 원 정도면 성실 신고 말이 안 됩니다. 원가가 비싸 매출이 높아도 마진은 3%밖에 안 됩니다. 매출 32억 원 정도는 돼야 직원들도 좀 두고 여유 있게 장사 할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정부가 운영 중인 ‘규제 개혁 신문고’ 사이트에 올라온 사연의 일부다. 실제로 최근 2~3년 새 도로를 지나다 보면 ‘폐업’ 이나 ‘휴업’ 간판을 단 주유소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국내 주유소 1만2000여 개 중에서 3000여 개 정도가 몰려 있는 수도권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 주유소들의 실태는 그보다 더 열악하다. 특히 시골의 구(舊)도로, 다시 말해 도로가 직선화되거나 간선화되면서 구 곡선도로의 주변에 자리한 주유소들은 이미 정상적인 영업을 포기한 지 오래다. 유독 한산해진 도로 위를 지나가는 차량 자체도 적지만 최근 주유소 가격 경쟁이 심해지면서 마진율을 최소화해 기름을 판매하다 보니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하소연이다.


주유소 손익계산서 따져보니…폐업 비용도 안 나와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을 기준으로 현재 전국에 등록된 주유소는 1만2998개다. 전국 주유소가 1만3000개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08년 말 이후 6년 만에 처음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이 중 432개가 휴업 주유소라는 것이다. 이 역시 역대 최고치다. 지난 6월을 기준으로 했을 때 휴업 주유소가 425개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1개월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10개 가까운 주유소가 휴업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박동위 한국주유소협회 과장은 “현재 국내 주유소 휴업률은 3.32% 정도”라며 “주유소 1000개당 33개가 개점휴업 중인 셈”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폐업 주유소 역시 매년 증가 추세다. 2013년 한 해 동안 폐업한 주유소는 310개다. 2012년에 219개였던 것과 비교해 42% 증가했다. 올해 역시 지난 6월을 기준으로 폐업한 주유소가 벌써 138개에 달하고 있다.

이처럼 수많은 주유소들이 휴업이나 폐업을 선택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박 과장은 “무엇보다 과도해진 경쟁이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한다. 1970~1980년대에는 정부의 석유산업 발전 전략에 따라 정부 보호 속에 성장해 왔다. 그러던 주유 업계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석유 사업 자유화 정책과 석유산업 경쟁 촉진 정책에 따라 주유소 간 거리 제한이 폐지되고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됐다. 그 결과 주유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더구나 1997년 가격 자율화가 시작되면서 주유소 영업이익률이 크게 악화됐다.
[SPECIAL REPORT] 폐업 속출 주유소, ‘달라야’ 살아남는다
박 과장은 “여기에 대형 마트 주유소 도입과 알뜰주유소 등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서 현재는 가격 경쟁이 더 치열해진 상황”이라며 “대부분의 주유소들이 적자를 보면서까지 어쩔 수 없이 낮은 가격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날이 갈수록 적자 폭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주유소의 매출 이익률이다. 한국주유소협회의 현황 자료에 따르면 휘발유 매출 이익률은 2008년 8.1%에서 2014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했을 때 5.2%까지 떨어진 상태다. 경유 역시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2008년 9%에 달하던 매출 이익률이 2014년 상반기에는 6.1%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주유 업체들의 손익계산서를 따져보면 사태의 심각성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서울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A주유소는 직원이 모두 13명이다. 이 주유소의 2014년 2월 한 달간 손익계산서를 조사한 결과 매출액은 약 10억 원이었고 매출원가는 매출액 대비 95.8%에 이르면서 매출 이익률은 4.2%를 기록했다. 이 중 인건비 및 각종 공과금, 카드 수수료 등 판매관리비가 5000만 원 정도로 5.22%를 차지하면서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 1.92%를 기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업체는 한 달 동안 1000만 원 정도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이 주유 업체는 휘발유 1리터를 판매할 때 리터당 1755원에 받아 1825원에 팔면서 70원의 매출 이익을 올리지만 판매관리비로 87원을 지출하며 리터당 17원의 영업 손실을 보는 셈이다.

취재 중 만난 한 주유소 대표는 “요즘에는 주유소 운영자들의 모임에 나가면 보지 못하던 얼굴들이 70~80% 이상”이라며 “기존 주인들이 장사가 잘 안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임대를 주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못 보던 얼굴’들의 대부분이 바로 이처럼 주유소를 임대 받아 영업하는 곳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폐업’조차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박 과장은 “대부분은 정유 업체들과 계약 기간이 있기 때문에 매일 적자만 쌓아 나가고 있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며 “주유소가 폐업하기 위해서는 시설 철거비와 토양 정화비용 등 최소 1억5000만 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주유소협회 측에 따르면 자금난으로 유류 구매자금이 없어 휴업과 영업을 반복하고 있는 주유소만 하더라도 1000개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SPECIAL REPORT] 폐업 속출 주유소, ‘달라야’ 살아남는다
지금처럼 주유소들이 위기를 겪고 있는 원인을 짚어가자면 주유소들 간의 ‘치열한 가격 경쟁’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이 ‘가격 경쟁’의 핵심에 알뜰주유소가 있다. 그러나 한때는 이처럼 ‘가격 경쟁력’ 우위를 점했던 알뜰주유소도 최근 들어 사정이 어려워지기는 일반 주유소나 매한가지다.

알뜰주유소는 2011년 12월 국내 1호점이 개업한 이후 현재는 1100여 개 정도가 전국적으로 영업 중이다. 김홍준 한국자영알뜰주유소협회 사무국장은 “알뜰주유소 초창기만 하더라도 일반 주유소와 비교해 알뜰주유소의 기름값이 평균 30원 정도 쌌기 때문에 영업이 잘되는 곳이 많았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일반 주유소들이 알뜰주유소를 따라 기름값을 낮추면서 가격 차이가 채 10원이 안 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들어서는 알뜰주유소를 중심으로 반경 2~3km 내에 자리한 일반 주유소들은 휘발유가 리터당 대략 1700원대 안팎으로 알뜰주유소와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 많다.

김 사무국장은 “일반 주유소를 가더라도 고객들이 신용카드 등으로 결제하면 40~50원 정도 할인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알뜰주유소를 찾는 고객이 줄어드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진화하는 주유소…‘가격’말고 ‘서비스’가 관건
전문가들이 말하는 국내 적정 주유소 숫자는 7000개에서 8000개 정도다. 현재 1만3000여 개에 달하는 국내 주유소 숫자를 감안한다면 현재 국내 주유소 업계는 30%가 넘게 포화된 시장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처럼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위기를 기회 삼아 생존 전략을 찾는 데 성공한 주유소들이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곳이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자리 ‘S-Oil 백산주유소’다. 이곳에서 주유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단순한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백산주유소에 소속된 ‘과장’과 ‘대리’다. 백산주유소는 7년 전인 2007년 아르바이트 직원들을 모두 정직원으로 채용했다. 당연히 직원들은 4대 보험을 적용받고 계절별로 래프팅 같은 여가 활동을 즐기거나 양로원 방문 등 봉사 활동도 함께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직원들이 3년 이상 근무한 장기근속자들이다.

이렇듯 직원들의 ‘자존감’이 높아지니 외적인 변화 또한 크게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고객들의 반응이다. 취재진이 백산주유소를 방문한 날 이곳을 찾은 한 고객은 “여기 기름값이 인근 주유소보다 300원 정도 비싸다”며 “하지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곳 직원들의 서비스는 물론 무료 세차 서비스 등 만족도가 크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온다”고 밝혔다. 실제로 인근 주유소 기름값이 1700원대인데 비해 백산주유소의 기름값은 1985원으로 꽤 높은 편이었다. 백산주유소 관계자는 “아르바이트생 대신 직원 모두를 정직원으로 채용하면서 인건비가 다른 주유소의 3배 이상 높아진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매출도 일반 주유소와 비교해 15% 정도 높은 편이기 때문에 투자한 것 이상의 성과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시에 있는 두대셀프주유소도 ‘변신’에 성공한 대표적인 주유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주유소의 가장 큰 특징은 고객의 취향을 고려한 서비스다. ‘자동 세차’, ‘셀프 세차’ 등 고객의 필요에 따라 서비스를 세분화했다. 지난 4월에는 주유소 한쪽에 커피숍도 오픈했다. 그 덕분에 고객들이 주유하는 동안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양심 정산 서비스도 고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양심 서점의 경우 고객들이 주유소에 직접 책을 가져오면 기존에 비치돼 있던 책과 일대일로 교환할 수 있다. 교환할 책이 없다면 2000원에 책을 구매해도 된다. 양심 냉장고에 들어 있는 시원한 물, 과자와 휴지 등도 고객이 스스로 저금통에 구입 금액을 지불하도록 돼 있다. 이렇게 모인 금액은 불우 이웃 돕기에 사용된다.

두대셀프주유소를 운영 중인 광신개발의 관계자는 “커피숍 등은 매출을 목표로 했다기보다 고객들이 주유소를 보다 편리하게 이용하면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마련한 서비스였다”며 “실제로 최근의 변화로 젊은 손님들이 늘어나면서 예전과 비교해 대략 20% 정도 손님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SPECIAL REPORT] 폐업 속출 주유소, ‘달라야’ 살아남는다
최근에는 SK네트웍스의 SK주유소도 ‘주유소 복합화’를 추진하고 있다. 주유소에 패스트푸드점, 커피 매장, 편의점 등을 결합한 것이 변화의 핵심이다. 이 같은 모델은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해 현재는 총 147개의 복합 주유소가 운영되고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편의점이 결합한 주유소로, 모두 111개에 이르며 패스트푸드 주유소도 23개에 달한다.

이 중에서도 SK죽전셀프주유소는 주유소 캐노피 위로 건물을 짓고 패스트푸드점이 입점해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주유소는 아파트와 아울렛 매장들로 조성된 인근의 입지 환경을 십분 활용해 패스트푸드점과의 복합화를 추진, 인근 주민과 원거리 유동객을 모두 고객으로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죽전셀프주유소 관계자는 “복합 주유소 전환 초기에는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를 방문한 고객들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패스트푸드점을 방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지금은 주유와 가벼운 끼니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고객 비율이 40% 가까이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최근에 복합 주유소로 탈바꿈한 양평주유소 역시 패스트푸드점과 아웃도어 의류 매장을 한 지붕으로 맞이한 후 새롭게 늘어난 고객을 대상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처럼 이종 매장들의 결합에 대해 고객들은 처음에는 낯설어했지만 편의성과 혜택을 직접 경험하면서 현재는 높은 호응을 보이고 있다.

홍기중 SK네트웍스 과장은 “고객 만족도 향상을 위한 끊임없는 변신 노력만이 나날이 치열해지는 시장 상황 돌파를 위한 유일한 해법”이라며 “고객 니즈와 주유소별 특성에 대한 철저한 분석 및 검증을 바탕으로 SK주유소를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 복합 공간으로 진화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 문성필 백산주유소 대표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를까 고민해야죠”


“가격 말곤 더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요?”

문성필 백산주유소 대표는 지금도 종종 전국의 주유소를 돌며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는 강의를 하곤 한다. 특히 지방 주유소들을 찾아갈 때 주유소 사장님들이 그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 중 하나다. 고객들마다 싼값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요즘 같은 상황에 과연 ‘가격 아닌 다른 서비스’로 승부를 보는 게 가능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인 셈이다. 그럴 때면 문 대표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돈 들이지 않고도 변할 수 있는 것,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바꿔 나가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큰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문 대표는 올해까지 20년 넘게 백산주유소를 운영 중이다. 1990년대 후반 아버지와 함께 주유소를 시작했다. 그는 “주유소 일이 새벽에 기름을 받는 것부터 시작해 청소하고 손님 맞고 다시 새벽에 퇴근하는 것까지 육체적으로 매우 고된 일”이라며 “그렇게 10년을 살았는데, 2007년쯤인가 불현듯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때부터 즐거운 일터로 만들기 위해 강남과 분당의 성공한 주유소들을 직접 돌아다니며 연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 고민 끝에 내린 결론 중 하나가 바로 직원들의 신분을 아르바이트생에서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문 대표는 “당시만 하더라도 주유 업계에서는 ‘젊은 사장이 객기를 부린다’는 시선이 없는 게 아니었다”며 “하지만 막상 우리 회사가 조금씩 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요즘은 먼저 찾아와 우리 서비스나 경영 노하우를 배우려는 주유소 사장님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로 올해 초만 하더라도 한국도로공사의 고속도로 휴게소 사장들이 백산주유소를 견학한 뒤 ‘휴게소 주유소 변신’ 프로젝트에 돌입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많은 주유소 사장님들이 변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지만 막상 운영도 어려운 판국에 거액의 자금을 투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며 “많은 비용을 투자하지 않더라도 아주 작은 데서부터 변화를 시작한다면 그 결과는 생각보다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고객들에게 인사하는 습관, 서비스로 건네는 공짜 휴지 하나, 주유소 화장실을 깨끗하게 가꾸는 것만으로도 전체적인 주유소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문 대표는 “특히 사장님들이라면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느냐’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정성을 다하게 되면 고객들 역시 이를 알아주고 매출 실적도 자연스럽게 따라 오르는 것 같다”고 성공 비법을 전했다.


글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이시경 인턴기자 c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