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상권지도⑦ 양재역·양재시민의숲] 뜨내기 상권의 변신, '신흥 R&D 상권'

R&D밸리 고소득·전문직 배후 수요 확보…양재역 상권도 '도약'

◆ 양재역 상권 "대기업 오피스 30~40대 남성 비율 높아"



양재역 상권의 진가는 퇴근 시간이 돼야 알 수 있다. 버스 정류장마다 길고 긴 줄이 밤늦게까지 줄어들 줄 모른다. 지하철 3호선과 신분당선의 환승 역세권인 양재역 또한 마찬가지다. 양재역 인근 오피스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양재역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잠시 후 더 많은 사람들이 양재역 출입구를 통해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강남대로와 남부순환로가 만나는 곳에 자리한 양재역은 북쪽으로는 강남역, 서쪽으로는 사당, 동쪽으로는 도곡동과 연결돼 있다. 남쪽으로는 연결된 길은 경부고속도로와 이어진다. 성남·군포·광주·의왕·평촌·동판·판교 등 수도권 남부 지역으로 가는 관문이다.

현재 양재역 인근에 자리한 버스 정류장만 대략 17곳이다. 이곳을 지나는 버스 노선도 82개에 이른다. 서초구 마을버스와 서울 시내버스, 성남과 분당 등을 오가는 광역 버스를 모두 포함한 것이다. 여기에 지하철 3호선과 신분당선까지 지나는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다. 이 때문에 양재역 주변은 인근 직장인과 거주민 외에도 외부인의 유입이 많은 ‘뜨내기 상권’의 특징이 강한 곳이다. 양재역 지하철 이용 인구(12만2000명)와 버스 정류장 승하차 인원(5만 명)을 모두 더하면 매일 17만 명 이상이 이곳을 지난다. 이처럼 유동인구가 많다는 것은 양재역 상권의 단점이 되기도 한다. 양재역 주변에서 지갑을 열기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뜨내기 상권'의 변신…R&D밸리 고소득·전문직 배후 수요 확보…양재역 상권도 ‘도약’'


하지만 최근 들어 그 분위기가 서서히 달라지는 중이다. ‘거쳐가는 곳’이 아니라 ‘머물러 가는 곳’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첫 계기는 2011년 신분당선 개통이다. 신분당선이 개통되면서 양재역과 강남역을 연결하는 지하 상가가 조성됐다. 백화점을 연상시키는 깨끗하고 넓은 공간 구성으로 지하철 3호선과 신분당선 환승센터를 오가는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2012년 SPC그룹 본사와 2013년 LG전자 강남 연구·개발(R&D)센터가 들어선 것도 또 다른 계기다. 현재 SPC(약 2000명)와 LG전자 강남 R&D센터(약 1900명)에 근무하는 상주 인원만 4000여 명에 달한다. 대기업 고층 빌딩이 들어서면서 양재역 인근의 스카이라인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상권 내 업종 변화 속도도 빨라졌다. 새로운 수요를 잡기 위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세운 음식점들이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SPC그룹 본사와 LG전자 강남 R&D센터 주변은 기존 업종과 신흥 업종이 뒤섞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층 건물 옆에 허름한 채소가게가 있고 골목 안쪽에는 이제 막 간판을 새로 내건 고급 음식점이 손님을 끌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왕복 8차로를 끼고 있는 양재역 상권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양재역 4번과 5번 출입구에서 매봉역 방향으로 이어지는 곳이 핵심 상권이다. SPC그룹과 LG전자 강남 R&D센터도 이 구역에 자리해 있다. 유명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1군 프랜차이즈 매장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양재역 5번과 6번 출입구에 있는 농협 뒤쪽에서부터 말죽거리까지는 음식 업종이 밀집한 양재동 먹자골목이다. 인근의 직장인과 양재역을 거치는 출퇴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형적인 저녁 상권의 특징을 띤다. 회식 손님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 99㎡(30평) 이상의 큰 식당이 많다. 객단가(1인당 평균 매입액)는 강남권 평균 수준보다 다소 낮은 편이다. 테이블당 3만~5만 원대 안팎이다.



양재역 9번과 10번 출입구를 끼고 있는 환승 주차장 일대의 로드 상권은 최근 엘타워까지 동선이 확장되는 추세다. 양재를 통해 경기도로 오가는 광역 버스 정류장들이 이곳에 자리해 있다. 예전에는 오가는 인파에 비해 가게 유입 인구가 매우 적은 곳이었다. 하지만 2009년 엘타워가 들어선 이후 이곳에서 컨벤션 행사 등이 열리면서 인근 가게로 유입되는 인구가 점차 늘고 있다.

특히 2011년 신분당선 개통 이후 새로운 출입구가 연결돼 ‘퇴근 동선+대중교통망’이 이상적으로 작동하는 연도형(스트리트형) 상권으로 세를 넓혀 가고 있다. 예술의 전당과 경부고속도로 방면으로 이어지는 1번 출입구 라인(서초구청 맞은편)과 이면 지역은 소규모 회사가 밀집해 있어 주택가와 사무실이 혼재돼 있다. 특히 남부순환로347길은 점심과 저녁 모두 붐빈다. PC방·당구장·노래방 등이 상층부에 밀집해 있다.

양재역의 시세는 대로변과 골목 안쪽의 위치에 따라 차이가 난다. 양재역을 중심으로 강남대로변으로는 99~132㎡(30~40평대)의 대형 상가가 대부분이다. 권리금은 99㎡(30평) 기준으로 2억 원, 보증금은 1억 원 수준이다. 임대료는 400만~500만 원 선이다. 왕혜숙 거성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는 “신축 건물은 평균 임대료가 예전에 비해 높아지고 있지만 권리금은 낮아지는 추세”라며 “노후 건물은 반대로 임대료 상승 폭이 낮지만 권리금은 예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먹자골목을 비롯한 양재역 이면 상권은 이보다 낮게 형성돼 있다. 33㎡(10평) 기준 권리금 3000만~5000만 원이며 보증금 3000만~5000만 원, 임대료 150만 원 이하다.

양재역 근처 카페의 관계자는 “인근에 오피스가 많아지면서 전형적인 오피스 상권의 특징을 보이지만 주변 아파트 등이 많기 때문에 근린 상권의 성격도 같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평일에는 오피스 상권의 특징이 강하다. 30~40대 직장인이 대부분이고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 이후 손님이 몰린다. 양재시민의숲역 인근에 현대차와 LG전자 서초R&D연구센터 등이 들어서면서 이곳에서 유입되는 고객도 크게 늘었다. 이 같은 특징은 SK텔레콤의 비즈니스 빅 데이터 플랫폼 지오비전의 분석 결과에서도 잘 나타난다. 2015년 8월 기준으로 일평균 유동인구를 분석한 결과 30대 남성이 14.7%(9761명), 40대 남성이 13.7%(9074명)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30대 여성도 10.2%(6759명)로 나타났다. 반면 주말에는 인근 거주민이나 청계산을 이용하는 등산객 손님이 많아진다.

◆ 양재시민의숲 상권 "신분당선 개통 후 임대료 40% 상승"



양재역 상권이 ‘전통적 강자’라면 양재시민의숲 상권은 ‘신흥 강자’다. 2011년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매헌)역 개통 이후 활기를 띠고 있다. 최근에는 대로변을 가득 채운 상권이 점차 골목 안쪽으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양재시민의숲 상권은 인근 직장인들을 주 타깃으로 하고 있다. 양재시민의숲역 맞은편에는 현대차그룹 본사와 aT센터(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등이 자리 잡고 있다. KOTRA도 이 근처에 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현대차와 기아차 계열사 직원만 5000여 명이 넘는다.

최근 조성되는 R&D밸리도 기대감을 높이는 요소다. 이 일대에는 이미 KT연구개발센터(1991년 설립)와 LG전자 우면R&D캠퍼스(1975년 설립), LG전자 서초R&D캠퍼스(2009년 설립) 등이 자리해 있다. 12월에는 삼성전자 우면동 R&D센터도 입주를 시작한다. 삼성전자 임직원 1만여 명이 옮겨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삼성동 한전 부지로 본사를 이전하면 기존 건물을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들 연구센터는 사물인터넷(IoT) 등 미래 기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첨단 기술을 다루는 연구원들은 대부분 소득수준이 높다. 든든한 수요층이 새로 생기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의 수요는 인근의 대형 상권인 강남역과 양재역에 흡수될 것으로 보이지만, 가까운 지역에 새로운 신흥 상권이 성장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양재 R&D밸리의 직장인들이 출퇴근 시 이용하는 ‘양재시민의숲역’이 바로 이와 같은 중심 상권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뽀뽀치킨’을 운영하고 있는 박희용 사장은 “영동 1교와 염곡사거리를 중심으로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점포 가 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상권이 형성되던 초창기에는 호프집 일색이었지만 상권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커피숍과 다양한 음식점이 생겨나고 있다.

골목 안쪽은 대로변 상권과 비교해 아직은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분위기가 확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권강수 한국창업정보원 이사는 “골목 내부로 상가가 확장될 여지가 많다”며 “12월 삼성전자 R&D센터 입주 이후를 기대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상권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만큼 임대료도 상승 추세다. 대로변에 자리한 132㎡(약 40평)의 매장은 2011년 전후에는 월세 500만~600만 원, 보증금 7000만 원 정도였다. 지금은 같은 조건에 월세 700만~800만 원, 보증금 1억 원, 권리금 1억 원 이상이다.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지하철 개통 이후 임대료가 40% 정도 상승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임대료가 올라가는 속도와 비교해 매출은 그리 빠르게 올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늘어난 유동인구가 실제 매출 성과로 이어지기까지는 일반적으로 2~3년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호프집을 운영하는 Y 씨는 “평균적으로는 하루에 30팀 정도 방문하는 것 같다”며 “아직은 대부분의 가게들이 운영을 시작한 지 1~2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앞으로 손님이 더 많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양재시민의숲 상권이 주목 받고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양재시민의숲 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자리한 양재천 ‘연인의 길’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영동1교부터 영동2교까지 조성된 500m 정도 길이의 메타세쿼이아 산책로다. 양재천을 바라보고 고급스럽고 세련된 분위기의 와인바와 카페 등이 즐비해 ‘양재천 카페거리’나 ‘양재천 와인거리’라고도 불린다. 특히 최근에는 양재시민의숲역을 중심으로 한 상권이 골목 안쪽으로 진출을 거듭하면서 양재천 연인의 길 건너편 도로까지 그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두 상권의 연결 고리가 약하지만 추후 상권이 성장해 가면서 양재시민의숲역에서부터 양재천까지 상권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양재천 연인의 길은 20~30대 아베크족(젊은 연인)이나 마을 주민들이 산책을 겸해 찾는 곳이다. 평일보다는 주말 고객의 비중이 높은 것도 특징이다. 지난 2006년 이곳이 본격적으로 상업화된 이후 양재천 연인의 길은 크게 세 번의 변화를 거쳤다. 처음에는 에틱가구점이 자리 잡고 있던 공간에 와인바가 하나 둘 점령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카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지금도 와인바와 카페 사이에 숨은 듯 자리잡은 엔틱가구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와인바도 많다. 2001년 양재천에 처음으로 문을 연 와인바인 크로스비를 비롯해 에떼, 씨엘 든 10년 이상 된 곳들이 터줏대감처럼 이 길을 지키고 있다. 크로스비의 김옥재 대표는 “한국 와인 시장이 가장 크게 성장했던 때가 2008년 무렵인데, 당시 이곳이 와인바 거리로 알려지며 전성기를 누렸다”고 말했다. 이후 카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2013년 이후 양재천 연인의 길은 지금까지 그 모습이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

크로스비의 15년 단골이라는 한동수 씨는 “바로 앞에 양재천이 흐르고 있어 자연을 바라보며 여유있게 와인을 즐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서울 시내에서 이만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바 ‘테라스’를 운영 중인 안동선 대표는 “매니아 층이 주로 방문하는 상권”이라며 “새로 유입되는 손님은 적은 편이지만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찾는 곳”이라고 말했다.

양재천 상권이 안정기에 접어든 만큼 임대료 또한 다른 지역과 비교해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13년 이후 임대료는 거의 동일한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132.2m²(약 40평)의 1층 임대료가 월세 400만 원, 보증금 5000만 원, 권리금 1억 원 이상이다. 2층의 경우에는 동일한 조건에 월세 200만 원, 보증금 2000만 원, 권리금은 없다. 부동산중개소 관계자는 “짧은 길이기 때문에 매장의 수가 많지 않아 매물이 많이 나오거나 거래가 활발하기는 어려원 상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땅값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2014년 3.3㎡(1평)에 4000만 원을 호가했던 땅값이 2015년 현재 5000만 원을 호가한다. 양재천 연인의 길이 재정비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내년 2월쯤 민간과 함께 전반적인 양재천 시설 보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은성부동산의 김경두 대표는 “인근에 661㎡(200평)짜리 대형 건물을 짓는 등 양재시민의숲을 중심으로 새로운 건물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며 “연인의 길 재정비까지 마치고 나면 이 길을 찾는 유동인구가 지금보다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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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11번 출입구 로드 상권 유망...강남대로도 부각"

서울과 수도권의 접점에 위치한 양재는 회식 등 각종 모임 장소 역할을 하기에 적합했다. 때문에 이면 먹자골목이 오래 전부터 발달되어 있었다. 대로변은 전형적인 역세 상권 메인 입지에서 볼 수 있는 판매, 패션, 소매, 서비스 업종이 자리 잡고 있다. 다만 일부 패션 관련 업종의 경우 신분당선 역사 내에 지하상가로 이동하면서 수요 분산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측면이 관찰되고 있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환승주차장 일대 로드 상권은 유동 인구에 비해 점포수가 적은 것이 결정적인 장점이며 식음료 계열 점포 출점 1순위로도 유명하다. 반면 맞은편 7~8번 출구 라인은 대체로 점포 면적이 큰데다 한신휴플러스 1층 점포의 임대료가 시세에 비해 초기에 과도하게 높게 책정되면서 오히려 약세로 접어드는 빌미가 되었다. 임대료는 이곳이 비싸지만 내실은 환승주차장 인근에 비해 확연히 떨어진다. 현재 양재역 대로변의 오피스텔 상가 등 분양형 상가 개별 점포 임대수익률은 4% 안팎으로 파악된다. 양재역 북단은 2005년 이전까지는 상권 내에서 다소 소외된 지역이었다. 하지만 강남역과 양재역 상권이 점차 확장되면서 강남대로가 새로운 상업중심지로 부각되고 있다.

양재동 우체국과 파출소가 골목의 시작점에 위치한 남부순환로 356길은 ‘말죽거리’로도 알려져 있는데 사실상 양재동 일대의 유일한 재래시장의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상권은 매우 길게 이어지는데 임대료 수준이 높지 않고 배후가 두터워 예비 창업자라면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곳이다. 남부순환로 359길(싸리고개길) 역시 말죽거리처럼 근린 업종 중심의 거리 상권인데 초중고 학교가 모두 모여 있어 학교 상권의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강여름·이지연 인턴기자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1042호 제공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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