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고용 221만 명…커지는 ‘안전 리스크’



최근 부산 롯데백화점에서 10년 동안 일한 비정규직 직원이 화장실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채 발견됐지만 롯데 측은 “우리 직원이 아니다”며 책임을 회피해 논란이 되고 있다. 게다가 해당 직원은 10년간 근로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은 채 아르바이트 근로자로 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에서 일하는 전체 근로자 4000여 명 중 정규직은 5% 미만에 불과하고 나머지 95% 이상은 입점 업체 소속이다. 논란이 커지자 롯데백화점 측은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간접 고용 구조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정규직 사내 하청 근로자들의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 불안정한 고용 현실에 따른 노사 갈등과 분규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화학물질 유출 사고나 조선 및 건설업계의 안전사고 역시 간접 고용 근로자들에 대한 안전 교육 미비가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간접 고용은 ‘타인의 노무를 이용하지만 노무 제공자와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고 제삼자에게 고용된 근로자를 이용하는 고용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파견·용역·도급·외주·아웃소싱 등을 모두 포괄한다. 통계청 보도 자료에 따르면 간접 고용 비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는 파견·용역·특수형태·일일근로·가정내근로 등 국내 비전형(非典型) 근로자는 임금근로자의 11.4%인 221만 명에 이른다.
고용노동부의 2015년 고용 형태 공시를 살펴보면 2015년 3월 31일 기준 고용 형태를 공시한 3233개 기업의 전체 상시 근로자 약 459만 명 중 소속 외 근로자는 약 92만 명(20.0%)으로 300인 이상 대기업에 근무하는 직원 5명 중 1명이 간접 고용 근로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규모가 클수록 간접 고용 근로자의 비율은 더욱 높았다. 기업 규모별 현황을 살펴보면 500명 미만 기업은 소속 외 근로자 비율이 14.0%이지만 기업 규모(직원 수)가 커질수록 그 비율은 더욱 높아져 상시 근로자 5000명 이상인 기업은 27.3%로 2배 정도 높은 비율을 보였다. 즉 5000명 이상 상시 근로자를 보유한 기업은 4명 중 1명 이상이 간접 고용 형태로 근무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 빈발하는 건설·조선, 간접 고용 비율 높아
이 중 상시 고용인 1만 명 이상의 대기업을 살펴보면 소속 외 근로자 비율이 가장 높은 기업은 현대산업개발로 직접 고용 인원의 4.7배에 달하는 인원을 간접 고용 형태로 두고 있었다. 또한 하청 업체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 조선 기업들(현대삼호중공업 4.0배, 대우조선해양 2.7배)과 건설 기업들(롯데건설 2.2배, 삼성물산 1.8배) 역시 직접 고용 인원보다 많은 간접 고용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건설업(44.6%)이 압도적으로 높은 간접 고용 비율을 보였고 예술·스포츠 서비스업(27.1%), 제조업(25.0%) 등이 전체 산업 평균 대비 높은 간접 고용 비율을 보였다. 특히 제조 업종 중 조선업(67.8%)·철강업(37.9%) 등 일부 제조업은 간접 고용 비율이 다른 업종보다 두드러지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화학 업종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주로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은 조선·건설업이나 노동 환경이 열악한 서비스업에 집중돼 있는 국내 간접 고용의 특징을 반영하는 결과다.
국내에서는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파견법 제정 이후 간접 고용 근로자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비정규직보호법이 통과되면서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이 커지자 기업들은 간접 고용을 더욱 늘렸다. 문제는 이러한 기업 행태가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까지 영향을 주는 수준이 됐다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연이어 터지고 있는 화학물질 누출과 폭발 사고 뒤에는 간접 고용 근로자들이 있었다. 최악의 화학 사고로 기록되고 있는 2012년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 누출 사고에서 발생한 5명의 희생자 중 1명은 비정규직 근로자였고 삼성전자에서 불산 누출 사고으로 사망한 근로자 역시 하청 근로자였고 2013년 발생한 여수국가산업단지 대림산업 화학공장 사고의 사망자는 전원이 협력 업체 직원이었다. 상대적 약자인 하청 근로자들은 열악한 조건으로 위험한 작업에 우선 투입되기 때문에 산재에 더욱 취약한 구조가 되는 것이다.



지속 가능 경영, 협력·하청 업체 포괄 추세
이들 근로자의 피해 보상 등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화학물질의 경우 구미 사태와 같이 주변 지역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2012년 구미 지역에서 발생한 휴브글로벌의 불산 누출 사고는 주민 피해가 1만2000명, 농작물 고사 212헥타르, 차량 부식 1958대, 가축 피해 4015마리에 이르렀고 정부는 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기까지 했다. 기업의 화학 사고가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 재난 수준의 피해로 확대된 것이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외부 임가공 업체를 통해 화학물질을 공급받거나 화학물질 취급 공정을 하청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하청 업체의 자율적인 안전 관리능력은 부족한 반면 원청 업체의 총괄 안전 관리가 체계적으로 지원되지 않는 것이 대형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유해 화학물질 취급 설비의 운영과 유지·보수를 도급 받은 하청 업체의 경우 설비의 소유권이 원청에 있고 생산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가동 정지나 공정 안전을 위한 변경 등이 원천적으로 제한돼 있어 보수 정비 작업을 진행하다가 사고를 일을킬 때가 많다.
신용 정보 유출의 배경에도 간접 고용이 있었다. 2014년 초 발생한 국민·롯데·농협카드 고객 정보 1억여 건의 유출은 신용 정보 회사의 파견 직원에 의해 발생했다. 세 카드 회사에 용역으로 파견됐던 신용 정보 회사 직원이 카드 회원의 개인 신용 정보를 빼돌려 대출 중개업자에게 팔아넘긴 것이다. 실제로 감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금융권의 정보 유출 사고 9100여 건 중 대부분(97%)이 외부 직원 관리 부실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간접 고용 문제의 해결책으로 법·제도적인 측면이나 노사 관계 측면 등 다양한 개선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간접 고용 문제의 사회적 파급력과 기업 및 지역사회에 미칠 수 있는 실질적 위험을 고려했을 때 법·제도적인 문제에 앞서 우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시각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속 가능 경영에 대한 국제 표준인 ISO-26000 가이드라인에서도 가치 사슬에 해당되는 간접 고용·하도급·협력 업체의 노동과 인권 등을 모니터링하고 이를 사업 경영에 반영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책임의 범위를 협력사 및 하도급 업체까지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내부 역량 육성 등 기업 경쟁력에도 ‘적신호’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이 비용 절감과 고용 유연성이라는 측면에서 간접 고용을 선택해 왔고 2000년대 이후 인력 활용에 대한 부담 없이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 올 수 있었다. 그러면서 기업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본연의 의무는 뒤로 미뤄 왔다. 대기업이 부담해야 할 경영상의 위험을 중소기업과 사회에 전가해 온 것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이 간접 고용은 근로자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로 확대됐고 이제는 더 이상 책임을 미룰 수 없는 수준이 됐다. 화학물질 사고나 개인 정보 유출 등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의 경우 원청 업체는 기업 이미지·사회적 신뢰·법적 비용 등 많은 부분을 잃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간접 고용에 의존하는 구조는 비용 절감 같은 당장의 성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기업의 장기 성장과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저숙련의 노동력만 계속 이용한다면 숙련된 노하우 등 내부 역량을 키울 기회를 잃게 될 것이고 기업 경쟁력에도 적신호가 찾아올 수 있다.
산재 사고 발생 시 대부분의 대기업은 여전히 법적 책임이 없다는 이유로 하청 업체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간접 고용 근로자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갈수록 비난의 화살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원청 업체인 대기업으로 향하고 있다. 앞으로 간접 고용 문제는 단순한 사회적 비난을 넘어 원청 업체에 실질적 손해를 가져오는 양날의 칼이 될 것이다.

이수희 SFC 선임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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