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경제의 배신…우버의 빛과 그림자

오늘날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불안의 터널 속에 있다. 21세기 벽두 장밋빛으로 물들었던 세계경제는 이미 2000년대 말부터 이어진 저성장이 언제 해소될지 모르는 상태다. 끝없는 양적 완화와 각국의 각종 경기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반전되기는커녕 바닥으로 추락하는 걸 막는 데 급급한 실정이다. 국제 질서도 마찬가지다. 잠시 희망을 보였던 ‘아랍의 봄’은 아랍 세계의 근대화·민주화는커녕 힘의 공백과 끝없는 내전으로 대량 난민 사태와 테러리스트의 발호를 불러왔다. 급기야 통합 유럽의 꿈이 위기에 처하고 강대국들 사이의 숱한 갈등만 고조되고 있다.

이런 어두운 시대상 속에서 그나마 한줄기 빛이라면 정보기술(IT)을 필두로 한 급격한 기술의 진보가 만들어 가는 동력이다. IT 기반의 혁신이 활발해지면서 경제 전반에 새로운 창조적 파괴가 촉진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기회가 생겨나면서 점차 활기가 돌 것이라는 기대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산업에 붙들려 있는 기업의 가치가 제자리를 맴도는 와중에도 이런 혁신 기업들에는 끝없이 추파가 던져지고 그 값어치도 올라가고 있다.

대안적 모델로서의 공유경제

하지만 과연 이런 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출현, 그에 따른 경제 시스템 전반의 변화가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해 주는 것일까. 이에 대한 회의감 또한 최근에 만만치 않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당장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발달은 20~30년 내에 숙련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단순한 직무의 직업을 대거 대체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특히 하이테크 기업과 대기업 등 그나마 사정이 좋은 기업에서 이러한 시스템을 적극 도입할 것이므로 성실성 하나로 버틸 수 있었던 좋은 일자리들은 점점 더 희귀해질 것이다.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맞춰 빠르게 학습할 수 없는 사람이 대다수인 실정에서 대량 실업의 그림자는 좀처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의 대안적 경제 모델로 제시돼 온 것이 바로 공유경제(sharing economy)다. 하버드 로스쿨 교수이자 사회운동가인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 교수가 설파하듯이 공유경제는 원래 기존의 상업경제(commercial economy)의 대척점에서 나온 것이다.

상업경제가 의존하고 있는 시스템은 경제학의 근본 문제, 즉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시장 메커니즘을 이용한다. 즉, 사람들이 남는 자원을 내놓고 부족한 자원을 구입하려는 자연스러운 필요는 시장의 교환 과정을 통해 충족된다. 그러나 전통적인 시장경제는 이러한 수요와 공급의 매칭을 위해 가격과 화폐라는 수단을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그 결과 주객이 전도돼 본연의 교환 기능보다 돈을 더 많이 벌려는 경제적 축적에 더 골몰하게 되고 그로 인해 부작용이 심화된다는 비판이었다.

반면 공유경제는 굳이 가격 메커니즘을 통하지 않더라도 서로가 남는 자원을 IT 플랫폼에서 자발적으로 공유, 필요를 충족하는 시스템이다. 자신이 자동차를 쓰고 있지 않은 동안에는 그 사실을 인터넷에 공지해 놓으면 차가 필요한 동네 이웃이 잠시 빌려 쓰게 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경제 주체들 사이의 분산적 접촉이 활발해지면서 사회적 관계도 증진되고 연대도 강화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그러다 보면 경제활동을 매개로 파편화된 공동체가 복원되고 보다 행복한 세상이 도래할 것이란 얘기다.

이러한 공유경제를 전면에 내세운 우버(Uber)와 에어비앤비(AirBnB) 등은 이미 수년 전부터 상업경제의 대안 주자로 화려하게 주목 받으며 급성장해 왔다. 하지만 우버의 기업 가치가 60조 원, 에어비앤비의 기업 가치가 30조 원에 이른다는 지금, 과연 그러한 신기술이 가져다주는 희망은 좀 더 밝아졌을까. 최근 이뤄진 연구 결과들을 보면 그와는 사뭇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일단 우버나 리프트(Lyft)에 자동차와 운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남는 자동차와 시간을 소유한 여느 개인이 아니다. 대부분은 그 자체를 중요한 생계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예전처럼 택시와 렌터카 등의 서비스 업체 소속이 아니라 자영업자로 독립한 개인 운수사업자인 것이다. 우버는 이처럼 직장의 빡빡한 규율과 열악한 근무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구조조정의 여파 등 자·타의로 생계형 자영업의 길에 들어선 이들에게 주체적인 업무 기회를 약속하며 자사 서비스에 등록시킨다.

생계형 자영업자 관리 시스템으로 변질되는 공유경제 플랫폼

하지만 여느 기업의 고용주·피고용인 관계와 달리 이들에게는 상사·동료·부하의 인간관계가 없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커뮤니케이션뿐이다. 그리고 이 스마트폰 앱에 로그인해 우버와 연결되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연락과 지시 사항, 업무 조건, 피드백이 들어온다. 우선 자기 주변에 우버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정보가 들어오고 이용 요청을 수락할 것인지 단 15초가 주어진다. 하지만 여기에 완벽한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까이에 이용객이 있는데도 우버의 수락 요청을 계속 거절하면 우버는 더 이상 이용객을 연결해 주지 않는다.

이용객 또한 완벽한 상업 서비스의 고객이다. 선의에 의해 자신의 자원을 나눠 주는 대상이 아니라 그 이상을 바쳐 만족시켜야 할 대상이다. 이용객이 나중에 평점을 짜게 주면 역시 그 운전자는 퇴출당하게 된다. 연결을 받기 위해서는 알아서 더 헌신적으로 우버의 요청을 수락하고 우버의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게다가 가격 메커니즘은 의도와 달리 공유경제 기업에서 한층 더 정교한 위력을 발휘한다. 우버는 이용객의 서비스 이용 패턴 데이터를 정교하게 분석해 수요를 예측한다. 그리고 요청이 폭주하는 지역과 시간대에는 이용 요금을 올린다. 그리고 운전자들에게도 미리 그 지역, 그 시간대에 가서 기다리면 더 높은 금액을 받을 수 있다고 앱을 통해 정보를 전파한다. 그리고 이 정보에 부응해 그곳으로 잘 달려가는 운전자가 누구인지 역시 하나하나 데이터로 남긴다.

우버·리프트 등은 모두 가격을 매개로 수요자와 공급자를 움직이고 자사 서비스에 도움이 되는 충성도 높은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을 구분해 놓는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더더욱 정교한 예측 모델과 가격 결정 모델을 구축한다. 이들 기업들은 이러한 행위가 자사 플랫폼을 더 확대해 참여자들의 편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결국 자사의 중개 수수료 수익을 높이려는 지극히 상업적인 동기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다.

결국 우버의 운전자들은 스마트폰 앱 너머에서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조정되는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묶여 버린다. ‘나도 이제 사장님’이라는 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앱 너머에 있는 알고리즘에서 더 헌신적이고 친절한, 평점 높은 운전자로 불리기 위해 애쓰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는 마치 콜센터에서 파티션 한 칸을 주고 직함만 A 텔레마케터가 아니라 A 정보통신사 사장님으로 바꿔준 것이라고나 할까. 물론 여전히 공유경제 업체들은 이야기한다. 자신들은 그 자리에 앉으라고 강요한 적도 없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도 자유라고 말이다.

“우버나 에어비앤비는 공유경제 기업이 아니다”

이러한 우버·리프트·에어비앤비 등의 행태가 꼭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수요와 공급을 조정하고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 자본주의 경쟁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더 이상 공유경제의 아이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히 어불성설이다. 그들은 보다 정교하게 이미지 메이킹한, 진일보한 상업경제의 새로운 주자일 뿐이다. 공유경제를 설파한 레식도 이제는 “우버나 에어비앤비는 공유경제 기업이 아니다”고 단언하고 있다.

사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미 자영업자 비율이 27%를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2배 가까이나 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전부터 수많은 서비스들이 이러한 자영업자들을 중개해 주고 있었지만 그에 따라 자영업자들의 수익성이 획기적으로 증가했다거나 망하는 자영업자들이 줄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별반 들리지 않는다. 서구에서 토로되는 공유경제 기업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짐짓 우울해 보이는 전망은 한국에서는 바로 당면할 현실이다.

과거 같으면 단일 기업의 울타리 안에서 각종 근로 규칙과 고용계약·단체협약으로 돌아갔을 경제 시스템은 이제 점점 더 파편화되고 있다. 형식적이나마 한 울타리 속에 있었던 경제 주체들은 앱을 통해 연결되는 느슨한 플랫폼 참여자, 1인 기업 사장이라는 그럴듯한 존재로 변모하고 있다. 아울러 인간의 대면을 통해 이뤄졌던 조직 관리 또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한 새로운 플랫폼 관리로 빠르게 변모해 가고 있다. 치열한 갈등을 겪으며 서로 고성으로 회의하고 원하지 않는 술자리를 갖는 불편은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시스템이 과연 더 나은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기술의 발전 트렌드는 이처럼 우리가 익숙해져 있던 삶의 방식을 곳곳에서 송두리째 바꿔 가고 있다. 그러한 변화의 물결이 지금 이 암울한 터널을 더욱 길게 만들지, 아니면 정말로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새로운 탈출구를 열어줄지 아직은 미지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변화 자체를 부정하지 말고 그 물길이 보다 밝은 곳을 향하게 조정해 나가는 데 우리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는 점이 아닐까.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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