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삼성 누른 웨어러블의 '작은 거인'들

웨어러블은 단어 그대로 ‘착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뜻한다. 돌이켜 보면 이미 1980년대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워크맨’은 웨어러블의 효시 격이다. 최근의 스마트 혁명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웨어러블은 주로 정보기술(IT) 기기에 국한돼 이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애플워치·갤럭시 기어 시리즈 등 스마트워치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 ‘핏빗(Fitbit)’이나 샤오미의 ‘미밴드’처럼 피트니스·헬스케어 기반의 스마트밴드도 대표적인 웨어러블 기기로 꼽힌다. 이제 막 시장이 열리는 단계이기 때문에 웨어러블 시장을 대표하는 디바이스 역시 워치와 밴드로 양분된 상태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팔린 웨어러블 기기의 수는 481만 대였다. 이 중 삼성전자의 스마트워치 ‘기어’가 120만 대 판매되며 점유율 1위에 올랐다.

핏빗, 복잡한 기능 대신 피트니스에 집중

피트니스 밴드의 효시인 핏빗이 처음 설립된 것은 2007년이다. 애플이 아이폰을 선보이며 스마트 생태계를 열었던 것도 2007년이다. 시작은 같았지만 웨어러블 시장은 스마트폰만큼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후 나이키(퓨얼밴드)나 필립스 등이 핏빗과 비슷한 스마트밴드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차별화에 실패하며 시장 자체가 커지진 못했다.

웨어러블 시장의 본격적인 개화가 이뤄지기 시작한 건 스마트워치가 등장하면서부터다. 2013년 출시된 삼성전자의 갤럭시 기어는 연간 판매 100만 대를 넘어섰고 2014년 나온 애플워치와 올해 선보인 갤럭시 기어 S2는 그동안 잠재적인 수요에 머물러 있던 웨어러블 시장을 본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올해 3분기에 출하된 전 세계 웨어러블 기기는 2100만 대에 달한다.

삼성과 애플이 양분하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과 달리 웨어러블 시장의 특징은 한마디로 ‘작은 거인’들의 활약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시장조사 기관인 IDC는 올 3분기 웨어러블 출하량 조사에서 핏빗이 470만 대를 차지하며 1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 분기 출하량(230만 대)의 거의 2배에 가까운 실적이다. IDC는 미국 포천 500대 기업 중 70개 기업이 핏빗을 직원 복지 차원에서 임직원에게 제공한 것이 결정적인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올 3분기 웨어러블 기기 판매량 2위는 애플워치가 차지했다. 경쟁사인 삼성에 비해 다소 늦게 스마트워치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뛰어난 품질과 디자인, 마니아적 인기를 바탕으로 단숨에 2위로 치고 올라왔다. 애플워치는 출시 초기인 올 2분기에 360만 대를 팔았고 3분기에는 390만 대까지 판매량을 늘렸다.

3분기 웨어러블 판매량을 보면 2위인 애플을 빼고는 1위인 핏빗을 비롯해 3~5위가 모두 ‘IT 공룡’과는 거리가 먼 기업들이다. 미밴드 370만 대를 팔며 3위에 오른 샤오미는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오른 것이 사실이지만 업계에선 여전히 스타트업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가민(Garmin)은 2014년 조사에선 2위에 올랐지만 올해 시장점유율이 2.9% 하락하며 4위로 밀렸다.

5위에 오른 중국 BBK의 등장도 예사롭지 않다. 국내는 물론 미국에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중국의 IT 제조 기업 BBK는 자회사인 XTC가 개발한 전화기·시계 겸용 기기 ‘Y01’을 올 3분기에만 70만 대나 팔아 치웠다. Y01은 주로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제품으로, 국내에서 SK텔레콤 등이 판매 중인 손목시계형 전화기와 유사한 형태다. BBK의 선전은 올 3분기 전까지 판매량 톱 5에 올랐던 삼성전자를 밀어낸 결과여서 더욱 충격적이다.

내로라하는 IT 업계 공룡들 틈에서 웨어러블 시장의 최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핏빗은 2007년 10월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닌텐도 위 게임을 즐기다가 동작 감지 기능을 활용한 초소형 웨어러블 기기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한국계 미국인인 제임스 박 최고경영자(CEO)다.


무명의 BBK, 삼성 제치고 5위

지난 6월 20일 미국 뉴욕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한 핏빗의 현재 주가는 31달러로 시가총액만 67억 달러(약 8조 원)에 달한다. 핏빗의 성공 비결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애플과 삼성의 스마트워치가 스마트폰과 맞먹을 정도의 다양한 기능을 담는 것에 주력했다면 핏빗은 철저하게 피트니스 기능에만 집중했다.

대표적 기능 중 하나인 스마트 트랙은 사용자의 움직임을 분석해 운동 시간, 칼로리 소모량, 심장 박동 수 등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전달한다. 사이클·달리기·걷기 등 기본적인 유산소 운동 외에도 축구·농구·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식별할 수 있다. 제임스 박 CEO는 “피트니스 시장 규모가 2000억 달러(약 232조 원)에 이른다”며 “핏빗은 시장의 많은 승자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다양한 모델과 가격대도 핏빗의 강점이다. 간단한 기능을 제공하는 클립형 제품인 집(ZIP)부터 최고급형인 서지(SURGE) 모델까지 150~250달러대에 구입할 수 있다. 가장 싼 애플워치 모델이 400달러대인 것을 감안하면 핏빗의 가격 경쟁력을 실감할 수 있다.

샤오미의 미밴드가 3분기 웨어러블 기기 점유율 3위에 오른 것도 가격 경쟁력의 승리가 바탕이다. 미밴드는 걸음 수와 칼로리 소모량, 수면 상태 등 3가지 기본 기능만을 제공하는 스마트밴드로, 샤오미 제품 대부분이 그렇듯이 단돈 15달러라는 가격 파괴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비슷한 기능의 핏빗 제품은 100달러대로, 두 제품의 가격 차는 85달러에 달한다. 기본적인 운동 기능만 체크하고 싶고 두 제품 간 품질 차이가 크지 않다면 소비자의 선택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불문가지다. 샤오미 미밴드가 시장 출시 1년 만에 핏빗을 위협할 스마트밴드로 성장한 배경이다.

최근에는 심장 박동 수 체크 기능이 있는 미밴드 펄스가 기존 가격과 거의 비슷한 16달러에 출시돼 핏빗의 아성을 넘보고 있다. 미밴드는 올 3분기에 시장점유율 17.4%를 기록해 2위인 애플워치의 18.6%를 바짝 추격했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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