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노른자위 땅에서 펼쳐진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에서 다윗이 이겼다. 전투명은 ‘서초 무지개아파트 재건축 사업 수주전’. 다윗은 GS건설, 골리앗은 삼성물산이었다. 격전지도 삼성물산의 뒷마당이랄 수 있는 삼성 서초사옥 인근이었던 만큼 드라마틱한 반전 승부였다는 평가다. 이번 수주전은 ‘강남 재건축 시장의 판도를 흔든 GS건설의 복수전’과 ‘유리한 조건에서 래미안 타운 완성의 기회를 날린 삼성물산’으로 요약된다.
수주전 초반 무게 추는 ‘삼성물산’
서초 무지개아파트 재건축조합은 2015년 12월 19일 시공사 선정을 위한 총회를 개최했다. 삼성물산과 GS건설의 진검 승부였다. 총회에서 진행된 조합원 투표 결과 GS건설은 전체 1132표 가운데 725표를 득표하며 시공사로 선정됐다. 삼성물산은 402표를 받는 데 그쳤다.
무지개아파트 재건축은 서울시 서초구 효령로 391 일대 6만1641㎡에 지하 3층~지상 35층 규모의 아파트 10개동 1481가구(분양 1344가구, 임대 137가구)를 짓는 대형 프로젝트다. 총사업비만 3800억 원에 육박한다.
초반의 분위기는 삼성물산이 우위였다. 삼성물산은 2015년 도급 순위 1위를 기록하며 왕좌에 오른 건설사다. 국내 굴지의 건설사 GS건설(도급 순위 5위)이 ‘다윗’에 비유된 것도 상대가 삼성물산이었기 때문이었다. 아파트 브랜드 인지도만 놓고 봐도 삼성물산의 ‘래미안’이 GS건설의 ‘자이’를 앞선다.
무지개아파트가 ‘삼성 래미안 타운 조성’ 계획의 일부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그룹은 이미 오래전 서초사옥 뒤쪽 5개 아파트 단지를 묶어 5000가구 규모의 래미안 타운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삼성물산은 우성아파트 1·2·3차 시공권을 확보, 무지개와 신동아아파트 수주만 남겨두고 타운 조성에 따른 프리미엄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태였다.
시공사 선정 총회에 앞서 2015년 11월 27일 입찰 당일 공개된 양사의 입찰 조건은 삼성물산 쪽으로 무게 추를 기울게 만들었다. 삼성물산이 GS건설보다 낮은 공사비를 제시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양사의 입찰 제안서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GS건설보다 40억 원 정도 낮은 3779억 원의 공사비를 제시했다. 3.3㎡당 공사비는 삼성물산이 419만4000원, GS건설이 468만9838원이었다. 전반적으로 우세했던 삼성물산이 가격마저 낮게 제시하며 시공권 확보에 사활을 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개아파트 조합원들은 GS건설을 선택했다. 득표 수도 300표 이상 차이를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실 GS건설은 2012년 무지개아파트 인근에 자리한 서초 우성3차 재건축 시공사 선정에서 삼성물산과 맞붙어 고배를 마셨다. 불과 3표 차의 아쉬운 패배였다. 그로부터 3년 뒤 다시 도전장을 던진 GS건설은 절치부심하며 자존심 회복에 나섰다.
공사비는 삼성물산보다 높았지만 특화 설계를 내세웠다. 김환열 GS건설 전무는 “GS건설은 무지개아파트를 위해 글로벌 디자인 회사인 TEN과 업무 제휴하고 오랫동안 특화 설계안을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특화 설계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내용은 당초 10개 동으로 계획된 단지를 9개 동으로 바꾸는 대신 2만㎡ 규모의 단지 내 중앙공원(가칭 ‘그랑파크’)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한 개 동이 줄었지만 소형 평형 비율을 높여 오히려 가구 수는 1487가구로 당초 조합이 제안한 1481가구보다 6가구 늘렸다. 이는 삼성물산이 제시한 설계안보다 52가구 많은 것으로 쾌적한 주거 환경과 분양 수익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다.
GS건설 ‘특화 설계’ 앞세워 승부수
또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층간 소음’을 해결하기 위해 바닥 슬래브(다층 건물의 층) 두께를 일반 아파트보다 두꺼운 250mm로 하고 고급 단지에만 적용되는 음식물·일반쓰레기 이송 설비를 설치해 주부들의 편의성도 높였다. 이와 관련해 무지개아파트의 한 주민은 “서초 지역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대안 설계와 특화는 GS건설이 얼마나 고민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물산도 에버랜드와 제휴해 단지 내 다양한 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앞서 수주한 우성1·2·3차와 차별화된 부분이 크게 없어 보였다”면서 “이를 두고 주민들 사이에 삼성물산이 GS에 비해 너무 성의 없이 설계한 것 아니냐는 아쉬움과 우성아파트의 눈치가 보여 차별화할 수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엇갈렸다”고 덧붙였다.
삼성 래미안 타운을 완성하기 위한 무지개아파트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삼성물산이 수주전에 성의가 없었기보다 적극적인 대응에서 한 발 밀렸다는 분석이다. 재건축 수주전에서 핵심 인력으로 꼽히는 아웃소싱(OS) 요원을 투입한 시점도 GS건설이 빨랐고 원활한 자금 투입으로 적극적인 홍보전을 펼친 쪽도 GS건설이었다. 현장에 투입됐던 한 OS요원은 “앞서 현장 정서를 파악하고 꼼꼼히 준비에 돌입한 GS건설의 전략은 모델하우스 투어와 설명회 참석자 모집 등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면서 “적잖은 홍보비가 투입되는 재건축 수주전에서 건설사의 자금력이 승패를 가르기도 하는데 이 부분에서 GS건설이 앞선 것은 삼성물산이 방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측은 정부·지자체의 기준과 사내 컴플라이언스(준법 감시)를 지키다 보니 자금 투입이 원활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깨끗한’ 수주전을 하려다 보니 업무 추진에 한계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매터도(근거 없는 사실을 조작해 상대편을 중상모략하는 등의 흑색선전) 경쟁에서는 삼성물산도 GS건설에 밀리지 않았다. GS건설이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곧 팔린다”며 매각설로 공격하자 삼성물산이 GS건설의 부채와 신용도를 지적하며 “GS건설은 회사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대응했다. GS건설이 어려워진다는 것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매각 가능성이 표심이 움직였다는 후문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무지개아파트 수주전 결과는 강남 재건축 시장의 판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GS건설은 강남 재건축 시장의 강자 이미지를 확고히 하며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 반면 강남 터줏대감 삼성물산은 안방에서의 패배로 체면을 구기고 ‘래미안 타운’ 조성에 실패했다. 강남 재건축 시장이 절대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반포제3주구(2117가구), 잠실 미성(1230가구), 대치 쌍용2차(364가구), 개나리4차(264가구), 신반포13차(180가구), 서초 신동아(104가구) 등 아직 시공사를 선정하지 못한 단지가 많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강남 재건축은 사업성이 뛰어나 대형 건설사들이 꾸준히 군침을 흘려 온 시장인 만큼 더욱 치열한 수주전이 예상된다”며 “이제 곧 판교로 떠나는 삼성물산(건설부문)이 ‘래미안 타운’의 마지막 단추였던 신동아 아파트 수주전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큰 관심”이라고 말했다.
김병화 기자 kb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