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신인맥(1)] '순혈주의 벗은 삼성'…해외 영입파 급부상

'삼성전자'는 테크노 CEO가 주도…여타 계열사에선 재무 파워 건재

지난해 9월 미국 새너제이에 완공한 삼성전자 부품(DS) 부문 미주총괄 빌딩. 10층 규모의 이 빌딩에 삼성전자 전략혁신센터(SSIC)를 포함해 2000여 명이 근무한다.

시대는 또 한 번 변하고 있었다. 2000년 디지털 열풍이 분 이후 10년이 흘러 이번에는 모바일 패러다임이 몰려왔다. 애플발 스마트폰 충격이 삼성을 위기와 긴장 속으로 몰고 갔다.

2012년 삼성그룹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가전·반도체·스마트폰을 망라한 세계 초일류·창조적 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하며 마케팅과 디자인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무형자산 등의 창조적 능력을 중시하는 풍토가 조성됐다. 2012년 스마트폰 세계 1위를 하며 진짜 글로벌 회사로 도약하게 된 것이다.

이후 또 하나의 인맥 줄기가 뻗어 나온다. 해외파들이 실세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삼성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글로벌 마케팅, 소프트웨어 등에 강점이 있는 외부 영입파들이 임원 명단에 속속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생각은 “왜 이렇게 현지에 한국인이 많으냐”는 것이었다.

삼성의 매출 90% 정도가 해외에서 나올 뿐만 아니라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역량을 갖춘 인재가 필요했다. 현지법인에서 현지 사람을 채용하기 시작했고 거의 다 외부 수혈을 통해 이뤄졌다.

실리콘밸리서 ‘혁신’ 수혈

삼성 인맥의 글로벌화는 크게 두 단계를 거쳐 진행되고 있다. 먼저 과도기 단계로, 해외를 경험해 본 한국인들을 영입하는 것이었다. 홍원표 사장, 데이비드 은 사장, 최치훈 사장, 손영권 사장, 이인종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인 혹은 재미 교포 출신의 사람들의 영입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둘째 단계는 완전한 현지화, 즉 외국인 채용의 증가다. 한국 사람만으로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현지 사람을 고위직에 채용하고 있다. 일례로 일본인 출신 외국인의 경우 과거에는 소니 등 글로벌 회사를 은퇴한 55세 이상 인사들을 고문으로 앉혔다면 지금은 현직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채용하는 분위기다.

이재용 시대를 맞으면서 일부 한정된 부분이 아니라 외국인들은 핵심적인 위치까지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지에서는 상무급인 VP들이 현지인으로 채워지고 있는 분위기다. 과거에는 잘해야 부장까지 오르던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마케팅·영업·개발 등 각 부문의 상무이자 VP로서 현지 상황에 맞는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핵심 임원들이 외국인들로 교체되면서 이제는 해외 법인의 총괄이 외국인으로 바뀔 날이 머지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도 출신 35세 상무 ‘프라나브’

글로벌 인재들은 실제 지금의 삼성전자의 히트 아이템들을 만들어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전진기지가 바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로는 손영권 사장이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 신화로 불리던 인물로, 매사추세츠공과대(MIT)를 나와 인텔코리아 초대 사장과 애질런트테크놀로지스 사장을 거친 후 삼성에 합류했다. 그는 부품 분야에서 신기술을 찾을 실리콘밸리 전략혁신센터(SSIC)를 이끌고 있다. 그는 반도체 쪽 기술뿐만 아니라 미국 R&D를 알고 있는 이로, 현재 반도체를 비롯한 부품 쪽의 신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세트 쪽에서는 데이비드 은이 주목할 이로 꼽힌다. 구글에서 한국계로서 가장 높은 지위인 구글 콘텐츠 부사장, 미디어·콘텐츠 기업 아메리카온라인(AOL) 미디어스튜디오 부문 사장을 지내 해외 기술 흐름과 온라인 비즈니스를 아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는다. 49세의 젊은 나이의 교포로 한국말에 서투르다.

그는 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GIC)에서 삼성의 미래 산업인 사물인터넷(IoT)을 맡고 있다. 기술 개발과 함께 주로 현지의 스타트업들을 인수하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페이의 기반 기술을 제공한 루프페이, 갤럭시폰의 뮤직 스트리밍 서비스 ‘밀크’를 개발한 엠스팟은 모두 삼성이 인수·합병(M&A)한 해외 벤처다.

GIC의 역할과 규모가 커지면서 이재용 부회장 시대에는 국내 독자 연구·개발보다 실리콘밸리를 거점으로 한 R&D와 기업 인수가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최근 간판급 연구소인 수원의 DMC연구소 등에서 근무 중인 R&D 인력 1000~1500명을 사업부로 보내는 등 국내 R&D 인력 규모를 줄이는 중이다. 이번 조직 개편으로 삼성전자 내부 직원들은 DMC연구소가 사실상 해체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은 현재 실리콘밸리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이재용 시대 리더십은 신사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도 새로운 시도들을 해봤지만 기존 조직에서는 어렵다는 쪽으로 가닥이 모아졌다.

그래서 외부 수혈을 생각했다. 기술 격전지인 실리콘밸리에서 직접 기술 개발부터 서비스 모델까지 만들어 성공 모델을 가져다 심겠다는 것이 현재 실리콘밸리 구상이다.

이들의 역할은 신기술 개발에 있다.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삼성 내부 개발팀을 통해 만드는 것. 또 하나는 M&A다. 애플과 구글이 하는 전략 그대로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 다녀온 한 인사는 “삼성 같지 않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거의 다 외국인들로 구성돼 있는데 구글·페이스북에서 일하던 고급 인력들이 너무 많다는 것. 그는 “앞으로 실리콘밸리를 주목해 볼만하다. 최근 터지는 기술과 서비스들은 다 외부에서 만든 것들”이라고 귀띔했다.

만약 이곳에서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면 인맥의 무게중심 축이 확 쏠릴 수도 있다. 이 밖에 전무·상무급으로 쟁쟁한 사람들을 섭외하고 있는데, 삼성 내부 사람조차 그 명단을 다 알지 못할 정도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이 핵심 인력 스카우트 팀에서 따로 찾아 이재용 부회장을 통해 직접 데려오고 있다. 삼성이 섭외한 외국인 중 주목해 볼 인물은 최연소 외국인 임원인 인도 출신의 프라나브 미스트리 상무다. 10년 전 이미 ‘식스 센스’라는 IoT를 선보인 천재적인 인물로, 삼성의 사용자 경험(UX) 사용자 인터페이스(UI)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현재 삼성을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왔는지, 이력을 추적해 봤다. 삼성그룹 상장 계열사 부사장 이상의 학력·경력을 분석한 결과 삼성 인맥에는 몇 가지 ‘패턴’이 존재했다. 첫째, 전자는 반도체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둘째, 재무의 힘은 죽지 않았다. 셋째, 글로벌 마케팅 경험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개발실장-사업부장’ 공식 깨질 것

삼성그룹의 현재 실세들은 전자의 경우 테크노 CEO가 주름잡는다. 전자를 제외한 계열사들은 여전히 관리 인력이 쥐고 있다. 또한 이재용 시대의 글로벌 인맥들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점차 영역을 확장할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테크노 CEO와 글로벌 인맥이 합쳐지고 있는 중이다.

이런 흐름은 삼성의 뿌리 깊던 ‘순혈주의’를 흔들고 있다. 글로벌 메트로폴리탄적인 자질을 갖고 있는 완전히 국제화된 사람들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까지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는 테크노 CEO들은 ‘개발실장-사업부장’을 거치며 전형적인 승진 코스를 겪었지만 향후에는 이 패턴이 깨질 수도 있다.

이재용 시대 인사 관전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관리의 삼성을 변주하면서 동시에 삼성이 잘 모르던 영입파를 확대하고 있고 주로 상무·전무급으로 스카우트되고 있다. 지금 삼성은 모바일 이후의 전략, 새로운 인재상을 그리고 있다. 원칙 중 하나는 세계 최고의 인재를 뽑는다는 것이다. 앞으로 내부에서 육성된 인재와 외부에서 영입한 인재의 합종연횡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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