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원이던 가격 20배 올라, 삼성전자 월급이 35만원이던 시절
최근 종방된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시중에 복고풍을 유행시키고 있다. 반응은 다양하다. 당시 5000만원이었다는 은마아파트 몇 채를 사뒀다면 20배가 오른 지금은 상당한 부자의 대열에 들었을 것이라고 후회하는 사람부터, 그 당시에 살던 사람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었는데 어려운(?) 현재에 태어나 고생이라는 자조적인 반응까지 나온다. 심지어 과거 사람들이 꿀을 다 빨아먹어 현재 사람들이 고생한다는 논리까지 나오고 있다.
만약 타임머신이 있어 과거로 갈 수 있다면 누구나 은마아파트를 몇 채 사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사람들은 왜 은마아파트를 사지 않았을까. 은마아파트를 사는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냥 돈만 가지고 가면 언제나 누구든지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은마아파트는 그때도 강남의 여러 아파트 중 하나였다. 은마가 아니라 다른 아파트를 샀더라도 다소 차이는 나더라도 상당한 시세 차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살았던 많은 사람, 본인이나 본인의 친척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마아파트를 사지 않았다. 비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은 집값이든 주가든 과거에는 저평가됐고 현재는 고평가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과거에도 집을 사기에는 그 당시 소득수준에 비춰 상당히 어려운 결정이었던 것이다. 과거 사람도 집값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도 ‘상투’ 두려워해
외환 위기 이후 바닥을 친 집값이 회복되면서 강남 아파트 값이 평당 1000만원에 근접하자 거품이라는 이야기가 언론을 장식했다. 심지어 한국 소득수준과 인구 증가율 등을 복잡한 식에 넣어 강남 아파트 값이 3.3㎡(1평)당 1000만원을 절대 넘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땅값을 제외한 건축비와 강남 아파트 시세를 비교하면서 거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현재의 시세를 아는 사람으로서는 얼마나 허황된 주장인지 공감하겠지만 그때도 집에 투자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당시 기준으로는 상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삼성전자·아모레퍼시픽·한미약품 주식에 투자할까’ 하는 사람에게 은행에 다니는 사람이 ‘지금 주가는 거품이니 절대 투자하지 마라’고 만류하는 장면이 나온다. 1988년 삼성전자의 주가는 3만원 남짓이었다(연평균 삼성전자 주가 3만2631원). 현재는 주당 110만~120만원 정도 한다. 그 당시 잘못된(?) 조언을 듣지 말고 용기를 내 투자했더라면 지금쯤 30~40배의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는 쉽게 재테크를 했고 쉽게 돈을 벌었다고 착각하는 것은 현재의 시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는 과거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어려우며 앞으로도 어려운 분야인 것이다. 과거 은마아파트 시세가 5000만원이었던 시절에 투자할 걸 그랬다고 아쉬워하는 지금에도 미래에서 온 사람이 봤을 때 은마아파트 값이 10억원이라면 거저라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은마아파트나 삼성전자가 아니더라도 그 당시 다른 것에라도 투자해 놓았더라면 상당한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1988년 12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27년 동안 전국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258%였고 서울은 297%나 됐다. 특히 한강 이남의 11개 자치구는 362%의 높은 상승률을 구가했다. 전세는 그보다 더 올라 전국 아파트의 전세는 510%, 서울 아파트의 전세는 570%나 올랐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코스피지수가 600을 돌파한 것은 1988년 1월 26일이고 900을 돌파한 것은 1988년 12월 12일이다. 결국 1988년 연초 기준으로 하면 현재 코스피지수는 그 당시에 비해 세 배 수준이 된 것이다.
집값이든 주가든 이처럼 많이 오른 이유는 돈 가치의 하락에 있다. 1988년 당시 5000만원은 상당히 큰돈이었다. 그 당시 주택복권 1등 당첨금은 3000만원이었다. 그 당시 제조업 중에서 월급이 가장 높은 수준이었던 삼성전자의 1987년 대졸 신입 사원 월급은 35만원이었던 시절이다. 그만큼 돈의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투자는 ‘힘들게 번 소중한 돈을 통화가치 하락으로부터 지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경제 용어로 하면 ‘인플레이션 헤지(hedge)’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통화량은 비례해 증가한다. 경제성장률이 높을수록 돈의 가치도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한국과 같이 수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큰 나라일수록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려야 수출에 유리하기 때문에 의도적이든 자연적이든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렇게 돈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는 나라에서는 현금보다 현물(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 살인적인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짐바브웨 같은 나라에서는 돈이 생겼을 때 빵을 만들 밀가루를 당장 사는 것이 유리할지 아니면 나중에 사는 것이 유리할지 생각해 보라. 이런 측면에서 볼 때 1988년 당시 여유 자금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은마아파트를 사든, 삼성전자 주식을 사든 자산을 사 놓았다면 높은 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내지르는 사람이 돈을 벌었던 것도 아니다. 주식은 1988년과 현재 사이에 상장폐지가 돼 휴지 조각이 되어 버린 종목도 상당히 많았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1988년 12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27년 동안 전국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258%다. 2.58배 상승이라는 것인데, 은마아파트가 같은 기간 20배 정도 오른 것을 감안하면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은마보다 비쌌던 일산 아파트
주식시장이 종목별로 차별화되듯이 주택시장도 지역별로 차별화가 이뤄진다.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 가족에게 2억원의 목돈이 생겼던 1994년 당시 일산 등 1기 신도시의 아파트 값은 같은 평형의 은마아파트 값보다 비쌌다. 그 당시 일산 아파트는 새로 지어진 아파트고 은마아파트는 15년이나 된 낡은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은마아파트를 팔면 일산 아파트 두 채를 더 살 수 있다. 같은 기간 동안 돈의 가치는 동일하게 떨어졌지만 지역별로 수요와 공급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과 중반, 벤처 붐을 타고 강남에 주택 수요가 몰렸지만 강남 재건축 규제 강화로 그에 상응하는 주택을 공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급의 균형이 깨지면서 강남 집값이 폭등했던 것이다. 반면 일산은 주변에 꾸준히 아파트가 공급됐기 때문에 돈의 가치 하락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승 폭이 적었던 것이다.
이런 원리는 과거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진행형이고 미래에도 닥칠 일이다. 본인이 투자를 고려하는 지역이 수요가 늘어날 지역인지 또는 공급이 많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은 아닌지 따져보고 투자할 때 다른 사람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드라마를 보고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미래의 눈으로 현재를 살펴보는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
시간 내서 보는 주간지 ‘한경비즈니스’ 구독신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