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story] ‘실적 無’ 복합점포의 비밀



금융권에서 지난해 의욕을 갖고 추진한 복합점포에서 보험 상품만 적자를 내는 등
외딴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 달에 상품 하나 팔기도 힘들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다.
보험 상품은 결국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것인가.

여러 개의 금융사가 한곳에 모인 복합점포는 지난 한 해 상당히 각광을 받았다. 은행과 증권 혹은 은행, 증권, 보험이 한 점포에 모여 고객에게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금융사에는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실제로 은행과 증권사는 복합점포에서 꽤 좋은 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초 금융권 1호 복합점포를 내는 등 적극적으로 달려든 NH농협금융그룹은 복합점포 네 곳의 관리 자산이 불과 몇 달 사이 6조4386억 원이나 순증하기도 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은행·증권 복합점포의 실적이 타 점포를 압도한다”며 “복합점포를 계속해서 늘려 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은행과 증권의 재테크 상품을 한곳에 모은 원스톱 서비스로 고객들의 반응이 좋다”며 “금융그룹 입장에서도 특히 점포가 적은 증권사에 좋은 채널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은행, 증권, 보험사가 모두 입점한 복합점포에서 보험사의 실적은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다. 한 달에 상품 2~3개 파는 것도 힘겨워하는 상황이다. 왜 복합점포에서 보험사 실적만 이렇게 처참한 걸까. 주된 이유로는 과도한 규제와 보험사의 의도적인 방기가 꼽히고 있다.

규제 탓인가 vs 의도적 꼴찌 경쟁인가
현재 4대 금융지주에서 보험사가 입점한 복합점포 수는 KB금융지주 2개, 신한금융지주 1개, 하나금융지주 1개, NH농협금융지주 2개 등 총 6개다.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금융지주당 3개씩의 보험사를 포함, 복합점포를 허용했다. 그런데 개점 후 수개월이 지난 이들 복합점포의 보험 부문 실적은 눈 뜨고 보기 힘든 지경이다.

NH농협생명은 지난해 8월 개점한 복합점포에서 종신보험 2개(주계약 각 5000만 원), 실손보험 6개 등 총 8개의 상품만 판매했다. 9월 실적은 아예 전무하다. 비슷한 시기 개점한 하나생명은 지난해 10월 말까지 판매 건수 8건, 거수보험료 약 400만 원만을 기록했다.

KB금융지주가 지난해 10월 여의도에 만든 복합점포는 금융권 최초로 4개사(KB국민은행, KB투자증권, KB생명, KB손해보험)가 입점했다. 이 점포에서 KB생명은 한 달간 딱 1개의 상품만 팔았다. KB손보는 총 12건의 판매 실적을 올렸지만, 대부분 자동차보험, 운전자보험 등 저렴한 상품들이었다.

지난해 12월 중순까지로 기간을 늘려 살펴봐도 역시 볼품없기만 하다. 복합점포에서 NH농협생명은 21개, 하나생명은 10개의 상품만을 팔았다. 지난해 11월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신한생명의 판매 건수는 달랑 5건에 그쳤다. KB생명은 지난해 12월 중순까지 6개, KB손보는 24개의 상품을 판매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임대료, 인건비 등을 감안할 때 보험사는 복합점포에서 커다란 적자만 내는 꼴이다”라고 우려했다.

복합점포에서의 실적 부진에 대해 보험사들은 주로 ‘칸막이 규제’를 거론한다. 복합점포에서 은행과 증권사가 칸막이 없이 공간을 공유하는 데 반해 보험사 공간은 칸막이로 차단돼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은행과 증권사 직원이 보험 상품을 문의하지 않은 고객을 보험사로 연결해주는 것도 금지돼 있다. 사실상 보험사는 복합점포의 일원이 아니라 외떨어진 섬인 셈이다. “이래서는 도저히 영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규제를 개선하지 않는 이상 복합점포의 적자 개선은 요원한 이야기”라면서 “사실 복합점포에 보험사 입점 자체가 금융위원회의 치적용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고 비판했다. 금융위는 오는 2017년까지는 보험사 포함, 복합점포를 지주당 3곳까지만 허용했다. 그런데 “이는 허용이 아니라 3곳까지는 무조건 만들라는 압박에 가깝다”는 설이 난무한다. 그러면서도 ‘칸막이 규제’는 사라지지 않으니 보험사들은 적자 나는 점포를 억지로 더 만들어 운영해야 하는 입장이다.

한편으로는 보험사들이 일부러 복합점포의 부진한 실적을 방기한다는 지적도 있다. 1차적으로 설계사들과 정치권의 눈총을 피하고, 2차적으로 복합점포에 보험사 입점 전면 확대를 끌어내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보험 포함, 복합점포가 추진될 당시 보험설계사들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보험대리점협회는 전국적으로 반대 서명 운동까지 벌였다. 보험대리점협회는 “복합점포 확대는 은행계 보험사들의 상품만 독점적으로 판매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은행계를 제외한 보험설계사들의 일자리와 소득 감소를 유발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복합점포에 보험사가 입점하는 것은 사실상 ‘방카슈랑스 25%룰’의 회피 수단이라는 의심이 강하다. 전국적으로 보험설계사의 수는 수십만 명에 달하기에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도 이들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은행계 보험사들이 전업보험사와 설계사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처참한 실적을 모른 체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를 통해 복합점포의 전면 확대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그 사이 손해는 고객들만 보고 있다. 한 곳에서 은행·증권·보험의 원스톱 서비스를 바라는 고객들이 많지만, 과도한 규제와 의도적인 방기 때문에 고객들은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안재성 세계파이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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