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추가 완화로 금리 인상 어려워…대출 규제 강화도 오래 못 갈 듯
일본이 기준 금리를 마이너스 0.1%로 전격 인하했다. 일본은 그동안 저금리 국가의 상징으로 꼽혀 왔지만 마이너스 금리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이번 조치가 일본에서는 처음이지만 스위스나 스웨덴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마이너스를 적용하고 있는 나라가 여럿 있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한국과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연관성이 높지 않아 이슈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일본계 자금 대거 유입되나
하지만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자 한국과 바로 인접한 국가다. 쉽게 말하면 스웨덴계 자금이 한국으로 들어올 가능성보다 엔-캐리 자금이라고 불리는 일본계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의미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미국 양적 완화의 문제점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미국은 금리를 제로 금리에 가깝도록 내렸지만 그래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천문학적인 규모로 양적 완화를 시행했다. 시중에 돈을 다량으로 풀어 경기를 살리려는 의도인 것이었다.
하지만 경기가 나빠지면서 투자하려는 사람이 줄어들고 사업을 확장하려는 사람도 적어지면서 자금 수요가 감소했다.
금융권도 무리하게 대출하는 것보다 안전하게 중앙은행에 여유 자금을 맡겨 두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중앙은행에서 풀려나간 돈이 시중에 돌아다니기보다 금융권에서만 맴도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양적 완화를 해 봤자 그 효과가 반감됐던 것이다.
예를 들면 상류 지방에 비가 많이 내렸지만 중간에 댐에 가로막혀 가뭄에 시달리는 하류 지방은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면 댐에 물(자금)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손해가 되기 때문에 모든 댐에서 물(자금)을 방류할 것이고 이는 하류(시중)에 물(자금)이 넘쳐흐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일본의 기준 금리가 인하된 것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첫째, 일본계 자금의 유입 가능성이 높아진다. 상대적으로 고금리인 한국은 일본 금융권에 매력적인 시장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세계에서 셋째로 많은 나라가 됐으므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안전한 투자처다. 일본계 자금이 한국에 들어온다는 것은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시중에 유동성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보다 심각한 것은 환율이다. 한 나라의 금리 수준은 환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금리가 낮다는 것은 그 나라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이고 그 나라 경제의 경쟁력이 그만큼 낮아졌다는 의미도 된다. 일본의 경우 엔화가 약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가 지난 30년간 망가진 것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급격한 엔화 강세 현상에 기인한 만큼 그 이전으로 돌려놓자는 것이 아베노믹스의 기본 목표이고 엔화 약세 정책이 그 중심에 있다.
어느 나라의 통화가 약세를 보이면 그 나라의 수출은 늘어나게 된다. 반대로 내수 물가가 오르면서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는 이유다. 물가수준이 높은 나라에서는 절대 쓸 수 없는 정책이지만 일본은 디플레이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수출 증대와 내수 물가 자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묘수인 것이다.
중국도 금리 인하 나설 가능성 커
문제는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주변국에 끼치는 영향이다. 수출 지역이나 종목이 일본과 겹치는 것이 많으므로 일본의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의미가 된다.
중국도 7%의 경제성장이 깨지고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그 원인이 수출 부진에 있는 만큼 금리 인하 카드를 만지작거리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동아시아에서 ‘돈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기준 금리를 0.25% 인상하면서 금리 인상의 공포가 한국 증시와 부동산 시장을 강타했다. 한국도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미국으로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갈 것이라는 그럴듯한 시나리오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인상 이후 한 달 반 이상이 지났지만 그런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금리 인상 이후 1월 말까지 한국 증시는 2.9% 하락했다. 이를 자금 이탈의 징후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같은 시기에 금리 인상의 당사자인 미국 증시는 오히려 7.2% 내렸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22.1%, 일본이 8.0%, 이탈리아가 12.0%, 독일이 6.4% 내리는 등 한국 증시가 가장 견고하게 지수를 방어한 것이다. 중국 증시 폭락 사태가 각국의 증시에 악재로 작용했기 때문에 우리도 영향을 받은 것이지 미국 금리 인상이 자금 이탈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미국도 증시만 내렸지 금리 인하 이후 주택 시장은 오히려 더 올랐다. 미국의 기존 주택 평균 가격은 지난해 12월 26만6800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7% 올랐다. 이는 금리 인상 직전인 11월의 26만 3700달러보다 더 오른 것이다.
11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3.9%밖에 오르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금리 인상 이후 오히려 주택 시장은 상승 폭이 더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미국은 앞으로도 금리를 계속 인상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그만큼 미국의 수출도 줄어들기 때문에 세계경제의 불확실성과 맞물리면서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도 멀어지게 된다.
게다가 이번에 일본의 금리 인하와 중국의 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놓고 보면 미국의 기준 금리 인상은 많아야 올해 한 번 정도라는 것이 현지의 분위기다.
한국에선 미국의 금리 인상을 계기로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비관론이 한국 증시와 주택시장에 팽배했었다. 하지만 이번 일본의 전격적인 금리 인하로 그런 우려는 한꺼번에 날아간 것이다. 한국이 현재의 금리 상태를 유지한다고 해도 일본계 자금 유입이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전년 대비 18.5%나 감소한 1월 수출 실적을 감안하면 한국도 통화가치를 지금보다 높일 수 없다. 다시 말해 금리를 인상하면 수출이 더 되지 않는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돈의 전쟁에서 한국이 벗어날 방법은 없다. 이에 따라 올해는 금리 인상보다 금리 인하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주택 시장을 누르고 있는 3대 악재는 금리 인상 가능성, 대출 규제 강화, 공급과잉이다. 그중 첫째인 금리 인상 가능성은 거의 물 건너갔다고 보면 된다. 대출 규제 강화는 이번 달부터 수도권에서, 5월부터 지방에서 실시된다.
그런데 시중에 자금이 부족할 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칼자루를 쥐고 있으므로 대출 자격을 강화해도 뭐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시중에 자금이 넘쳐흐르면 어떻게 될까. 대출 규제는 오히려 자신들의 영업을 제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백화점에서 바겐세일을 한다고 하면서 옷을 잘 차려입고 온 사람에게만 물건을 판다고 하면 누가 손해인지 생각해 보라. 결국 시간이 흐르면 금융권의 요구로 대출 규제는 완화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돈의 전쟁은 시작됐다. 어느 포지션에 서 있을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a-cute-bea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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