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heme] 단색화 투자 신드롬! 지금 사도 괜찮을까
입력 2016-03-09 16:09:30
수정 2016-03-09 16:09:30
최근 국내 미술계에 가장 뜨거운 열풍은 단색화다. 지난해부터 주요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폭등하면서 미술 경매 시장규모는 최대를 기록했다. 단색화 인기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단색화가 뜨는 이유와 투자 전망을 알아봤다.
세계를 매료시킨 한국 단색화
10대 작가 낙찰총액 323억 원
단군 이래 지금처럼 세계 주류 미술계의 관심을 받던 때는 없었다. 단색화 해외 전시는 올해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숨은 단색화 거장’ 찾기와 함께 좀 더 다변화된 현대 미술 작가들에게까지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 2월 10일(현지 시간) 열린 소더비 런던 경매 이브닝 세일. 앤디 워홀, 게르하르트 리히터, 장 미셸 바스키아, 데이미언 허스트 등 해외 거장들 사이에서 한국의 단색화 작품 하나가 주목을 받았다. 로트 넘버(lot number, 작품 번호) 47번 정상화의 ‘무제 81-5’(130×97.3cm, 1981년)가 그 주인공이다. 60호 크기의 캔버스가 온통 흰색으로 메워진 이 작품은 경합 끝에 26만9000파운드(4억7000만 원)에 낙찰됐다. 소더비의 탄생지인 영국 런던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모은 ‘이브닝 세일’에 출품됐다는 것만으로 높은 인기를 실감케 했다.
최근 미술 시장을 주도하는 트렌드는 단연 단색화다. 2009년 이후 6년째 미지근했던 미술 경매 시장을 뜨겁게 달군 주역이다.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윤형근 등 대표 단색화 작가들은 불과 1~2년 사이 최고가 작가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 4인의 2015년 상반기 평균 호당 가격은 과거 첫 번째 호황이었던 2007년에 비해서도 3.8배나 상승했다. 단색화 작품을 갖고 있던 컬렉터들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앞서 언급한 정상화의 ‘무제 81-5’만 봐도 그렇다. 과거 경로를 추적해보면 지난해 1월 28일 서울옥션 경매에서 1억4000만 원에 낙찰된 기록을 갖고 있다. 불과 1년 만에 무려 3억3000만 원이나 가격이 뛴 것이다. 동일한 컬렉터로 가정할 때 단순 계산으로 1년 단기 투자 수익률이 236%에 달한다. 저성장·저금리 시대, 잘 고른 작품 한 점으로 심리적 만족을 얻을뿐더러 예상 밖의 수익까지 올린 것이다. ‘아름다운 대체 투자재’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주식시장에서도 미술품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 경매사인 서울옥션의 주식이 올해 들어서만 14% 이상 오르는 등 투자 수요가 늘어나면서 삼성증권은 ‘한국 현대미술의 르네상스가 시작되다’라며 미술 시장 분석 리포트를 내놓기도 했다.
단색화 열풍은 어떻게 불게 된 것일까
이쯤 되면 왜 단색화 열풍인지 궁금해진다. 단색화는 불과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시장에서 외면 받았다. 같은 색이나 형태가 반복되면서 있는 듯 없는 듯 보여 ‘벽지 그림’으로 불리기도 했다. 구체적인 대상을 화려하게 재현한 ‘구상’이나 기하학적인 ‘추상’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단색화의 인기는 낯설어 보일 수도 있다. 단색화는 어떻게 단기간에 미술계의 블루칩이 된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하나의 독자적인 사조로 인정받고 있는 단색화는 오랜 ‘무명’의 설움을 겪으면서 글로벌 미술 트렌드에 의해 주목 받으며 일궈낸 성장이다.
단색화는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국내 현대미술사에서 해방 전후 구상주의 일본 유학파들을 현대미술 1세대로 분류한다면, 그 뒤를 이은 현대미술 2세대 가운데 구상성을 배제한 단색 계열의 추상미술 운동을 시작한 이들이 있었다. 한국의 현대 추상미술을 연 세대다. 화면에서 형태와 색을 최대한 배제하고 단일한 색이 주를 이루며,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질감을 살려냈다.
특히 1970~1980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한 작가들로 박서보(1931년~), 정상화(1932년~), 윤형근(1928~2007년), 정창섭(1927~2011년), 김기린(1936년~), 하종현(1935년~), 권영우(1926~2013년)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지금은 평균 나이 80대의 원로 작가들이다.
40년 전부터 존재했던 단색 계열에 고유한 명칭이 붙은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흰색전’, ‘단면전’ 등으로 소개되던 것에서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의 단색화’ 전에서 처음 ‘단색화(Dan-saekhaw)’라는 영문 고유명사로 사용되며 국내에서 단색화 다시 보기가 시작됐다. 단색화의 이론적 토대를 만든 윤진섭 미술평론가(시드니대 미술대학 명예교수)는 “1970년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미니멀리즘 화풍이 인기를 누렸는데 서구에서는 ‘모노크롬’, 일본에서는 ‘모노화’ 등으로 독자적인 이름과 브랜드를 갖고 있는 데 비해 한국에선 ‘꺼져가는 불씨’였다”며 “우리만의 차별화하기 위한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한국의 단색화전을 계기로 국내 학계나 시장에서 재평가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여기서 잠시 한국 미술 시장의 첫 번째 호황이었던 2007년을 떠올려보자. 당시 트렌드를 일으킨 주역은 여의도를 중심으로 한 국내 투자자들이었다. ‘미술품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번지며 주식시장의 돈이 미술품에 몰렸고, 증권가에서 ‘아트 펀드’까지 출시됐다. 신진 작가들의 ‘컨템퍼러리 아트(contemporary art)’, 특히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이 유행의 중심에 서면서 뚜렷한 형태의 사실적인 구상 작품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그러나 미술 시장에 대한 이해나 성장 없이 투자자 중심으로 단기 수익을 좇으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시장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6년 만에 다시 찾아온 미술 시장의 봄이 과거와 다른 점은 바람이 불어온 ‘방향’이다. 과거에는 국내 주식시장의 큰손들이 작품 가격 상승을 주도했다면, 이번에는 해외 컬렉터들이 한국 미술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역으로 국내에서 활기를 띠게 됐다. 그것도 국내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추상미술과 단색화에서. 이번 호황은 투자자가 아닌 세계 미술계의 큰손들이 주도한 것이다. 특히 아시아 미술 경매의 중심인 ‘홍콩’에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그동안 크리스티나 소더비 같은 국제 경매에서 국제 컬렉터에게 팔리는 국내 작품은 백남준, 이우환 등 소수의 원로 작가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홍콩에서 거래되는 작가 층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배혜경 크리스티 한국사무소 대표는 “홍콩 경매에 나오는 김환기, 남관 등의 작품을 중국, 대만, 홍콩 등 아시아인이 구입하기 시작했고, 정상화,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 등 단색화 작품이 고가에 거래됐다”고 말했다. 중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을 넘어 미국과 유럽의 컬렉터들까지 한국의 단색화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는 점은 확연히 달라진 풍경이다.
왜 외국인들이 한국의 단색화에 꽂혔나.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 트렌드가 바로 단순 추상인 ‘모노크롬(monochrome)’이다. 단색, 빛, 움직임, 연속성을 강조한 독일의 ‘제로(Zero)그룹’이 2010년 전후 각광받으면서 물살을 탔다. 그리고 세계 미술 시장을 주름잡는 미술 관계자들이 전 세계의 모노크롬을 찾던 중 한국의 단색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모노크롬인 ‘모노화’, ‘구타이’가 먼저 부상했고, 일본 니혼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이우환 작가가 조명을 받으면서 ‘한국의 단색화’로 관심이 확대된 모양새다. 김현희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는 “단색화가 해외 미술 시장에서 주목 받는 이유는 서양의 회화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그 속에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작가를 찾던 세계 미술 시장에서 서구와 다른 동양의 미적 가치를 갖고 있는 단색화에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일례로 정상화 작가의 경우 캔버스를 고령토로 초벌칠을 한 후 벗겨내고 다시 칠하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촘촘하게 격자 모양을 만들어내는데, 이 과정이 ‘묵언수행’에 비유된다. 박서보 작가의 경우 한지를 풀어 화폭에 올린 후 연필 작업을 통해 수없이 긋고 밀어내면서 밭고랑 같은 요철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제작한다. 그는 많은 인터뷰에서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으로 나를 비우는 과정이다”라며 “이것은 자연 치유의 예술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비움’과 ‘물아일체(物我一體)’ 등의 정신을 강조한 데서 ‘힐링’의 키워드를 찾는 서구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다.
또 하나 주요한 근거는 ‘가격’이다. 같은 시기에 유행한 사조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한국의 단색화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서다. 이상경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이브 클라인(Yve Klein), 바넷 뉴먼(Barnett Newman) 등 대표적인 모노크롬 작가들의 가격은 800억~900억 원을 호가한다”며 “비슷한 시기의 일본이나 중국의 대표 작가들의 현대미술 작품도 단색화의 최고가보다 평균 2배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고 말했다. 단색화가 저평가됐다는 논리는 높은 투자 수요로 이어졌다.
국내 메이저 화랑이 주도한 물밑 작업도 함께 진행됐다. 시장의 움직임은 그동안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추진하던 메이저 화랑 및 미술관의 노력과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2008년 이후 와해된 미술 시장을 되살리기 위해 미술계 관계자들은 새로운 사조를 찾았고,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하지만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단색화 흐름을 짚었다. 국내 최대 화랑인 ‘국제갤러리’가 주도한 해외 전시들이 관심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 미술 시장을 대표하는 장은 크게 세 개의 축이다. 국제 미술전인 비엔날레(biennale), 그림을 사고 팔 수 있는 아트페어(art fair), 그리고 경매사인 아트옥션(art auction)이다. 국제갤러리는 메이저 아트페어와 최대 규모의 비엔날레에 단색화를 소개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특히 2013년 10월 런던 프리즈 마스터 아트페어에서 단색화 작품이 ‘완판’되면서 이름을 알린 데 이어 2015년 5월 ‘베니스 비엔날레’에 단색화를 병렬 전시하면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전민경 국제갤러리 대외협력 디렉터는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에 단색화 작가들의 활동과 궤적, 주요 작품들을 소개하기 위해 해외 진출 전시를 도모했다”며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병행 전시로 단색화전이 소개된 것은 현재 굴지의 서구 메이저 화랑들에 단색화 작가들의 그룹전과 개인전을 유치하는 주요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파리의 패로탱(Perrotin), 런던의 화이트큐브(White Cube), 홍콩의 페이스(Pace) 등 유명 갤러리들이 쇼룸을 열었다.
단색화 가격의 비밀
이와 같은 일련의 분위기는 작품 가격을 크게 올리는 단초가 됐다. 세계 양대 옥션에서 본격적으로 한국의 단색화를 다루기 시작하고 실제 거래로 이어졌다. 경매 양대 산맥인 소더비와 크리스티 주도로 지난해 5월 홍콩 소더비에서 대규모 단색화 전시가 열렸고, 10월과 11월 각각 뉴욕과 홍콩 크리스티에서 ‘단색화, 한국추상미술전’이 열렸다.
특히 전 세계 컬렉터들이 모이는 아시아 중심 경매 시장인 홍콩에서 신기록이 터져 나왔다. 2015년 10월 김환기 작가의 ‘19-Ⅶ-71 #209’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47억2000만 원에 낙찰되며 박수근의 ‘빨래터’가 세웠던 이전 최고가(45억2000만 원)를 갈아치웠다. 그는 단색화 작가로 분류되진 않지만 단색 계열의 그림을 즐겨 그리며 단색화 열풍에 합류했고 한국 미술품 중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다.
국내 시장도 들썩였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국내 전체 경매사 낙찰총액(1880억 원) 중 단색화 비중은 무려 59%였다. 2013년 전까지만 해도 불과 1% 이하에 그쳤던 수치다. 낙찰총액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경매 가격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특히 어떤 작가의 작품 가격 상승폭이 컸을까. 한국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2015년 단색화 작가의 경매 낙찰총액 순위 톱 10은 정상화,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 정창섭, 권영우, 김기린, 곽인식, 이동엽, 이영배 작가가 기록했다. 특히 정상화,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은 ‘단색화 4인방’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린 작가다.
이 중 ‘10억대 돌파’ 작가들도 생겨났다. 국내 미술 시장에서 10억 원 이상 낙찰가를 기록한 작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백남준 작가의 경매 최고가도 7억 원 수준에 그친다. 지난 한 해 박서보, 정상화 작가는 생존 작가(통상 작가가 작고한 후 가격이 상승함)로 10억 원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작가라 할지라도 시기에 따라 작품 가격은 큰 차이를 보인다. ‘전성기 시절’에 그린 작품이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정상화 작가는 2000년대 이전 작품이, 박서보 작가는 1970~1980년대 초반의 작품 경향이 더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단색화 ‘숨은 거장’을 찾아라
그렇다면 지난 한 해를 화려하게 장식한 단색화 트렌드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여전히 ‘단색화 재테크’가 유효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현재 단색화 열풍은 어디쯤에 와 있을까.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비유하자면 산마루에 올라온 것으로 평가된다”며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가기 위한 전 단계의 산마루에 서서 정상까지 더 올라갈 수도 있고, 이곳이 정상이라 말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미술 트렌드 ‘주기’에 있다. 김 소장은 “보통 미술 트렌드가 4~5년 정도, 길게 보면 10년 간격으로 주기를 타는데 현재 전 세계 모노크롬 트렌드가 6~7년 정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시계 시장 흐름에 우리가 편입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단색화 붐이 어디로 향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희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는 “단색화의 경우 이미 2014년 하반기와 2015년에 걸쳐 가격 상승폭이 높게 진행됐다”며 “이러한 가격 상승은 일부 투자자에 의한 폭등이 아니라 단색화에 대한 미술사적 재평가와 재조명으로 인한 국제적 수요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컬렉터 층이 국내에서 해외로 확대됐다는 점에서 단색화 열기가 쉽게 꺼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투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에 향후 이 정도의 가격 상승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색화 투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쪽에선 좁은 수요·공급 층을 언급한다. 단색화 열풍이 소수 작가에 집중되고, 컬렉터 층도 너무 얇다는 것. 규모가 더 커지기 위해선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더 많은 관심과 수요를 불러일으켜야 하는데, 해외 컬렉터들이 계속해서 단색화를 조명해주는지 반응만 살피면서 엇박자가 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단기간에 가격이 폭등한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거품으로 시장이 와해됐던 1차 호황기 때와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단색화도 거품 논란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다만 과거와는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인다. 2008년 이후 미술 시장이 가라앉은 데는 당시 검증이 되지 않은 컨템퍼리리 젊은 작가들에 ‘묻지마 투자’가 집중된 이유도 있다. 반면 단색화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상승과 하락의 리스크가 적은 원로 작가들로, 시장이나 학계에서 ‘검증’이 끝났거나 진행 중인 작가가 주를 이룬다.
또한 이번 호황기는 과거와 달리 국내 경제의 성장률이 큰 폭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세계 미술 시장이 조정기에 진입한 상황에서 순수하게 한국 현대미술 작품들의 힘에 의해 이뤄졌기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시장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국내 작품들의 가치가 세계 시장에서 부각되며 일궈낸 성장이라면 ‘단타’로 끝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색화가 잠시 지나가는 유행일지, 지속 가능한 추세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관건은 해외에서의 지속된 관심으로 좁혀진다. 긍정적인 점은 주요 언론에서도 단색화를 조명하고 있다는 것.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올해 1월 14일자 기사를 통해 “하종현, 윤형근, 박서보, 정상화 작가들 등은 세계 시장에서 인지도가 2016년 더 상승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또 레베카 웨이 크리스티 아시아 지사장은 “한국 단색화가 거품이 아니다”라며 “단색화 가격이 최근 2~3년간 치솟았으나 걸작으로 꼽힐 만한 최고 작품들은 계속 높은 가격을 유지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단색화 인기의 현재 진행형을 예측하는 또 다른 근거는 ‘인테리어 열풍’에 있다. 이상경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미국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중 하나인 ‘크레이트 앤 배럴(Crate&Barrel)’에 가보니 매장 초입 인테리어 숍에 단색화와 비슷한 느낌의 그림들을 큰 규모로 팔고 있더라”며 “인테리어 시장이 미국에서 커지고 있고, 집 꾸미는 데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복잡하지 않으면서 집과 잘 어울리는 단색화를 계속 선호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단색화의 인기 요인 중 하나가 벽지와 동떨어지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보이는 ‘벽지 그림’인 까닭이다.
해외 미술 관계자들의 ‘러브콜’도 이어진다. 김승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홍콩 가고시안이나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서 이우환 작가의 전시가 있었고, 소더비와 크리스티 쪽에서도 단색화 기획전을 하자고 한국 쪽에 연락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현재는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올라오면서 시장이 커지고 있는 단계라 볼 수 있고 단색화 시장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프랑스 유명 미술관에서 경기도미술관 쪽에 단색화 기획전을 의뢰한 것으로 안다”며 “사설 갤러리를 넘어 구겐하임미술관 등의 유명 미술관 및 박물관에 전시하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분기점이다”라고 말했다.
2015년 국내 미술 시장규모는 약 3700억 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국내 경제 규모와 비교하면 더 커질 여력이 남아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술 시장 비중은 0.02%로, 선진국 평균 0.1%의 5분의 1 수준,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이다.
오랜만에 미술 시장에 찾아온 ‘불씨’를 살려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커지면서, 한쪽에서는 벌써부터 ‘포스트 단색화’ 찾기에 나섰다. 이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단색화의 바통을 이어받을 또 다른 현대미술 사조를 일으키는 것이다. 일례로, 가나아트센터에서는 민중 미술과 리얼리즘 전시회를 예정하고 있다.
또 하나는 단색화의 계보를 잇는 후배 단색화 작가들을 발굴하는 작업이다. 단색화 1.5~2세대로, 50~60대 작가들이다. 남춘모, 천광엽, 장승택 작가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덜 부각된 단색화 1세대 작가들도 명단에 포함된다. 서승원, 김종근, 이승조, 유병훈, 안영일 작가들이다. 성곡미술관은 단색화 1세대인 조용익 작가의 전시를 4월 24일까지 개최할 예정이다.
분명한 것은 단색화의 인기가 국내 미술 시장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구름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색화는 ‘특정 작가’가 아닌 한국의 독자적인 ‘사조’로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은 ‘최초의 사례’다. 일본의 ‘젠(zen) 스타일’과 같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끄는 한국만의 문화예술 스타일은 그동안 전무했다. 글로벌 트렌드 흐름으로 볼 때 단색화가 전 세계 모노크롬의 ‘한국식 버전’이라는 점에서 ‘K아트’로는 한계점을 갖지만, 한국 현대미술의 저력을 보여주며 다양한 현대미술 작가에게까지 해외 전시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성과로 꼽힌다.
김윤섭 소장은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인 최초로 임흥훈 작가가 은사장상을 타고 단색화 특별전을 벌였다는 점, 단색화 대표 원로들이 국제적인 유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정식 초대전을 받아서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는 점, 사설 갤러리나 아트바젤에서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부스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 각 언론에서 이런 현상에 대해 중계하듯이 언급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는 점, 한국 작가들이 글로벌 대표 브랜드와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디렉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이 과거와 확실히 달라진 점이다”라고 말했다.
단색화를 비롯해 국내 현대미술 대형 이벤트는 올해에도 계속된다. 국제갤러리는 올해 상반기에 ‘벨기에 보고시안 재단 단색화 특별전’을 후원 개최하면서 관련 서적을 출시한다. 또한 2월 26일 단색화 화가인 정창섭 개인전을 연 데 이어 3월 23일부터 홍콩에서 열리는 ‘아트바젤 홍콩’에 참가해 박서보, 하종현 등 단색화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단색화 후발 주자’들의 맹활약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해외에서 먼저 조명 받은 단색화 주역들이 ‘멘토’ 역할을 자처한다. 지난해 뉴욕 페로탱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연 박서보 작가는 “한국에는 나 정도 그리는 화가가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고 설명하며 다른 작가들을 추천했고, 홍익대 61학번에 미술동인 ‘오리진회화협회’의 창립 멤버인 이승조, 최명영, 서승원 작가가 초대돼 패로탱에서 ‘오리진’전을 열었다. 좀 더 새로운 미술에 시장이 눈을 돌리면서 당분간 단색화 이슈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관전 포인트는 올해 4~5월 메이저 경매 시즌의 또 다른 ‘스타 작가’의 탄생 여부다.
이현주 기자
세계를 매료시킨 한국 단색화
10대 작가 낙찰총액 323억 원
단군 이래 지금처럼 세계 주류 미술계의 관심을 받던 때는 없었다. 단색화 해외 전시는 올해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숨은 단색화 거장’ 찾기와 함께 좀 더 다변화된 현대 미술 작가들에게까지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 2월 10일(현지 시간) 열린 소더비 런던 경매 이브닝 세일. 앤디 워홀, 게르하르트 리히터, 장 미셸 바스키아, 데이미언 허스트 등 해외 거장들 사이에서 한국의 단색화 작품 하나가 주목을 받았다. 로트 넘버(lot number, 작품 번호) 47번 정상화의 ‘무제 81-5’(130×97.3cm, 1981년)가 그 주인공이다. 60호 크기의 캔버스가 온통 흰색으로 메워진 이 작품은 경합 끝에 26만9000파운드(4억7000만 원)에 낙찰됐다. 소더비의 탄생지인 영국 런던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모은 ‘이브닝 세일’에 출품됐다는 것만으로 높은 인기를 실감케 했다.
최근 미술 시장을 주도하는 트렌드는 단연 단색화다. 2009년 이후 6년째 미지근했던 미술 경매 시장을 뜨겁게 달군 주역이다.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윤형근 등 대표 단색화 작가들은 불과 1~2년 사이 최고가 작가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 4인의 2015년 상반기 평균 호당 가격은 과거 첫 번째 호황이었던 2007년에 비해서도 3.8배나 상승했다. 단색화 작품을 갖고 있던 컬렉터들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앞서 언급한 정상화의 ‘무제 81-5’만 봐도 그렇다. 과거 경로를 추적해보면 지난해 1월 28일 서울옥션 경매에서 1억4000만 원에 낙찰된 기록을 갖고 있다. 불과 1년 만에 무려 3억3000만 원이나 가격이 뛴 것이다. 동일한 컬렉터로 가정할 때 단순 계산으로 1년 단기 투자 수익률이 236%에 달한다. 저성장·저금리 시대, 잘 고른 작품 한 점으로 심리적 만족을 얻을뿐더러 예상 밖의 수익까지 올린 것이다. ‘아름다운 대체 투자재’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주식시장에서도 미술품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 경매사인 서울옥션의 주식이 올해 들어서만 14% 이상 오르는 등 투자 수요가 늘어나면서 삼성증권은 ‘한국 현대미술의 르네상스가 시작되다’라며 미술 시장 분석 리포트를 내놓기도 했다.
단색화 열풍은 어떻게 불게 된 것일까
이쯤 되면 왜 단색화 열풍인지 궁금해진다. 단색화는 불과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시장에서 외면 받았다. 같은 색이나 형태가 반복되면서 있는 듯 없는 듯 보여 ‘벽지 그림’으로 불리기도 했다. 구체적인 대상을 화려하게 재현한 ‘구상’이나 기하학적인 ‘추상’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단색화의 인기는 낯설어 보일 수도 있다. 단색화는 어떻게 단기간에 미술계의 블루칩이 된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하나의 독자적인 사조로 인정받고 있는 단색화는 오랜 ‘무명’의 설움을 겪으면서 글로벌 미술 트렌드에 의해 주목 받으며 일궈낸 성장이다.
단색화는 한국 현대 추상미술의 한 부분에 해당한다. 국내 현대미술사에서 해방 전후 구상주의 일본 유학파들을 현대미술 1세대로 분류한다면, 그 뒤를 이은 현대미술 2세대 가운데 구상성을 배제한 단색 계열의 추상미술 운동을 시작한 이들이 있었다. 한국의 현대 추상미술을 연 세대다. 화면에서 형태와 색을 최대한 배제하고 단일한 색이 주를 이루며,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질감을 살려냈다.
특히 1970~1980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한 작가들로 박서보(1931년~), 정상화(1932년~), 윤형근(1928~2007년), 정창섭(1927~2011년), 김기린(1936년~), 하종현(1935년~), 권영우(1926~2013년)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지금은 평균 나이 80대의 원로 작가들이다.
40년 전부터 존재했던 단색 계열에 고유한 명칭이 붙은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흰색전’, ‘단면전’ 등으로 소개되던 것에서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의 단색화’ 전에서 처음 ‘단색화(Dan-saekhaw)’라는 영문 고유명사로 사용되며 국내에서 단색화 다시 보기가 시작됐다. 단색화의 이론적 토대를 만든 윤진섭 미술평론가(시드니대 미술대학 명예교수)는 “1970년대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미니멀리즘 화풍이 인기를 누렸는데 서구에서는 ‘모노크롬’, 일본에서는 ‘모노화’ 등으로 독자적인 이름과 브랜드를 갖고 있는 데 비해 한국에선 ‘꺼져가는 불씨’였다”며 “우리만의 차별화하기 위한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한국의 단색화전을 계기로 국내 학계나 시장에서 재평가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여기서 잠시 한국 미술 시장의 첫 번째 호황이었던 2007년을 떠올려보자. 당시 트렌드를 일으킨 주역은 여의도를 중심으로 한 국내 투자자들이었다. ‘미술품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번지며 주식시장의 돈이 미술품에 몰렸고, 증권가에서 ‘아트 펀드’까지 출시됐다. 신진 작가들의 ‘컨템퍼러리 아트(contemporary art)’, 특히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이 유행의 중심에 서면서 뚜렷한 형태의 사실적인 구상 작품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그러나 미술 시장에 대한 이해나 성장 없이 투자자 중심으로 단기 수익을 좇으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시장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6년 만에 다시 찾아온 미술 시장의 봄이 과거와 다른 점은 바람이 불어온 ‘방향’이다. 과거에는 국내 주식시장의 큰손들이 작품 가격 상승을 주도했다면, 이번에는 해외 컬렉터들이 한국 미술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역으로 국내에서 활기를 띠게 됐다. 그것도 국내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추상미술과 단색화에서. 이번 호황은 투자자가 아닌 세계 미술계의 큰손들이 주도한 것이다. 특히 아시아 미술 경매의 중심인 ‘홍콩’에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그동안 크리스티나 소더비 같은 국제 경매에서 국제 컬렉터에게 팔리는 국내 작품은 백남준, 이우환 등 소수의 원로 작가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홍콩에서 거래되는 작가 층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배혜경 크리스티 한국사무소 대표는 “홍콩 경매에 나오는 김환기, 남관 등의 작품을 중국, 대만, 홍콩 등 아시아인이 구입하기 시작했고, 정상화,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 등 단색화 작품이 고가에 거래됐다”고 말했다. 중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을 넘어 미국과 유럽의 컬렉터들까지 한국의 단색화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는 점은 확연히 달라진 풍경이다.
왜 외국인들이 한국의 단색화에 꽂혔나.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 트렌드가 바로 단순 추상인 ‘모노크롬(monochrome)’이다. 단색, 빛, 움직임, 연속성을 강조한 독일의 ‘제로(Zero)그룹’이 2010년 전후 각광받으면서 물살을 탔다. 그리고 세계 미술 시장을 주름잡는 미술 관계자들이 전 세계의 모노크롬을 찾던 중 한국의 단색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모노크롬인 ‘모노화’, ‘구타이’가 먼저 부상했고, 일본 니혼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이우환 작가가 조명을 받으면서 ‘한국의 단색화’로 관심이 확대된 모양새다. 김현희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는 “단색화가 해외 미술 시장에서 주목 받는 이유는 서양의 회화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그 속에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작가를 찾던 세계 미술 시장에서 서구와 다른 동양의 미적 가치를 갖고 있는 단색화에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일례로 정상화 작가의 경우 캔버스를 고령토로 초벌칠을 한 후 벗겨내고 다시 칠하는 작업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촘촘하게 격자 모양을 만들어내는데, 이 과정이 ‘묵언수행’에 비유된다. 박서보 작가의 경우 한지를 풀어 화폭에 올린 후 연필 작업을 통해 수없이 긋고 밀어내면서 밭고랑 같은 요철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제작한다. 그는 많은 인터뷰에서 “그리는 게 아니라 그림으로 나를 비우는 과정이다”라며 “이것은 자연 치유의 예술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비움’과 ‘물아일체(物我一體)’ 등의 정신을 강조한 데서 ‘힐링’의 키워드를 찾는 서구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다.
또 하나 주요한 근거는 ‘가격’이다. 같은 시기에 유행한 사조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한국의 단색화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서다. 이상경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이브 클라인(Yve Klein), 바넷 뉴먼(Barnett Newman) 등 대표적인 모노크롬 작가들의 가격은 800억~900억 원을 호가한다”며 “비슷한 시기의 일본이나 중국의 대표 작가들의 현대미술 작품도 단색화의 최고가보다 평균 2배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고 말했다. 단색화가 저평가됐다는 논리는 높은 투자 수요로 이어졌다.
국내 메이저 화랑이 주도한 물밑 작업도 함께 진행됐다. 시장의 움직임은 그동안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추진하던 메이저 화랑 및 미술관의 노력과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2008년 이후 와해된 미술 시장을 되살리기 위해 미술계 관계자들은 새로운 사조를 찾았고,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하지만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단색화 흐름을 짚었다. 국내 최대 화랑인 ‘국제갤러리’가 주도한 해외 전시들이 관심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 미술 시장을 대표하는 장은 크게 세 개의 축이다. 국제 미술전인 비엔날레(biennale), 그림을 사고 팔 수 있는 아트페어(art fair), 그리고 경매사인 아트옥션(art auction)이다. 국제갤러리는 메이저 아트페어와 최대 규모의 비엔날레에 단색화를 소개하는 전시회를 열었다.
특히 2013년 10월 런던 프리즈 마스터 아트페어에서 단색화 작품이 ‘완판’되면서 이름을 알린 데 이어 2015년 5월 ‘베니스 비엔날레’에 단색화를 병렬 전시하면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전민경 국제갤러리 대외협력 디렉터는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에 단색화 작가들의 활동과 궤적, 주요 작품들을 소개하기 위해 해외 진출 전시를 도모했다”며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병행 전시로 단색화전이 소개된 것은 현재 굴지의 서구 메이저 화랑들에 단색화 작가들의 그룹전과 개인전을 유치하는 주요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파리의 패로탱(Perrotin), 런던의 화이트큐브(White Cube), 홍콩의 페이스(Pace) 등 유명 갤러리들이 쇼룸을 열었다.
단색화 가격의 비밀
이와 같은 일련의 분위기는 작품 가격을 크게 올리는 단초가 됐다. 세계 양대 옥션에서 본격적으로 한국의 단색화를 다루기 시작하고 실제 거래로 이어졌다. 경매 양대 산맥인 소더비와 크리스티 주도로 지난해 5월 홍콩 소더비에서 대규모 단색화 전시가 열렸고, 10월과 11월 각각 뉴욕과 홍콩 크리스티에서 ‘단색화, 한국추상미술전’이 열렸다.
특히 전 세계 컬렉터들이 모이는 아시아 중심 경매 시장인 홍콩에서 신기록이 터져 나왔다. 2015년 10월 김환기 작가의 ‘19-Ⅶ-71 #209’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47억2000만 원에 낙찰되며 박수근의 ‘빨래터’가 세웠던 이전 최고가(45억2000만 원)를 갈아치웠다. 그는 단색화 작가로 분류되진 않지만 단색 계열의 그림을 즐겨 그리며 단색화 열풍에 합류했고 한국 미술품 중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다.
국내 시장도 들썩였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국내 전체 경매사 낙찰총액(1880억 원) 중 단색화 비중은 무려 59%였다. 2013년 전까지만 해도 불과 1% 이하에 그쳤던 수치다. 낙찰총액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경매 가격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특히 어떤 작가의 작품 가격 상승폭이 컸을까. 한국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2015년 단색화 작가의 경매 낙찰총액 순위 톱 10은 정상화,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 정창섭, 권영우, 김기린, 곽인식, 이동엽, 이영배 작가가 기록했다. 특히 정상화,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은 ‘단색화 4인방’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린 작가다.
이 중 ‘10억대 돌파’ 작가들도 생겨났다. 국내 미술 시장에서 10억 원 이상 낙찰가를 기록한 작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백남준 작가의 경매 최고가도 7억 원 수준에 그친다. 지난 한 해 박서보, 정상화 작가는 생존 작가(통상 작가가 작고한 후 가격이 상승함)로 10억 원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작가라 할지라도 시기에 따라 작품 가격은 큰 차이를 보인다. ‘전성기 시절’에 그린 작품이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정상화 작가는 2000년대 이전 작품이, 박서보 작가는 1970~1980년대 초반의 작품 경향이 더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단색화 ‘숨은 거장’을 찾아라
그렇다면 지난 한 해를 화려하게 장식한 단색화 트렌드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여전히 ‘단색화 재테크’가 유효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현재 단색화 열풍은 어디쯤에 와 있을까.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비유하자면 산마루에 올라온 것으로 평가된다”며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가기 위한 전 단계의 산마루에 서서 정상까지 더 올라갈 수도 있고, 이곳이 정상이라 말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미술 트렌드 ‘주기’에 있다. 김 소장은 “보통 미술 트렌드가 4~5년 정도, 길게 보면 10년 간격으로 주기를 타는데 현재 전 세계 모노크롬 트렌드가 6~7년 정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시계 시장 흐름에 우리가 편입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단색화 붐이 어디로 향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희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는 “단색화의 경우 이미 2014년 하반기와 2015년에 걸쳐 가격 상승폭이 높게 진행됐다”며 “이러한 가격 상승은 일부 투자자에 의한 폭등이 아니라 단색화에 대한 미술사적 재평가와 재조명으로 인한 국제적 수요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컬렉터 층이 국내에서 해외로 확대됐다는 점에서 단색화 열기가 쉽게 꺼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투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미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에 향후 이 정도의 가격 상승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색화 투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쪽에선 좁은 수요·공급 층을 언급한다. 단색화 열풍이 소수 작가에 집중되고, 컬렉터 층도 너무 얇다는 것. 규모가 더 커지기 위해선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더 많은 관심과 수요를 불러일으켜야 하는데, 해외 컬렉터들이 계속해서 단색화를 조명해주는지 반응만 살피면서 엇박자가 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단기간에 가격이 폭등한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거품으로 시장이 와해됐던 1차 호황기 때와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단색화도 거품 논란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다만 과거와는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인다. 2008년 이후 미술 시장이 가라앉은 데는 당시 검증이 되지 않은 컨템퍼리리 젊은 작가들에 ‘묻지마 투자’가 집중된 이유도 있다. 반면 단색화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상승과 하락의 리스크가 적은 원로 작가들로, 시장이나 학계에서 ‘검증’이 끝났거나 진행 중인 작가가 주를 이룬다.
또한 이번 호황기는 과거와 달리 국내 경제의 성장률이 큰 폭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세계 미술 시장이 조정기에 진입한 상황에서 순수하게 한국 현대미술 작품들의 힘에 의해 이뤄졌기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시장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국내 작품들의 가치가 세계 시장에서 부각되며 일궈낸 성장이라면 ‘단타’로 끝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색화가 잠시 지나가는 유행일지, 지속 가능한 추세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관건은 해외에서의 지속된 관심으로 좁혀진다. 긍정적인 점은 주요 언론에서도 단색화를 조명하고 있다는 것.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올해 1월 14일자 기사를 통해 “하종현, 윤형근, 박서보, 정상화 작가들 등은 세계 시장에서 인지도가 2016년 더 상승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또 레베카 웨이 크리스티 아시아 지사장은 “한국 단색화가 거품이 아니다”라며 “단색화 가격이 최근 2~3년간 치솟았으나 걸작으로 꼽힐 만한 최고 작품들은 계속 높은 가격을 유지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단색화 인기의 현재 진행형을 예측하는 또 다른 근거는 ‘인테리어 열풍’에 있다. 이상경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미국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중 하나인 ‘크레이트 앤 배럴(Crate&Barrel)’에 가보니 매장 초입 인테리어 숍에 단색화와 비슷한 느낌의 그림들을 큰 규모로 팔고 있더라”며 “인테리어 시장이 미국에서 커지고 있고, 집 꾸미는 데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복잡하지 않으면서 집과 잘 어울리는 단색화를 계속 선호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단색화의 인기 요인 중 하나가 벽지와 동떨어지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보이는 ‘벽지 그림’인 까닭이다.
해외 미술 관계자들의 ‘러브콜’도 이어진다. 김승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홍콩 가고시안이나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서 이우환 작가의 전시가 있었고, 소더비와 크리스티 쪽에서도 단색화 기획전을 하자고 한국 쪽에 연락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현재는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올라오면서 시장이 커지고 있는 단계라 볼 수 있고 단색화 시장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프랑스 유명 미술관에서 경기도미술관 쪽에 단색화 기획전을 의뢰한 것으로 안다”며 “사설 갤러리를 넘어 구겐하임미술관 등의 유명 미술관 및 박물관에 전시하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분기점이다”라고 말했다.
2015년 국내 미술 시장규모는 약 3700억 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국내 경제 규모와 비교하면 더 커질 여력이 남아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술 시장 비중은 0.02%로, 선진국 평균 0.1%의 5분의 1 수준,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이다.
오랜만에 미술 시장에 찾아온 ‘불씨’를 살려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커지면서, 한쪽에서는 벌써부터 ‘포스트 단색화’ 찾기에 나섰다. 이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단색화의 바통을 이어받을 또 다른 현대미술 사조를 일으키는 것이다. 일례로, 가나아트센터에서는 민중 미술과 리얼리즘 전시회를 예정하고 있다.
또 하나는 단색화의 계보를 잇는 후배 단색화 작가들을 발굴하는 작업이다. 단색화 1.5~2세대로, 50~60대 작가들이다. 남춘모, 천광엽, 장승택 작가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덜 부각된 단색화 1세대 작가들도 명단에 포함된다. 서승원, 김종근, 이승조, 유병훈, 안영일 작가들이다. 성곡미술관은 단색화 1세대인 조용익 작가의 전시를 4월 24일까지 개최할 예정이다.
분명한 것은 단색화의 인기가 국내 미술 시장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구름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색화는 ‘특정 작가’가 아닌 한국의 독자적인 ‘사조’로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은 ‘최초의 사례’다. 일본의 ‘젠(zen) 스타일’과 같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끄는 한국만의 문화예술 스타일은 그동안 전무했다. 글로벌 트렌드 흐름으로 볼 때 단색화가 전 세계 모노크롬의 ‘한국식 버전’이라는 점에서 ‘K아트’로는 한계점을 갖지만, 한국 현대미술의 저력을 보여주며 다양한 현대미술 작가에게까지 해외 전시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성과로 꼽힌다.
김윤섭 소장은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인 최초로 임흥훈 작가가 은사장상을 타고 단색화 특별전을 벌였다는 점, 단색화 대표 원로들이 국제적인 유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정식 초대전을 받아서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는 점, 사설 갤러리나 아트바젤에서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부스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 각 언론에서 이런 현상에 대해 중계하듯이 언급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는 점, 한국 작가들이 글로벌 대표 브랜드와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디렉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등이 과거와 확실히 달라진 점이다”라고 말했다.
단색화를 비롯해 국내 현대미술 대형 이벤트는 올해에도 계속된다. 국제갤러리는 올해 상반기에 ‘벨기에 보고시안 재단 단색화 특별전’을 후원 개최하면서 관련 서적을 출시한다. 또한 2월 26일 단색화 화가인 정창섭 개인전을 연 데 이어 3월 23일부터 홍콩에서 열리는 ‘아트바젤 홍콩’에 참가해 박서보, 하종현 등 단색화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단색화 후발 주자’들의 맹활약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해외에서 먼저 조명 받은 단색화 주역들이 ‘멘토’ 역할을 자처한다. 지난해 뉴욕 페로탱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연 박서보 작가는 “한국에는 나 정도 그리는 화가가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고 설명하며 다른 작가들을 추천했고, 홍익대 61학번에 미술동인 ‘오리진회화협회’의 창립 멤버인 이승조, 최명영, 서승원 작가가 초대돼 패로탱에서 ‘오리진’전을 열었다. 좀 더 새로운 미술에 시장이 눈을 돌리면서 당분간 단색화 이슈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관전 포인트는 올해 4~5월 메이저 경매 시즌의 또 다른 ‘스타 작가’의 탄생 여부다.
이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