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넘어 안보로’ 여전히 모호하고 이중적인 중국

[이숙종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성균관대 교수] 중국은 한국인들에게 어떻게 인식될까. 특정 국가의 이미지는 방문과 같은 직접 경험과 지도자·정책·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서 형성되는데 현안 여론보다 잘 변하지 않는다.

한 나라의 국민이 다른 나라에 대한 기본적 인식을 형성할 때는 단일적 정치 공동체로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국의 힘, 역사가 심어 놓은 집합적 기억, 생존 본능, 주권의식, 감정과 같은 일차적인 요인들이 강력하게 작용하면서 현재 상황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끊임없이 해석하게 만든다.



◆한국인의 실용주의적 대중국관

한국인이 보는 중국의 이미지는 압도적으로 경제 중심이다. 이에 따라 상당히 실용주의적 대중관을 가지고 있다. 한국 경제는 1992년 국교 정상화 이후 급속하게 중국 경제에 연동됐다.

중국은 2004년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 됐고 현재 미국과 일본으로의 수출 비율을 합친 18%보다 7% 더 많은 25% 정도를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무역·투자·관광과 연예·서비스산업 등에서 중국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중국의 불가피한 성장 하락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전전긍긍하는 상황이다.

동아시아연구원이 2015년 실시한 한국인의 정체성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중국·일본·러시아·북한과 기타로 구성된 선택지에서 10년 후 가장 영향을 미칠 나라로 72%가 중국을 꼽았고 13%만이 미국을 꼽았다. 10년 전인 2005년 조사에서는 중국 41%와 미국 31%로 갈렸었는데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인식은 미래 진행형으로 계속 강화되는 양상이다.

또한 향후 10년 후 영향력 평가에서 증가·현상유지·하락 등 세 가지 선택지 중 중국에 대해서는 영향력 증가로 답한 비율이 80%에 달한 반면 미국에 대해서는 29%에 그쳤다. 중국의 성장이 언제 변곡점을 찍을지 몰라도 그 엄청난 규모의 경제를 갖고 있는 중국이 오랫동안 한국 경제에 큰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구매력 평가(PPP) 기준에서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미국(17조4000억 달러)보다 앞선 17조6000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국제통화기금(IMF)이 밝힌 것이 2014년이었고 명목 GDP 차원에서도 미국을 2025년쯤 앞지를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가까운 위치에 있는 대외 의존도 높은 한국이 중국에 빨려 들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통일 도울 나라, 미국 44% 중국 12%

한편 안보 차원에서 중국은 한국인들의 상상 속에 모호하고 이중적이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은 한중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면서 경제와 문화만이 아니라 정치와 안보 차원의 협력도 강화하기로 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서 북한을 배려하는 자세를 보였다.

5년 후인 2013년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외교 장관 상호 방문의 정례화 및 핫라인의 구축, 외교 차관 전략 대화의 개최를 포함해 한중 간 다양한 주체들의 전략적 소통을 추진해 상호 신뢰를 제고하자는 ‘한중미래비전’ 공동 선언문을 베이징에서 채택했다.

하지만 지난 1, 2월 초 한 달 간격으로 일어난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광명성4호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 국면에서 중국은 신중했고 막판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이 한국과 북한을 모두 택하는 이중적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한국 안보가 의존하는 나라는 미국일 수밖에 없고 한중 간 안보 협력에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년 여론조사에서도 남북한 통일을 도와줄 나라로 44%가 미국을 꼽은 반면 (이 수치는 자국인 한국이라고 답한 32%보다 많다) 중국을 꼽은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향후 중국과의 관계 향상을 위해 필요한 분야도 정치나 안보(16%)가 아닌 여전히 경제(70%)였다.

미국인들은 중국을 위협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중국이 군사력과 경제력 하드 파워로 미국 주도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질서를 흩뜨려 놓을 수 있다는 두려움 못지않게 자본주의적 성장이 민주주의를 안 해도 가능하다는 모델을 세계적으로 유포한다는 거부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구식 근대화는 산업혁명과 민주혁명을 근간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서구식 사고에는 경제가 발전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는 근대화 논리가 박혀 있다. 미국의 외교정책에 민주주의 가치와 제도의 확산은 중요한 목표의 하나이며 유럽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굿 거버넌스의 요체로 보고 원조를 주는 개도국들이 이를 실현하기를 주문한다.

그런데 중국은 서구식 민주주의 체제로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14억 인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국가를 상대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다. 개발 협력에서도 국내 정치 불간섭 원칙을 준수한다면서 에너지 확보나 무역을 위해 개도국 독재국가를 지원한다.

이런 중국 정치의 대내외적 위상에 불편한 서구와 달리 한국은 중국의 정치체제에 대해서는 서구식 민주주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는다. 한국은 중국을 중심에 둔 중화 문명권에 편입돼 오랜 세월을 보냈고 서구식 개인주의보다 유교적 도덕관이나 사회관을 공유한다.

이 점에서 한국인들은 ‘중국은 민족국가가 아니라 문명국가이며 중국인들은 민주적 책무성이 아니라 중국 문명의 수호자로서 국가의 권위와 정통성을 바라본다’는 마틴 자크(Martin Jacques)의 말을 보다 잘 이해하는 것 같다. 따라서 중국 정치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최근 중국 대사가 야당 대표를 만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도입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하거나 중국 고위 관리들이 위협성 발언을 하면서 한국의 주권의식을 자극한 바 있다.

한국의 반발을 의식해 중국은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를 보내 설득 전략으로 진화했지만 중국의 핵심 이익이 한국과 다를 때 부드러운 공공 외교보다 거친 힘의 외교가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이리 된다면 주권 침해 의식에 민감한 한국인들의 반중 정서를 키울 수 있다.

경제에서 중국이 초록불이라면 안보 문제에서 중국은 노란불이다. 오만한 중국은 빨간불이다. 이런 복합적인 한국인의 대중관을 중국이 잘 이해하고 상호 이익을 도모한다면 한중 관계는 더욱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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