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화당은 ‘트럼프 내전’ 중

{꺾이지 않는 트럼프 ‘대세론’…공화당 주류, 전당대회서 반전 노리나}


(사진)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의 한 유세장에서 3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지지자와 반대자가 서로 멱살을 잡고 있다. (AP 연합뉴스)

[워싱턴= 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 미국 공화당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이 중간 반환점을 돌면서 사실상 내전 상태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민주당에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일찌감치 승리를 사실상 확정 지으며 본선을 준비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의 대세론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당 주류 측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는 안 된다(Never Trump)’는 주장에서부터 ‘트럼프만 아니면 다 된다(All but Trump)’는 목소리까지 트럼프를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이 격렬해지고 있다.

일각에서 “이러다 당이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올 정도다. 미 언론들은 “공화당이 흡사 ‘트럼프 내전(civil war)’을 치르는 것 같다”고 보도하고 있다.

미국 정당의 대선 후보 경선은 숫자와의 싸움이다. 50개 주와 6개 자치령 및 특별행정구역 등을 돌며 경선을 치러 전당대회에 나갈 대의원 과반(1237명)의 지지를 확보하면 게임이 끝난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는 확고한 대세다.

◆공화당의 가치관과 거리 먼 트럼프의 행보

트럼프는 슈퍼 화요일(3월 1일)과 미니 슈퍼 화요일(3월 15일)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대세론에 쐐기를 박았다. 3월 22일 현재 확보한 대의원 수는 680명이다. 557명만 더 확보하면 된다. 남은 22개 주에 걸린 983명의 57%다. 2위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은 425명을 확보해 남은 대의원의 81%(813명)을 끌어와야 한다. 상황을 뒤집기가 쉽지 않다.

트럼프의 대세론이 강해질수록 공화당 내 주류 인사들의 반대 움직임도 격렬해지고 있다. 이들의 반대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트럼프의 정체성이다. 트럼프는 건강보험 확대, 낙태 지지, 보호무역주의 성향, 동맹국에 대한 공격 등 기존 공화당의 가치관과 거리가 있는 주장과 행보를 보여 왔다.

더 중요한 것은 기득권 논리다. 트럼프는 그동안 워싱턴 기성 정치권을 거세게 비판하며 인기를 얻었다.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고 대선에 승리하면 공화당은 대대적 물갈이가 불가피하게 된다. ‘왕당파’인 당 지도부가 ‘혁명군’인 트럼프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반(反)트럼프 캠페인은 2012년 미 공화당 대선 주자였던 미트 롬니 매사추세츠 전 주지사가 총대를 메고 이끌고 있다. 롬니 전 주지사는 트럼프를 향해 “사기꾼” 등 거친 언사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 대선 포기하고 기득권 지킨다?

당 주류의 거센 반발 때문에 트럼프가 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기까지 갈 길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미국의 진보 성향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향후 공화당에서 벌어질 수 있는 시나리오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우선 트럼프가 1237명의 대의원을 확보해 전당대회 1차 투표에서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 것이다. 트럼프는 후보 선출 후 이미지 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선거 본선은 어쨌거나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어야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워싱턴에서 지난 3월 21일 대선 본선에 내세울 비전을 마련하기 위해 첫 정책 회의를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혁명군’ 트럼프를 인정할 수 없는 미 공화당 지도부가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트럼프에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다. 혁명군에 지도부를 내주느니 차라리 대선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전하는 쪽을 선택한다는 시나리오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 대표와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이 트럼프를 떨어뜨리기 위해 끝까지 흔들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후보가 경선에서 1237명의 대의원을 확보했지만 이들 중 일부가 전당대회서 배신할 가능성도 있다. 전당대회 1차 투표에서 대의원들은 기존에 지지를 표명한 후보에게 표를 던져야 한다. 하지만 전체 대의원의 5% 정도는 자유투표를 할 수 있다. 이들이 트럼프 지지 의사를 철회할 수 있다.

또 당 전당대회 규약위원회가 규약을 바꿔 자유투표 대의원 비율을 더 높일 수 있다. 이때 트럼프 후보는 경선에서 이기고도 2차 투표에서 질 수도 있다. 크루즈 후보가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와 연합할 수도 있고 롬니 전 주지사나 라이언 하원의장 같은 주류 인사가 직접 후보로 투표에 참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재전당대회’ 개최 가능성이다. 그 어느 누구도 전당대회 전 대의원 과반 확보에 실패해 전당대회에서 투표가 계속 이어지는 시나리오다. 과반 득점자가 없기 때문에 결론이 날 때까지 투표를 계속하게 된다.

전당대회에서는 1차 투표에 5%, 2차 56%, 3차 81% 등 차수가 높아질수록 자유투표 비율이 높아지게 된다. 결론이 미뤄지면 당 지도자나 유력 정치인들의 역할이 커지게 된다. 이들이 결론을 내기 위해 대의원들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중재인(broker)’ 역할을 맡는 것이다. 대표적인 중재인은 주지사들이다. 공화당은 현재 31개 주에서 집권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당 대회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릭 스콧(플로리다), 폴 르페이지(메인), 크리스 크리스티(뉴저지) 등 3명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3명은 반(反)트럼프 노선이다. 6명은 다른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나머지 19명의 주지사가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다.

psj@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