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헬조선'인가

'자살률 1위' 통계의 숨은 진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불안과 민중의 분노가 가중되고 있다. 미국의 대선 과정을 보면 우리가 부러워하는 선진국들도 경제적 불안과 분노가 얼마나 심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자본주의와 자유시장주의의 메카인 미국에서 소위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게 젊은 층이 환호하고 있다.

보수적 정당인 공화당의 기존 정치 이념을 모두 내팽개치고 보호무역주의와 반이민정책을 들고나온 도널드 트럼프 대선 경선 후보는 기존 정치권이 갖고 있던 모든 상식을 뒤집으며 선풍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심각해진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기존 체제에 대한 실망과 저항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저성장, 빈부 격차 확대, 청년 실업 등의 문제로 불안과 불만의 정서가 나라를 짓누르고 있다. 이러한 암울한 정서에 편승해 신조어들이 남발되고 이 신조어들을 정치권과 언론이 활용하면서 부정적 정서가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일러스트=김호식)

‘흙수저’니 하는 많은 신조어들이 탄생했지만 그중에서도 ‘헬조선’이 압권이다. 한국은 지옥이고 탈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듯이 소위 ‘대한민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50관왕’이라는 것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고 이슈가 있을 때마다 언론도 OECD 랭킹을 인용하며 헬조선이라는 인식을 더욱 굳게 만들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자살률 1위와 노인 빈곤율 1위라는 것이다. 정말 이러한 통계가 한국이 지옥과 같은 나라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인지 따져보지도 않고 조선은 지옥이라는 가설을 사실로 각인시키고 있다.

자살률 1위를 보자. 물론 불행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 원인이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스트레스가 더 심하고 사람이 삶을 포기할 정도로 더 험악해 발생하는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자살률 1위의 통계와 함께 살펴봐야 하는 통계가 있다. 자살자의 80%가 우울증에 의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우울증 치료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인구 1000명당 항우울제 소비량은 20으로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인 반면 아이슬란드는 118로 한국의 6배를 소비한다.

다시 말해 한국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병을 병으로 치료하지 않는 데 있는 것이지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지옥같이 험난한 곳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가 잘나간다는 중국의 자살률은 한국보다 높다. OECD 국가가 아니어서 통계에 인용되지 않을 뿐이다.

둘째, 노인 빈곤율의 통계를 보자. OECD의 노인 빈곤율 정의를 보면 국가의 중위 소득 가구(Median Income)의 50% 이하의 가처분소득이 있는 가구를 상대적 빈곤 가구로 분류한다.

이 기준으로 한국 고령층의 50%를 빈곤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서 정말 한국 고령층의 과반이 빈곤층으로 살고 있는지 따져 보면 이 통계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후 복지는 나라마다, 문화마다 해결하는 방식이 다양하고 변화하고 있다. 한국은 급속하게 산업화한 나라이고 연금 제도는 도입 초기 상태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자식, 그중에서도 장남에게 노후를 의탁하는 형태로 해결해 왔고 금융자산에 비해 부동산 자산을 위주로 재산을 축적해 왔다.

따라서 노후에 연금 위주의 나라에 비해 소위 공적인 소득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가난한 것은 아니다.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70대가 새로운 해외여행 고객으로 떠오른 나라에서 노인의 과반이 빈곤층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지 따져 봐야 한다. 대부분이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고 정 어려우면 최근에 시작한 ‘역모기지론’을 활용해 연금화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은 아직도 자녀들이 부모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는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높다. 2011년 일본 내각부의 고령 사회 백서에 따르면 한국 자녀가 부모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는 비율은 30.1%다.

미국의 0.7%, 일본의 1.7%, 독일의 0.4%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높고 아직도 자녀와 같이 사는 고령층의 비율도 높다. 그런데 이런 자식의 보조금이나 과세 대상이 아닌 임대 소득은 OECD 통계에 전혀 잡히지 않는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보자. 한국 가계의 중위권 가처분소득은 약 2만 달러로 2300만원 수준이다. 멕시코는 약 1만3000달러(약 1500만원)다. 서울에 수억원의 아파트에 살면서 국민연금 소득이 수십만원 있고 자식들에게서 자주 용돈을 받는 한국의 노인이나 멕시코의 노인이나 OCED 기준으로는 모두 노인 빈곤층이다.

따라서 OECD의 이런 통계는 한국의 실정을 반영하지 않고 국제적으로 상대적인 비교도 어려운 통계다. 이런 전후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OCED의 통계에 따라 한국의 노인 빈곤율 1위라는 사실만 강조하고 있다. 이 통계가 알려주는 것은 한국이 급속도로 연금 위주의 노후 대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실 이외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한국과 경제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심각하고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하지만 한국이 지옥이고 밖에는 천국이 있는 것처럼 몰고 가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물론 헬조선 같은 자극적인 언어는 문제의 심각성을 쉽게 인식시키고 사회의 관심을 불러오는 순기능을 분명히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서에 편승한 맹목적인 자기부정에 가까운 자학적인 평가는 바람직하지 않다. 평가가 사실에 입각하지 않고 과장되고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면 자기 파괴적이고 자학적이라는 데서 문제가 훨씬 심각해진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부정의 정서가 지배하면 좋은 성과를 내기 힘들다. 긍정 심리학에서 잘 알려진 ‘로사다 비율(Losada Ratio)’이라는 것이 있다. 조직이나 개인에게서 긍정적인 언어가 부정적인 언어에 비해 3배에서 6배가 될 때 개인이나 조직의 성과가 가장 좋다는 것이다. 경제는 심리이고 자기 예시를 충족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를 지배하는 언어는 지극히 부정적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글로벌 경제의 한 부분이고 다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이 지옥이면 지구가 다 지옥이다.

<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KAIST 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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