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값, 올 들어 상승 반전

{채광 업체 구조조정 지연에 ‘발목’…아연·니켈 등은 초과 수요 상태}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올해 초 모처럼 원자재 시장에 봄소식이 들려왔다. 미국의 소비지출 개선, 중국의 도시화, 유럽 경기 회복 등이 예상돼서다. 이에 따라 주요 원자재 가격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유가의 급락세가 진정되면서 아연 등 일부 비철금속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2008년 금융 위기로 일시에 가라앉았던 비철금속의 ‘슈퍼사이클’이 다시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진단마저 나왔다. 근거는 올해 1월을 기점으로 한 비철금속의 주요 품목 중 하나인 전기동(구리) 가격의 바닥론이었다.

지난해 11월만 해도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 경제성장 둔화로 전 세계 전기동 수요 증가율이 연 1%에 그쳐 올해 말에는 전기동 가격이 톤당 4500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은 불과 두달 만에 깨졌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전기동 가격이 올해 1월 중순부터 급락하며 톤당 4300달러까지 떨어진 것이다. 이는 금융 위기 이후 최하점을 찍었던 2011년 2월 1만190달러 대비 57.8% 폭락한 것으로, 장중 가격 기준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폭락한 것을 제외하면 2006년 가격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후 전기동 가격은 3월 초까지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가장 고점을 찍었던 3월 9일, LME에 따르면 전동기 가격은 4980달러를 기록하며 1월 중순에 비해 무려 11% 이상 상승했다. 글로벌 경기의 흐름을 잘 반영한다고 해서 ‘닥터 코퍼(Dr. Copper)’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전기동 가격이 이처럼 오르자 많은 이들이 비철금속 시장의 슈퍼사이클을 예측했다.


(사진=한국경제 신문) 칠레 에스퍼랜즈 구리 광산의 채광 현장 모습.

◆ 너무 앞서간 ‘봄 예측’

3월 초만 해도 전기동을 포함한 비철금속 시장을 대표하는 6대(전기동·알루미늄·아연·납·니켈·주석) 품목의 분위기는 좋았다. 대부분의 품목들이 금융 위기 이후 계속되는 하락세에서 벗어나며 반등했다.

2월 중순까지만 해도 하락 국면을 보였지만 공급 조정을 유발하고 있는 가격 수준에서 낙폭이 제한되는 양상이었고 춘제 연휴 이후 중국 증시의 반등, 유가 회복, 공급과잉 완화 전망 등의 영향으로 비철금속 가격도 동반 상승했다.

구리는 춘제 연휴 기간까지만 해도 가격이 전월 말 대비 2% 정도 하락했지만 이후부터 월말까지 5% 반등하며 월간 단위로 3.4% 상승했다. 하지만 이달 들어 다시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25일 현재 LME 전기동 가격(3개월물 오피셜 기준)은 전주 대비 마이너스 1.9% 하락한 톤당 4945달러를 기록한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추가 금리 인상 우려 및 미 달러화 강세 등의 요인으로 가격이 하락했다.

이런 상황은 중국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중국 상하이 현물 프리미엄은 2월 중순 톤당 97.5달러에서 한 달여 만에 47.5달러로 떨어졌다. 중국 자국 내 정련 구리 생산은 지난해 하반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지만 올 들어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 것. 2월 정련 구리 생산량은 전년 대비 5.2% 증가한 49만4000톤을 기록했다.

LME 전기동 재고는 3월 25일 기준 15만 톤으로 지난해 8월 이후 21만 톤 줄었지만 같은 기간 상하이기화교역소(SHFE) 재고는 27만 톤 증가해 39만 톤을 넘어섰다. 3대 거래소(LME+SHFE+NYMEX)의 전기동 재고량은 5년 4개월 내 최대 수준으로 증가했다.


◆ 위기의 3월, 조정기인가 하락인가

이런 분위기 하락세는 전기동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비철금속 품목이 전기동과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2월부터 3월 초까지 이어진 비철금속 상승 가격이 투자자들의 차익 실현 등으로 기세가 꺾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비철금속 시장에서 반등 탄력이 가장 강했던 아연 품목마저 떨어졌다. 올 들어 아연은 월간 단위로 11% 상승했고 별다른 조정 없이 견조한 상승 흐름을 이어 갔다. 특히 춘제 연휴 기간 구리·알루미늄 등이 약세 흐름을 이어 가는 동안 아연 가격은 탄력적인 반등에 나서며 비철금속의 슈퍼사이클 전망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3월 아연마저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LME에 따르면 지난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거래된 아연 가격은 3.63%(67달러) 하락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 우려와 주요 지표 상승 등에 따른 달러화 강세가 비철금속 가격 상승에 제한을 걸면서 아연 시장까지 영향을 끼쳤다.

이는 아연 품목만이 아니다. 더 떨어질 것 같지 않았던 니켈까지 하락했다. 니켈 가격은 춘제 기간 톤당 8000달러를 밑돌기도 했지만 이후 8500달러 부근까지 반등했다. 춘제를 기점으로 이전까지 10% 하락하다가 이후 9% 반등하는 극적인 흐름을 연출했다.

다만 월간 단위로는 1.5% 하락해 주요 비철금속 중 유일하게 하락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더 이상 떨어질 것이 없는 니켈의 바닥론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3월 들어 더 떨어졌다.
LME에 따르면 지난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거래된 니켈 가격은 0.41% (35달러) 내렸다.

2011년 이후 수년간의 약세장에서 니켈은 가장 부진한 흐름을 보여 왔던 금속이다. 2008년 위기 이후 니켈 가격의 저점은 9025달러였는데 3월 25일 기준으로 8650달러를 기록한 것이다.

다른 주요 비철금속 역시 하락세를 면하지 못했다. 전기동 가격은 같은 기간 동안 2.91%(톤당 148달러), 알루미늄 가격은 1.14%(17달러) 내렸다. 납 가격 역시 2.82%(51달러) 하락했다. 다만 유일하게 주석만이 3.68%(626달러) 오른 1만7626달러로 상승세를 보였다.

3월 들어 비철금속 시장이 하락세를 보인 데에는 인위적인 요인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제임스 블라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가 “오는 4월 회의에서 금리 인상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 계기가 되면서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임스 블라드 총재의 발언 직후 투자자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2월에 있었던 상승에 대한 차익 매물 성격이 강한 것도 있지만 최근 비철금속 시장의 투자 환경 자체도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향후 추가 매도 물량이 나올 수 있을 가능성을 경계하는 상황이다. 장기적인 공급과잉에 따른 하락 요인도 있어 상품별 수급 상황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전망이다. 현재 초과 수요 품목은 납·주석·아연·니켈이며 초과 공급 품목은 구리·알루미늄이다.



◆ 하반기에나 안정화 가능

2016년 3월 현재 비철금속 대부분의 품목이 1월 초에 비해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최저치 근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최대 수요국인 중국의 수요 둔화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공급이 가격 하락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비철금속 수요의 눈높이를 낮춘 중국의 ‘뉴 노멀(고도 성장기를 지나 새로운 상태인 안정 성장 시대)’ 정책이 비철금속 시장의 상승 가능성을 막고 있다. 과거 10년간 중국의 비철금속 수요 성장률은 10%대였지만 향후 10년간 중국 비철금속 수요의 잠재 성장률은 2~ 3%가 될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요보다 공급 측면에서의 시장의 재조정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공급자인 비철금속 채광 업체들의 구조조정이 초기 단계에 불과해 당장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는 진단도 나온다.

현재 광산 업체들은 금속 가격 하락에 따른 수익 부진으로 자본 지출(CAPEX)과 재투자를 축소하고 비용 절감, 생산성 향상, 비핵심 자산 처분 등을 통해 생산비용을 낮추면서 생산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년간 금속 한계 생산비용이 하락했다.

실제로 세계 구리 생산의 43%를 차지하는 칠레·페루·잠비아 등 생산국들의 통화 평가절하에 의해 한계 생산비용이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 업체들은 즉시 생산을 중단하지 않고 현금 창출을 위해 최대한 생산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광산·공장 폐쇄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매우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공급 문제도 불안 요인으로 남아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비철금속 소비국이면서 동시에 생산 비율도 높다. 그동안 중국 기업들의 공급 반응이 시장 예상과 달라 예측이 빗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철강과 알루미늄이 대표적이다. 알루미늄 가격이 한계 생산비용 아래로 떨어져 많은 중국 기업들이 마이너스 현금 흐름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만큼 생산이 감소하지 않은 것이다. 즉, 중국의 공급 반응이 예상과 다르다는 점이 원자재 뉴 노멀 국면의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어 비철금속 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근거를 들어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엔 비철금속 가격의 하락 리스크가 남아 있고 하반기에나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유진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경기 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나 추가 감산 없이는 높은 재고에 의해 추가 상승이 어려울 전망”이라며 “단기적으로는 가격 조정을 염두에 두고 보수적인 관점을 유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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