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ance & Tax]몰래한 증여



과세당국에 들키지 않고 자녀들에게 재산을 이전했다고 미리 안심하기는 이르다.
자녀들의 재산이 과도하게 증가했다면 과세당국의 그물망에 걸려들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최고 50%를 자랑(?)한다. 고액자산가들의 경우 자신이 가진 재산의 절반은 이미 국가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세율 자체가 높다 보니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연구하거나 강의를 수강하거나 금융기관 프라이빗뱅킹(PB)센터, 세무 전문가, 법무법인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재산으로 축적되지 않는 일상적인 생활비 지출이나 소비 지출 등은 그나마 티가 나지 않게 할 수도 있겠지만 자녀들의 재산이 늘어나는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부모의 자금으로 자녀 명의의 부동산을 취득하거나 주식, 예금 등을 자녀 명의로 해 둠으로써 몇 년에 걸쳐 자녀의 재산이 누적돼 증가한다면 과세당국의 그물망에 걸릴 확률이 높다. 과세당국의 자금출처 조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거액 보상금 어디에 쓰셨나요?”
자녀의 소득 규모에 비해 자녀가 취득한 재산이나 소비지출 규모가 현저히 크다면 조사받을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부모의 자금으로 자녀의 결혼 시점에 자녀에게 전셋집을 마련해주거나 주택을 사주는 경우 과세당국의 자금출처 조사를 받을 가능성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이 문제는 함부로 단정 지어 판단할 수 없는데, 그것은 조사대상 선정 기준에 대한 과세당국의 집행 기준이 시기별로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과세당국의 자금출처 조사 강도가 날로 강화되고 있다. 조사대상 선정의 범위도 넓어졌고 특히 분석 기법이 발달해 단순히 재산을 취득한 것뿐 아니라 전세보증금, 예금이자를 환산해 원금을 추정한 금액, 신용카드나 현금영수증 지출액, 세금납부액 등의 출처도 조사 범위에 들어간다.

따라서 미래의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머리를 굴려 사전에 상속하는 방법을 찾더라도 자금출처 조사를 피해 가기는 쉽지 않다. 현금, 골드바, 서화, 골동품 등 등록이 되지 않는 재산으로 보유하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재산이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해외 재산에 대한 그물망도 점점 좁혀져 오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A씨는 평소 착실히 모은 돈으로 수도권에 땅을 사 뒀다. 특별히 땅을 활용하지 않은 채 세월이 흘러 A씨가 70대 고령이 됐을 때 예전에 사 두었던 땅 일대가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A씨의 땅은 정부에 수용됐고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받았다. A씨는 보상금으로 받은 50억 원의 자금을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자녀 4명에게 은밀한 방법으로 골고루 물려주는 쪽을 선택했다. 자녀 4명은 모두 본인 소득 및 재산이 일정 규모 이상 되는 재산가들이라 과세당국의 자금출처 조사를 별도로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2년 뒤에 A씨는 국세청으로부터 세무조사통지서를 받았다. 알고 보니 조사대상은 자녀들에 대한 자금출처 조사가 아니라 A씨가 수령한 수용보상금의 사용처에 대한 조사였다. 그 많은 돈을 어디에 보유 중인지, 아니면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조사였던 것이다. A씨는 그런 유형의 세무조사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A씨는 이런 세무조사도 있었느냐며 허탈하게 웃으면서 자녀 4명에게 증여한 내역을 조사팀에 제출하고 증여세를 고스란히 납부했다.

보통은 연소자나 부녀자가 취득한 재산의 자금출처에 대한 조사가 일반적이지만, 고령자의 재산 양도대금의 사용처에 대한 조사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빌딩 취득자금 출처 밝혀주세요”
B씨는 20년 전에 해외로 이민을 가서 현지에서 결혼한 후 자녀를 두고 그들과 함께 계속 해외에 거주했다. 한국 세법상으로는 비거주자인 것이다. 그러던 중 2년 전에 서울 강남에 있는 큰 빌딩을 50억 원에 매입하게 됐다. 취득 자금은 해외에서 들여온 자금과 국내 은행 대출금이었다. 그 후 B씨는 과세당국으로부터 빌딩 취득자금에 대한 출처 확인 안내문을 받았다.

B씨는 국내에 다른 재산이나 소득이 전혀 없는데 국내 부동산을 취득했으므로 조사대상에 선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B씨는 과세당국에 빌딩 취득자금이 해외에서 들여온 자금이라는 것만 입증하면 되는 것인지, 더 나아가 해외에서 들여온 자금의 발생 원천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입증해야 하는 것인지가 모호해진다. 왜냐하면 모든 거래와 행위가 해외에서 이루어진 비거주자의 해외 소득이나 해외 재산에 대해서는 한국 국세청이 그에 대한 과세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소득세법에서는 소득은 그 원천이 무엇이든 간에 세법에서 면세되는 항목으로 열거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득으로 보고 과세가 된다. 대표적으로 면세되는 항목에는 원금을 상환 받는 경우나 신체의 일부가 손상을 당해 받게 되는 보상금, 차별(인종, 나이 등)로 인한 소송으로 받은 금액 등이 있다. 또한 증여나 상속으로 받은 재산에 대해서는 소득으로 보지 않아 소득세가 과세되지는 않는다. 즉 재산의 증가가 면세로 열거돼 있는 항목으로 인해 발생된 것이 아니고, 아무런 보상 없이 증여나 상속을 받은 것이 아닌 경우, 소득세가 과세된다.

미국 과세당국은 소득 복원(income reconstruction)이라고 해 납세자가 소득에 대한 자료를 보관하지 않는 경우, 납세자의 생활비용과 은행 입금 기록을 기준으로 과세대상소득을 역으로 계산해서 세금을 부과한다.

이때 납세자는 생활비용을 충당할 만한 자금의 원천이 증여나 대출이라는 자료를 제출해야 하며, 그렇게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비해서 미국의 과세권이 더 강한 듯하다. 우리나라는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해 증여세를 과세하든, 소득세를 과세하든 입증 책임이 일정 정도 과세당국에 있기 때문에 과세의 사각지대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김희술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세무자문본부 상무/ 일러스트 김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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