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interview]페리 오스틴 “1억 화소 핫셀블라드 명품의 격(格)이 다르다”



세계 최고의 명품 카메라로 꼽히는 핫셀블라드의 페리 오스틴(56) 글로벌 최고경영자(CEO)가 1년 2개월여 만에 한국을 찾았다. 이번에 그가 들고 나타난 선물은 1억 화소에 현존하는
카메라 기술들을 집대성한 H6D 모델. 카메라의 놀라운 진화가 유저들의 가슴을 떨리게 하고 있다.

핫셀블라드는 ‘카메라의 롤스로이스’로 불린다. 웅장한 성이 도로 위를 움직이는 듯하다고 해서 ‘왕의 차’로 불리는 롤스로이스처럼 75년 전통 장인들의 기술과 최첨단 디지털 기술의 절묘한 조화는 명품 카메라에도 엄연히 격(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알려준다.

그도 그럴 것이 핫셀블라드는 달을 다녀온 귀한 몸이다. 아폴로 15호 비행사였던 짐 어윈이 달에서 사용했던 핫셀블라드 500 카메라는 유럽 경매장에서 66만 유로(약 8억5000만 원)에 낙찰됐으니 저절로 혀가 내둘려질 정도다. 또 메릴린 먼로, 스티브 잡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과 비틀스의 유명한 앨범 재킷 사진 ‘에비로드’ 등 살아 있는 역사를 핫셀블라드로 남겼다.
지난 4월 19일 한국을 방문한 페리 오스틴 글로벌 CEO를 만나기 위해 핫셀블라드의 한국 공식 파트너인 반도카메라의 서울 충무로 사무실을 찾았다. 오스틴 CEO는 핫셀블라드가 카메라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최상층에 위치해 있다고 자부했다. 현존하는 카메라 중 사실상 라이벌조차 찾기 힘든 ‘최고 중에 최고’라는 것이다.

오스틴 CEO는 구찌, 프라다 등 명품 패션 브랜드와 영국의 럭셔리 휴대전화 브랜드 베르투를 거치며 명품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그가 격이 다른 명품의 조건을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새롭게 선보인 핫셀블라드의 ‘H6D-100c’ 모델은 무려 1억 화소의 CMOS 센서를 장착했으며, 한국 출시 가격이 4490만 원에 달한다. 그나마 이는 전작 모델 중 2억 화소를 자랑했던 H5D 모델이 6000만 원을 훌쩍 넘었던 것에 비하면 가격이 다소 낮아진 것이다.

앞 모델보다 화소가 줄었다고 하지만 1억 화소도 현존하는 다른 카메라들을 압도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화질이다.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보디 디자인에 더해 후면 디스플레이는 아이폰처럼 사진을 찍은 뒤 손가락을 벌려 해상도나 초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카메라 작동은 직관적인 터치스크린으로 할 수 있으며, 중형 포맷으로 4K 수준의 동영상 촬영까지 가능하다. 중형 포맷 카메라들의 장점인 밝은 렌즈는 어두운 실내에서도 빛을 발한다.

무엇보다 현존 최고의 화질이 압권이다. 핫셀블라드는 ‘보이는 것 그 이상을 찍어주는’ 놀라운 화질을 자랑한다. 현장에서 즉석으로 화장실 세면대를 플래시 없이 촬영해 터치스크린으로 사진을 확대해보니 조그만 수도꼭지에 비쳐진 실내 풍경이 일그러짐 없이 선명하게 확인됐다. 세계 최고의 카메라라는 자존심은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오스틴 CEO에게 핫셀블라드의 과거, 현재의 놀라운 진화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해 2월 한국을 방문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난해 1월 CEO에 취임한 후 두 번째 방문인가요. 방문 목적이 궁금하네요.
“업무적으로는 두 번째 방문이 되겠네요. 사실 개인적인 여행 등을 포함한다면 한국에는 7~8번 정도 온 것 같아요. 이번 방문은 공식 파트너사인 반도카메라-포토베이와 장기간 좋은 관계를 맺고, 새롭게 출시된 최고의 중형 포맷 카메라 H6D 모델을 알리기 위해서죠. H6D의 출시는 핫셀블라드에 기념비적인 한 해가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이 카메라의 중심에는 광학 품질에 대한 끈질긴 접근 방식과 스웨덴 장인들의 정밀한 솜씨가 오롯이 담겨 있고요. 이런 제품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죠.”

핫셀블라드에 한국의 시장과 고객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희들에게 한국은 굉장히 중요하고 매력적인 시장이에요. 한국에는 매우 창의적인 예술가나 인재들이 많죠. 이들은 카메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요. 한국 고객들의 특징을 3가지로 나눠본다면 우선 세계적인 소비 트렌드를 지녔다는 것이고, 제품에 있어서도 높은 표준을 지향한다는 거죠. 또 사진가들이 매우 창의적이고 역동적이라는 것도 한국 시장의 특색이 아닌가 싶네요.”

어떤 사람들은 카메라를 자동차에 비유해 스마트폰 카메라를 경차, 일반 렌즈 교환식 디지털카메라(DSLR)를 고급 세단, 핫셀블라드를 롤스로이스로 부르기도 합니다. 격이 다른 품질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나요.
“(웃음) 제가 생각하기에는 사람들이 자동차와 카메라를 비교하는 것은 잘못 됐어요. 예를 들어 패스트푸드 하고 미슐랭 세프의 요리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잖아요. 스마트폰이나 콤팩트 카메라는 중요한 순간에 꼭 필요한 장면을 촬영하는 데 용이해요. 결국 같이 성장해야 하는 카메라 시장이라고 보고 있어요. 핫셀블라드가 75년 동안 가치와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오랜 경험을 쌓은 숙련된 스웨덴 장인들이 직접 카메라 부품 하나하나를 만들며 품질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겠죠. 여기에 더해 렌즈 자체의 품질이나 소프트웨어의 차별성 등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카메라 마니아들 사이에서 명품을 논할 때 항상 등장하는 것이 독일제 라이카와 스웨덴의 핫셀블라드예요. 두 브랜드를 차별 짓는 결정적인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그는 이 질문에 “라이카?”라며, 다소 자존심이 상했다는 듯이 되물었다.)
“물론 라이카는 명품 카메라죠. 하지만 라이카와 핫셀블라드는 3가지가 달라요. 첫째, 두 카메라의 포지션이 다르다고 보는데 라이카는 조금 더 아마추어들에게 집중돼 있죠. 반면 핫셀블라드는 프로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둘째, 라이카는 독일에서 만드는 카메라이고 핫셀블라드는 스웨덴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게 다르겠죠. 셋째는 라이카는 저널리즘적인 사진들을 주로 찍는다고 하면 핫셀블라드는 조금 아트적인 사진을 찍는 데 많이 활용되고 있는 것 같아요. 카메라에 등급을 부여해 피라미드를 만든다고 하면 핫셀블라드는 가장 위쪽에 위치해 있는 중형 포맷 카메라예요. 라이카는 이보다는 조금 아래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장에 있다고 봅니다.”


핫셀블라드의 75년 역사에서 기념할 만한 장면 몇 개만 꼽아주시죠.
“1941년에 첫 번째 카메라를 만들었을 때를 우선 꼽아야겠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락한 독일 비행기에서 항공 카메라를 발견하고 스웨덴 정부에서 카메라의 카피를 부탁했는데 당시 프리츠 빅터 핫셀블라드 사장은 ‘같은 것은 만들어낼 수 없지만, 더 뛰어난 것을 만들어낼 수는 있다’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어요. 중형 카메라의 단점을 보완해 손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카메라를 만들기 위해 기획됐던 V 시스템이 나온 1957년도 중요한 순간이죠. 물론 아폴로 11호 등 미국의 달 탐사 때 사용했던 카메라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H 시리즈 등을 통해 디지털카메라로 바뀐 시점도 핫셀블라드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새 중형 포맷 카메라 H6D가 출시됐는데 이전 제품들과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백지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모든 걸 새롭게 디자인했어요. 1년 넘게 제품 개발에 매달려 나온 결과물입니다. USB 3.0 C형 커넥터를 달아 고속 파일 전송이 가능토록 했는데 이제 중형 포맷의 카메라로 4K 동영상을 촬영한 후 이를 다시 손쉽고 빠르게 전송할 수 있게 됐어요. 고속 캡처가 가능한 C패스트(CFast) 카드와 호환성을 극대화하는 SD 카드를 동시에 사용 가능하게 듀얼 내장 카드 슬롯을 채택하고, 카메라 후면 디스플레이는 아이폰처럼 터치스크린 방식이라 촬영 후 손가락으로 늘려서 사진을 확인하는데 해상도는 애플의 아이패드처럼 선명합니다. 무엇보다 H6D는 1억 화소(H6D-100c)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셔터 스피드나 증가된 ISO 범위는 실내에서도 빠른 촬영이 가능하게 해줘요. 특히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것은 워런티(warranty, 보증) 기간일 텐데요. 이전 제품들이 1년 정도였던 데 반해 소비자 과실이 아니고 기기적 결함일 경우 3년까지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1억 화소의 느낌이 과연 어떤지 실감이 잘 안 나네요. 핫셀블라드 화질의 강점을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와인에 비교하자면 보통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마시면 비싼 와인이건 싼 와인이건 그냥 거기서 거기라고 볼 수도 있잖아요.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는 거죠. 하지만 사진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미세한 차이도 느낄 수가 있겠죠. TV 화면을 통해서 보다가 아이맥스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핫셀블라드는 순간을 그저 캡처하기 위해서 사진을 촬영하는 게 아니라 시대의 아이콘들과 기념비적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서 촬영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메릴린 먼로나 스티브 잡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미국의 대통령들이 핫셀블라드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인물 초상을 남겼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겠죠. 이 때문에 핫셀블라드는 프로페셔널이나 세미프로로서 인물 초상이나 예술사진을 찍는 그룹은 물론 박물관이나 그림을 경매하는 곳 등 고해상도의 작업이 필요한 기업들의 수요도 상당한 편입니다.”

최근 스마트폰 카메라의 보급으로 일반 카메라 시장은 타격을 입고 있는데 핫셀블라드가 포함된 럭셔리 카메라 시장의 전망은 어떻게 보시나요.
“(웃음) 사람들이 럭셔리 카메라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핫셀블라드는 럭셔리보다는 프리미엄 카메라가 맞는 것 같아요. 친구들과 와인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을 럭셔리로 볼 수도 있잖아요. 시장의 최상위에 있는 상품에는 프리미엄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모바일 카메라가 콤팩트 카메라 시장에 타격을 입혔는데 상위 버전의 카메라로 고객들이 넘어오는 효과도 동시에 일어났다는 점이 신기한 대목이에요. 고객들이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카메라를 장만하게 되는데 점점 상위 레벨로 올라오고 있어요.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예요. 핫셀블라드에서도 이 같은 시장의 움직임을 흥미롭게 보고 있죠.”

CEO에 취임한 지 이제 1년 2개월여가 흘렀는데요. 지금까지의 평가와 향후 계획에 대해 듣고 싶네요.
“제가 지난해 1월 취임할 당시 핫셀블라드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데 있어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었어요. 이에 기존 제품의 홍보 대신에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어요.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이번에 출시된 H6D 제품이에요. 저는 3년간의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우선 핫셀블라드가 차지하고 있는 카메라 시장의 피라미드 최상위층으로 조금 아래 단계에 있는 유저들이 넘어올 수 있도록 고객들의 니즈에 맞춰 새로운 시도를 지속해 나갈 계획입니다. 개인적인 계획이라면 지난 1년간 너무 열심히 일을 했으니 휴식의 시간이 좀 주어졌으면 하는 거네요.(웃음)”

페리 오스틴 글로벌 CEO는…
패션 브랜드 불가리, 구찌, 프라다 등에서 마케팅과 세일즈를 담당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 왔고,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명품 휴대전화 브랜드 베르투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한 바 있다. 2015년 1월 스웨덴 명품 카메라 브랜드 핫셀블라드 글로벌 CEO에 임명돼 75년 카메라 장인 기술을 집약시킨 중형 포맷의 신모델 ‘H6D’의 개발을 이끌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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