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김호식)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KAIST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이 뭔가 잘못됐다고 고개를 꺄우뚱하게 하는 통계가 한둘이 아니다.
그중 하나가 연간 노동시간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2위이고 1인당 노동생산성은 꼴찌다. 2011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60%, OECD 평균의 80%에 불과한데 최근 들어 그마저 하향 추세다.
그런데 실상 한국 대기업들이 포진해 있는 제조업의 노동생산성은 세계 2위로 매우 높다. 즉 이러한 후진적 기업 문화가 원인이 아니라는 얘기다. 긴 노동시간과 낮은 생산성이 암시하는 바는 따로 있다.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영세 서비스업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사하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 제조업의 고용 비율은 16%에 불과하다. 이렇게 적은 수의 인구가 종사하는 분야에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에 40% 이상 기여하고 있다. 그러니 이 분야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높다.
하지만 국민의 70% 이상이 종사하는 서비스업은 금융 등 지극히 일부 산업을 제외하고는 제조업에 비해 40%의 생산성을 보여주고 있다. 서비스산업 중에도 자영업의 비율이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턱없이 높고 영세기업의 수가 너무 많다.
많은 수의 자영업이나 영세 서비스업은 새벽에 문을 열고 밤 12시가 넘어 가게를 닫는데 한 가족의 입에 풀칠 하기 급급하고 그나마 5년 생존율이 20%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전체 평균 통계치에서 노동생산성이 최하위이고 근로시간은 멕시코에 이어 2위로 장시간 노동을 하는 나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마저 경기가 침체되고 조선·해운·중공업 등에서 극도의 경기 부진이 나타나자 노동생산성이 2015년부터 하향 추세일 뿐만 아니라 고용 비율이 감소하고 있다. 당연히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는 점점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지고 있다.
◆ 대책 없는 정년 연장이 부른 비극
청년 고용과 관련해 심각하게 우려할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2015년 10월 7.4%이던 청년 실업률이 5개월 만에 15.5%로 뛰어올랐다. 이는 2000년 이후 15년 만에 가장 높을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간의 평균 8% 부근의 실업률보다 무려 두 배 수준으로 급등했다.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했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당시 실업률 13%마저 훌쩍 뛰어넘었다.
그런데 이 원인 중 하나가 지난해 노동 개혁을 하겠다고 나선 정부가 다른 아무런 대책도 없이 장년층의 정년을 연장해 적게는 2년, 산업에 따라서는 5년의 연장이 유예 기간도 없이 한순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경기가 침체되는데 장년의 정년을 연장한 만큼 청년들의 취업이 봉쇄됐고 정년 연장의 효과가 2~5년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특단의 대책 없이는 청년들은 조만간 IMF 외환 위기 때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고용의 빙하기를 앞두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제조업의 고용 비율이 줄어드는 것은 단지 일자리가 자꾸 해외로 나가서만은 아니다. 제조업의 생산성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이 높고 고용비용이 크면 기업들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화 투자를 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해외 생산 이전과 함께 나타난다.
따라서 중산층을 살리고 노동시간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길은 제조업의 일자리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런데 지난 총선에 청년 실업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은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차별 금지, 청년 고용 할당제뿐이다.
모두 고용이 제대로 이뤄질 때나 의미가 있는 분배 정책들이다. 고용 자체가 이뤄지지 못하는 때에는 사치스러운 이야기일 뿐이다. 4월 27일 내놓은 ‘청년 취업 대책’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계속 골목 시장과 영세 중소기업을 공급과잉의 구조조정 대상이 아니라 보호 대상으로 간주한다. 이런 기업들이 고용을 대다수 담당하는 한 우리는 중산층 재건과 커져만 가는 빈부 격차를 해소할 길이 없는 데도 말이다.
도대체 경제는 축소되고 있는데 기성세대의 정년을 이처럼 무모하게 연장해 주고 나서 우리는 곧 폭발할 청년 실업의 폭탄을 어찌할 것이지 정치권과 정부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제라도 기성세대 특히 정부와 정치권은 속죄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저지른 무모한 실수를 수정해야 한다.
기성세대의 이기주의와 무모함이 키운 시한폭탄은 아주 큰소리로 폭발을 경고하고 있다. 정치권, 특히 새로 이뤄질 20대 국회는 듣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