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theme] 낯설어 흥미롭다! 국악의 시대 열린다
입력 2016-08-09 09:55:57
수정 2016-08-09 09:55:57
지루한 것으로 여겨지던 국악이 ‘신선하고 즐거운 것’으로 변신하고 있다. 국악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국악 공연장과 아카데미에 줄을 이으며, 새로운 국악 트렌드를 형성한다. TV 등 대중 매체에서 국악의 재발견이 이뤄지고, 화제가 된 콘텐츠는 온라인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며 지친 현대인의 마음에 ‘감동 코드’로 다가선다. 그야말로 국악의 환골탈태다.
이현주 기자 | 사진 국립국악원·국립극장·아리랑 스쿨·숨 제공
나만의 정체성을 전통에서 찾다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최근 국악에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전통의 유산으로 멈춰 있던 국악이 현대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최신 유행의 옷을 입고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어서다. 국악의 원형이 기획을 달리하며 다양한 형태도 변주되고, 요즘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소수가 향유하던 국악이 이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국악 공연장과 아카데미에는 젊은 청년들의 발길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7년 차 직장인 최아진(32) 씨는 요즘 국악에 제대로 빠졌다. 엔지니어로 일하는 그는 매주 수요일 퇴근 후에는 어김없이 국악 아카데미 ‘아리랑 스쿨’을 찾는다. 해금 클래스에서 해금을 배우기 시작한 지 벌써 6개월째다. 최 씨는 “TV에서 국악이 소개되는 것을 보고 시작하게 됐는데, 청아하면서 구슬픈 소리가 좋아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도 마음의 힐링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최 씨와 함께 강의를 듣는 6명의 수강생들은 모두 또래 여성들이다. 이뿐만 아니다. 이곳 100여 명 수강생의 80% 이상이 모두 20대 여성이다. 대중 매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국악을 접하게 된 대학생과 청년들이 국악을 배우러 오면서다. 전통을 나 몰라라 했던 2030세대가 새롭게 국악에 눈을 뜨면서 아리랑 스쿨은 지난해 4월 문을 연 지 1년 만에 강좌 수를 3개에서 30개로 늘렸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물놀이 이외에 가야금, 해금, 봉산탈춤 등 다양한 클래스에 고루 사람이 몰린다.
늘어난 관객, 낮아진 연령
‘한복 다음 국악’ 트렌드가 청년층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번화가와 고궁 등에서 한복을 입은 청년들이 새로운 한복 패션을 만들어 온 데 이어, 보다 적극적으로 전통을 즐기고 소비하는 방법으로 국악을 배우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부는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다. 왜 국악인가. 아리랑 스쿨을 운영하는 문현우 한국문화기획꾼은 “청년들이 남의 문화를 따라하기보다 우리 것을 직접 배우고 자랑하면서 ‘나만의 고상한 취미’와 ‘특별한 브랜드’를 찾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수강생 중에는 장구 하나를 들고 세계일주를 하며 SNS에 사진을 올리는 청년도 있다.
청년들이 전통에서 자부심을 찾고 자랑하는 방식으로 국악 문화를 즐긴다면, 중장년들은 또 다른 이유에서 국악을 찾는다. 외국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후 벤처기업 PMG를 운영하는 이강호(65) 회장은 국립극장 전통예술아카데미 판소리 교실의 우등생이다.
벌써 4년째 판소리를 배워 고급반 수강생이 된 이 회장은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하며 25년간 해외를 오고 가며 느낀 것이 바로 우리 문화의 소중함이다”라며 “우리 것에 대한 정체성과 문화적 배경 없이 서구의 문화만 좇다 보면 비즈니스 파트너들도 우리를 존중해주지 않더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판소리에는 해학과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어, 스트레스 해소에도 으뜸이다”라고 전했다. 지난 2월 말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는 관현악 연주에 도전한 일반인들이 아마추어 국악관현악단을 결성하고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최근 국악은 대중 매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케이블 TV 프로그램 ‘힙합의 민족’에서 판소리 명인과 래퍼가 함께 열광적인 무대를 이끌고,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소개된 ‘춘향가’의 ‘쑥대머리’ 한 대목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다. ‘쑥대머리’의 경우 처음 1분 남짓 영상으로 편집됐다가 네티즌들의 요청으로 음원까지 나와 인기를 끌었다. 국악을 소재로 한 박신혜 주연의 TV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 가수 겸 배우 수지가 출연한 영화 ‘도리화가’, 그리고 최근 개봉한 영화 ‘해어화’ 등은 국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대중음악에서도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국악의 5음계(솔라도레미)를 바탕으로 작곡됐다. 판소리 완창과 같은 전통 국악이 아니라 은근히 모습을 드러내는 국악 코드로 대중문화와 섞이면서 국악 특유의 흥과 멋은 현대인의 감성과 만난다. 이렇게 국악 트렌드가 만들어진다.
국립국악원·국립극장 관객 수 급증
또 다른 국악의 변신은 공연장에서 볼 수 있다. 국내 양대 국악 공연장인 국립국악원과 국립극장은 확 달라진 면모를 자랑한다. 먼저 관객 수의 변화다. 국립국악원은 최근 3년간 관객 수가 2013년 12만3818명, 2014년 20만2110명, 2015년 29만8890명으로 2년 사이 2배 이상 늘었다. 이승재 국립국악원 홍보마케팅팀장은 “공연 횟수가 늘고, 객석 점유율도 높아지고 있는데 과거 몇 년 치를 모아야 나올 수 있던 관객 수가 지난 한 해 달성됐다”며 “기존 국악 애호가뿐만 아니라 신규 관객이 늘어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면 국악을 즐기는 연령대는 낮아졌다. 국립국악원의 주된 고정 관객층은 40대에서 60대까지 분포돼 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퓨전 국악 공연인 ‘금요 공감’이 문을 연 이후로 주요 관객층이 30대 이하로 낮아졌다. ‘금요 공감’을 전후로 주요 관객 연령대별 수치는 30대 이하 42%, 40대 이상 58%에서 30대 이하 61.7%, 40대 이상 38.3%로 바뀌었다. 특히 10~20대 관객이 전체의 50% 가까이를 차지했다.
‘레퍼토리 시즌’(한 해 공연을 시즌권으로 엮음)을 운영하는 국립극장에서도 관객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2012~2013년 시즌 이후 3번의 시즌 동안 총 관객 수는 12만5390명, 13만592명, 13만8827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평균 관객 연령대는 2012~2013년 30대 이하 43%, 40대 이상 57%에서, 2014~2015년 30대 이하 56%, 40대 이상 44%로 역전됐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레퍼토리 시즌을 국내 최초로 들여와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도 혹은 도발을 했는데, 보수적이고 안정적으로 문화를 선택하는 40~60대보다 색다른 양식에 반응하는 30대 이하에서 먼저 과감한 선택을 했다”며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로 입소문이 나면서 40대 이상에게도 확산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소수의 애호가가 즐기던 국악 공연에 사람들이 줄을 잇는 데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먼저 국악을 포함한 전통 문화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세계적 예술의 원천이었던 유럽은 이제 새로운 영감을 아시아, 아프리카의 문화를 통해 수혈 받으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고유한 정신과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일본의 전통 문화는 이미 19세기 유럽을 휩쓸고 지나갔고, 중국은 문화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전통의 원형이 많이 훼손됐다. 한국의 전통은 아이러니하게도 폐쇄적인 환경에서 고유성을 잘 보전해 왔다. 안호상 극장장은 “그동안 전통 문화 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하며 업신여기던 사람들이 국악, 한복, 한식, 전통무용 등 전반에 걸쳐 문화적 토양이 풍부하고 스토리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아보고 있다”며 “한 마디로 ‘이제는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저평가돼 왔던 국악은, 서구 문화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오히려 ‘낯설고 새로운 예술’로 다가선다. 낯설어서 흥미롭다. 더욱이 신나는 음악이다. 국악은 서양의 ‘온 템포’와 달리 박자가 32박 안에서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는 특징을 갖는다. 조였다 늘렸다 하는 음악적 융통성과 즉흥성이 강하고, 타 장르와도 잘 섞인다.
또 한 축에선 ‘젊은 국악 뮤지션’도 국악의 인기를 이끄는 요소다. 이들은 최근 국악의 진화를 이끄는 주역들이다. 지난 4월 7일 저녁 8시 서울남산국악당에서는 ‘국악 생존기’라는 타이틀로 ‘숨’, ‘고래야’, ‘그림’ 등 세 팀의 국악 공연이 펼쳐졌다. ‘지금, 현재’ 젊은 국악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자리로,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국악 공연의 이미지를 깨기에 충분했다. 가요를 부르다가 확 민요 발성으로 바뀌기도 하고, 피리를 불던 사나이는 순간 래퍼로 변신한다. “생경한 아름다움, 불편하지 않은 낯섦”, “신선하고 음악 자체로 너무 즐거웠다”, “비빔밥처럼 국악과 현대 음악과의 만남이 조화롭고 신선했다”. 이날 무대를 본 관객들의 반응이다.
국악의 변신은 이제 ‘국악 3.0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1994년 ‘국악의 해’부터 활발하게 진행된 국악의 대중화 노력은 타 장르와의 만남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모아졌다. 1차로는 국악기로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여기에 재즈나 클래식을 접목하는 방식이었다. 윤중강 국악평론가는 “당시에는 엄밀히 말해 국악의 변화는 아니었고 국악이 바뀌는 것처럼 보였다”며 “2000년대 초반 ‘퓨전 국악’이 대중에게 다가가고 ‘비틀스’나 ‘캐논’ 등을 국악기로 연주하면서 국악기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악 3.0 시대’는 2010년 이후 젊은 국악인들에 의해 시도되는 국악 실험이다. 국악 주법 그대로 서양 음악을 연주하거나 단순히 이것과 저것을 물리적으로 섞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법과 창작으로 국악의 경계를 흔든다. 국악기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사운드’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국악을 전공한 이들이 모였지만 뽑아내는 소리는 록이나 헤비메탈이라든가(잠비나이), 피리, 가야금, 생황 등을 섞어 인디 록에 가까운 요즘 음악을 만드는 식이다. 윤중강 국악평론가는 “국악 또는 국악기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 컬래버레이션하는 이런 음악은 현대적이고 대중적으로 들리는데 홍대나 인디씬의 일반 밴드와 비교할 때도 실력이 출중하다”며 “젊은 음악 애호가들의 음악적 감성을 채워주면서 거기에 색다른 국악적 요소를 ‘플러스알파’ 하기 때문에 대중에게 소비된다”고 말했다.
재밌는 점은 이런 새로운 국악은 유명 국악관현악단으로의 좁은 취업문만 바라보기보다 기획과 실험을 통해 ‘국악 창업’을 선택한 이들이 만들어 가는 흐름이라는 것이다. 그 가능성은 해외에서 먼저 알아본다. 송현민 국악평론가는 “이들은 워맥스, 워매드 같은 세계의 유명 음악축제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후 국내에서 유명세를 타는 이른바 ‘제트플라잉’이 특징이다”라고 말했다. ‘공명’, ‘불세출’, ‘바라지’, ‘앙상블 시나위’ 등이 그렇다.
한편에선 판소리의 뮤지컬 버전인 창극의 해외 진출이 눈에 띈다. 국립창극단의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4월 14일 프랑스 공연예술 중심지인 파리 테아트르 드 라빌의 초대를 받아 프랑스 관객들의 환대를 받기도 했다.
변방에 머물렀던 국악은 이제 관객, 극장, 연주자 모두에게 가장 최신의 감성을 담은 젊은 국악으로 떠오른다. 트렌드에 민감한 청년들이 우리 문화를 높이 평가하고 자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은 달라진 국악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근대화 이후 줄곧 서구 및 일본 문화에 밀려 있던 우리 문화의 ‘유쾌한 반란’이다.
‘강력한 미적 코드’국악 즐기기
그렇다면 국악, 어디서 보고 들을 수 있나.
서울의 주요 국악 공연장부터 공연 일정, 국악 아카데미, 추천 음반까지
국악 초보자를 위한 가이드를 한 데 모았다. 이현주 기자
국악은 정악부터 민속악, 창작 국악 등으로 다양한 장르를 형성한다. 국악 초보자라면 여러 국악을 접해보고 자신의 취향을 찾는 게 먼저다. 백문이 불여일견. 먼저 공연장으로 향해 직접 오감으로 접하고, 국악 음반을 통해 일상에서 깊은 맛을 즐기는 것도 국악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주요 공연장 및 대표 공연
국악 문외한에서 귀명창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많이 보고 들어야 한다. 알고 보면 국악 공연은 1년 내내 도처에서 열리고 있는데 다른 장르에 비해 저렴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공연장에서 구경꾼들이 “얼씨구, 좋다” 하며 추임새를 넣는 것을 보면 낯선 국악도 흥겹게 느껴질 것이다.
국립국악원
우면산 자락, 예술의 전당 옆에 위치해 있다. 예악당, 우면당, 풍류사랑방 3개의 공연장에서 거의 매일같이 공연이 열린다. 그중 풍류사랑방은 마이크와 스피커가 없는 자연 음향 공연장으로, 옛 사랑방처럼 한옥 마루에 앉아 고즈넉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금요 공감’, ‘목요 풍류’, ‘토요 국악동화’ 등 요일별 기획 공연이 열리고, ‘금요 공감’은 전통 예술과 타 예술 장르의 협업을 통한 퓨전 국악이 주를 이뤄 초보자에게 적합하다. 왕실이나 상류 계층이 향유하던 정악도 이곳의 자랑이다. 장소를 옮겨 고궁에서 여는 정악 공연도 눈여겨볼 만하다. 1년에 딱 한 달, 7월의 매주 토요일 아침 7시, 창경궁 내 명정전 뒤뜰에서 열리는 ‘창경궁의 아침’이다. 매번 500명 이상의 관객이 빼곡히 들어찰 정도로 인기가 많다. 고궁에서 제대로 격식을 갖춰 듣는 정악은 ‘아정한’ 느낌에 가깝다.
위치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364 | 연락처 02-580-3300
국립극장
서울 남산 자락에 위치한 국립극장은 전통에 기반을 둔 동시대적 공연예술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창극에 강점이 있다. 특히 여름밤, 야외 공연은 남산의 정취를 즐기기에 좋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매년 8월 말부터 이듬해 6월까지 ‘레퍼토리 시즌’을 운영하고, 비시즌인 7월에는 도심 속 우리 음악축제 ‘여우樂(락) 페스티벌’이 유명하다. 2015~2016년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은 국립창극단 ‘적벽가’를 시작으로, 올해 6월까지 309일 동안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그중 ‘국립극장 믹스&초이스’는 드러머 남궁연이 연출과 해설을 맡고 인기 가수들이 출연한다.
위치 서울시 중구 장충단로 59 | 연락처 02-2280-4114~6
서울남산국악당
서울시가 2007년 만든 국악 전문 공연장. 남산한옥마을 내 전통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한옥 느낌이 잘 살아 있다. 300석 규모의 공연장은 지하 1층에 있으며, 자연 음향 시설로 어느 좌석에서나 판소리 육성과 가야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국악의 현대화를 추구하는 국악단체 ‘정가악회’가 위탁 운영하고 있어 퓨전 국악 공연이 주를 이룬다. 서울시는 남산국악당에 이어 또 하나의 국악 공연장인 서울돈화문국악당(144석 규모)을 올해 9월 개관할 예정이다. 젊은 국악인들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실험 무대도 이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콘텐츠다.
위치 서울시 중구 퇴계로 34길 28 | 연락처 02-2261-0501
국악 아카데미
더 깊은 국악 세계를 알고 싶다면, 직접 국악을 배우면 된다. 우리 국악기는 널리 알려진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피리, 대금 이외에도 약 60여 종으로 다양하다. 눈으로 보고 싶다면 국립국악원의 국악박물관에 가보는 것도 추천한다. 이러한 국악기를 배울 수 있는 국악 강좌는 정부 기관과 민간단체, 그리고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과 문화센터 등에서 열리고 있다.
국립국악원 ‘국악 아카데미’
3~6월, 8~11월 국립국악원 내 강의실에서 열린다. 일반인, 최고경영자(CEO) 과정 등 대상별로 특화된 아카데미가 운영된다. 올해 상반기 국악 아카데미 CEO 과정은 지난 4월 5일 개강해 6월 21일까지 총 11회에 걸쳐 진행된다. 또한 4~7월 중 다양한 e-국악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민요와 판소리, 정가, 산조와 시나위, 궁중음악과 풍류음악 등 기악곡들로 나눠 국악의 주변 이야기와 국악 감상법을 전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국내 최고 강사진이 포진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진은 안숙선 판소리 명창이 강의하는 모습.
국립극장 ‘전통예술아카데미’
전통 공연예술 교육 프로그램으로 판소리, 경기민요, 사물놀이 등 한국의 전통 공연예술을 각 분야 최고 예술가에게 직접 배울 수 있다. 올해는 총 10개의 강좌로 구성되며 초급, 중급, 고급 과정으로 나뉘어 있다. 이호연(경기민요), 조흥동(한량무), 최종실(소고춤), 채상묵(살풀이), 김유경(국립창극단), 연제호(국립국악관현악단), 왕기철(판소리) 등의 강사진을 자랑한다. 3월 7일부터 11월 12일까지 주 1회 총 30회에 걸쳐 진행된다. 초·중급 과정은 50만 원, 고급 과정은 60만 원이다.
코아유 ‘아리랑 스쿨’
한국 문화 교육체험 아카데미 아리랑 스쿨은 3개월 정규 과정으로 1학기(1~3월), 2학기(5~7월), 3학기(9~11월) 과정을 운영한다. 국악 강좌로는 평일 야간, 주말에 열리는 가야금반, 판소리반, 해금반이 있다. 강의 후에는 클래스별로 발표회를 갖는다.
이밖에 취미나 교양으로 국악을 배우는 사람들을 위한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으로는 남부대, 명지대, 이화여대, 중앙대 등이 있다. 또한 사설 아카데미 중에서는 소리여울, 국악이 꽃피는 나무, 더늠 등이 비교적 큰 규모로 운영된다.
국악 아카데미 참관기
지난 4월 6일 오후 5시 30분, 국립극장 전통예술아카데미 판소리 교실. 10여 명의 남녀노소 학생들이 모여 있다.
요즘 가장 뜨겁다는 ‘춘향가’의 ‘쑥대머리’가 이날 배울 곡이다. 가사가 적힌 종이 한 장이 교재의 전부. 판소리 명창인 왕기철 선생이 먼저 선창하자 다함께 따라 부른다. “저어~억 마악, 자 해보세요”, “저어~억 마악”(다함께), “포인트는 마악~, 여기”, “마악”(다함께). 악보 없이 한 마디 한 마디 듣고 따라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우리 소리는 예로부터 선생과 제자 사이, ‘해봐’ 하는 식으로 입에서 입으로 지금까지 전승돼 왔다. 옆나라 중국에서도 문묘제례악이 사라져 한국으로 배우러 올 정도로 전통의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다.
국악 입문자를 위한 추천 음반
일상에서 국악을 즐기는 방법은 음반을 듣는 것이다. 아쉽게도 국악 음반은 주요 음원 사이트 순위에서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CD로 국악 음반을 보유하고 싶다면 교보문고의 핫트랙스, 신나라레코드, 정창관의 국악CD음반세계(www. gugakcd.kr) 등을 찾으면 된다. 정창관 국악 음반 전문가는 국내 최대 음반 보유자로, 현존하는 거의 모든 음반을 갖고 있다. 그는 “국악 음반 소비시장이 작은데도 불구하고, 새 국악 음반이 일주일에 2~3장씩 꾸준히 발매되고 있다는 점은 ‘작은 기적’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정창관 국악 음반 전문가가 직접 퓨전 국악 5장을 추천한다.
숙명가야금연주단 베스트 컬렉션 2006 ‘For You’ 6집
2006년에 출반된 이 음반은 지금까지 국악 음반의 베스트셀러로 회자되고 있다. 1999년에 국내 최초의 가야금오케스트라로 창단된 숙명가야금연주단은 전통음악 연주곡은 물론 세계인에게 친숙한 서양 고전음악, 민요와 대중음악 등을 격조 있는 가야금오케스트라로 연주함으로써 가야금의 아름다움을 친근하게 전파하며 최고의 명성을 쌓아 오고 있다.
추천 이유 국악의 베스트셀러. 연주 숙명가야금연주단(서울음반)
황병기 가야금 작품집 Vol. 1 ‘침향무’
창작 음악이면서 국악의 명반이다. 2001년에 출반된 이 음반은 ‘황병기 가야금 창작집’을 재출반한 것으로, 96킬로헤르츠/24비트로 리마스터링하고 트랙도 세분했다. 또 해설서를 보완하고 해외 시장을 겨냥해 그 해설서를 영어, 일어, 프랑스어로 번역해 실었다. 음반에는 연주자 최초의 가야금 독주곡인 ‘숲’(1967년), ‘침향무’(1974년)를 비롯해 주옥같은 가야금 독주곡 4곡이 실려 있다.
추천 이유 국악의 스테디셀러. 연주 황병기·안혜란(C&L Music)
아리수 시즌 3 세 번째 이야기: 유희요 ‘아리랑나무랑 놀자’
민요의 현대화에 앞장서 온 여성 민요그룹 ‘아리수’의 5번째 음반(2015년)으로, 민요의 꽃인 유희요를 편곡해 7곡을 담았다. 민요의 원형을 살려 편곡하거나 민요의 한 구절을 새롭게 창작한 곡들이다. 2005년에 창단된 아리수는 10년 이상 경기소리를 공부한 젊은 여성 소리꾼으로 구성돼 있다. 토속민요가 퓨전민요로 탄생한 것이다.
추천 이유 우리 민요를 새롭게 재창조한 노래곡. 연주 아리수(열린음악)
‘Imago’
월드뮤직앙상블 ‘거문고팩토리’의 두 번째 음반(2014년)이다. 2000년에 출반된 1집에서 거문고의 다양한 변신을 보여준 바 있는 ‘거문고팩토리’는, 나비나 나방의 성충, 성숙을 의미하는 2집의 ‘Imago’에서 그들만의 변신된 악기로 자신들의 한층 성숙한 음악 세계를 보여준다. 현재 3인의 거문고, 1인의 가야금 연주자로 구성돼 있다. 곡들은 모두 연주자들이 직접 작곡한 것이다.
추천 이유 거문고의 새로운 길을 모색. 실험적인 면이 있지만, 음악이 좋음. 연주 거문고팩토리 (C&L Music)
‘숨[su:m]’ 2nd
‘숨’은 2007년에 결성된 여성 2인조 한국 음악 앙상블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월드뮤직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듀오다. 2014년에 출반된 두 번째 음반에는 그동안 활동을 통해 발표했던 곡들과 미발표 신곡 4곡을 수록했다. ‘숨’은 자기들이 직접 곡을 쓴다. 이것은 눈이 아니고 가슴으로 연주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 사람은 피리, 생황, 양금, 태평소, 징을 연주하기도 하고 노래도 한다.
추천 이유 2인조로 음악성 높음. 월드뮤직으로 해외에서 주목. 연주 박지하·서정민(블루보이)
이현주 기자 | 사진 국립국악원·국립극장·아리랑 스쿨·숨 제공
나만의 정체성을 전통에서 찾다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최근 국악에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전통의 유산으로 멈춰 있던 국악이 현대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최신 유행의 옷을 입고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어서다. 국악의 원형이 기획을 달리하며 다양한 형태도 변주되고, 요즘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소수가 향유하던 국악이 이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국악 공연장과 아카데미에는 젊은 청년들의 발길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7년 차 직장인 최아진(32) 씨는 요즘 국악에 제대로 빠졌다. 엔지니어로 일하는 그는 매주 수요일 퇴근 후에는 어김없이 국악 아카데미 ‘아리랑 스쿨’을 찾는다. 해금 클래스에서 해금을 배우기 시작한 지 벌써 6개월째다. 최 씨는 “TV에서 국악이 소개되는 것을 보고 시작하게 됐는데, 청아하면서 구슬픈 소리가 좋아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도 마음의 힐링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최 씨와 함께 강의를 듣는 6명의 수강생들은 모두 또래 여성들이다. 이뿐만 아니다. 이곳 100여 명 수강생의 80% 이상이 모두 20대 여성이다. 대중 매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국악을 접하게 된 대학생과 청년들이 국악을 배우러 오면서다. 전통을 나 몰라라 했던 2030세대가 새롭게 국악에 눈을 뜨면서 아리랑 스쿨은 지난해 4월 문을 연 지 1년 만에 강좌 수를 3개에서 30개로 늘렸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물놀이 이외에 가야금, 해금, 봉산탈춤 등 다양한 클래스에 고루 사람이 몰린다.
늘어난 관객, 낮아진 연령
‘한복 다음 국악’ 트렌드가 청년층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번화가와 고궁 등에서 한복을 입은 청년들이 새로운 한복 패션을 만들어 온 데 이어, 보다 적극적으로 전통을 즐기고 소비하는 방법으로 국악을 배우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부는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다. 왜 국악인가. 아리랑 스쿨을 운영하는 문현우 한국문화기획꾼은 “청년들이 남의 문화를 따라하기보다 우리 것을 직접 배우고 자랑하면서 ‘나만의 고상한 취미’와 ‘특별한 브랜드’를 찾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수강생 중에는 장구 하나를 들고 세계일주를 하며 SNS에 사진을 올리는 청년도 있다.
청년들이 전통에서 자부심을 찾고 자랑하는 방식으로 국악 문화를 즐긴다면, 중장년들은 또 다른 이유에서 국악을 찾는다. 외국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후 벤처기업 PMG를 운영하는 이강호(65) 회장은 국립극장 전통예술아카데미 판소리 교실의 우등생이다.
벌써 4년째 판소리를 배워 고급반 수강생이 된 이 회장은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하며 25년간 해외를 오고 가며 느낀 것이 바로 우리 문화의 소중함이다”라며 “우리 것에 대한 정체성과 문화적 배경 없이 서구의 문화만 좇다 보면 비즈니스 파트너들도 우리를 존중해주지 않더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판소리에는 해학과 삶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어, 스트레스 해소에도 으뜸이다”라고 전했다. 지난 2월 말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는 관현악 연주에 도전한 일반인들이 아마추어 국악관현악단을 결성하고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최근 국악은 대중 매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케이블 TV 프로그램 ‘힙합의 민족’에서 판소리 명인과 래퍼가 함께 열광적인 무대를 이끌고,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소개된 ‘춘향가’의 ‘쑥대머리’ 한 대목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다. ‘쑥대머리’의 경우 처음 1분 남짓 영상으로 편집됐다가 네티즌들의 요청으로 음원까지 나와 인기를 끌었다. 국악을 소재로 한 박신혜 주연의 TV 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 가수 겸 배우 수지가 출연한 영화 ‘도리화가’, 그리고 최근 개봉한 영화 ‘해어화’ 등은 국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대중음악에서도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국악의 5음계(솔라도레미)를 바탕으로 작곡됐다. 판소리 완창과 같은 전통 국악이 아니라 은근히 모습을 드러내는 국악 코드로 대중문화와 섞이면서 국악 특유의 흥과 멋은 현대인의 감성과 만난다. 이렇게 국악 트렌드가 만들어진다.
국립국악원·국립극장 관객 수 급증
또 다른 국악의 변신은 공연장에서 볼 수 있다. 국내 양대 국악 공연장인 국립국악원과 국립극장은 확 달라진 면모를 자랑한다. 먼저 관객 수의 변화다. 국립국악원은 최근 3년간 관객 수가 2013년 12만3818명, 2014년 20만2110명, 2015년 29만8890명으로 2년 사이 2배 이상 늘었다. 이승재 국립국악원 홍보마케팅팀장은 “공연 횟수가 늘고, 객석 점유율도 높아지고 있는데 과거 몇 년 치를 모아야 나올 수 있던 관객 수가 지난 한 해 달성됐다”며 “기존 국악 애호가뿐만 아니라 신규 관객이 늘어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반면 국악을 즐기는 연령대는 낮아졌다. 국립국악원의 주된 고정 관객층은 40대에서 60대까지 분포돼 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퓨전 국악 공연인 ‘금요 공감’이 문을 연 이후로 주요 관객층이 30대 이하로 낮아졌다. ‘금요 공감’을 전후로 주요 관객 연령대별 수치는 30대 이하 42%, 40대 이상 58%에서 30대 이하 61.7%, 40대 이상 38.3%로 바뀌었다. 특히 10~20대 관객이 전체의 50% 가까이를 차지했다.
‘레퍼토리 시즌’(한 해 공연을 시즌권으로 엮음)을 운영하는 국립극장에서도 관객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2012~2013년 시즌 이후 3번의 시즌 동안 총 관객 수는 12만5390명, 13만592명, 13만8827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평균 관객 연령대는 2012~2013년 30대 이하 43%, 40대 이상 57%에서, 2014~2015년 30대 이하 56%, 40대 이상 44%로 역전됐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레퍼토리 시즌을 국내 최초로 들여와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도 혹은 도발을 했는데, 보수적이고 안정적으로 문화를 선택하는 40~60대보다 색다른 양식에 반응하는 30대 이하에서 먼저 과감한 선택을 했다”며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로 입소문이 나면서 40대 이상에게도 확산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소수의 애호가가 즐기던 국악 공연에 사람들이 줄을 잇는 데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먼저 국악을 포함한 전통 문화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세계적 예술의 원천이었던 유럽은 이제 새로운 영감을 아시아, 아프리카의 문화를 통해 수혈 받으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고유한 정신과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일본의 전통 문화는 이미 19세기 유럽을 휩쓸고 지나갔고, 중국은 문화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전통의 원형이 많이 훼손됐다. 한국의 전통은 아이러니하게도 폐쇄적인 환경에서 고유성을 잘 보전해 왔다. 안호상 극장장은 “그동안 전통 문화 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하며 업신여기던 사람들이 국악, 한복, 한식, 전통무용 등 전반에 걸쳐 문화적 토양이 풍부하고 스토리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아보고 있다”며 “한 마디로 ‘이제는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저평가돼 왔던 국악은, 서구 문화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오히려 ‘낯설고 새로운 예술’로 다가선다. 낯설어서 흥미롭다. 더욱이 신나는 음악이다. 국악은 서양의 ‘온 템포’와 달리 박자가 32박 안에서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는 특징을 갖는다. 조였다 늘렸다 하는 음악적 융통성과 즉흥성이 강하고, 타 장르와도 잘 섞인다.
또 한 축에선 ‘젊은 국악 뮤지션’도 국악의 인기를 이끄는 요소다. 이들은 최근 국악의 진화를 이끄는 주역들이다. 지난 4월 7일 저녁 8시 서울남산국악당에서는 ‘국악 생존기’라는 타이틀로 ‘숨’, ‘고래야’, ‘그림’ 등 세 팀의 국악 공연이 펼쳐졌다. ‘지금, 현재’ 젊은 국악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자리로, 고리타분할 것이라는 국악 공연의 이미지를 깨기에 충분했다. 가요를 부르다가 확 민요 발성으로 바뀌기도 하고, 피리를 불던 사나이는 순간 래퍼로 변신한다. “생경한 아름다움, 불편하지 않은 낯섦”, “신선하고 음악 자체로 너무 즐거웠다”, “비빔밥처럼 국악과 현대 음악과의 만남이 조화롭고 신선했다”. 이날 무대를 본 관객들의 반응이다.
국악의 변신은 이제 ‘국악 3.0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1994년 ‘국악의 해’부터 활발하게 진행된 국악의 대중화 노력은 타 장르와의 만남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모아졌다. 1차로는 국악기로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여기에 재즈나 클래식을 접목하는 방식이었다. 윤중강 국악평론가는 “당시에는 엄밀히 말해 국악의 변화는 아니었고 국악이 바뀌는 것처럼 보였다”며 “2000년대 초반 ‘퓨전 국악’이 대중에게 다가가고 ‘비틀스’나 ‘캐논’ 등을 국악기로 연주하면서 국악기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악 3.0 시대’는 2010년 이후 젊은 국악인들에 의해 시도되는 국악 실험이다. 국악 주법 그대로 서양 음악을 연주하거나 단순히 이것과 저것을 물리적으로 섞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법과 창작으로 국악의 경계를 흔든다. 국악기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사운드’를 찾아가는 방식이다. 국악을 전공한 이들이 모였지만 뽑아내는 소리는 록이나 헤비메탈이라든가(잠비나이), 피리, 가야금, 생황 등을 섞어 인디 록에 가까운 요즘 음악을 만드는 식이다. 윤중강 국악평론가는 “국악 또는 국악기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 컬래버레이션하는 이런 음악은 현대적이고 대중적으로 들리는데 홍대나 인디씬의 일반 밴드와 비교할 때도 실력이 출중하다”며 “젊은 음악 애호가들의 음악적 감성을 채워주면서 거기에 색다른 국악적 요소를 ‘플러스알파’ 하기 때문에 대중에게 소비된다”고 말했다.
재밌는 점은 이런 새로운 국악은 유명 국악관현악단으로의 좁은 취업문만 바라보기보다 기획과 실험을 통해 ‘국악 창업’을 선택한 이들이 만들어 가는 흐름이라는 것이다. 그 가능성은 해외에서 먼저 알아본다. 송현민 국악평론가는 “이들은 워맥스, 워매드 같은 세계의 유명 음악축제에서 먼저 이름을 알린 후 국내에서 유명세를 타는 이른바 ‘제트플라잉’이 특징이다”라고 말했다. ‘공명’, ‘불세출’, ‘바라지’, ‘앙상블 시나위’ 등이 그렇다.
한편에선 판소리의 뮤지컬 버전인 창극의 해외 진출이 눈에 띈다. 국립창극단의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4월 14일 프랑스 공연예술 중심지인 파리 테아트르 드 라빌의 초대를 받아 프랑스 관객들의 환대를 받기도 했다.
변방에 머물렀던 국악은 이제 관객, 극장, 연주자 모두에게 가장 최신의 감성을 담은 젊은 국악으로 떠오른다. 트렌드에 민감한 청년들이 우리 문화를 높이 평가하고 자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은 달라진 국악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근대화 이후 줄곧 서구 및 일본 문화에 밀려 있던 우리 문화의 ‘유쾌한 반란’이다.
‘강력한 미적 코드’국악 즐기기
그렇다면 국악, 어디서 보고 들을 수 있나.
서울의 주요 국악 공연장부터 공연 일정, 국악 아카데미, 추천 음반까지
국악 초보자를 위한 가이드를 한 데 모았다. 이현주 기자
국악은 정악부터 민속악, 창작 국악 등으로 다양한 장르를 형성한다. 국악 초보자라면 여러 국악을 접해보고 자신의 취향을 찾는 게 먼저다. 백문이 불여일견. 먼저 공연장으로 향해 직접 오감으로 접하고, 국악 음반을 통해 일상에서 깊은 맛을 즐기는 것도 국악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주요 공연장 및 대표 공연
국악 문외한에서 귀명창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많이 보고 들어야 한다. 알고 보면 국악 공연은 1년 내내 도처에서 열리고 있는데 다른 장르에 비해 저렴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공연장에서 구경꾼들이 “얼씨구, 좋다” 하며 추임새를 넣는 것을 보면 낯선 국악도 흥겹게 느껴질 것이다.
국립국악원
우면산 자락, 예술의 전당 옆에 위치해 있다. 예악당, 우면당, 풍류사랑방 3개의 공연장에서 거의 매일같이 공연이 열린다. 그중 풍류사랑방은 마이크와 스피커가 없는 자연 음향 공연장으로, 옛 사랑방처럼 한옥 마루에 앉아 고즈넉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금요 공감’, ‘목요 풍류’, ‘토요 국악동화’ 등 요일별 기획 공연이 열리고, ‘금요 공감’은 전통 예술과 타 예술 장르의 협업을 통한 퓨전 국악이 주를 이뤄 초보자에게 적합하다. 왕실이나 상류 계층이 향유하던 정악도 이곳의 자랑이다. 장소를 옮겨 고궁에서 여는 정악 공연도 눈여겨볼 만하다. 1년에 딱 한 달, 7월의 매주 토요일 아침 7시, 창경궁 내 명정전 뒤뜰에서 열리는 ‘창경궁의 아침’이다. 매번 500명 이상의 관객이 빼곡히 들어찰 정도로 인기가 많다. 고궁에서 제대로 격식을 갖춰 듣는 정악은 ‘아정한’ 느낌에 가깝다.
위치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364 | 연락처 02-580-3300
국립극장
서울 남산 자락에 위치한 국립극장은 전통에 기반을 둔 동시대적 공연예술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창극에 강점이 있다. 특히 여름밤, 야외 공연은 남산의 정취를 즐기기에 좋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매년 8월 말부터 이듬해 6월까지 ‘레퍼토리 시즌’을 운영하고, 비시즌인 7월에는 도심 속 우리 음악축제 ‘여우樂(락) 페스티벌’이 유명하다. 2015~2016년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은 국립창극단 ‘적벽가’를 시작으로, 올해 6월까지 309일 동안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그중 ‘국립극장 믹스&초이스’는 드러머 남궁연이 연출과 해설을 맡고 인기 가수들이 출연한다.
위치 서울시 중구 장충단로 59 | 연락처 02-2280-4114~6
서울남산국악당
서울시가 2007년 만든 국악 전문 공연장. 남산한옥마을 내 전통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한옥 느낌이 잘 살아 있다. 300석 규모의 공연장은 지하 1층에 있으며, 자연 음향 시설로 어느 좌석에서나 판소리 육성과 가야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국악의 현대화를 추구하는 국악단체 ‘정가악회’가 위탁 운영하고 있어 퓨전 국악 공연이 주를 이룬다. 서울시는 남산국악당에 이어 또 하나의 국악 공연장인 서울돈화문국악당(144석 규모)을 올해 9월 개관할 예정이다. 젊은 국악인들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실험 무대도 이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콘텐츠다.
위치 서울시 중구 퇴계로 34길 28 | 연락처 02-2261-0501
국악 아카데미
더 깊은 국악 세계를 알고 싶다면, 직접 국악을 배우면 된다. 우리 국악기는 널리 알려진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피리, 대금 이외에도 약 60여 종으로 다양하다. 눈으로 보고 싶다면 국립국악원의 국악박물관에 가보는 것도 추천한다. 이러한 국악기를 배울 수 있는 국악 강좌는 정부 기관과 민간단체, 그리고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과 문화센터 등에서 열리고 있다.
국립국악원 ‘국악 아카데미’
3~6월, 8~11월 국립국악원 내 강의실에서 열린다. 일반인, 최고경영자(CEO) 과정 등 대상별로 특화된 아카데미가 운영된다. 올해 상반기 국악 아카데미 CEO 과정은 지난 4월 5일 개강해 6월 21일까지 총 11회에 걸쳐 진행된다. 또한 4~7월 중 다양한 e-국악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민요와 판소리, 정가, 산조와 시나위, 궁중음악과 풍류음악 등 기악곡들로 나눠 국악의 주변 이야기와 국악 감상법을 전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국내 최고 강사진이 포진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진은 안숙선 판소리 명창이 강의하는 모습.
국립극장 ‘전통예술아카데미’
전통 공연예술 교육 프로그램으로 판소리, 경기민요, 사물놀이 등 한국의 전통 공연예술을 각 분야 최고 예술가에게 직접 배울 수 있다. 올해는 총 10개의 강좌로 구성되며 초급, 중급, 고급 과정으로 나뉘어 있다. 이호연(경기민요), 조흥동(한량무), 최종실(소고춤), 채상묵(살풀이), 김유경(국립창극단), 연제호(국립국악관현악단), 왕기철(판소리) 등의 강사진을 자랑한다. 3월 7일부터 11월 12일까지 주 1회 총 30회에 걸쳐 진행된다. 초·중급 과정은 50만 원, 고급 과정은 60만 원이다.
코아유 ‘아리랑 스쿨’
한국 문화 교육체험 아카데미 아리랑 스쿨은 3개월 정규 과정으로 1학기(1~3월), 2학기(5~7월), 3학기(9~11월) 과정을 운영한다. 국악 강좌로는 평일 야간, 주말에 열리는 가야금반, 판소리반, 해금반이 있다. 강의 후에는 클래스별로 발표회를 갖는다.
이밖에 취미나 교양으로 국악을 배우는 사람들을 위한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으로는 남부대, 명지대, 이화여대, 중앙대 등이 있다. 또한 사설 아카데미 중에서는 소리여울, 국악이 꽃피는 나무, 더늠 등이 비교적 큰 규모로 운영된다.
국악 아카데미 참관기
지난 4월 6일 오후 5시 30분, 국립극장 전통예술아카데미 판소리 교실. 10여 명의 남녀노소 학생들이 모여 있다.
요즘 가장 뜨겁다는 ‘춘향가’의 ‘쑥대머리’가 이날 배울 곡이다. 가사가 적힌 종이 한 장이 교재의 전부. 판소리 명창인 왕기철 선생이 먼저 선창하자 다함께 따라 부른다. “저어~억 마악, 자 해보세요”, “저어~억 마악”(다함께), “포인트는 마악~, 여기”, “마악”(다함께). 악보 없이 한 마디 한 마디 듣고 따라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우리 소리는 예로부터 선생과 제자 사이, ‘해봐’ 하는 식으로 입에서 입으로 지금까지 전승돼 왔다. 옆나라 중국에서도 문묘제례악이 사라져 한국으로 배우러 올 정도로 전통의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다.
국악 입문자를 위한 추천 음반
일상에서 국악을 즐기는 방법은 음반을 듣는 것이다. 아쉽게도 국악 음반은 주요 음원 사이트 순위에서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CD로 국악 음반을 보유하고 싶다면 교보문고의 핫트랙스, 신나라레코드, 정창관의 국악CD음반세계(www. gugakcd.kr) 등을 찾으면 된다. 정창관 국악 음반 전문가는 국내 최대 음반 보유자로, 현존하는 거의 모든 음반을 갖고 있다. 그는 “국악 음반 소비시장이 작은데도 불구하고, 새 국악 음반이 일주일에 2~3장씩 꾸준히 발매되고 있다는 점은 ‘작은 기적’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정창관 국악 음반 전문가가 직접 퓨전 국악 5장을 추천한다.
숙명가야금연주단 베스트 컬렉션 2006 ‘For You’ 6집
2006년에 출반된 이 음반은 지금까지 국악 음반의 베스트셀러로 회자되고 있다. 1999년에 국내 최초의 가야금오케스트라로 창단된 숙명가야금연주단은 전통음악 연주곡은 물론 세계인에게 친숙한 서양 고전음악, 민요와 대중음악 등을 격조 있는 가야금오케스트라로 연주함으로써 가야금의 아름다움을 친근하게 전파하며 최고의 명성을 쌓아 오고 있다.
추천 이유 국악의 베스트셀러. 연주 숙명가야금연주단(서울음반)
황병기 가야금 작품집 Vol. 1 ‘침향무’
창작 음악이면서 국악의 명반이다. 2001년에 출반된 이 음반은 ‘황병기 가야금 창작집’을 재출반한 것으로, 96킬로헤르츠/24비트로 리마스터링하고 트랙도 세분했다. 또 해설서를 보완하고 해외 시장을 겨냥해 그 해설서를 영어, 일어, 프랑스어로 번역해 실었다. 음반에는 연주자 최초의 가야금 독주곡인 ‘숲’(1967년), ‘침향무’(1974년)를 비롯해 주옥같은 가야금 독주곡 4곡이 실려 있다.
추천 이유 국악의 스테디셀러. 연주 황병기·안혜란(C&L Music)
아리수 시즌 3 세 번째 이야기: 유희요 ‘아리랑나무랑 놀자’
민요의 현대화에 앞장서 온 여성 민요그룹 ‘아리수’의 5번째 음반(2015년)으로, 민요의 꽃인 유희요를 편곡해 7곡을 담았다. 민요의 원형을 살려 편곡하거나 민요의 한 구절을 새롭게 창작한 곡들이다. 2005년에 창단된 아리수는 10년 이상 경기소리를 공부한 젊은 여성 소리꾼으로 구성돼 있다. 토속민요가 퓨전민요로 탄생한 것이다.
추천 이유 우리 민요를 새롭게 재창조한 노래곡. 연주 아리수(열린음악)
‘Imago’
월드뮤직앙상블 ‘거문고팩토리’의 두 번째 음반(2014년)이다. 2000년에 출반된 1집에서 거문고의 다양한 변신을 보여준 바 있는 ‘거문고팩토리’는, 나비나 나방의 성충, 성숙을 의미하는 2집의 ‘Imago’에서 그들만의 변신된 악기로 자신들의 한층 성숙한 음악 세계를 보여준다. 현재 3인의 거문고, 1인의 가야금 연주자로 구성돼 있다. 곡들은 모두 연주자들이 직접 작곡한 것이다.
추천 이유 거문고의 새로운 길을 모색. 실험적인 면이 있지만, 음악이 좋음. 연주 거문고팩토리 (C&L Music)
‘숨[su:m]’ 2nd
‘숨’은 2007년에 결성된 여성 2인조 한국 음악 앙상블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 월드뮤직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듀오다. 2014년에 출반된 두 번째 음반에는 그동안 활동을 통해 발표했던 곡들과 미발표 신곡 4곡을 수록했다. ‘숨’은 자기들이 직접 곡을 쓴다. 이것은 눈이 아니고 가슴으로 연주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 사람은 피리, 생황, 양금, 태평소, 징을 연주하기도 하고 노래도 한다.
추천 이유 2인조로 음악성 높음. 월드뮤직으로 해외에서 주목. 연주 박지하·서정민(블루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