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비싸다고 무조건 학군이 뛰어나지는 않아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 학군과 집값이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부동산 업계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 당장 먹고살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는 자식의 미래보다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그런데 주민의 소득이나 자산이 높으면 주거비로 지출할 여력이 크다. 이 때문에 통상 집값이 비싼 동네가 학군이 좋은 곳이 많다.
하지만 집값과 학군과의 관계를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낭패를 보기 쉽다. 학군에 영향을 주는 것은 그 지역의 소득이나 자산뿐만 아니라 교육열이라는 변수가 더 크게 작용한다.
(사진) 학균 인기 지역으로 꼽히는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일대 아파트. /연합뉴스
◆ 학군은 교육열과 밀접한 관계
우선 학군이 자녀에게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점수 몇 점 더 높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녀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점수만 올리려고 하면 학군이 떨어지는 동네라도 자기 자식 혼자 사교육을 많이 시키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학군이라는 것은 그 이상이다. 아이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보다 친구나 또래의 말이나 행동에 더 영향을 받는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관심이나 사랑이 부족해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게 사춘기에 진입한 10대의 특징이다.
그런 상황에서 주변에 어떤 친구들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결국 자녀에게 더 좋은 친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학군이다.
물론 학교 성적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공부 잘하는 아이가 문제아가 될 확률보다 공부 못하는 아이가 문제아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은 동서양이나 고금을 통해 확인된 사항이다.
학교의 성적을 비교할 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학군이라는 본래 목적에 맞는 지표로는 학업 성취도 평가지수가 가장 적합하다. 학업 성취도 평가 시험은 전국의 모든 학교가 같은 문제로 같은 날 동시에 치르기 때문에 학교 간 수준 비교를 할 때 유용하다.
또한 보통 학력 이상 학생의 비율이 공개되기 때문에 반대로 해석하면 그 학교에서 공부를 잘 못하는 학생의 비율을 알 수 있다.
그러면 학군이 집값뿐만 아니라 교육열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은 2015년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보통 학력 이상 학생의 비율이다.
일반적으로 강남구 하면 학군이 좋고 교육열이 뛰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모든 지역이 그렇지는 않다. 에서 D중학교는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중학교다. 성적이 수도권 상위 1% 안에 드는 우수한 학교다. 대치동은 소득도 높고 교육열도 높은 지역인 만큼 예상할 수 있는 수치다.
그런데 C중학교는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중학교다. 소득은 높지만 교육열은 낮은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강남이라도 D학교에 비해 성적이 상당히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근처 집값을 보면 연식이나 용적률, 면적이 비슷한 데도 D학교 근처보다 C학교 근처가 훨씬 비싸다.
이번에는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E중학교와 C중학교를 비교해 보자. 두 지역의 집값을 비교해 보면, 비슷한 면적과 비슷한 용적률인 데도 불구하고 E중학교 근처가 C중학교 근처보다 집값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 소득이나 자산이 중계동보다 청담동이 높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지만 학교 성적은 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영어는 소득이 높은 동네에 있는 C중학교가 강세를 보인다. 하지만 수학은 교육열이 높은 E중학교가 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과목별로 상반된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어 성적은 통상 그 지역 소득과 비례한다. 소득이 높은 지역은 영어 유치원을 나왔거나 영어권으로 조기 유학이나 연수를 다녀왔거나 주재원 자녀가 많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어려서부터 영어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경험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열이 높더라도 소득이 낮은 지역은 책이나 TV를 통한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영어를 접하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하기 어렵고 성적도 낮게 나오는 것이다. 영어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학은 다르다. 수학은 교육과 훈련에 의해 승부가 나기 때문이고 지속적으로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쉽게 뒤처지고 한번 뒤처지면 따라잡기 어려운 학문이다. 이 때문에 교육열이 높은 지역이 수학 점수가 높은 것이다.
◆ 주변 시세 높은 A중학교, 성적은 낮아
집값과 성적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다른 사례를 보자.
2014년 입주한 마포구 아현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A중학교를 갈 수 있다. 110㎡의 시세가 8억2000만원이나 되지만 학군은 수도권 평균 이하다. 높은 시세가 형성됐음에도 불구하고 왜 근처에 있는 A중학교의 성적이 낮을까.
이 학교 주변에는 아파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빌라나 다가구주택들이 즐비하다. 그 지역의 집값이 모두 높아야지 자기 집만 비싸다고 학군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대체로 아파트가 많은 지역이 학군이 좋은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위례 신도시에 있는 S중학교에 가려면 시세가 8억원이나 되는 아파트에 입주해야 한다. 하지만 이 학교도 중계동에 있는 E중학교나 분당에 있는 N중학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적이 낮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위례는 아직 사회 기반 시설이 다 갖춰져 있지 않아 고소득자의 입주가 적다는 문제도 있지만 어떤 학교 근처에 임대 아파트가 있거나 하면 점수가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같은 아파트라도 분양 아파트가 많은 동네가 학군이 좋은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분당의 N중학교 근처다. 집값은 A중학교 인근 아파트나 S중학교 인근에 비해 상당히 저렴하지만 학군은 비교할 정도가 아니다. 대치동에 있는 D중학교와 비슷하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결국 학군과 소득과의 일정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 좋은 학군을 만들기는 충분하지 않다. 그 지역의 교육열이 뒷받침돼야 그 지역이 좋은 학군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지역의 소득보다 교육열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아기곰 부동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