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풂의 미학’ “천천히 함께 가야 멀리 간다”

[신현만의 커리어 업그레이드]
남을 돕는 자가 진정한 승자…조직 리더엔 ‘기버’ 유형 많아



[한경비즈니스=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연말연초 정기 인사 시즌이 되면 경영진은 매번 같은 고민에 빠진다.

‘이 사람을 승진시켜 조직의 성과 관리 책임을 맡길까, 아니면 리더로서 충분히 훈련될 때까지 좀 더 경험을 쌓게 만들어야 할까.’

“리더십 평가 결과에 따라 인사를 하면 그만이지 고민할 게 무엇이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보다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고민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대체로 리더가 되려는 욕구가 강하다. 업무에 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고 성과도 잘 내는 편이다.

문제는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데 있다. 이들은 자신이 맡은 일에만 관심을 갖는다. 자기가 주도하는 것에만 지나치게 집착한다. 다른 사람이 이끄는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때로는 폄훼하기까지 한다.

이들을 승진시키지 않고 그냥 두자니 업무 의욕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조직의 성과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승진시키자니 자기중심적 성향 때문에 조직 운영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민간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나 공공단체에도 이런 부류가 적지 않다. 업무 능력이나 성과가 탁월하고 고속 승진해 온 사람들 가운데 이런 인물들이 종종 발견된다. 이들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펠로(fellow)로서의 훈련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난다.

뛰어난 능력 덕분에 동료들보다 빠르게 승진했지만 이 때문에 부하 직원이나 동료로서 일에 동참하는 훈련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누구와 함께하거나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것을 귀찮고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모두에게 부담

이런 상태에 놓인 사람들의 상당수는 30대다. 이들은 수년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업무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어떤 업무를 맡기든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이처럼 강한 자신감과 업무 의욕에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더해진 사람들은 자기가 주도하지 않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회사가 경험을 더 쌓으라는 뜻으로 어떤 상사 밑에서 일하게 하거나 다른 사람을 돕는 역할을 부여하면 크게 낙담한다. 이들에게 자신이 하지 않거나 자신과 관련돼 있지 않은 일은 의미가 없다.

아담 그랜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나눈다.

첫째 부류는 ‘테이커(Taker : 받는자)’다. 이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이익에 집중한다. 둘째는 ‘기버(Giver : 주는자)’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관심을 쏟는 부류다. 셋째는 ‘매처(Matcher : 주고받는 자)’다. 철저하게 준만큼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 셋 중 어떤 부류가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될까. 그랜트 교수는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라는 책에서 “정답은 기버”라고 말한다. 기버는 신뢰와 신용을 쌓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리지만 성공을 돕는 관계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다.

“베풂은 100m 달리기에는 쓸모가 없지만 마라톤 경주에서는 진가를 발휘한다”는 말처럼 성공은 대체로 주는 자의 손을 들어준다.

그랜트 교수의 연구 조사에 따르면 테이커는 이익을 얻기 위해, 매처는 이익을 주고받기 위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이에 반해 기버는 상대가 누구든지 진심으로 돕는다. 이 때문에 기버는 넓고 탄탄한 인맥을 갖게 된다. 이들은 탄탄한 인맥을 통해 지속적으로 타인을 돕고 이들에게 도움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돕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간다.

특히 기업에서 기버는 조직의 성과를 만들어 내고 성장을 돕는다. 이들은 조직을 이롭게 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삼아 자신의 이익보다 회사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그 결과 조직원의 존경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테이커가 맹렬하게 뿜어내는 경쟁 심리도 무장해제시킨다. 양보를 일삼는 기버와 경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기버가 이타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들 역시 야심이 만만치 않다. 다만 이들은 자신의 이익만큼 상대방의 이익에도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테이커나 매처와 다르다. 기버는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이로운 기회를 찾는다.

시간이 걸리지만 남을 밀어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파이를 키우는 방식으로 모두에게 이로운 방법을 찾아낸다. 그 결과 타인의 질투나 시기를 받지 않고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된다.

◆리더가 되려면 ‘펠로십’을 배워라

그랜트 교수의 주장처럼 실제로 조직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상당수가 기버의 성향을 띠고 있다. 하지만 강력한 성취 욕구에 사로잡혀 있는 30대 직장인 가운데 기버가 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유능한 보스는 조직의 전면에 서서 강하게 이끄는 리더십만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직 구성원들과 함께 보스를 따르고 동료나 후배의 성취를 돕는 펠로십도 갖추고 있다. 펠로십이 부족한 보스는 단기간에 작은 성과를 낼 수는 있어도 장기간에 걸쳐 큰 성과를 만들지는 못한다. 조직 구성원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하방 7년이 나를 키웠다”고 말한다. 하방은 중국 문화혁명 당시 행해진 사상개조운동으로, 지식인과 당 간부를 농촌으로 보내 육체노동을 시킨 것이다.

당시 1600만 명의 지식인이 하방을 당했는데, 시진핑과 그의 아버지 시중쉰도 마찬가지였다. 시중쉰은 중국 국무원 부총리 겸 비서장을 지낸 고위 정치인이었다.

문화혁명 때 반당 집단으로 몰려 숙청된 그는 허난성으로 하방된 뒤 옥살이를 하게 됐다. 이때 시진핑 역시 시골로 쫓겨났다. 그는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그는 결국 네 달 만에 도망쳐 베이징 집으로 돌아왔다. 화들짝 놀란 어머니는 시진핑을 데려가 자수하게 했고 그는 베이징 학습반에 편입돼 하수관을 매설하는 중노동을 하게 됐다.

시진핑의 삶이 바뀐 것은 다시 한 번 자발적 하방을 결정하면서부터다. 그는 비겁한 삶을 사느니 최말단 농민들과 함께하겠다는 각오로 산시성 옌촨으로 향했다.

“민중의 바다에서 헤엄치지 못하면 죽는다”고 다짐하면서 아버지의 고향에서 7년 동안 최하층 농민들과 함께 생활했다. “농민들은 1년 내내 제대로 된 곡식 한 끼 먹지 못해도 견디고 사는데 왜 나는 못 사느냐”며 자신을 질책했다.

그는 나중에 “그때 나는 무엇이 실질적인 일이고 누구를 민중이라고 하는지 알게 됐다”고 회고했다. 피폐한 농촌에서 초근목피로 생존하는 농민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당시 시진핑이 익힌 것은 펠로십이었다. 그는 중국 혁명의 원로이자 당 고위 간부의 아들이 가졌던 엘리트주의와 특권 의식에서 벗어나 평범한 농민의 시각에서 인생과 정부·당을 바라보게 됐다.

세계를 자기가 아니라 빈민이나 서민들 관점에서 바라봤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희망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되자 자연스럽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도 깨달았다.

조직에서 리더로 성장하려면 조직원들의 시각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자기중심적으로 접근해서는 조직원의 생각을 읽을 수도, 그들의 마음을 살 수도 없다. 조직을 원하는 곳으로 이끌기 어렵다. 따라서 리더로 성장하려면 충분한 펠로 훈련을 받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오너 경영자들이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전에 다른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하게 하거나 신입 사원부터 단계를 밟아 올라오도록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직원들의 생각을 읽고 그들과 함께 성과를 만들어 나가려면 그들과 같은 처지에 놓여 봐야 한다는 것이다. 펠로 경험이 없는 리더들은 부하 직원의 정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 앞으로”만 외칠 가능성이 높다.

R. 프렌티스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자기중심적 사고(self-serving bias)’를 매사에 자신을 더 긍정적으로 보는 편향적 사고라고 규정한다. 자기중심적 사고는 인간의 생존 본능에 가까운 기본 심리다. 즉 내가 살아남기 위해 주변의 모든 상황을 나에게 유리하도록 맞춤으로써 위험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기중심적 사고는 어린 아이들에게서 잘 나타난다. 아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남들도 똑같이 경험한 것으로 간주한다. 자신이 갖고 싶은 장난감은 남들도 갖고 싶어 하고 자신이 슬프면 남들도 슬프고 자신이 배가 고프면 남들도 배가 고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사고는 이처럼 미성숙한 이들의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고위직에 오르려는 사람들에서 많이 발견되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아담 갤린스키 노스웨스턴대 캘로그경영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사회적 지위가 높고 권한이 커질수록 강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천천히 함께 가야 멀리 간다

우리는 종종 유능한 사람들이 조진조퇴(早進早退)하는 것을 목격한다. 주변에 아무런 관심 없이 오로지 자기 일에만 집중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먼저 한 뒤 상대방을 도우려 한다.

겉으로 배려하는 척하면서 실상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끈다. 다른 사람을 위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전제로 움직인다. 이들에게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가끔 늦은 승진과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것에 실망할 수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펠로 훈련을 충실하게 받는 게 좋을 수도 있다. 내가 주도하지 않더라도 조직 전체를 위해 타인의 성과를 돕는 경험을 많이 쌓는 게 도움이 된다. 빨리 간다고 멀리 가는 것은 아니다. 천천히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

행복과 성공을 동시에 이루려면 그랜트 교수의 기버가 돼야 한다. 그래야 조금 늦더라도 언젠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일러스트 김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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