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돈 되는 부실채권’ 15년 만의 최대…잘 고르면 연 3~10% 수익 ‘거뜬’

[커버스토리=불황에 크는 NPL시장, 개인 투자 '황금 시장' 열린다]
IMF 때는 외국계 자본 독무대…초저금리 대안으로 재단·개인도 ‘눈독’



[한경비즈니스 이정흔 기자] ‘나는 경매보다 NPL이 좋다’, ‘NPL 가격 산정의 비밀’, ‘NPL 랭킹업 투자 비법’. 지금 당장 서점에서 찾을 수 있는 NPL(Non Performing Loan : 부실채권) 관련 책만 수십여 권이 넘쳐난다.

올 들어서는 증권사들이 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내놓은 NPL 사모펀드도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다. NPL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얼마나 높은지를 방증한다.

지금까지 NPL은 기관투자가들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국내 NPL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참여할 기회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대부업법의 개정은 NPL 개인 투자시장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금 왜 NPL 시장이 주목 받고 있는지, NPL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은 누구인지 살펴봤다.
NPL 대중화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전문가들의 제언도 함께 담았다.



흔히 NPL(Non-Performing Loan)을 ‘썩은 사과’라고 표현한다. 부실채권을 뜻하는 NPL은 금융회사에서 대출한 금액 가운데 채무자의 사정으로 회수가 어려운 돈을 뜻한다.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로서는 이자 수익을 얻지도 못하고 원금 상환조차 어려우니 못 먹는 썩은 사과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 썩은 사과의 비율이 높아지면 부실 금융회사로 전락한다. 금융회사들은 그 비율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에서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에 맞춰 부실채권 비율 1.3% 이하를 권고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회사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썩은 사과’를 싼값에 떨이로 팔아버린다.

이처럼 ‘땡처리’ 된 NPL을 싼값에 산 뒤 채무를 회수하거나 혹은 매입가보다 비싼 값에 되팔아 수익을 남길 수 있다. 물론 ‘썩은 사과’들 사이에서 회생 가능성이 높은 ‘숨은 보석’을 골라내는 데 성공한다면 말이다. 초저금리 시대, 대체 투자의 하나로 NPL이 주목받고 있다.

보통 NPL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주택이나 공장 같은 부동산 담보물을 끼고 있는 담보 부실채권과 카드 연체금이나 은행권의 무담보 대출금이 연체된 것과 같은 무담보 부실채권이다.

담보 부실채권은 덩치가 큰 만큼 수익률이 높은 데다 담보물을 통해 상대적으로 투자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때문에 지금까지 NPL 투자라고 하면 ‘담보 부실채권’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에 비해 무담보 부실채권은 소액 연체가 많은 데다 이 중 회수율이 높은 채권을 걸러내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에 거래 비율 자체가 높지 않았다.

부동산 부실채권 전문 업체인 한미F&I 박영준 부사장은 “예전에는 NPL 시장에서 무담보 부실채권의 거래 비율이 3~5%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10%까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위기마다 성장, 18년 역사

국내 NPL 투자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이 시장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것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 위기 이후다. 갑작스러운 유동성 위기로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히거나 부도 처리된 기업들이 쏟아져 나오며 NPL 규모가 크게 늘었다.

당시 국내 은행권의 부실채권 규모는 60조원에 육박했다. 덩치도 크고 우량한 NPL 매물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지만 이때 배를 불린 건 국내 투자자들이 아닌 외국계 투자자들이었다.

론스타·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리먼브러더스 등 글로벌 금융사들이 손만 대면 떼돈을 벌 수 있는 ‘황금 시장’으로 몰려왔다. 이들은 금융 위기 이후 국내 경기가 되살아나면서 25% 이상의 투자수익률을 거뒀고 국내에서도 NPL 시장을 주목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4년 뒤인 2003년 NPL 시장은 또 한 번 대폭 성장했다. 다름 아닌 2003년 카드 대란이었다. 전국적으로 372만 명의 신용 불량자가 속출했다. 카드 대금과 카드론 연체가 쌓이면서 카드사들은 부실 자산을 털어내기 위해 헐값에 NPL을 쏟아냈다.

2001년 개인 신용 무담보 채권이 국내 NPL 시장에 처음 등장했다는 것은 당시 다급했던 카드사들의 상황을 보여준다.

이후에도 비슷한 역사는 반복됐다. 국내 NPL 시장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 2012년 저축은행 사태 등을 겪으며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다. 지난 18년간의 역사를 돌이켜 봤을때 NPL 투자를 두고 ‘불황을 먹고 크는 투자시장’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라오는 이유다.

국내 최대 규모의 부실채권 투자 회사인 유암코의 하정수 투자사업본부장은 “NPL로 나오는 물건을 보면 국내 경기의 약한 부분이 정확하게 반영돼 있다”며 “경기 후행 지표 역할을 하는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NPL 시장에 가장 많이 쏟아져 나오는 매물은 공장을 담보로 한 NPL이었다. 최근에는 조선·해운 업황이 타격을 받으면서 관련 부품업체나 하청업체 등이 NPL 매물로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큰손 몰리는 ‘NPL 사모펀드’

요즘 NPL 투자가 다시 각광받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조선·해운업종 등 국내 주력 산업의 구조조정이 박차를 가하면서 국내 은행권의 부실채권 규모가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6월 2일 발표한 2016년 1분기 말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31조3000억원에 달한다. 작년 말보다 1조3000억원, 1년 전과 비교하면 6조6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2001년 3월 말 38조1000억원 이후 15년 만에 최대 수준이다. 이 중 기업 여신이 29조20000억원, 가계 여신이 2조원, 신용카드 채권이 2000억원을 차지했다.

2011년 도입된 국제회계기준(IFRS)도 NPL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데 역할을 했다. 기존의 금융회사들은 부실채권을 숨기기 위해 NPL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는 방식을 사용해 왔다.

하지만 IFRS 도입 이후 NPL ABS까지 모조리 은행 부채로 떠안게 되면서 부실채권 직매각 규모가 급증한 것이다. IFRS 도입 이전만 하더라도 은행권의 부실채권 매각 규모는 2조~3조원이었지만 2011년 이후 이 금액은 5조~6조원으로 2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4년 은행권의 부실채권 매각 규모는 5조원이었고 2015년엔 5조2000억원에 달했다. NPL 시장에서 ‘먹을거리’가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늘어난 공급만큼 NPL 시장의 수요가 증가한 데는 ‘초저금리 기조’가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 자산 운용사와 증권사 등 전문 투자 기관들의 NPL 진출이 늘어났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국내 NPL 시장 초기 1998년 금융위기 당시 부실채권정리기금 운영을 맡은 공기업 성격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점유율이 높았지만 현재는 상당 부분 민간 영역으로 넘어간 상황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급증한 은행권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2009년 6개 은행이 출자해 설립한 유암코와 전문 투자사인 대신F&I가 국내 NPL 시장을 이끄는 쌍두마차다.

이 밖에 KB자산운용·유진자산운용 등이 적극적으로 NPL 투자를 진행하고 있고 메리츠종금증권 또한 NPL전담팀을 따로 운영 중이다. 최근에도 부동산 전문 자산 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이 1조원 규모의 NPL 펀드 조성에 돌입하는 등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속속 진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면서 시장의 참여자가 늘어난 만큼 NPL 거래 가격 또한 그만큼 높아졌다. 결론적으로 수익률이 예전에 비해 낮아지고 있다.

하정수 유암코 투자사업본부장은 “이미 국내 NPL 시장은 성숙기에 접어든 레드오션”이라며 “시장 초창기만 하더라도 수익률이 연 20%에 달하는 것도 종종 있었지만 지금은 이 정도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는 대략 연 3~10% 수준이다. 수익률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더라도 ‘기준금리 1% 시대’에 이만한 투자처가 없는 셈이다.

이 같은 영향인지 NPL 시장에서 직접 뛰는 플레이어들 외에 간접적으로 자금을 투자하는 이들 또한 점차 다양해지는 추세다. 현재 NPL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자산 운용사들과 증권사들은 주로 연·기금이나 공제회 등과 같은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을 위탁 받아 NPL에 투자하고 있다. 일종의 NPL 사모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다.

손은주 신한금융투자 투자상품부 펀드팀장은 “최근에는 학교 재단이나 종교 재단에서도 NPL 사모 펀드를 운영할 위탁 기관을 찾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며 “워낙 수익을 낼 만한 곳이 없다 보니 보수적인 투자를 선호하는 재단들도 NPL 시장에 눈을 돌리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에는 개인 투자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 또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4월 골든브릿지증권을 시작으로 개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NPL 상품이 하나둘 등장하는 추세다. 특히 고액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대체 투자의 하나로 NPL 펀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늘고 있다.

문진선 신한PWM 강남대로센터 PB팀장은 “최근 대부업법의 개정(7월 25일)으로 개인의 NPL 직접 취득이 불가능해졌다”며 “개인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이 NPL 펀드와 같은 간접투자 상품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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