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일본은 가입률 60% 넘어…지진 거의 없다는 가정하에 상품 설계
[한경비즈니스=조현주 기자] 9월 12일 경주에서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한 이후 전국이 지진 공포에 휩싸였다. 한국이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눈앞에 다가온 ‘지진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지진 피해를 보상해 주는 각종 ‘지진보험’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사진)9월 20일 경북 경주시의 한 식당에서 인부들이 지진 피해로 부서진 기와를 교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12일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 이후 450여 회가 넘는 여진으로 전국이 지진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지진으로 인한 각종 2차 피해는 물론이고 지진 발생 지역 인근에 원자력발전소가 자리해 있어 대형 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은 1978년부터 지진 관측을 시작했는데 이번 9·12 경주 지진은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로 꼽힌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공학과 교수 등이 2014년 내놓은 ‘한반도 지진지체구조구 모델과 최대 지진 규모’를 보면 앞으로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지진 규모는 ‘7.45±0.04’로 예상된다. 전남대 김성균 명예교수 등은 2001년 이 규모를 ‘7.14±0.34’로 전망했다.
한국은 ‘지진 안전지대’라는 인식이 일시에 무너지면서 ‘지진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가장 시급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지진 피해를 보상해 주는 각종 보험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경주 강진 이후 가입 신청 폭주
아직까지 국내에는 ‘지진보험’이라는 단독 상품은 없지만 자연재해에 대비할 수 있는 정책성 보험인 풍수해보험과 민영 보험 중 화재보험의 지진담보특약이 지진으로 입은 피해를 일부 보상해 준다.
하지만 이마저도 가입률이 매우 저조한 상태다. 보험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험을 통한 지진 리스크 관리 방안’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으로 국내 손보사 지진담보특약 계약 건수는 총 2187건, 보험료는 총 8400만원, 지진담보비율(가입률)은 0.14%(건수 기준)에 그쳤다.
1000명당 정책성 보험인 풍수해보험도 2014년 기준으로 계약 건수가 1만2036건, 보험료는 115억6000만원 수준에 불과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국내 지진 관련 보험 수준은 매우 낮다. 풍수해보험과 화재보험 지진담보특약 전체를 사실상의 ‘지진보험’이라고 가정해 봐도 한국의 2014년 지진보험 보험료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0014%에 불과하다. 미국의 지진보험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 0.0095%, 일본 0.0444%, 터키 0.0103%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진에 취약한 일본은 지진보험 가입률이 지난해 기준으로 이미 60%를 넘어섰다. 일본 손해보험요율산출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로 화재보험에 가입한 사람 중 지진보험에 가입한 비율은 전년 대비 0.9% 포인트 증가한 60.2%를 기록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그동안 지진보험에 대한 관심이 거의 전무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손해보험협회의 한 관계자는 “화재보험의 지진담보특약 계약 현황만 따로 수집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진담보특약 가입률이 워낙 저조한 편이어서 현재 상황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경주 강진 이후 관련 상품에 대한 문의와 가입 신청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당황한 일부 손해보험사들은 ‘지진 발생 변수를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품을 만들었다’며 지진 특약 판매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가입 조건을 제한하며 진화에 나섰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지진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장치인 보험이 가장 절실한 시점에 보험사들이 상품 판매를 꺼리는 것 자체가 꼼수 아니냐”며 맹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9·12 지진 발생 직후 보험 상품의 지진특약 판매를 일시 중단했던 동부화재·NH농협손해보험·한화손해보험 등은 9월 22일 이후 일제히 판매를 재개하기에 이른다.
◆‘여진’ 규정 모호해 분쟁 가능성
지진담보특약 가입이 가능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현재 손해보험사들이 판매하고 있는 지진담보특약을 보면 본진에 따라 추가로 발생하는 여진 개념이 모호해 추후 보험 가입자와의 분쟁이 벌어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진담보특약을 판매하는 현대해상·동부화재·KB손해보험·한화손해보험 등의 상품 약관을 살펴보면 여진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한다는 내용은 아예 없다. 다만, 한 번의 사고로 생긴 손해액을 배상해 준다는 약관상 규정에 ‘72시간 이내에 생긴 사고는 1건의 사고’로 간주한다는 부연 설명이 달려 있다.
이는 표현 그대로 해석해 보면 72시간 이내에 발생한 지진만 본진에 따른 여진으로 보고 72시간이 지난 뒤 발생한 지진은 새로운 1차 지진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진)국내 한 보험사의 지진특약 규정.
보험 가입자들은 ‘1건의 사고’마다 자기 부담금을 공제한 뒤 보험금을 지급받는다. 현재의 지진담보특약에 따르면 72시간이 지난 이후 발생한 여진에 따른 피해는 새로운 사고 1건으로 처리돼 가입자가 또 다시 자기 부담금을 공제해야 한다.
이는 72시간 이내에 여진이 끝나던 시기인 1960~1970년대에 개발된 지진특약 규정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어서 생긴 문제다. 이번 경주 지진은 본진 발생 이후 20여 일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여진이 지속되고 있어 약관상 기준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화재보험의 지진담보특약 외에 풍수해보험도 지진 피해를 보상해 주고 있다. 풍수해보험은 태풍·호우·해일·강풍·풍랑·대설·지진 등 풍수해로 인한 피해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성 보험으로, 정부가 보험료의 일부를 지원해 주고 있다. 국민안전처가 관장하고 삼성화재·현대해상·동부화재·KB손해보험·NH농협손해보험 등 5개 보험사가 운영 중이다.
가입 대상 시설물은 주택(동산 포함)과 온실(비닐하우스 포함)이며 가입 기간은 1년이다. 보험료는 절반 이상(55~92%)을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는 86% 이상, 차상위 계층은 76% 이상을 지원받는다.
풍수해보험은 주택·공동주택·온실 등만을 보험 목적물로 한정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이 이를 이용해 지진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은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지진보험의 총체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충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까지 보험회사들은 국내에 지진 리스크가 거의 없다는 가정하에 지진담보를 제공했지만 이번 경주 지진은 한국에 상당한 수준의 지진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보험회사가 지진 리스크 전부를 독자적으로 담보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정부 당국과 보험회사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최 연구원은 “정부 당국은 풍수해보험이 지진 리스크 관리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종합자연재해보험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보험회사들 또한 지진 리스크의 통계적 특성을 다양한 모델에 적용해 합리적인 요율을 산출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cho@hankyung.com
일본은 가입률 60% 넘어…지진 거의 없다는 가정하에 상품 설계
[한경비즈니스=조현주 기자] 9월 12일 경주에서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한 이후 전국이 지진 공포에 휩싸였다. 한국이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눈앞에 다가온 ‘지진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지진 피해를 보상해 주는 각종 ‘지진보험’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사진)9월 20일 경북 경주시의 한 식당에서 인부들이 지진 피해로 부서진 기와를 교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12일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 이후 450여 회가 넘는 여진으로 전국이 지진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지진으로 인한 각종 2차 피해는 물론이고 지진 발생 지역 인근에 원자력발전소가 자리해 있어 대형 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은 1978년부터 지진 관측을 시작했는데 이번 9·12 경주 지진은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로 꼽힌다. 국내 일부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공학과 교수 등이 2014년 내놓은 ‘한반도 지진지체구조구 모델과 최대 지진 규모’를 보면 앞으로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지진 규모는 ‘7.45±0.04’로 예상된다. 전남대 김성균 명예교수 등은 2001년 이 규모를 ‘7.14±0.34’로 전망했다.
한국은 ‘지진 안전지대’라는 인식이 일시에 무너지면서 ‘지진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가장 시급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지진 피해를 보상해 주는 각종 보험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경주 강진 이후 가입 신청 폭주
아직까지 국내에는 ‘지진보험’이라는 단독 상품은 없지만 자연재해에 대비할 수 있는 정책성 보험인 풍수해보험과 민영 보험 중 화재보험의 지진담보특약이 지진으로 입은 피해를 일부 보상해 준다.
하지만 이마저도 가입률이 매우 저조한 상태다. 보험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험을 통한 지진 리스크 관리 방안’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으로 국내 손보사 지진담보특약 계약 건수는 총 2187건, 보험료는 총 8400만원, 지진담보비율(가입률)은 0.14%(건수 기준)에 그쳤다.
1000명당 정책성 보험인 풍수해보험도 2014년 기준으로 계약 건수가 1만2036건, 보험료는 115억6000만원 수준에 불과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국내 지진 관련 보험 수준은 매우 낮다. 풍수해보험과 화재보험 지진담보특약 전체를 사실상의 ‘지진보험’이라고 가정해 봐도 한국의 2014년 지진보험 보험료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0014%에 불과하다. 미국의 지진보험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 0.0095%, 일본 0.0444%, 터키 0.0103%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진에 취약한 일본은 지진보험 가입률이 지난해 기준으로 이미 60%를 넘어섰다. 일본 손해보험요율산출기구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로 화재보험에 가입한 사람 중 지진보험에 가입한 비율은 전년 대비 0.9% 포인트 증가한 60.2%를 기록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그동안 지진보험에 대한 관심이 거의 전무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손해보험협회의 한 관계자는 “화재보험의 지진담보특약 계약 현황만 따로 수집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진담보특약 가입률이 워낙 저조한 편이어서 현재 상황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경주 강진 이후 관련 상품에 대한 문의와 가입 신청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당황한 일부 손해보험사들은 ‘지진 발생 변수를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품을 만들었다’며 지진 특약 판매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가입 조건을 제한하며 진화에 나섰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지진에 대비할 수 있는 안전장치인 보험이 가장 절실한 시점에 보험사들이 상품 판매를 꺼리는 것 자체가 꼼수 아니냐”며 맹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9·12 지진 발생 직후 보험 상품의 지진특약 판매를 일시 중단했던 동부화재·NH농협손해보험·한화손해보험 등은 9월 22일 이후 일제히 판매를 재개하기에 이른다.
◆‘여진’ 규정 모호해 분쟁 가능성
지진담보특약 가입이 가능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현재 손해보험사들이 판매하고 있는 지진담보특약을 보면 본진에 따라 추가로 발생하는 여진 개념이 모호해 추후 보험 가입자와의 분쟁이 벌어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진담보특약을 판매하는 현대해상·동부화재·KB손해보험·한화손해보험 등의 상품 약관을 살펴보면 여진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한다는 내용은 아예 없다. 다만, 한 번의 사고로 생긴 손해액을 배상해 준다는 약관상 규정에 ‘72시간 이내에 생긴 사고는 1건의 사고’로 간주한다는 부연 설명이 달려 있다.
이는 표현 그대로 해석해 보면 72시간 이내에 발생한 지진만 본진에 따른 여진으로 보고 72시간이 지난 뒤 발생한 지진은 새로운 1차 지진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진)국내 한 보험사의 지진특약 규정.
보험 가입자들은 ‘1건의 사고’마다 자기 부담금을 공제한 뒤 보험금을 지급받는다. 현재의 지진담보특약에 따르면 72시간이 지난 이후 발생한 여진에 따른 피해는 새로운 사고 1건으로 처리돼 가입자가 또 다시 자기 부담금을 공제해야 한다.
이는 72시간 이내에 여진이 끝나던 시기인 1960~1970년대에 개발된 지진특약 규정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어서 생긴 문제다. 이번 경주 지진은 본진 발생 이후 20여 일이 지난 현 시점에서도 여진이 지속되고 있어 약관상 기준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화재보험의 지진담보특약 외에 풍수해보험도 지진 피해를 보상해 주고 있다. 풍수해보험은 태풍·호우·해일·강풍·풍랑·대설·지진 등 풍수해로 인한 피해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성 보험으로, 정부가 보험료의 일부를 지원해 주고 있다. 국민안전처가 관장하고 삼성화재·현대해상·동부화재·KB손해보험·NH농협손해보험 등 5개 보험사가 운영 중이다.
가입 대상 시설물은 주택(동산 포함)과 온실(비닐하우스 포함)이며 가입 기간은 1년이다. 보험료는 절반 이상(55~92%)을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는 86% 이상, 차상위 계층은 76% 이상을 지원받는다.
풍수해보험은 주택·공동주택·온실 등만을 보험 목적물로 한정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이 이를 이용해 지진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은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지진보험의 총체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충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까지 보험회사들은 국내에 지진 리스크가 거의 없다는 가정하에 지진담보를 제공했지만 이번 경주 지진은 한국에 상당한 수준의 지진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보험회사가 지진 리스크 전부를 독자적으로 담보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정부 당국과 보험회사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최 연구원은 “정부 당국은 풍수해보험이 지진 리스크 관리에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종합자연재해보험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보험회사들 또한 지진 리스크의 통계적 특성을 다양한 모델에 적용해 합리적인 요율을 산출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c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