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전기 나눠 쓰는 시대 온다”

[인터뷰] 정은호 한전경제경영연구원장
“트럼프 에너지 정책에 철저히 대비할 것”


(약력) 1960년생.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1999년 한국전력공사 홍보실 기업홍보부장. 2008년 한국전력공사 해외사업개발처 사업개발팀장. 2012년 한국전력공사 해외자원사업처장. 2016년 한국전력공사 경제경영연구원장(현). 사진=서범세 기자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한전경제경영연구원은 한국전력의 싱크탱크로, 국내 전력 정책 관련 연구를 진행한다. 1983년 출범 이후 전력 산업의 지속 가능 성장을 위한 선제적 연구로 주목받고 있다.

정은호 한전경제경영연구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에너지의 독립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방안으로 화석연료의 부흥을 내걸었지만 현실적으론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 원장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한국에서 생산한 전기를 일본으로 보내고 중국에서 만들어진 전력을 국내로 끌어오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전경제경영연구원은 어떤 곳입니까.

“한전경제경영연구원은 50여 명의 연구원이 글로벌 에너지 정책 등이 국내 전력 시장 및 수급 여건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합니다. 해외 주요 유틸리티 사업 전략과 경쟁력을 분석하기도 하죠.

최근 화두인 기후변화에 따른 전력 산업 영향 분석 및 대응 전략 연구 등을 담당하는 한전의 싱크탱크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세계 톱5 에너지 정책 연구소’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이 화제죠.

“내년 1월 20일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죠. 트럼프 당선인은 에너지 독립과 일자리 창출을 양대 슬로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화석연료의 부흥을 공약했고요.

하지만 대대적인 회귀는 어려울 겁니다. 물론 트럼프 당선인의 지지층 중 화석연료 산업 종사자 비율이 높아 취임 초반에 그러한 공약을 어느 정도 시도할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미국 내에서도 석탄 전기 발전소가 가스 발전소에 비해 경쟁력을 잃은 게 사실입니다. 1MWh(메가와트아워)의 전력 생산을 위해 가스는 75.2달러(약 8만8500원)가 소요됩니다.

반면 석탄 발전에 따른 전력 생산 단가는 95.1달러(약 11만1900원)로 훨씬 비싸죠. 따라서 화석연료 쪽으로 전력 생산 비율을 높인다고 해도 실제로는 셰일가스 발전소 비율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느냐는 생각이고요.

고용 창출 효과만 보더라도 화석연료보다 신재생에너지 관련 산업의 효과가 훨씬 좋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이 2013년에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이미 3년 반 정도 지났어요. 그동안 조성한 신재생에너지 인프라를 모두 없애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죠.”

▶그래도 대응책은 마련해 둬야 할 것 같습니다만.

“트럼프 당선인의 에너지 정책 중 한국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기후변화협정에 대한 거부, 즉 파리기후협정에 대한 재협상 요구 우려인데요.

예전에는 선진국 주도하에 스스로 부담을 많이 하는 쪽으로 협상을 진행해 왔는데 트럼프 당선인은 앞으로 한국을 포함한 개도국의 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상당히 터프한 협상을 진행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전력그룹에서는 조금 더 적극적인 이산화탄소 감축 플랜을 만들 예정입니다.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이 구현되는 내년 1월쯤 좀 더 명확한 그림을 그릴 계획입니다.”

▶파리기후협정의 주요 내용은 뭔가요.

“지난해 12월 파리기후협정 체결로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신기후체제가 출범했습니다. 한국은 2030년 배출될 것으로 전망되는 온실가스 총량의 37%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발표했죠.

협정의 궁극적 목표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도 이하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되 가급적 1.5도로 제한하자’는 겁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배출권 거래 메커니즘을 허용하기로 했는데요.

한국은 국내에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화력발전소 가동 등에 따른 온실가스를 25.7% 줄이기로 했죠. 배출권 거래를 통해 11.3%를 추가로 줄여 총 37%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거죠.

배출권 거래는 후진국에 한국이 진출해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을 추진한 후 현지에서 축적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량, 즉 배출권을 우리가 가져오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하면 배출권을 사오는 거죠.

온실가스 감축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파리기후협정의 첫 당사국 총회가 지난 11월 7일부터 18일까지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열렸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을 2018년까지 제출하기로 했죠.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국가를 누가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법적 구속력 부재 등 과제가 산적한 상황이죠.”

▶세계 전력 산업의 트렌드는요.

“과거 전력 산업의 목표는 값싼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었습니다. 값싼 발전소가 필수였죠.

한국에서도 산업 발전과 함께 대형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 등이 늘었습니다.

최근엔 기후협약 등으로 태양광발전소와 풍력발전소 등의 ‘바이오매스’가 각광받기 시작했죠.

하지만 이러한 바이오매스는 대형으로 조성할 수 없어요. 한국만 봐도 태양광 발전설비가 전국 도처에 흩어져 있죠.

분산된 에너지를 모은다고 해서 분산 에너지 또는 분산형 전원이라고 표현하는데, 기후변화에 따라 분산 에너지의 수요가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의 트렌드는 각 가정의 지붕 등에 흩어진 태양광 패널 등의 분산형 전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지에 대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겁니다. 자기 집 태양광 패널을 통해 모은 전기를 다 쓰고 난 뒤 남은 전기는 다른 집이나 한전에 판매하는 식이죠.

한국에서도 강원도 홍천 등에 시범 단지를 조성해 분산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한전경제경영연구원은 일본 에너지경제연구원, 중국 화능기술경제연구원 등과 함께 동북아 전력 시장을 연구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전의 미래 전략 수립을 위해 미국 전력연구소(EPRI) 등 4개 연구 기관과 파트너십을 구축한 상태입니다.”

▶국가 간 전력망 연계도 추진한다고요.

“‘아시아 슈퍼 그리드’라고 얘기하는데, 해외에는 이미 관련 사례가 많습니다.

1896년쯤 니콜라 테슬라라는 전기공학자가 나이아가라폭포에 수력발전소를 설계해 미국 땅에서 만든 전기를 캐나다로 이송한 게 최초 사례입니다. 1960년대 후반 캐나다에서 생산한 전기를 미국 캘리포니아까지 300km 정도 끌어온 예도 있고요. 유럽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습니다.

동북아에서는 한국·중국·일본·몽골 더 나아가 러시아를 잇는 슈퍼 그리드를 구축하려고 합니다. 기후변화에 맞춰 아시아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해 전력 산업의 경제성을 높이자는 취지인데요. 국가 간 송전선로를 통해 피크 전력을 줄이고 자연재해 등 대규모 사고 시 대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처음 제안한 모델입니다.

원자력 대신 몽골의 태양광·풍력 자원을 끌어오자고 제시한 겁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전력과 소프트뱅크, 중국 국가전력망공사, 러시아 로세티 등이 지난 3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예비 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9월에도 관련 협의를 진행했고요. 우선 중국과 한국을 연결한 후 한국과 일본을 잇는 방안이 오가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전력의 50% 정도는 서울 등 수도권에서 사용됩니다. 태양광발전 시설은 주로 전남이나 제주에 있어요. 지역에서 만든 신재생에너지를 수도권으로 옮겨가는 것은 여러모로 낭비입니다.

아시아 슈퍼 그리드가 구축되면 수도권에서 쓸 전기는 중국에서 가져오고 한국에서 생산한 전기는 일본으로 보내는 일종의 에너지 스와프가 가능한 셈이죠.

다만 이 구상은 각 기업이 모여 이룰 수 있는 사업이 결코 아닙니다. 국가 차원으로 진행해야 하는 사업이죠. 현재는 실현 가능 여부를 따지는 단계입니다.”

▶향후 연구원 운영 방침이 궁금합니다.

“한전은 조환익 사장 취임 이후 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상태입니다. 2012년까지 5년 연속 누적 적자 11조원의 재무 위기를 고강도 자구 노력으로 극복했죠. 2013년 2000억원 흑자로 전환한 이후 2014년 1조원 흑자, 지난해 당기순이익 10조2000억원, 영업이익 4조40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올해에는 ‘포브스 글로벌 2000’ 전력 유틸리티 분야 세계 1위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죠. 이제는 현 상황에 안주하기보다 세계 전력 산업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야 할 시점입니다.

올해 1월 취임 후 기후변화 대응이나 세계 전력 산업 흐름에 따른 대응 방법 등에 대해 연구했고 그에 맞춰 인력 시스템을 개편했습니다.

특히 분산 에너지 시대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내기 위해 연구 역량을 모으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 중이고 개도국에 진출해 현지에서 조성한 온실가스 배출권을 가져오는 모델도 찾고 있습니다.”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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