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패러디 열풍'…손에 장 지지고 자괴감에 우주 기운까지

인터넷과 SNS에는 ‘정치 패러디’ 쏟아져…어디까지 허용될까?



(사진) 인터넷에는 정치 패러디물이 넘쳐나고 있다.

[한경비즈니스=김태헌 기자]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박근혜 대통령의 이 말 한마디에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들끓었다. ‘촛불 민심’에 대한 사과 대신 자신의 괴로움만 표현했다는 데서 국민들은 더욱 분노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공격하기보다 대통령의 이런 변명을 비꼬며 ‘패러디물’로 조롱을 이어 갔다.

정유라 씨의 말을 등장시켜 “내가 이러려고 정유라 태워줬나”부터 박 대통령이 길라임이란 가명을 사용한데 착안해 “내가 이러려고 길라임 했나” 등 박 대통령의 발언을 사건과 연계해 희화화하는 식이다. 이 같은 패러디물은 직접적 분노보다 더욱 빠르게 확산됐다. 패러디물은 커뮤니티·카카오톡·페이스북 등 온라인과 SNS와 결합해 더 큰 효과를 냈다.

◆패러디물, 누가 만들고 어떻게 확산되나

최근에는 야당이 박 대통령을 탄핵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며 호언장담했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에 대한 패러디물이 홍수를 이룬다. 심지어 이 대표의 여의도 사무실 앞에는 실제 장과 냄비를 가져다 놓은 시민도 있었고 이런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SNS로 확산하는 네티즌들도 있었다.

앞서 박 대통령 퇴진 촛불 집회에는 최순실과 박 대통령에게 수감복을 입히거나 이들을 풍자한 패러디물이 등장해 그동안 민중 구호만 외치던 집회를 축제와 재미의 장으로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패러디물은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가장 먼저 게시된다. 1차로 디씨인사이드·보배드림·엠엘비파크 등 정보기술(IT)과 그래픽·사진 전문가들이 많은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고 2차로 카페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공유된다. 마지막으로 카카오톡이나 밴드 등을 통해 개개인에게 3차 확산된다는 것이 커뮤니티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진가들은 사진으로, 시인은 시로, 가수들은 노래로 정치를 패러디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하나의 패러디가 인기를 끌면 이를 쉽게 따라 만들 수 있도록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이 출시되며 패러디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전파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정동훈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지난 MB(이명박) 정권 때부터 패러디에 대해 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켰다”며 “최근 다시 패러디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회복과 SNS 영향의 결합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또 “패러디는 민주 시민의 권리이며 이런 영역까지 정부의 감시와 소송이 이어진다면 건강한 문화가 형성될 수 없다”고 말했다.

◆패러디물, 합법과 불법은 한 끗 차

이렇듯이 풍자와 재미를 담은 패러디물이지만 명예훼손·모욕죄·저작권법에 저촉될 여지도 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출산하는 포스터를 제작해 붙인 작가가 기소됐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는가 하면 어버이연합은 개그맨 유병재·이상훈 씨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TV 프로그램에서 유 씨와 이 씨가 어버이연합에 대해 허위 사실을 적시하고 자신들을 폄훼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또 국회의원을 지낸 A변호사는 “국회의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개그맨 강효종 씨를 고소했다.

패러디 졸업 앨범으로 유명한 의정부고 학생들은 성폭행 혐의로 고발됐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박유천 씨를 패러디해 명예훼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처럼 패러디는 언제나 소송의 위험을 안고 있다. 특히 명예훼손 등은 물론 ‘원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법 위반도 적용될 수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게 법조계의 조언이다. 법원은 지금까지 판례를 통해 “패러디는 원작물을 통해 비평과 풍자가 담겨야 한다”고 판시한다.

또한 비판·비평·패러디도 때에 따라서는 충분히 모욕죄가 될 수 있다며 온라인 게임 도중 채팅창에 상대방을 ‘대머리’라고 부르거나 ‘만신(무당)’, ‘첩년’, ‘듣보잡’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데 대해 모욕죄를 인정하기도 했다.

이민 늘찬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박근혜 출산 패러디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문제가 된 바 있지만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며 “정치인 등 공적 인물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넓게 보호돼야 하고 그것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우리 헌법의 기본 정신”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다만 “정치인에 대한 패러디는 다양한 법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패러디의 도구로 쓰이는 원 저작물의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고 의견의 표현이 아닌 사실과 허위 사실을 다루면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선거철 정치인 패러디도 탈법으로 이뤄졌다면 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k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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