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전경련 '존폐 기로' : 역대 회장]
고 이병철 회장부터 허창수 회장까지…14인이 이끌어 온 ‘민간 외교의 첨병’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1961년 ‘한국경제인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군사정변 이후 재계 1세대인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 등 기업인 13명이 ‘일본경제인연합회(게이단렌)’를 벤치마킹해 만들어졌다.
이병철 회장이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과 만나 기업인 석방을 제안하며 “경제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달라”고 얘기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한국경제인협의회는 1968년 이름을 지금의 전경련으로 바꾸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초기에는 주요 그룹이 외국자본을 도입해 중화학·조선 등 제조업을 육성함으로써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뒷받침했다.
여기에 더해 주요 민간기업체·금융회사·국책회사 등을 회원사로 영입시키며 외형도 확장하기 시작했다.
◆ 13인이 만들어 ‘재계의 본산’ 이루다
이때부터 전경련은 ‘재계의 본산’이라는 별칭이 생겼고 세간에는 전경련 회장이 곧 ‘재계의 총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이 시기 전경련은 세계 각 나라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등 저변을 넓혀 나갔고 88서울올림픽 유치에도 큰 공을 세웠다. 여의도에 전경련회관을 준공한 것도 1979년이다.
또 전경련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를 맞은 외환 위기가 불거진 뒤 1997년부터 대기업 간 빅딜(대규모 사업 교환)에 앞장서며 명실상부한 국내 대표 경제 단체로 자리 잡았다.
전경련이 이러한 역할을 하는 사이 전경련 회장직은 정부의 경제정책과 재계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로 거듭났다. 직접적인 정책 결정권은 없지만 입안 과정에서 이곳저곳의 회의에 참석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통령·국무총리·경제부총리 등과 함께 경제정책 및 정부의 대기업 정책에 대해 논의하는 등 실질적으로는 웬만한 경제 부처 장관보다 큰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는 것은 물론 한미 또는 한일 재계 회의 등 ‘민간외교의 첨병’으로서 경제 관련 대외 업무까지 챙기는 명실상부한 한국 재계의 ‘맏형’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전경련과 회장의 위상이 크게 추락했고 그 역할도 불분명해졌다. 정부와 경제·사회 분위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다. 전경련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일을 주도적으로 처리하며 정경유착의 끈을 끊지 못했다.
대기업이 모인 단체로서 정부의 일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고질병인 정경유착의 통로로 이용되며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여기에 최근 들어선 주요 그룹 회장들이 전경련 회장 자리를 고사해 허창수 회장이 5년째 맡고 있을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
◆ 정경유착 통로로 활용되며 ‘위기 봉착’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이 한국 경제에 발전에 일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경련 출범 이후 55년 동안 총 9대에 걸친 정권과 함께하며 14명의 전경련 전·현직 회장들은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일궈 내는 데 일조했다.
초대 고 이병철 회장, 2~3대 고 이정림 대한유화 회장, 4~5대와 9~12대 고 김용완 경방 회장, 6~8대 고 홍재선 쌍용양회 회장 등은 박정희 정부 시절을 보내며 한국 경제와 산업의 초석을 다졌다.
13~17대 회장을 지낸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무려 3대(박정희·최규하·전두환)에 걸친 정부와 함께하며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18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과 19~20대 고 유창순 전 국무총리가 바통을 이어 받았던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성공적인 88서울올림픽 유치를 기반으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에 힘을 보탰다.
김영삼 정부 수립과 함께 21대 전경련 수장에 오른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22~23대 회장을 역임했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24~25대 회장, 26~27대는 김용완 회장의 아들 고 김각중 경방 회장이 맡았다.
이 기간 한국 최대 경제 위기인 외환 위기를 겪었지만 전경련이 나서 대기업 간 빅딜을 주도하며 한국 경제의 내실을 다졌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과 함께 전경련 수장에 오른 28대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로 취임 9개월 만에 중도 하차했고 이후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이 29~30대 회장으로 전경련을 이끌었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31~32대 전경련 회장에 올랐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허창수 GS 회장이 전경련 회장에 올라 현재 33~35대 회장을 맡고 있다.
cwy@hankyung.com
['위기의 전경련' 커버스토리 기사 인덱스]
- '존폐 기로'에 선 전경련
- '해체냐 대통합이냐' 격랑 속으로
- 삼성·SK·LG 이어 은행까지 '탈퇴'
- 허창수 전경련 회장, 해체 여론에 '임기' 맞물려 '속앓이'
- 경제 초석 다지고 경제성장 발판 마련
- '회장단 20인'엔 재계 총수들 대거 포진
- 600여 개 회원사 둔 순수 민간단체
- 9대 정권과 함께한 전경련 55년史
- 전경련, 헤리티지 같은 ‘싱크탱크’ 변신 유력
고 이병철 회장부터 허창수 회장까지…14인이 이끌어 온 ‘민간 외교의 첨병’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1961년 ‘한국경제인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군사정변 이후 재계 1세대인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 등 기업인 13명이 ‘일본경제인연합회(게이단렌)’를 벤치마킹해 만들어졌다.
이병철 회장이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과 만나 기업인 석방을 제안하며 “경제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달라”고 얘기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한국경제인협의회는 1968년 이름을 지금의 전경련으로 바꾸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초기에는 주요 그룹이 외국자본을 도입해 중화학·조선 등 제조업을 육성함으로써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뒷받침했다.
여기에 더해 주요 민간기업체·금융회사·국책회사 등을 회원사로 영입시키며 외형도 확장하기 시작했다.
◆ 13인이 만들어 ‘재계의 본산’ 이루다
이때부터 전경련은 ‘재계의 본산’이라는 별칭이 생겼고 세간에는 전경련 회장이 곧 ‘재계의 총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이 시기 전경련은 세계 각 나라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등 저변을 넓혀 나갔고 88서울올림픽 유치에도 큰 공을 세웠다. 여의도에 전경련회관을 준공한 것도 1979년이다.
또 전경련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를 맞은 외환 위기가 불거진 뒤 1997년부터 대기업 간 빅딜(대규모 사업 교환)에 앞장서며 명실상부한 국내 대표 경제 단체로 자리 잡았다.
전경련이 이러한 역할을 하는 사이 전경련 회장직은 정부의 경제정책과 재계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로 거듭났다. 직접적인 정책 결정권은 없지만 입안 과정에서 이곳저곳의 회의에 참석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통령·국무총리·경제부총리 등과 함께 경제정책 및 정부의 대기업 정책에 대해 논의하는 등 실질적으로는 웬만한 경제 부처 장관보다 큰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는 것은 물론 한미 또는 한일 재계 회의 등 ‘민간외교의 첨병’으로서 경제 관련 대외 업무까지 챙기는 명실상부한 한국 재계의 ‘맏형’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전경련과 회장의 위상이 크게 추락했고 그 역할도 불분명해졌다. 정부와 경제·사회 분위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다. 전경련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일을 주도적으로 처리하며 정경유착의 끈을 끊지 못했다.
대기업이 모인 단체로서 정부의 일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고질병인 정경유착의 통로로 이용되며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여기에 최근 들어선 주요 그룹 회장들이 전경련 회장 자리를 고사해 허창수 회장이 5년째 맡고 있을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
◆ 정경유착 통로로 활용되며 ‘위기 봉착’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이 한국 경제에 발전에 일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전경련 출범 이후 55년 동안 총 9대에 걸친 정권과 함께하며 14명의 전경련 전·현직 회장들은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일궈 내는 데 일조했다.
초대 고 이병철 회장, 2~3대 고 이정림 대한유화 회장, 4~5대와 9~12대 고 김용완 경방 회장, 6~8대 고 홍재선 쌍용양회 회장 등은 박정희 정부 시절을 보내며 한국 경제와 산업의 초석을 다졌다.
13~17대 회장을 지낸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무려 3대(박정희·최규하·전두환)에 걸친 정부와 함께하며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다.
18대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과 19~20대 고 유창순 전 국무총리가 바통을 이어 받았던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성공적인 88서울올림픽 유치를 기반으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에 힘을 보탰다.
김영삼 정부 수립과 함께 21대 전경련 수장에 오른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22~23대 회장을 역임했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24~25대 회장, 26~27대는 김용완 회장의 아들 고 김각중 경방 회장이 맡았다.
이 기간 한국 최대 경제 위기인 외환 위기를 겪었지만 전경련이 나서 대기업 간 빅딜을 주도하며 한국 경제의 내실을 다졌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과 함께 전경련 수장에 오른 28대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로 취임 9개월 만에 중도 하차했고 이후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이 29~30대 회장으로 전경련을 이끌었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31~32대 전경련 회장에 올랐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허창수 GS 회장이 전경련 회장에 올라 현재 33~35대 회장을 맡고 있다.
cwy@hankyung.com
['위기의 전경련' 커버스토리 기사 인덱스]
- '존폐 기로'에 선 전경련
- '해체냐 대통합이냐' 격랑 속으로
- 삼성·SK·LG 이어 은행까지 '탈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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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장단 20인'엔 재계 총수들 대거 포진
- 600여 개 회원사 둔 순수 민간단체
- 9대 정권과 함께한 전경련 55년史
- 전경련, 헤리티지 같은 ‘싱크탱크’ 변신 유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