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주춤…‘전세시대’로 돌아가나

[부동산 인사이드]
어긋난 예상…아파트 입주 물량 늘어나며 전세 비율 높아져



[한경비즈니스=김병화 기자] 하나같이 “월세시대가 온다”고 입을 모았다. ‘전세’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한민국 주택 시장의 패러다임이 ‘월세’로 바뀐다는 예언들이 확신으로 바뀐 지도 오래다. 그런데 최근 부동산 지표들의 궤도가 달라졌다.

‘월세 비율 감소, 전세 비율 상승.’예상 밖의 시나리오다. 전세시대의 종말을 호언장담했던 예언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정말 전세시대가 부활하는 것일까. 월세시대는 오지 않는 것일까. 임대차 시장의 바로미터 서울시의 부동산 지표를 짚어봤다.

◆대통령도 장담한 ‘월세시대’

월세시대에 대한 갑론을박이 본격화된 것은 2013년부터다. 당시 부동산 시장은 극심한 전월세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2012년 8월부터 이어진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세는 연일 역대 최장 상승 기록을 갈아 치웠다(2014년 5월 넷째 주, 90주 만에 보합세 기록). 세입자들은 등 떠밀리다시피 월세로 옮겨 갔다.

월세시대 돌입은 기정사실화됐고 예상은 적중한 듯싶었다. 임대차 거래 중 월세 비율이 높아 월세시대의 선두주자로 꼽혀 온 서울시의 아파트 월세 비율은 2016년 3월 38.1%까지 치솟았다.

2013년 월세 비율이 20% 안팎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결코 작지 않은 상승 폭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어차피 전세시대는 가게 되는 것”이라며 “하나의 옛날 추억이 될 것”이라고 거들었다. 2016년 2월 23일 국정 과제 세미나에서였다.

하지만 4월부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3월 정점을 찍은 월세 비율은 4월부터 하락세로 돌아서 10월 31.2%까지 떨어진 뒤 보합세를 이어 가고 있다.

월세 거래량 추이도 매우 흡사하다. 서울시 아파트 월세 거래량은 3월 161건으로 가장 많았고 4월 123건으로 급감하더니 10월에는 119건에 불과했다.

월세가 힘을 잃은 만큼 전세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3월 61.9%까지 내려갔던 서울시 아파트 전세 비율은 4월(63%)부터 상승세로 돌아서 10월 68.8%를 기록했다.

또 전세 거래량은 1월 7841건으로 최저점을 찍고 2월(1만1197건)부터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전세 거래량 증가에는 전셋값 안정이 힘을 보태고 있다.

전세가율(주택 매매가 대비 전셋값의 비율)은 지난해 6월 75.1%로 사상 최고점을 찍고 같은 해 12월까지 6개월 연속 하락했다.

◆전세 부활 부추긴 ‘입주 물량 증가’


전세시대 부활의 가장 큰 원인은 ‘입주 물량 증가’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아파트 입주 물량은 32만18가구로 전년보다 12.4% 늘었다. 주택 시장이 살아난 2014년부터 공사에 착수한 주택의 연평균 62만7000여 가구가 입주를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입주 물량이 증가하면 집주인들이 세입자를 구하기 힘든 월세를 포기하고 전세로 전환한다. 전세 물량 증가는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고 거래량은 자연스럽게 많아진다.

입주 대란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올해는 전국에 아파트 35만9860가구가 입주를 준비 중이며 이 중 절반에 가까운 15만6259가구(43%)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또 2018년에는 이보다 많은 아파트 42만여 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1999년 36만9541가구를 넘어서는 역대 최대 입주 물량이다.

입주 대란 속에서 깡통 전세 속출도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입주 대란으로 집값이 전세 보증금 이하로 하락해 집을 팔아도 전세 보증금을 채울 수 없는 깡통 전세가 늘어나게 되는 구조다.
깡통 전세 우려는 반전세(준전세) 증가로 이어질 전망이다.

반전세는 세입자로선 전세 보증금을 낮추고 일부를 월세로 전환해 깡통 전세 피해를 예방할 수 있고 집주인으로선 저금리 시대 고정 임대 수익을 얻을 수 있어 나쁘지 않다.

장경철 부동산1번가 이사는 “입주 대란 여파로 분위기가 전환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세시대로 회귀했다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고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정부는 속도가 늦춰진 월세시대와 깡통 전세 증가에 대한 대비책을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kb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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