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신탁시장 700조 전쟁 : 신탁의 역사]
영국에서 탄생해 미국에서 꽃피워...국내 신탁법, 신탁업법은 일본식 본떠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신탁(trust)’이라는 말의 어원은 중세 영국에서 탄생한 유스(use)에서 파생됐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유스는 ‘~을 위하여(for the behalf of)’라는 의미의 라틴어(od pus)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양도인이 지정하는 목적에 따라 토지를 관리하도록 제약을 마련한 계약을 의미한다. 봉건시대에 토지 소유자가 조세 부담을 회피하거나 혹은 귀족들이 전쟁에 나갔을 때 자산 관리를 맡은 이들이 재산을 빼돌리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 개인간 신뢰 부족한 미국, 사업화된 영리 신탁 발달
신탁업이 탄생한 곳은 영국이지만 본격적으로 꽃을 피운 곳은 미국이다. 영국의 전통적 신탁 외에 철회가능신탁이나 낭비자신탁과 같은 독자적인 형태의 신탁이 발달하기도 했다.
각국의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국은 개인 간의 신뢰가 희박했고 수탁자 또는 유언 집행자로서 법인인 신탁회사를 선호했기 때문에 일찌감치 사업화된 영리 신탁이 발달했다.
일본은 1900년대 들어 미국의 신탁 제도를 변형해 도입했고 한국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에 의해 근대적인 의미의 신탁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됐다. 부동산 신탁 제도를 통해 일본인이 한국 토지에 쉽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토지 소유권을 수탈하려는 목적이었다.
광복 이후 국내에 본격적으로 신탁법과 신탁업법이 제정된 것은 1961년이다. 고객이 현금을 금융사(수탁자)에 맡기는 금전신탁을 중심으로 발달한 일본식 신탁 제도를 본떠 만들었기 때문에 이후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금전신탁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초기에는 신탁 업무를 전담하는 한국신탁은행을 설립해 타 시중은행들로 하여금 신탁업을 취급할 수 없게 했지만 1984년 은행법상 모든 은행이 신탁업을 겸영할 수 있게 됐다. 이후 2005년 9개 증권사가 처음으로 겸영 인가를 받았고 이어 2007년 보험사도 신탁 시장에 진입했다.
초창기 은행은 특정금전신탁 외에 불특정금전신탁도 판매했지만 2004년 펀드와 비슷한 형태로 운용됨에도 투자자 보호 장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특정금전신탁이 폐지됐다. 이후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며 신탁 자산의 규모가 반 토막이 날 만큼 사업이 위축됐다.
2009년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신탁업자에 대한 규율을 담은 신탁업법이 없어지고 통합 자본시장법에 흡수됐다.
위탁자·수탁자·수익자의 관계·권리 등을 규정한 신탁법은 2011년 제정 50년 만에 처음으로 전면 개정안이 통과됐다. 신탁 계정 자산의 상속과 증여를 할 수 있는 상품을 허용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장기 종합 자산 관리 서비스 수단’으로서의 틀을 갖추게 됐다.
vivajh@hankyung.com
[기사인덱스]
-신탁시장 700조 전쟁...‘증여신탁 절세 혜택’ 축소 앞두고 불티
-신탁의 역사
-문턱 낮은 '이색 신탁' 눈길~
-저금리·고령화 시대의 '블루오션' 신탁 시장 주도권 잡아라
-한국 시장 문 두드리는 '미 3대 신탁은행'
-빗장 풀리는 신탁 시장, 뉴플레이어 대기 중
-김창원 KB국민은행 신탁연금그룹 대표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신탁사업 크는 이유"
-김재영 KEB하나은행 신탁사업단장 "맞춤형 신탁으로 신탁의 대중화 이끈다"
영국에서 탄생해 미국에서 꽃피워...국내 신탁법, 신탁업법은 일본식 본떠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신탁(trust)’이라는 말의 어원은 중세 영국에서 탄생한 유스(use)에서 파생됐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유스는 ‘~을 위하여(for the behalf of)’라는 의미의 라틴어(od pus)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양도인이 지정하는 목적에 따라 토지를 관리하도록 제약을 마련한 계약을 의미한다. 봉건시대에 토지 소유자가 조세 부담을 회피하거나 혹은 귀족들이 전쟁에 나갔을 때 자산 관리를 맡은 이들이 재산을 빼돌리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 개인간 신뢰 부족한 미국, 사업화된 영리 신탁 발달
신탁업이 탄생한 곳은 영국이지만 본격적으로 꽃을 피운 곳은 미국이다. 영국의 전통적 신탁 외에 철회가능신탁이나 낭비자신탁과 같은 독자적인 형태의 신탁이 발달하기도 했다.
각국의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국은 개인 간의 신뢰가 희박했고 수탁자 또는 유언 집행자로서 법인인 신탁회사를 선호했기 때문에 일찌감치 사업화된 영리 신탁이 발달했다.
일본은 1900년대 들어 미국의 신탁 제도를 변형해 도입했고 한국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에 의해 근대적인 의미의 신탁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됐다. 부동산 신탁 제도를 통해 일본인이 한국 토지에 쉽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토지 소유권을 수탈하려는 목적이었다.
광복 이후 국내에 본격적으로 신탁법과 신탁업법이 제정된 것은 1961년이다. 고객이 현금을 금융사(수탁자)에 맡기는 금전신탁을 중심으로 발달한 일본식 신탁 제도를 본떠 만들었기 때문에 이후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금전신탁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초기에는 신탁 업무를 전담하는 한국신탁은행을 설립해 타 시중은행들로 하여금 신탁업을 취급할 수 없게 했지만 1984년 은행법상 모든 은행이 신탁업을 겸영할 수 있게 됐다. 이후 2005년 9개 증권사가 처음으로 겸영 인가를 받았고 이어 2007년 보험사도 신탁 시장에 진입했다.
초창기 은행은 특정금전신탁 외에 불특정금전신탁도 판매했지만 2004년 펀드와 비슷한 형태로 운용됨에도 투자자 보호 장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특정금전신탁이 폐지됐다. 이후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며 신탁 자산의 규모가 반 토막이 날 만큼 사업이 위축됐다.
2009년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신탁업자에 대한 규율을 담은 신탁업법이 없어지고 통합 자본시장법에 흡수됐다.
위탁자·수탁자·수익자의 관계·권리 등을 규정한 신탁법은 2011년 제정 50년 만에 처음으로 전면 개정안이 통과됐다. 신탁 계정 자산의 상속과 증여를 할 수 있는 상품을 허용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장기 종합 자산 관리 서비스 수단’으로서의 틀을 갖추게 됐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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