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커스]
9월부터 처리 장치 일괄 설치해야…한국 시장 1위여도 “중국 추격 두렵다”
(사진) 2009년 인도된 독일 슐테의 7000TEU급 컨테이너선. 이 선박에는 현대중공업이 자체 개발한 선박평형수 처리 시스템 '에코 밸러스트'가 장착돼 있다.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건강한 바다를 만들기 위해 ‘선박평형수’에도 규제의 손길이 닿았다. 선박평형수는 선박 운항 때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배 아래나 좌우에 설치된 탱크에 채워 넣는 바닷물이다.
오는 9월부터 원양항로를 기항하는 선박들은 선박평형수 처리 설비를 달아야만 한다. 선박평형수로 인해 바다의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취지는 ‘공감’ 비용은 ‘부담’
국제해사기구(IMO)는 2017년 9월 8일부터 선박평형수를 정화 후 배출하도록 처리 설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선박평형수 관리 협약’을 발효할 예정이다. 현재 연간 50억 톤 이상의 선박평형수가 원양항로를 기항하는 선박을 통해 해역을 넘나든다. 이 과정에서 해양 생물도 평형수와 함께 다른 해역으로 이동함에 따라 생태계 교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사들은 이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가뜩이나 해운 시황 침체로 상황이 어려운데 수십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신규 처리 장치를 설치해야 하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장조사 회사 프로스트&설리번에 따르면 선박평형수 처리 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드는 평균비용은 선박 1척에 60만 달러로 알려져 있다. 장치 구입비가 40만 달러, 설치비만 20만 달러다.
몇 년 째 계속된 공급과잉으로 해운 시황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선복량 기준 세계 1위인 덴마크의 머스크라인조차 3억7600만 달러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선사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살길을 도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선사들은 협약 발효 기간을 늦춰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협약 발효를 두 달 앞둔 7월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총회가 열리는데 여기에서 해외 선사들이 협약의 발효를 미뤄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는 예상도 조심스레 나온다.
국내 선사들도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선주협회는 한국~일본, 한국~중국 등 근거리를 오가는 선박들에 대해 협약 면제가 가능한지 확인 요청했다.
만약 한일 항로와 한중 항로가 협약 면제 대상이라면 근해를 기항하는 중견 선사들은 처리 장치를 달지 않아도 된다. 해수부가 해양 생태 전문가들에게 의뢰한 결과, 한일 항로는 협약 면제가 불가능하고 한중 항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국내 선사들은 협약을 준수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IMO의 환경보호 취지에 동감하며 운영하고 있는 사선(社船)들에 대해 차차 선박평형수 처리 장치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국내 선사들에 비용이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해운·조선·정부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 “기술 개발에 힘 쏟는다”
울상 짓는 해운업계와 달리 조선업계는 이번 선박평형수 협약 체결로 신규 수주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해수부는 선박평형수 처리 시장의 규모를 약 50조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시장 규모가 큰 만큼 정부는 선박평형수 시장을 신성장 동력으로 낙점했다.
우리 기업들의 점유율도 높다. 최근 6년간 누적된 전 세계 선박평형수 처리 설비 전체 수주액은 3조5521억원이다. 이 중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48.7%로 총 1조7307억원을 수주했다.
수주량 역시 전체 6607척 중 3066척을 한국 기업들이 맡으며 46.4%의 높은 점유율을 보였다. 2008년 국내 최초로 IMO 인증을 취득한 국내 기업 테크로스의 전 세계 시장점유율은 15%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2월 일본 이마바리조선소로부터 선박평형수 처리 시스템 5대를 수주했다.
하지만 업계는 국내 선박평형수 시장에 대해 전처럼 낙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경쟁 국가들의 점유율이 날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만 해도 다섯 곳이었던 중국 선박평형수 처리 기계 제조업체는 현재 스무 곳으로 늘어난 상태다. 국내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에 밀릴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네덜란드 등의 성장도 거세다. 이 국가들은 해운 산업 보호 기조에 따라 자사의 선박엔 자사의 선박평형수 처리 기계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 세계를 기항하는 선박은 6만3000여 척으로 집계된다. 이 중 5만여 척이 선박평형수 처리 설치 대상이다. 한국선박평형수협회가 파악한 국내 선박의 수요는 약 1000척 정도다. 국내 선박만으론 수요를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해외 선주들과 계약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우리 기업들은 외국 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성태 한국선박평형수협회 회장은 “전력이 최소한으로 소모되며 크기가 작은 평형수 처리 장치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mjlee@hankyung.com
9월부터 처리 장치 일괄 설치해야…한국 시장 1위여도 “중국 추격 두렵다”
(사진) 2009년 인도된 독일 슐테의 7000TEU급 컨테이너선. 이 선박에는 현대중공업이 자체 개발한 선박평형수 처리 시스템 '에코 밸러스트'가 장착돼 있다.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건강한 바다를 만들기 위해 ‘선박평형수’에도 규제의 손길이 닿았다. 선박평형수는 선박 운항 때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배 아래나 좌우에 설치된 탱크에 채워 넣는 바닷물이다.
오는 9월부터 원양항로를 기항하는 선박들은 선박평형수 처리 설비를 달아야만 한다. 선박평형수로 인해 바다의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취지는 ‘공감’ 비용은 ‘부담’
국제해사기구(IMO)는 2017년 9월 8일부터 선박평형수를 정화 후 배출하도록 처리 설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선박평형수 관리 협약’을 발효할 예정이다. 현재 연간 50억 톤 이상의 선박평형수가 원양항로를 기항하는 선박을 통해 해역을 넘나든다. 이 과정에서 해양 생물도 평형수와 함께 다른 해역으로 이동함에 따라 생태계 교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사들은 이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가뜩이나 해운 시황 침체로 상황이 어려운데 수십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신규 처리 장치를 설치해야 하는 것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장조사 회사 프로스트&설리번에 따르면 선박평형수 처리 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드는 평균비용은 선박 1척에 60만 달러로 알려져 있다. 장치 구입비가 40만 달러, 설치비만 20만 달러다.
몇 년 째 계속된 공급과잉으로 해운 시황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선복량 기준 세계 1위인 덴마크의 머스크라인조차 3억7600만 달러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선사들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살길을 도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선사들은 협약 발효 기간을 늦춰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협약 발효를 두 달 앞둔 7월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총회가 열리는데 여기에서 해외 선사들이 협약의 발효를 미뤄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는 예상도 조심스레 나온다.
국내 선사들도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선주협회는 한국~일본, 한국~중국 등 근거리를 오가는 선박들에 대해 협약 면제가 가능한지 확인 요청했다.
만약 한일 항로와 한중 항로가 협약 면제 대상이라면 근해를 기항하는 중견 선사들은 처리 장치를 달지 않아도 된다. 해수부가 해양 생태 전문가들에게 의뢰한 결과, 한일 항로는 협약 면제가 불가능하고 한중 항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국내 선사들은 협약을 준수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IMO의 환경보호 취지에 동감하며 운영하고 있는 사선(社船)들에 대해 차차 선박평형수 처리 장치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국내 선사들에 비용이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해운·조선·정부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조선업계, “기술 개발에 힘 쏟는다”
울상 짓는 해운업계와 달리 조선업계는 이번 선박평형수 협약 체결로 신규 수주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해수부는 선박평형수 처리 시장의 규모를 약 50조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시장 규모가 큰 만큼 정부는 선박평형수 시장을 신성장 동력으로 낙점했다.
우리 기업들의 점유율도 높다. 최근 6년간 누적된 전 세계 선박평형수 처리 설비 전체 수주액은 3조5521억원이다. 이 중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48.7%로 총 1조7307억원을 수주했다.
수주량 역시 전체 6607척 중 3066척을 한국 기업들이 맡으며 46.4%의 높은 점유율을 보였다. 2008년 국내 최초로 IMO 인증을 취득한 국내 기업 테크로스의 전 세계 시장점유율은 15%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2월 일본 이마바리조선소로부터 선박평형수 처리 시스템 5대를 수주했다.
하지만 업계는 국내 선박평형수 시장에 대해 전처럼 낙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경쟁 국가들의 점유율이 날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만 해도 다섯 곳이었던 중국 선박평형수 처리 기계 제조업체는 현재 스무 곳으로 늘어난 상태다. 국내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에 밀릴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네덜란드 등의 성장도 거세다. 이 국가들은 해운 산업 보호 기조에 따라 자사의 선박엔 자사의 선박평형수 처리 기계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 세계를 기항하는 선박은 6만3000여 척으로 집계된다. 이 중 5만여 척이 선박평형수 처리 설치 대상이다. 한국선박평형수협회가 파악한 국내 선박의 수요는 약 1000척 정도다. 국내 선박만으론 수요를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해외 선주들과 계약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우리 기업들은 외국 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김성태 한국선박평형수협회 회장은 “전력이 최소한으로 소모되며 크기가 작은 평형수 처리 장치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고 밝혔다.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