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도깨비’의 그 침대” 당신이 모르는 PPL의 세계

[테크놀로지 = 쫄깃한 콘텐츠 비즈니스 이야기 ⑩]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콘텐츠 속 마케팅 기법’으로 주목


(사진) tvN 드라마 '도깨비'에서 배우 공유(김신 역)와 배우 김고은(지은탁 역)이 마주보고 있다. 이 장면에서 일룸의 움직이는 침대인 '모션 베드'가 PPL로 쓰였다. /tvN 제공

[한경비즈니스 칼럼=길덕 이노션 미디어컨텐츠팀장] #. “7회 방송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여주) 집을 방문할 때 선물로 가져가면 어떨까요. 상품을 클로즈업(밀착)해 잡아주시고요. 여주 부모님들이 좋아하면서 서로 가지려고 하는 모습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네, 상의해 볼게요. 잘 아시겠지만 너무 과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있어요. 어떻게 표현할지 제작진과 논의하고 이야기 드릴게요.”

한 건강보조식품의 PPL(영화나 드라마 속에 소품으로 등장하는 상품을 일컫는 말)을 담당하고 있는 광고대행사 직원과 인기 드라마의 마케팅 프로듀서(PD) 간 대화다.

PPL이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자 최근 드라마 제작사들은 PPL 전체를 관리하는 마케팅 총괄 회사를 고용하고 있다. 과거 방송사 소속이었던 마케팅 프로듀서들이 최근 들어 마케팅 총괄 회사로 옮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해당 방송 프로그램에 들어갈 수 있는 PPL 상품을 정하고 광고대행사들이나 광고주들에게 제안한다.

◆PPL 산업, 매년 65% 성장

PPL은 광고주로부터 금전적인 대가를 받고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속에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품으로 활용해 노출하는 광고 기법을 뜻한다.

국내 PPL은 협찬(제작 지원)과 간접광고로 나눌 수 있다. 협찬은 주로 방송사의 외주 제작사가 주체가 돼 진행되며 프로그램 끝부분에 협찬 사업자를 자막 형태로 노출해 주는 것을 말한다.

간접광고는 해당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방송사가 주체다. 한국방송광고공사나 미디어크리에이트와 같은 미디어렙(방송광고를 방송사 대신 판매하는 방송광고 판매대행사)을 통해 판매된다.

협찬은 브랜드나 회사명을 직접적으로 노출할 수 없지만 간접광고로는 가능하다. 반면 협찬은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제작사들과 직접 이야기하기 때문에 광고주의 뜻을 전달하기가 쉽다. 보통 PPL은 협찬과 간접광고를 병행해 진행한다.

최근 화제가 되는 드라마가 나올 때마다 같이 언급되는 것이 PPL이지만 국내 PPL의 법적인 실체가 생긴 것은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2009년 방송법이 개정되면서 ‘가상광고’와 ‘간접광고’를 허용했다.

2010년 1월 방송법 시행령으로 오락과 교양 분야에 한정해 간접광고가 가능하게 됐다. 단 어린이·보도·시사 분야 등에서는 간접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상품 및 로고 노출은 해당 방송 프로그램의 5%를 초과할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광고 산업 통계에 따르면 PPL 시장 규모는 2013년 약 400억원에서 2015년 대략 1100억원으로 매년 65% 정도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기준으로는 전체 매체 광고 시장 중 약 11조5000억원에서 약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시장은 전체 매체 광고 시장이 1874억 달러로 이 중 PPL은 68억 달러다. 약 3.6%의 비율이다. 미국 시장을 기준으로 추정한다면 국내 PPL 시장은 아직 성장 여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상파 드라마 마케팅 관계자 A 씨는 당분간 PPL 시장이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A 씨는 “PPL 역시 경기에 밀접한 영향을 받는다”며 “PPL을 선호하던 프랜차이즈 산업과 아웃도어 산업이 침체기를 맞고 있고 한한령(限韓令 : 한류를 금지하는 중국 정부의 정책) 때문에 중국 시장에 홍보를 기대하던 광고주들도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콘텐츠 시장에서 PPL의 역할이 갈수록 더 중요해진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브랜드 인지도 상승…시청자 반감도

기업들은 PPL을 집행함으로써 해당 프로그램의 시청률과 연동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광고 회피 현상도 피할 수 있다. 물론 광고주가 원하는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스토리와 연관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살려내면 현실감이 높아진다는 효과도 있다. 이 때문에 직접적인 매출 효과를 기대한다.

이노션 미디어콘텐츠팀의 서정우 부장은 “이제 사람들은 드라마나 예능 콘텐츠를 볼 때 그 콘텐츠가 담긴 네트워크나 플랫폼은 고려하지 않는다”며 “이런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콘텐츠와 광고 메시지가 분리되지 않는 마케팅 기법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노션은 2009년부터 PPL 전담팀을 두고 있고 서 부장은 10년째 PPL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서 부장은 “PPL은 TV CF에 비해 별도의 광고 제작비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며 “TV CF처럼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메시지를 만들어 내보낼 수는 없지만 해당 콘텐츠가 해외에 팔리면 부수적인 글로벌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2년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PPL 효과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PPL 프로그램 시청자의 35.4%가 해당 브랜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PPL을 접한 시청자의 55%가 해당 브랜드에 대한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응답자의 54%는 향후 해당 제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성공한 PPL은 매출 효과도 높게 나타난다. 최근 화제가 된 tvN 드라마 ‘도깨비’에 PPL을 진행한 가구 업체 ‘일룸’은 ‘모션 데스크(움직이는 책상)’와 ‘모션 베드(움직이는 침대)’를 적극적으로 노출했다. 그 덕분에 이들 제품의 판매량이 급격히 늘었고 회사 가치까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PPL에도 부정적인 면은 있다.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 받는다. 드라마 ‘도깨비’는 과도한 PPL로 극의 흐름이 끊어진다는 비판이 드라마가 방영되는 내내 계속됐다.

언론 비평 전문지인 미디어오늘은 16부작의 ‘도깨비’ 종영 후 PPL 등장 장면을 집계해 총 270개의 PPL 장면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많은 PPL은 시청자의 거부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상파 드라마 마케팅 관계자 A 씨는 “드라마 제작비는 작가 원고료와 배우 출연료 등으로 과도하게 증가하는 반면 새로운 수익원이 생기지 않고 있다”며 “이 때문에 제작비의 20~30%를 담당하는 PPL은 이제 드라마 제작의 필수 요소가 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앞으로는 방송사의 자정 능력과 PPL 시장을 바라보는 광고주의 시선도 바뀌고 있어 PPL에 대한 거부감이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브랜드 노출에서 시연까지…PPL 세계

PPL의 유형은 ▷단순 노출 ▷협찬(제작 지원) 고지 ▷에피소드 구성 등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단순 노출은 프로그램 속에서 해당 제품을 소품으로 활용해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방식이다. 드라마 안에서 주인공이 운전하면서 해당 자동차를 보여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협찬 고지는 프로그램이 끝날 때 화면 크기 4분의 1 이내에 회사의 로고나 브랜드를 노출해 제작을 지원했다는 것을 알린다.

에피소드 구성은 드라마 속에서 제품이나 브랜드에 관한 작은 이야기나 메시지가 소개되는 것을 말한다. 에피소드 구성 중에는 직업군 설정, 기능 연출, 장소 연출 등이 있다. 직업군 설정은 캐릭터의 직업을 광고주와 관련된 것으로 설정해 브랜드 노출 용이성을 높이는 것이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일룸’ 소속 직원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기능 노출은 제품의 특징을 드라마에서 출연자의 대화, 시연 등을 통해 보여주는 방식이다. 대개 스마트폰처럼 알리고 싶은 기능이 있을 때 많이 시도한다. 광고주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지만 심의규정 등 때문에 실행하기 가장 어려운 방식이다.

장소 연출은 카페나 특정 상품의 매장을 출연자들이 자연스럽게 방문하는 PPL 기법이다.
이런 PPL 유형들은 한 가지로 실행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여러 가지가 섞여 진행된다.

예컨대 단순 노출을 기본으로 기능 및 장소 연출 1회씩 추가하고 제작 지원 고지를 하는 식이다. 16부작 미니 시리즈라면 이런 유형들의 조합 및 노출 횟수에 따라 PPL 비용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한다.


(사진) 남성복 업체인 파크랜드가 자사 모델인 배우 조인성 씨가 출연한 영화 ‘더킹’에 PPL을 하고 제작한 푸티지 광고. /파크랜드 제공

광고주들은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온 특정 상품의 PPL 장면을 엮어 TV 광고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광고를 ‘푸티지 광고(footage advertisement)’라고 하는데 해당 프로그램의 높은 인지도를 활용할 수 있어 효과적이다. 이를 위해선 PPL 계약 시 이에 대한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최근 남성복 업체인 파크랜드는 자사 모델인 조인성 씨가 출연한 영화 ‘더킹’에 PPL을 하고 푸티지 광고를 만들어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서 부장은 “PPL은 프로그램의 오락성을 기반으로 한 광고 방식이지만 정보 제공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며 “이 때문에 가상광고·일반광고 등을 동시에 집행하면 프로그램과 브랜드의 연관성, 시청자의 관여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정부터 정산까지…‘대행사’ 역할 중요

PPL은 제품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다. 광고주가 소개하고 싶은 상품의 특징을 파악한 후 이 제품이 어울릴 만한 프로그램을 찾는다. PPL 대행사는 항상 앞으로 방영될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다.

시놉시스나 대본 등을 보면서 드라마 속 캐릭터나 배경 등에 제품이 적합한지 확인한다. 그 후 제작사나 방송사, 마케팅 총괄 대행사 등과 접촉해 PPL 가능 여부를 확인한다. PPL도 한 종류의 상품에 한 광고주만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기 작가나 유명 배우가 출연하는 드라마에는 많은 광고주들이 PPL을 희망해 자주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PPL이 가능하다면 광고주에게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PPL 내용을 제작진과 논의해 구성한다. 세부적인 사항들을 조율한 후 촬영에 들어가고 방송된다. PPL 대행사는 방송 내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이를 광고주에게 보고한다.

그 후 청구와 정산이 되면 PPL의 집행 절차가 끝난 것이다. 서 부장은 “PPL 집행은 광고주와 제작진의 눈높이가 다를 때도 있고 세세하게 협의할 부분들이 많다”며 “PPL 대행사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PPL을 기반으로 하는 부가 사업도 뜨고 있다. PPL로 드라마에 노출된 상품에 대해 온라인이나 해외 유통 사업권을 가져와 판매를 실시하는 것이다.

또한 광고주들은 PPL을 넘어 자신들의 브랜드나 상품을 알리는 방송 콘텐츠를 직접 만든다. 이렇게 브랜드 이름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이른바 ‘브랜디드 콘텐츠(branded contents)’는 상품 위주의 콘텐츠 제공이 가능하고 특히 유튜브 등 인터넷 동영상 플랫폼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유통도 용이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콘텐츠 범람의 시대에 시청자들로부터 선택 받기 위해서는 PPL이든 브랜디드 콘텐츠든 시청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재미있어 선택한 콘텐츠는 사람들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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