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 꺾는 ‘5대 규제’ 벗어야


[커버 스토리 = 경제 살리기로 국민 대통합을 : 옥죄는 규제]
‘보이는 규제’ 넘어 ‘보이지 않는 규제’에도 고통 받는 한국 기업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최근 전 세계적으로 자국 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보호무역주의 그리고 기업 규제 완화 움직임이 한창인데, 모두 자국 기업 살리기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잘 키워낸 기업 하나가 경제를 떠받치는 대들보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지지하고 응원하는 추세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 같은 세계적인 기류에 편승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행하는 모양새다.


최근 국내 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내우외환’이라는 사자성어로 압축된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과 미국발 보호무역 강화 등 대외적 상황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든데 국내에서는 기업에 더욱 강력한 규제의 족쇄를 채워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이미 한국의 기업 규제가 넘칠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기업 규제가 현실화되면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 역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흐름에 발맞춰 해묵은 규제를 손보는 등 과감하게 개혁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기업 규제 강도, 전 세계 상위권


대부분의 기업들은 정부의 기업 규제가 큰 틀에서 ‘보이는 규제’와 ‘보이지 않는 규제’로 구분된다고 말한다. 보이는 규제는 법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것을 의미하고 보이지 않는 규제는 법제상 명시돼 있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기업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을 뜻한다.





대표적인 보이는 규제로는 △상법개정안 △대형마트 규제, 보이지 않는 규제는 △반기업 서로 인한 포퓰리즘 법안 △정부 정책 △검찰의 무차별적인 기업인 구속 등이 꼽힌다. 이렇게 총 다섯 가지 규제가 기업들의 ‘손톱 밑 가시’인 셈이다.


우선 보이는 규제는 국가별로 수치화된 지표가 있는데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규제의 강도가 심한 편이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세계 138개국을 대상으로 발표한 국가 경쟁력 순위가 이를 증명한다. ‘정부 규제에 대해 시장이 느끼는 부담’ 항목에서 한국은 지난해 105위로 최하위 수준을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9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내놓는 ‘상품시장규제지수’를 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상품시장규제지수는 OECD가 상품시장에 대한 규제 상태와 시장구조에 대한 정보를 국가 간 비교가 용이하도록 고안한 지표다.

지난해 OECD는 한국을 터키·이스라엘·멕시코에 이어 넷째로 상품시장규제지수가 높은 국가로 지목했다.



◆1.상법개정안

이미 지나친 규제를 적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최근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보이는 규제 중 최근 들어 논란의 중심은 단연 상법개정안이다. 주요 내용은 △집중투표제 의무화 △전자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등이다.



집중투표제의 개념은 소액주주들끼리 힘을 합쳐 투자한 기업에 원하는 사내이사가 선임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다만 지분율이 높지 않은 외국계 투기 자본도 연합을 통해 특정 인물을 이사로 선임, 경영진에 투입할 수 있게 돼 악용의 여지가 있다.



전자투표제는 주주가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전자적인 방법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주주들의 참여도를 높이는 데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악성 루머에 따른 투표 쏠림 현상과 보안상의 우려가 제기된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의 이사가 자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모회사 주식 1% 이상을 가진 주주가 직접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 제도 역시 경영권을 노리는 외국계 자본의 소송 남발로 자회사의 경영이 휘둘릴 수 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제도는 감사위원이 될 이사를 선임할 때 대주주가 아무리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어도 의결권을 3%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투기 자본들이 연합해 감사위원 대부분을 자신들이 원하는 이들로 선임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를 통해 회사 주요 자산을 매각하거나 기술을 빼낼 수 있다.



결국 대기업 등 상장회사의 지배구조와 투명성 개선을 통해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마련한 상법개정안이 오히려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소액주주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2.대형마트 규제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을 규제하기 위해 2012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도 여전히 논란거리가 있는 규제다. 개정안에 신설된 ‘대형마트 의무 휴업 조항’에 따라 대형마트는 밤 12시~오전 8시까지 영업시간이 금지됐고 매월 둘째·넷째 주 일요일을 의무 휴업일로 정해야 한다.



이런 대형마트 규제는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 도입됐지만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 휴업이 도입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중소 상인의 매출은 105조7000억원에서 101조9000억원으로 3.59% 감소했다. 실효성에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마트 규제를 더욱 강화하자는 주장들이 나온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표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한 달에 2회인 대형마트 의무 휴업일을 4회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규제를 확대 적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김종훈 무소속 의원은 지난해 11월 대형마트에 적용되는 의무 휴일제를 백화점과 면세점에도 적용하자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들의 주장은 유통 대기업으로부터 중소 상인들을 더 두텁게 보호하자는 것. 하지만 유통업계에서는 대형마트의 휴업과 골목상권의 활성화가 무관한 것으로 조사된 만큼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법안이라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3.포퓰리즘



이처럼 상법개정안이나 대형마트 규제 강화와 같은 보이는 규제 뒤에는 늘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이런 얘기들이 항상 반기업 정서가 확산되는 시기인 선거철만 되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기업에는 이런 포퓰리즘에 입각한 선심성 공약이 가장 무서운 ‘보이지 않는 규제’라는 설명이다.



최근에 상법개정안과 대형마트 규제 강화 같은 기업 때리기 법안들이 다시 국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것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따른 탄핵 정국으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진) 대형마트 규제가 시행되면서 대형마트와 거래하는 협력업체 및 농어민 등의 거센 반발이 일기도 했다. /연합뉴스

그러면 선거철마다 이런 기업 때리기 공약들이 난무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은 기본적으로 대기업과 국민의 관계를 강자와 약자로 설정해 놓고 있다”며 “강자를 응징하는 이분법적인 구도 속에서 포퓰리즘 법안이 표를 얻는 데 좋게 여겨지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사실 상법개정안 자체도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최근 선거 때마다 이슈가 돼 온 사안이다. 가령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 지금과 비슷한 내용의 상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바 있다.

취임 첫해인 2013년 법무부는 상법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당시에도 논란이 거세게 일었고 결국 도입이 중단됐다. 최근에 최순실 사태로 재벌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논의가 다시 진행 중이라는 게 재계의 견해다. 대형마트 규제 강화에 대한 논의가 최근 활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4.정부 정책

정부 편의에 치우친 행정제도 역시 기업들이 벗어나고 싶은 보이지 않는 규제다. 예를 들면 박근혜 정부 들어 기업들은 고용과 임금 인상이라는 두 가지 부담을 모두 떠안았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 기조인 고용률 70%를 달성하는 데 기업들이 중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야 내수가 살아난다며 기업에 임금 인상을 압박하기도 했다.

기업들엔 어려운 요구일 수밖에 없지만 따르지 않을 수도 없다. 임금이 오르면 사람을 덜 쓰게 되는 게 당연한데 이를 감안하지 않은 조치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최순실 사태 역시 이런 방식의 보이지 않는 규제가 뿌리 역할을 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부나 청와대의 권력이 압력을 넣었을 때 저항할 수 있는 기업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재단에 출연했다고 뇌물로 엮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했다.



삼성과 같은 기업이 문화·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것도 정부 재량에 따를 수 있는 불이익을 회피하고 자기방어를 위한 관점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5.검찰



검찰의 기업인 구속도 무시 못할 보이지 않는 규제라는 평가다. 기업과 관련된 대형 이슈가 터질 때마다 특검이 발동되고 기업 총수 구속에 매달리는 성향이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대기업 관련 사건은 여론의 관심이 큰 만큼 윗사람을 잡아넣어야 수사의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높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도 검찰의 보이지 않는 규제로 국내 기업들의 손발이 묶인 사례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최근 전 세계 주요 기업 총수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 데 열을 올렸지만 한국은 예외였다.



최순실 사태로 촉발된 특검의 출국 금지 조치로 주요 그룹 총수들은 꼼짝달싹하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있었다.



이 같은 보이는 규제, 보이지 않는규제들은 기업들의 성장을 저해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큰 손실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필요한 규제를 하더라도 개방경제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과 비슷한 경제 수준을 갖춘 국가와 비슷한 강도의 규제만 하자는 제안이다. 규제 자체가 골목상권과 같은 특정한 편에 서는 것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국민인 소비자에게 이로운 것이 한국 경제를 위해 좋다는 관점에서 규제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옥죄기식 규제가 계속된다면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4차 산업혁명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뒤처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려면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허용하도록 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의 전환 등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4차산업이 부각되고 있는데 이럴 때 기업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 또는 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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