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 “청탁금지법, 미래 세대 위해 우리 세대가 불편 감수하자”


[커버스토리 = 김영란법 6개월 :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 인터뷰]
- “김영란법, 안정적으로 정착 중”
- “3개월 동안 요식업 종사자 1만5000명 늘어”


(사진)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 /서범세 기자.


[대담=손희식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정리=김정우 기자] “미래 세대를 위해 지금 겪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 시행 6개월을 앞둔 3월 15일 한경비즈니스와 만난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은 “모든 일에는 비용이 따른다”며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김영란법 시행 주체는 권익위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반년이 흘렀지만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최근 들어 김영란법이 고용과 내수 부진 등 경제적인 측면에서 악영향을 끼친다며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부쩍 커지는 실정이다.

심지어 ‘3·5·10 규정’으로 불리는 3만원·5만원·10만원(식사·선물·경조사비) 허용액을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을 넘어 경제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 김영란법을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성 위원장의 생각에는 일체의 흔들림이 없었다.

성 위원장은 “시행한 지 6개월을 맞은 현재 청탁금지법은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행 1년도 채 안된 시점에서 수정하게 되면 김영란법의 뿌리가 흔들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성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이제 시행 6개월에 접어들었는데 어떤 성과가 있었다고 보십니까.

“오랫동안 관행으로 용인해 왔던 청탁이나 접대 행위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바뀐 것을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어요.

한국행정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85%에 달하는 국민이 청탁금지법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이 법의 기본 취지에 대해 대부분의 국민이 동의한다는 얘깁니다.

특히 의미가 있는 부분은 지지율의 추세가 계속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국회에서 2015년 3월 31일 법이 통과되고 공표됐는데 이때만 하더라도 찬성은 58%에 불과했어요. 그러다가 작년 9월 28일 법이 시행되고 10월 조사했을 때는 71%로 올라갔고 결국 12월에는 85%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시행 이전에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국민들이 막상 시행해 경험해 보니 청탁금지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부정청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도 크게 증가했는데 이 역시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경각심이 좀 느슨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청탁금지법이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다고 평가하기엔 아직 시행 기간이 6개월밖에 안 돼 너무 짧아요. 짧은 기간을 놓고 봤을 때는 착근이 잘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국민 지지율과 같은 통계를 기초로 했을 때 전체적으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으로 정착돼 가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신고 추세를 봐도 알 수 있어요. 신고자와 피신고자의 신원이나 사건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많은 분야에서 의미 있는 신고들이 다양하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공공기관의 상사에게 부하 직원들이, 대학 교수에게 대학원생들이 갹출해 선물하는 사례 등 다양한 부정청탁에 대한 신고들입니다. 즉, 우리가 이 법을 통해 막으려고 했던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라고 할 만한 것들이죠. 이 법이 없었다면 대가성을 입증해 뇌물로 처벌하기엔 모호하거나 어려운 것들입니다.

학교나 군대·병원 등에서는 부정청탁이 거짓말 같이 사라졌다는 말이 나옵니다. 다만 경제적 측면에서 일부 업종에서 매출 감소가 문제가 되고 또 이와 연결해 일반적인 소비 심리에 악영향을 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은 다소 아쉽습니다.”


▶특히 농축수산업과 화훼업계의 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일부 농축수산물이지 전부는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해요. 현재 멸치·김과 같은 중저가 제품은 선물용으로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늘지 않았습니까.

한우·굴비·과일 같은 일부 고가 품목들의 매출이 감소한 것을 일종의 부작용 내지 피해라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그 점에 대해 저는 달리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청탁금지법 시행 이전부터 이미 예상했었던 부분이고 더 나아가서는 기대했던 효과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설 명절 같은 때 보면 150만원짜리 한우 세트나 360만원짜리 굴비 세트가 즐비했고 이것이 품절될 정도로 잘나갔죠. 고가의 한우나 굴비의 약 80%가 설에 팔린다고 하는데 그게 비정상이라고 봐요. 이런 고가의 선물은 미풍양속도 아니고 존경과 감사를 담은 선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화훼 부분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통계를 보니 10년 사이 꽃 소비가 37% 줄었어요. 이 법과 관계없이 꽃 소비가 계속 줄고 있었는데, 이 법 때문에 갑자기 감소했다고 하면 안 되죠.”



▶요식업계의 타격에 대해서도 말이 많이 나옵니다.


“청탁금지법이 지난해 9월 28일 시행됐는데 그 여파로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요식업소 종업원 3만 명의 일자리가 줄어 고용대란이 현실화됐다는 얘기들이 나왔었죠. 전부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통계의 일면만 강조해 마치 청탁금지법 때문에 일자리가 크게 감소한 것처럼 왜곡한 해석입니다.

같은 통계자료를 보면 전년 동기 대비로는 3만 명 감소한 게 맞지만 월별 통계를 보면 법 시행 이전인 작년 2월부터 종사자가 계속 감소하다가 법이 시행된 9월 28일 이후 3개월 동안 오히려 1만5000명이 늘었습니다. 그러니까 청탁금지법 때문에 요식업소의 일자리가 갑자기 감소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른 것이죠.”



▶현재 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인데 어떻게 보십니까.


“국내산 농축수산물은 아예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일정 기간 유예하자는 등 여러 개정안이 있더라고요. 제 의견을 말씀드리면 청탁금지법 시행 후 중저가 상품은 오히려 잘 팔립니다.

농축수산물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것은 매출이 감소한 고가의 한우나 굴비 같은 품목에 특혜를 주자는 것으로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또 어디까지를 국내산으로 볼 것인지도 문제여서 입법 기술상으로도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3·5·10 상한액 조정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요.


“여러 부처에서 올리자, 내리자 얘기가 많아요. 3·5·10 상한이 불변의 진리는 아니기 때문에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만약 식사 값 상한선 3만원을 5만원으로 올렸을 때 내수가 활성화되고 소비 심리가 살아날 것이라는 확신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상향 조정을 검토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 드린 것처럼 이 법 때문에 내수나 고용이 줄었다는 주장은 상관관계를 인정할 근거가 매우 빈약합니다.

시행 기간이 6개월밖에 안 돼 판단하기에는 이르죠. 3월부터 ‘청탁금지법 시행 효과와 영향 등에 관한 연구’를 한국행정연구원에 의뢰 했습니다. 직역·업종·권역별로 자세한 주관적 인식과 실태 조사를 거쳐 그 결과를 보고 6월 말에 허용 금품의 가액을 조정할 것인지, 조정한다면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 판단할 예정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청탁금지법 시행령 45조에 따르면 ‘3·5·10 규정’에 대한 현행 시행령 유효기간은 2018년 12월 31일입니다. 일단 그때까지 시행하면서 타당성을 재검토해 보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전까지는 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지 헷갈린다고 생각해 만남 자체를 꺼리는 국민들이 많아 정상적인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는 만큼 교육과 홍보를 더욱 강화할 계획입니다.”



(사진)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 /서범세 기자.


◆[성영훈 위원장의 ‘기우제 소년’論]

어느 마을에 몇 달째 가뭄이 이어졌다. 참다못한 동네 어른들이 기우제라도 한 번 지내자고 해서 마을 주민들이 함께 산으로 향했다. 기우제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듯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마을 주민들은 비를 쫄딱 맞았다.

그때 한 어린아이가 갑자기 우산을 펼쳐 쓰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어른들이 궁금해하며 “너는 어떻게 비가 올 줄 알고 우산을 가져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어린아이가 반문했다. “비 오라고 기우제 지내러 온 것 아닌가요?”

청탁금지법 시행 주체인 국민권익위원회 역시 기우제 지내는 소년과 같은 마음으로 일한다고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은 강조했다. 청탁금지법으로 대한민국이 변화할 것이라는 확신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약력 :1960년생. 연세대 법학과 졸업. 사시 25회(연수원 15기). 2003년 법무부 검찰1과장. 2008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장. 2009년 법무부 법무실장. 2010년 광주지검장. 2015년 국민권익위원장(현).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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