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획= 5060 일자리 전쟁]
대기업·금융권 베이비부머 은퇴 본격화…업종·고용형태 등 ‘일자리 다양화’ 필요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2015년 발표된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인턴’에는 70세 인턴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스타트업인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와 직장 동료들은 모두 20~30대 젊은이들이다. 자유분방한 이들에게는 아무래도 정장 차림에 머리 희끗희끗한 ‘어르신 인턴’이 마뜩치 않기만 하다. 하지만 주인공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연륜과 일에 대한 열정으로 동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해피엔딩’이다.
현실은 어떨까.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1955~1963년생의 베이비붐 세대는 약 711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5060세대의 일자리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은퇴와 함께 새롭게 일자리 시장에 유입되는 중·장년층이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그리 많지 않다. 해피엔딩은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다.
◆“실업급여 신청, 절반 이상이 5060세대”
국내에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된 것은 대략 2013년부터다. 특히 2015년을 기점으로 대기업과 금융권에서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는 고용노동부에서 지난 2월 발간한 ‘노동시장 분석’ 통계 숫자로도 나타난다. 2012년 기준 50~59세 실업자는 11만5000명, 60세 이상은 7만7000명이었다. 이는 2014년 기준 각각 13만4000명, 8만1000명으로 높아졌고 2016년에는 각각 14만3000명, 10만6000명을 기록했다.
지난 4월12일 찾아간 서울 중구의 서울고용센터. 고용노동부 산하의 고용안정 사업기관인 서울고용센터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실업급여를 신청하거나 직업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중에서도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곳이 ‘실업급여’ 신청 부서다. 직장을 떠난 이들이 새로운 일을 찾을 때까지 버티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찾을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실업급여기초상담’을 맡은 한 상담자는 “상담 요청자 중 절반 이상이 50대 이상 은퇴 세대”라며 “50~55세가 가장 많고, 젊은 경우는 40대 후반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진) 서울고용센터 2층에 위치한 대한상공회의소의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상담 모습. /촬영=서범세 기자
2층에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운영하는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재취업을 원하는 50대 이상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취업정보 제공과 직업 교육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재구(가명. 56세) 씨는 증권업계에서 임원을 지내다가 지난해 은퇴를 하고 재취업 자리를 찾았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일자리 소개센터 등을 통해 운이 좋게도 퇴직 후 곧바로 한 중소기업과 인연이 닿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씨는 모든 일이 순조로울 줄 알았다.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의 역량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면 사회에 기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한씨는 30~40대의 젊은 직원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동료들은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엇보다 본인의 부족한 업무 능력을 깨닫는 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에서는 한 사람이 그야말로 열사람 몫을 해내야만 했다. 자료를 입력하기 위해 엑셀과 같은 단순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부터 그에게는 도전 과제였다.
한씨는 “한편으로는 젊은 사람들도 일자리를 못 구하는 마당에, 내가 일이 익숙하지 못해 자꾸 차질을 빚으니까 마음의 짐이 됐다”며 “나도 당장 일이 필요한데 ‘이 자리를 젊은이들에게 줘야 하는 건가’ 싶어 마음이 무거워졌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결국 3개월 만에 일을 그만두고, 현재는 ‘진로교육상담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
중소기업에서 중장년층이 맡을 수 있는 업무 영역은 제한된 게 사실이다. 그나마 중장년층 채용에 긍정적인 기업 중에서도, 한번 채용을 시도해 본 뒤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면 그다음에는 아예 채용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씨의 사례와 비슷한 시행착오들이 쌓여가면서 오히려 중소기업들의 중장년층 채용문이 점점 더 좁아지는 이유다.
김현옥 대한상공회의소 선임컨설턴트는 “우리 센터에서도 초창기에는 베이비부머 세대와 중소기업을 ‘매칭’하는 데만 집중했었다”며 “최근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베이비부머들이 중소기업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시니어 창업, 유혹에 냉정해져야”
재취업이 만만치 않으니,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쉽게 눈 돌리는 곳이 다름 아닌 창업 시장이다. 지난 2월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건네받은 ‘국내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자영업대출은 약 261조원이었다. 1년 사이 22조원 가량 늘어난 금액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대출증가액의 80% 이상이 50대 이상 은퇴연령층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50대는 7조8000억원, 60대 이상은 10조3000억원씩 대출 잔액이 증가했는데, 이는 총 증가분의 83%다. 그만큼 ‘생계형 창업’에 내몰리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시 50플러스 재단은 50세 이상 중장년층의 일자리 및 사회참여, 창업, 여가생활 등을 지원하는 곳이다. 이 재단의 김만희 일자리 사업 본부장은 “대부분의 은퇴자가 처음에는 재취업을 원한다”며 “하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조급해지고, 결국 손쉬운 프랜차이즈 창업에 뛰어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50플러스 재단은 중산층 은퇴자들이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며 빈곤층이 되기 전에 더욱 다양한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길잡이를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50세 이상 중장년층의 사회적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공익적인 사업에 진출하는 것을 돕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 ‘사회적 기업’과 관련한 전문 강좌를 듣고 있는 최혜임(가명. 53)씨는 3년 전 대기업의 마케팅 임원으로 퇴임했다. 여성으로서는 흔치 않은 대기업 고위임원 출신이지만, 예상보다 빠른 퇴직으로 인해 노후 준비가 부족했다. 막막함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중, 꽤 규모가 큰 커피숍을 운영하는 지인이 최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적은 금액이긴 했지만 매달 정해진 임금을 지급할 테니 마케팅 컨설팅과 같은 고문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최씨도 가벼운 마음으로 승낙했다. 다시 출근할 곳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이 컸다. 그러나 막상 커피숍 운영에 이것저것 조언을 하다 보니, 그가 관여하는 몫이 점점 커졌다. 경영상황이 어려워지자 자신의 퇴직금을 투자했다. 처음 의도와는 달리 지인과 ‘동업으로’ 커피숍을 창업한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 된 것이다. 3년을 꼬박 커피숍 운영에 매달렸지만 결국 이 커피숍은 문을 닫았고, 최씨는 퇴직금을 모두 날리는 상황에 부닥치고 말았다.
은퇴 창업자들이 실패를 겪는 과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퇴직금을 투자해 그럴듯하게 가게를 꾸며 놓으면 사람이 꽤 붐비고 장사도 잘되는 것 같다. 그런데 수익은 남지 않는다. 임대료와 인건비 부담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가족들이 동원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최악의 경우는 가족 간의 갈등이 깊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금융권이나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한 경우는 자신이 직접 창업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주변의 유혹이 많다.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아직 퇴직금이 넉넉할 것’이라고 짐작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기업이나 금융권 출신들의 경우 기존 인맥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작용한다. 손홍택 50플러스재단 컨설턴트는 “중장년층은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는 ’있는 것‘을 잘 지켜야 할 시기인 만큼 더욱 신중히 해야 한다”며 “이런 제의를 받는 경우, 덜컥 수용하기보다는 냉정하게 따져본 뒤 거절할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구직활동에도 '죽음의 계곡' 있다"
김만희 50플러스재단 일자리본부장은 “중장년층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 구간을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스타트업을 운영할 때, 처음 자본금을 투입한 뒤 안정적인 수익이 창출될 때까지 버텨야 하는 도약기를 '죽음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중장년층의 구직활동에도 이와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 은퇴한 뒤 재취업을 위해 ‘지게차 자격증’, ‘전기기사 자격증’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 위해 공부하는 5060 세대가 적지 않다. 그러나 자격증이 있어도 취업 관문을 뚫기란 여전히 어렵다. 관련 분야의 경력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술 교육’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기를 잘 넘어갈 수 있도록 폭넓은 지원책이 필요한 이유다.
그는 “일자리 선택폭을 확대하는 것이 단순히 일자리의 업종을 다양화하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장년층과 일자리 상담을 해보면 실제로도 풀타임 정규직보다는 파트타임이나 인턴 형태의 일자리를 원하는 수요가 많다는 것. 그래서 일자리의 형태나 고용 방식에서도 더욱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vivajh@hankyung.com
[2030 vs 5060 ‘일자리 전쟁’ 해법은? 특별 기획 기사 인덱스]
- “노력해도 안 되더라” 청년 구직자들의 자화상
- “시니어 인턴, 해피엔딩은 영화 속 이야기”
- ‘경단녀’ 울린 노동부 ‘취업 성공 패키지’
- 일자리 문제. ‘4人4色’ 현장에서 답을 찾다
- 4차 산업혁명 시대 ‘뜰 직업’vs‘질 직업’
대기업·금융권 베이비부머 은퇴 본격화…업종·고용형태 등 ‘일자리 다양화’ 필요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2015년 발표된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인턴’에는 70세 인턴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스타트업인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와 직장 동료들은 모두 20~30대 젊은이들이다. 자유분방한 이들에게는 아무래도 정장 차림에 머리 희끗희끗한 ‘어르신 인턴’이 마뜩치 않기만 하다. 하지만 주인공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연륜과 일에 대한 열정으로 동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해피엔딩’이다.
현실은 어떨까.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1955~1963년생의 베이비붐 세대는 약 711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5060세대의 일자리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은퇴와 함께 새롭게 일자리 시장에 유입되는 중·장년층이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그리 많지 않다. 해피엔딩은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이다.
◆“실업급여 신청, 절반 이상이 5060세대”
국내에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된 것은 대략 2013년부터다. 특히 2015년을 기점으로 대기업과 금융권에서 베이비부머 은퇴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는 고용노동부에서 지난 2월 발간한 ‘노동시장 분석’ 통계 숫자로도 나타난다. 2012년 기준 50~59세 실업자는 11만5000명, 60세 이상은 7만7000명이었다. 이는 2014년 기준 각각 13만4000명, 8만1000명으로 높아졌고 2016년에는 각각 14만3000명, 10만6000명을 기록했다.
지난 4월12일 찾아간 서울 중구의 서울고용센터. 고용노동부 산하의 고용안정 사업기관인 서울고용센터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실업급여를 신청하거나 직업 교육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중에서도 일자리 문제의 심각성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곳이 ‘실업급여’ 신청 부서다. 직장을 떠난 이들이 새로운 일을 찾을 때까지 버티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찾을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실업급여기초상담’을 맡은 한 상담자는 “상담 요청자 중 절반 이상이 50대 이상 은퇴 세대”라며 “50~55세가 가장 많고, 젊은 경우는 40대 후반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진) 서울고용센터 2층에 위치한 대한상공회의소의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상담 모습. /촬영=서범세 기자
2층에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운영하는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재취업을 원하는 50대 이상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취업정보 제공과 직업 교육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재구(가명. 56세) 씨는 증권업계에서 임원을 지내다가 지난해 은퇴를 하고 재취업 자리를 찾았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일자리 소개센터 등을 통해 운이 좋게도 퇴직 후 곧바로 한 중소기업과 인연이 닿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씨는 모든 일이 순조로울 줄 알았다.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의 역량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면 사회에 기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한씨는 30~40대의 젊은 직원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동료들은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무엇보다 본인의 부족한 업무 능력을 깨닫는 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에서는 한 사람이 그야말로 열사람 몫을 해내야만 했다. 자료를 입력하기 위해 엑셀과 같은 단순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부터 그에게는 도전 과제였다.
한씨는 “한편으로는 젊은 사람들도 일자리를 못 구하는 마당에, 내가 일이 익숙하지 못해 자꾸 차질을 빚으니까 마음의 짐이 됐다”며 “나도 당장 일이 필요한데 ‘이 자리를 젊은이들에게 줘야 하는 건가’ 싶어 마음이 무거워졌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결국 3개월 만에 일을 그만두고, 현재는 ‘진로교육상담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하고 있다.
중소기업에서 중장년층이 맡을 수 있는 업무 영역은 제한된 게 사실이다. 그나마 중장년층 채용에 긍정적인 기업 중에서도, 한번 채용을 시도해 본 뒤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면 그다음에는 아예 채용 자체를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씨의 사례와 비슷한 시행착오들이 쌓여가면서 오히려 중소기업들의 중장년층 채용문이 점점 더 좁아지는 이유다.
김현옥 대한상공회의소 선임컨설턴트는 “우리 센터에서도 초창기에는 베이비부머 세대와 중소기업을 ‘매칭’하는 데만 집중했었다”며 “최근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베이비부머들이 중소기업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시니어 창업, 유혹에 냉정해져야”
재취업이 만만치 않으니,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쉽게 눈 돌리는 곳이 다름 아닌 창업 시장이다. 지난 2월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건네받은 ‘국내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자영업대출은 약 261조원이었다. 1년 사이 22조원 가량 늘어난 금액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대출증가액의 80% 이상이 50대 이상 은퇴연령층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50대는 7조8000억원, 60대 이상은 10조3000억원씩 대출 잔액이 증가했는데, 이는 총 증가분의 83%다. 그만큼 ‘생계형 창업’에 내몰리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시 50플러스 재단은 50세 이상 중장년층의 일자리 및 사회참여, 창업, 여가생활 등을 지원하는 곳이다. 이 재단의 김만희 일자리 사업 본부장은 “대부분의 은퇴자가 처음에는 재취업을 원한다”며 “하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조급해지고, 결국 손쉬운 프랜차이즈 창업에 뛰어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50플러스 재단은 중산층 은퇴자들이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며 빈곤층이 되기 전에 더욱 다양한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길잡이를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50세 이상 중장년층의 사회적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공익적인 사업에 진출하는 것을 돕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 ‘사회적 기업’과 관련한 전문 강좌를 듣고 있는 최혜임(가명. 53)씨는 3년 전 대기업의 마케팅 임원으로 퇴임했다. 여성으로서는 흔치 않은 대기업 고위임원 출신이지만, 예상보다 빠른 퇴직으로 인해 노후 준비가 부족했다. 막막함에 어쩔 줄 몰라 하던 중, 꽤 규모가 큰 커피숍을 운영하는 지인이 최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적은 금액이긴 했지만 매달 정해진 임금을 지급할 테니 마케팅 컨설팅과 같은 고문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최씨도 가벼운 마음으로 승낙했다. 다시 출근할 곳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이 컸다. 그러나 막상 커피숍 운영에 이것저것 조언을 하다 보니, 그가 관여하는 몫이 점점 커졌다. 경영상황이 어려워지자 자신의 퇴직금을 투자했다. 처음 의도와는 달리 지인과 ‘동업으로’ 커피숍을 창업한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 된 것이다. 3년을 꼬박 커피숍 운영에 매달렸지만 결국 이 커피숍은 문을 닫았고, 최씨는 퇴직금을 모두 날리는 상황에 부닥치고 말았다.
은퇴 창업자들이 실패를 겪는 과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퇴직금을 투자해 그럴듯하게 가게를 꾸며 놓으면 사람이 꽤 붐비고 장사도 잘되는 것 같다. 그런데 수익은 남지 않는다. 임대료와 인건비 부담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가족들이 동원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최악의 경우는 가족 간의 갈등이 깊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금융권이나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한 경우는 자신이 직접 창업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주변의 유혹이 많다.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아직 퇴직금이 넉넉할 것’이라고 짐작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기업이나 금융권 출신들의 경우 기존 인맥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작용한다. 손홍택 50플러스재단 컨설턴트는 “중장년층은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는 ’있는 것‘을 잘 지켜야 할 시기인 만큼 더욱 신중히 해야 한다”며 “이런 제의를 받는 경우, 덜컥 수용하기보다는 냉정하게 따져본 뒤 거절할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구직활동에도 '죽음의 계곡' 있다"
김만희 50플러스재단 일자리본부장은 “중장년층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 구간을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스타트업을 운영할 때, 처음 자본금을 투입한 뒤 안정적인 수익이 창출될 때까지 버텨야 하는 도약기를 '죽음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중장년층의 구직활동에도 이와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 은퇴한 뒤 재취업을 위해 ‘지게차 자격증’, ‘전기기사 자격증’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 위해 공부하는 5060 세대가 적지 않다. 그러나 자격증이 있어도 취업 관문을 뚫기란 여전히 어렵다. 관련 분야의 경력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술 교육’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기를 잘 넘어갈 수 있도록 폭넓은 지원책이 필요한 이유다.
그는 “일자리 선택폭을 확대하는 것이 단순히 일자리의 업종을 다양화하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장년층과 일자리 상담을 해보면 실제로도 풀타임 정규직보다는 파트타임이나 인턴 형태의 일자리를 원하는 수요가 많다는 것. 그래서 일자리의 형태나 고용 방식에서도 더욱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vivajh@hankyung.com
[2030 vs 5060 ‘일자리 전쟁’ 해법은? 특별 기획 기사 인덱스]
- “노력해도 안 되더라” 청년 구직자들의 자화상
- “시니어 인턴, 해피엔딩은 영화 속 이야기”
- ‘경단녀’ 울린 노동부 ‘취업 성공 패키지’
- 일자리 문제. ‘4人4色’ 현장에서 답을 찾다
- 4차 산업혁명 시대 ‘뜰 직업’vs‘질 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