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트렌드]
핵심 업무 영역에서 축적된 경험·노하우 파악이 ‘첫걸음’
(사진)= 마블 출판사는 출판 시장이 어려워지자 자사의 만화 캐릭터를 상품화 했다. 사진은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공식 사이트
[한경비즈니스 칼럼=이우창 HSG휴먼솔루션그룹 경영전략연구소장]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따져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와신’은 가시나무에 누워 잔다는 의미고 ‘상담’은 쓰디쓴 곰의 쓸개를 핥는다는 것이다.
즉 ‘목적을 위해 온갖 고난을 참고 견딘다’는 뜻이다. 이 고사는 전국시대 월나라가 갖은 고초 끝에 오나라를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월나라와 오나라는 지금 중국 상하이 인근에 이웃한 두 나라였다. 기름진 땅에 바닷가를 접하고 있으니 먹거리와 수산물이 풍부한 땅이다. 서로 차지하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당연지사. 오나라가 먼저 싸움을 걸었지만 패했다.
복수를 노리는 오나라를 월나라가 침공했지만 이번에도 먼저 싸움을 건 쪽이 졌다. 월나라의 왕 구천은 재상인 범려와 함께 오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다.
오나라 왕은 구천에게 죄수복을 입히고 말을 먹이는 노역을 시켰다. 또 외출할 때면 범려의 등을 밟고 수레를 탔고 구천에게는 말고삐를 잡도록 했다. 구천은 이렇게 오나라에서 별의별 수모를 다 겪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고 이제 분이 풀린 오나라 왕은 구천을 월나라로 돌려보냈다. 구천은 이 원수를 기필코 갚겠다고 이를 갈며 맹세했다. 잠을 잘 때도 돗자리 대신 가시나무를 펴놓고 잤다. 식탁 위에 쓰디쓴 쓸개를 달아놓고 밥을 먹을 때마다 혀로 핥았다.
이런 방법으로 과거의 치욕을 잊지 않도록 자신을 채찍질한 데서 와신상담이라는 고사가 생겼다. 10년 동안 국력을 회복한 월나라는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시켰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 재상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힘, ‘인맥+경험’
두 나라의 흥망성쇠는 여기까지가 끝이다. 하지만 역사책을 넘기다 보면 월나라의 재상이었던 범려가 다시 등장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직자가 아니라 사업가로 나온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범려는 제나라의 ‘도’라는 땅에서 장사로 엄청난 부를 일궜고 번 돈을 쓰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모은 돈을 백성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니 사람들이 그 배포에 감격해 그를 도주공이라고 칭송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쯤 되면 범려라는 인물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일국의 재상까지 올랐던 사람이 은퇴 후 몇 년 만에 재벌 총수가 된 격이다. 아무리 옛날이라지만 능력이 있어야 자리에도 오르고 실력이 있어야 장사를 해도 돈을 버는 법이다. 그리고 관직과 사업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관직에서 내려오자마자 그토록 손쉽게 사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었지 싶다.
범려는 원래 초나라 사람으로 국경무역을 담당하던 관방 상인이었다. 그는 초·월의 동맹 관계가 깊어질 때 두 나라를 오가며 물건을 중개하거나 통역을 담당했다. 그러다가 재정 전문가로 구천에게 임용됐고 그를 도와 오나라를 치게 된 것이다.
결국 장사를 하면서 초·월·오나라의 국경 지방에 대해 쌓아 온 폭넓은 경험이 그를 재상으로 만들었고 국정을 맡으면서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와 지정학적 지식이 그가 다시 상인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바탕이 됐을 것이다.
범려는 자신이 강점을 지닌 분야로 커리어를 바꿨기 때문에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원리는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업은 특정 분야에서 자신의 강점인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사업을 펼쳐 나간다. 그러다 경영 환경이 바뀌어 기존 핵심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 그 사업은 쇠퇴한다.
이때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아야 하는데 새로운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새로운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역량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기존 사업을 수행하면서 쌓아 온 경험이나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역량을 갖추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쪽으로 진출하는 것이 좋다. 범려가 장사를 하면서 쌓아 온 인맥을 바탕으로 관직에 진출하고 공직에서 쌓은 경험을 활용해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기존에 해오던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회사 내부에 축적된 경험이나 역량을 경영학에서는 ‘숨은 자산(hidden asset)’이라고 한다.
최근처럼 경영 여건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는 기존 사업의 사양화 속도가 빨라지고 새로운 분야에 진출할 필요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무작정 달려들기보다 회사 내부에 축적된 숨은 자산에 어떤 것이 있는지 파악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 마블출판사, 만화 캐릭터로 수익 창출
영화 ‘스파이더맨’, ‘헐크’, ‘엑스맨’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방사능을 잘못 쪼였다는 점 말고도 공통점이 있다. ‘마블(Marvel)’ 출판사의 캐릭터라는 것이다.
마블출판사는 1936년부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만화책을 찍어내면서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1990년대 인터넷 사용이 본격화되면서 사람들은 웹툰이라는 공짜 만화책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출판사 영업에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돌파구가 필요해진 마블은 자사의 자산과 역량을 꼼꼼히 따져봤다. 마블은 70년 이상 자사의 만화책에 등장한 5000여 개의 캐릭터들이 자사의 숨은 자산이 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숨은 자산인 캐릭터들을 영화사에 팔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캐릭터 판매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출판 수입을 훌쩍 뛰어넘었다.
마침내 2009년 마블 캐릭터로 영화를 만들기에 재미가 들려 있던 디즈니가 40억 달러를 주고 마블을 인수했다. 이는 만화 출판사로는 엄청난 가격이었다. 디즈니가 지불한 금액의 대부분은 캐릭터에 대한 대가였다.
새로운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숨은 자산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자주 활용되는 것은 기존 사업을 해오면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다.
예를 들어보자. 과거 필름 시장은 코닥과 후지가 양분하고 있었다.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코닥이나 후지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두 기업의 운명은 서로 달랐다.
코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반면 후지는 ‘아스타리프트’라는 주름 방지 화장품으로 시장에서 나름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어느 날 갑자기 후지가 ‘필름 사업도 시원하지 않은데 화장품 한번 만들어볼까’ 하고 시장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신사업을 고민하던 경영진은 자사의 숨은 자산 중 시장성이 있는 것이 무엇일지 찾아봤고 그 결과 콜라겐 특허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사진이 오래되면 선명하던 색이 누렇게 변한다. 이렇게 사진의 빛이 바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화지 표면의 수분이 공기 중으로 날아가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떻게 수분이 증발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고 그런 역할을 해줄 물질로 찾아낸 것이 바로 콜라겐이었다. 사람의 피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푸석푸석해지고 주름이 생기게 되는 이유는 피부 세포 속의 수분 함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세포 속의 수분을 잡아줄 수 있는 물질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콜라겐이 인화지의 수분뿐만 아니라 세포 속의 수분을 유지해 주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후지는 필름 사업을 해오면서 수분을 잡아주는 콜라겐 기술을 ‘숨은 자산’으로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활용해 새로운 분야에 진출할 수 있었다.
◆ GE,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
최근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통해 조만간 세계 10대 소프트웨어 회사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제조업 기업에서 첨단 정보기술(IT) 기업으로 변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전통 제조 기업들이 최신 IT 기업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항공기 엔진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항공사는 엔진을 구매하는 것만큼이나 유지·보수에도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GE는 디지털 트윈이라고 불리는 현실과 똑같은 컴퓨터 가상공간에서 미리 엔진을 운용해 보고 유지·보수 작업의 내용과 시기를 각 기계에 맞게 제안한다. 디지털 트윈에서 얻은 데이터를 실제 GE 엔진을 사용하는 고객에게 제공함으로써 고객사의 비용을 수백만 달러나 절감해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의 핵심은 IT 자체라기보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술이다. GE가 남들보다 이 분야에서 앞서갈 수 있는 이유는 인프라 분야에서 오랜 세월 비즈니스를 해오면서 축적된 기계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엔진이라고 해도 단거리 위주의 비행 빈도가 높은 국내선과 장거리지만 비행 빈도가 낮은 국제선은 유지·보수 시기가 천차만별이다. 이런 특성이 가상공간에서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는 축적된 데이터의 양이 엄청나야 하기 때문이다.
GE는 수십 년간 쌓아 온 데이터와 노하우를 숨은 자산 삼아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해 보자.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면 활용할 자산이 어떤 것이 있는지부터 먼저 확인하도록 하자.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면 실패할 위험을 훨씬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범려가 살았던 2500년 전이나 GE가 존재하는 현재나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핵심 업무 영역에서 축적된 경험·노하우 파악이 ‘첫걸음’
(사진)= 마블 출판사는 출판 시장이 어려워지자 자사의 만화 캐릭터를 상품화 했다. 사진은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공식 사이트
[한경비즈니스 칼럼=이우창 HSG휴먼솔루션그룹 경영전략연구소장]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따져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와신’은 가시나무에 누워 잔다는 의미고 ‘상담’은 쓰디쓴 곰의 쓸개를 핥는다는 것이다.
즉 ‘목적을 위해 온갖 고난을 참고 견딘다’는 뜻이다. 이 고사는 전국시대 월나라가 갖은 고초 끝에 오나라를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월나라와 오나라는 지금 중국 상하이 인근에 이웃한 두 나라였다. 기름진 땅에 바닷가를 접하고 있으니 먹거리와 수산물이 풍부한 땅이다. 서로 차지하겠다고 달려드는 것은 당연지사. 오나라가 먼저 싸움을 걸었지만 패했다.
복수를 노리는 오나라를 월나라가 침공했지만 이번에도 먼저 싸움을 건 쪽이 졌다. 월나라의 왕 구천은 재상인 범려와 함께 오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다.
오나라 왕은 구천에게 죄수복을 입히고 말을 먹이는 노역을 시켰다. 또 외출할 때면 범려의 등을 밟고 수레를 탔고 구천에게는 말고삐를 잡도록 했다. 구천은 이렇게 오나라에서 별의별 수모를 다 겪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고 이제 분이 풀린 오나라 왕은 구천을 월나라로 돌려보냈다. 구천은 이 원수를 기필코 갚겠다고 이를 갈며 맹세했다. 잠을 잘 때도 돗자리 대신 가시나무를 펴놓고 잤다. 식탁 위에 쓰디쓴 쓸개를 달아놓고 밥을 먹을 때마다 혀로 핥았다.
이런 방법으로 과거의 치욕을 잊지 않도록 자신을 채찍질한 데서 와신상담이라는 고사가 생겼다. 10년 동안 국력을 회복한 월나라는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시켰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 재상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힘, ‘인맥+경험’
두 나라의 흥망성쇠는 여기까지가 끝이다. 하지만 역사책을 넘기다 보면 월나라의 재상이었던 범려가 다시 등장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직자가 아니라 사업가로 나온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범려는 제나라의 ‘도’라는 땅에서 장사로 엄청난 부를 일궜고 번 돈을 쓰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모은 돈을 백성들에게 아낌없이 나눠 주니 사람들이 그 배포에 감격해 그를 도주공이라고 칭송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쯤 되면 범려라는 인물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일국의 재상까지 올랐던 사람이 은퇴 후 몇 년 만에 재벌 총수가 된 격이다. 아무리 옛날이라지만 능력이 있어야 자리에도 오르고 실력이 있어야 장사를 해도 돈을 버는 법이다. 그리고 관직과 사업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관직에서 내려오자마자 그토록 손쉽게 사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었지 싶다.
범려는 원래 초나라 사람으로 국경무역을 담당하던 관방 상인이었다. 그는 초·월의 동맹 관계가 깊어질 때 두 나라를 오가며 물건을 중개하거나 통역을 담당했다. 그러다가 재정 전문가로 구천에게 임용됐고 그를 도와 오나라를 치게 된 것이다.
결국 장사를 하면서 초·월·오나라의 국경 지방에 대해 쌓아 온 폭넓은 경험이 그를 재상으로 만들었고 국정을 맡으면서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와 지정학적 지식이 그가 다시 상인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바탕이 됐을 것이다.
범려는 자신이 강점을 지닌 분야로 커리어를 바꿨기 때문에 쉽게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원리는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업은 특정 분야에서 자신의 강점인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사업을 펼쳐 나간다. 그러다 경영 환경이 바뀌어 기존 핵심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 그 사업은 쇠퇴한다.
이때 새로운 성장 엔진을 찾아야 하는데 새로운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새로운 역량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역량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기존 사업을 수행하면서 쌓아 온 경험이나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역량을 갖추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쪽으로 진출하는 것이 좋다. 범려가 장사를 하면서 쌓아 온 인맥을 바탕으로 관직에 진출하고 공직에서 쌓은 경험을 활용해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기존에 해오던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회사 내부에 축적된 경험이나 역량을 경영학에서는 ‘숨은 자산(hidden asset)’이라고 한다.
최근처럼 경영 여건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는 기존 사업의 사양화 속도가 빨라지고 새로운 분야에 진출할 필요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무작정 달려들기보다 회사 내부에 축적된 숨은 자산에 어떤 것이 있는지 파악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 마블출판사, 만화 캐릭터로 수익 창출
영화 ‘스파이더맨’, ‘헐크’, ‘엑스맨’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방사능을 잘못 쪼였다는 점 말고도 공통점이 있다. ‘마블(Marvel)’ 출판사의 캐릭터라는 것이다.
마블출판사는 1936년부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만화책을 찍어내면서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1990년대 인터넷 사용이 본격화되면서 사람들은 웹툰이라는 공짜 만화책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출판사 영업에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돌파구가 필요해진 마블은 자사의 자산과 역량을 꼼꼼히 따져봤다. 마블은 70년 이상 자사의 만화책에 등장한 5000여 개의 캐릭터들이 자사의 숨은 자산이 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숨은 자산인 캐릭터들을 영화사에 팔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캐릭터 판매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출판 수입을 훌쩍 뛰어넘었다.
마침내 2009년 마블 캐릭터로 영화를 만들기에 재미가 들려 있던 디즈니가 40억 달러를 주고 마블을 인수했다. 이는 만화 출판사로는 엄청난 가격이었다. 디즈니가 지불한 금액의 대부분은 캐릭터에 대한 대가였다.
새로운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숨은 자산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장 자주 활용되는 것은 기존 사업을 해오면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다.
예를 들어보자. 과거 필름 시장은 코닥과 후지가 양분하고 있었다.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은 코닥이나 후지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두 기업의 운명은 서로 달랐다.
코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반면 후지는 ‘아스타리프트’라는 주름 방지 화장품으로 시장에서 나름 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어느 날 갑자기 후지가 ‘필름 사업도 시원하지 않은데 화장품 한번 만들어볼까’ 하고 시장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신사업을 고민하던 경영진은 자사의 숨은 자산 중 시장성이 있는 것이 무엇일지 찾아봤고 그 결과 콜라겐 특허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사진이 오래되면 선명하던 색이 누렇게 변한다. 이렇게 사진의 빛이 바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화지 표면의 수분이 공기 중으로 날아가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떻게 수분이 증발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고 그런 역할을 해줄 물질로 찾아낸 것이 바로 콜라겐이었다. 사람의 피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푸석푸석해지고 주름이 생기게 되는 이유는 피부 세포 속의 수분 함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세포 속의 수분을 잡아줄 수 있는 물질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콜라겐이 인화지의 수분뿐만 아니라 세포 속의 수분을 유지해 주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후지는 필름 사업을 해오면서 수분을 잡아주는 콜라겐 기술을 ‘숨은 자산’으로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활용해 새로운 분야에 진출할 수 있었다.
◆ GE,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
최근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통해 조만간 세계 10대 소프트웨어 회사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제조업 기업에서 첨단 정보기술(IT) 기업으로 변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전통 제조 기업들이 최신 IT 기업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항공기 엔진을 예로 들어 살펴보자. 항공사는 엔진을 구매하는 것만큼이나 유지·보수에도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GE는 디지털 트윈이라고 불리는 현실과 똑같은 컴퓨터 가상공간에서 미리 엔진을 운용해 보고 유지·보수 작업의 내용과 시기를 각 기계에 맞게 제안한다. 디지털 트윈에서 얻은 데이터를 실제 GE 엔진을 사용하는 고객에게 제공함으로써 고객사의 비용을 수백만 달러나 절감해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의 핵심은 IT 자체라기보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술이다. GE가 남들보다 이 분야에서 앞서갈 수 있는 이유는 인프라 분야에서 오랜 세월 비즈니스를 해오면서 축적된 기계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엔진이라고 해도 단거리 위주의 비행 빈도가 높은 국내선과 장거리지만 비행 빈도가 낮은 국제선은 유지·보수 시기가 천차만별이다. 이런 특성이 가상공간에서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하기 위해서는 축적된 데이터의 양이 엄청나야 하기 때문이다.
GE는 수십 년간 쌓아 온 데이터와 노하우를 숨은 자산 삼아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정리해 보자.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면 활용할 자산이 어떤 것이 있는지부터 먼저 확인하도록 하자.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면 실패할 위험을 훨씬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범려가 살았던 2500년 전이나 GE가 존재하는 현재나 기업과 개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