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비은행부문 강화 '20-20 전략' 등 장미빛 비전 제시
글로벌 개척, 정부 지원 '미지수'…국책은행 정체성 '짐' 되나
[한경 머니 = 한용섭 기자]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은 지난 4월 6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글로벌 부문과 비은행 부문을 각각 20%대로 성장시키는 장밋빛 플랜을 제시했다. 과연 국책은행이라는 성장 딜레마에 부딪혀 번번이 고개를 숙여야 했던 과오를 밟지 않을지 주목된다.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의 경영 비전은 경영 전략통답게 거침이 없었다. 우선 불확실해진 금융환경에 대응해 은행권에서는 선도적으로 비상 경영 체제로 전환해 매주 금융·경영 상황 점검회의를 진행키로 한 것은 진중한 그의 경영 스타일이 드러난 대목이었다는 평가다.
IBK기업은행의 미래 비전과 관련해서는 내부 출신의 은행장답게 확실한 성장 카드를 내걸었다. 전체 수익 측면에서 은행 쏠림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비은행 부문의 비중을 20%대로 끌어올리고, 해외 부문에서의 영업이익도 20%까지 확대한다는 이른바 ‘20-20 전략’을 내놓은 것이다. IBK기업은행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으로 비은행 부문은 14.2%, 해외 부문 수익 비중은 7%에 머물러 있다.
사실 수익 다변화는 전임 은행장들의 숙원 과제이기도 했다. 권선주 전 IBK기업은행장의 경우 비이자수익과 해외 부문을 20%대로 끌어올리는 ‘20-20 전략’을 재임 중 펼쳤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IBK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은행법에 근거한 국책은행이지만 KDB산업은행이나 한국수출입은행과는 달리 일반 시중은행과 시장 경쟁을 펼쳐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지난해 IBK기업은행은 전년 대비 1.2% 증가한 당기순이익(연결기준) 1조1646억 원을 기록했지만 신한금융지주(2조7748억 원, 전년 대비 17.2% 상승), KB금융지주(2조1437억 원, 전년 대비 26.2% 상승), 하나금융지주(1조2613억 원, 전년 대비 47.9% 상승), 우리은행(1조2613억 원, 전년 대비 19.1% 상승) 등과 비교했을 때 답답한 실적 정체성을 겪고 있어 확실한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글로벌 개척, 거북이 행보 바뀔까
김 은행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를 핵심 3국으로 두고 영업망을 확대하는 아시아 금융벨트 구상을 밝혔다. 그가 해외 부문의 확대를 강조한 것은 저금리 상황에서 국내 시장이 실적 성장을 이루기에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도 악재가 분명하다. 김 은행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덜컥 겁이 났다”고 말한 것도 엄살은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과의 금리 경쟁은 소모전이 될 수 있다. 그가 “단기적으로 수신금리를 높게 줘 고객을 끄는 식의 경쟁은 하지 않겠다”며 분명하게 선을 그은 이유다.
IBK기업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정책적 의무가 있는 은행(2016년 중소기업대출 시장 점유율 22.6%)이다. 다른 은행처럼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 부문을 무한정 늘릴 수 없다는 소리다.
이 때문에 성장 활로를 찾아야 하는 IBK기업은행에 있어 글로벌 공략은 숙명의 과제가 되고 있지만 그동안의 성적표는 신통치 못하다. 현재 IBK기업은행의 국외 점포는 총 11개 국가에 27개 점포를 갖고 있으며 중국유한공사를 제외하면 현지법인은 전무하다.
중국유한공사의 현지법인 전환은 지난 2009년 5월에 이뤄졌는데 옛 재정경제부 관료 출신이었던 윤용로 전 IBK기업은행장 재임 시 진행됐다. 이후 내부 출신의 은행장이 3명(조준희, 권선주, 김도진)이나 배출됐지만 지금까지 추가적인 해외법인은 나오지 않고 있다.
김 은행장은 창립 이래 첫 해외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내 법률, 회계 파트너를 선정해 현지 은행 2곳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시장 진출을 도모하고 있는 것. 김 은행장은 내년까지 현지 은행 M&A를 완료해 1998년 외환위기 사태 때 철수했던 인도네시아 시장의 복원을 기대하고 있다. 또 베트남의 경우 현지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며, 캄보디아는 복합점포 형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IBK기업은행의 글로벌 개척에는 수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금융당국의 지원이 절실하다. 지난 2013년에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과 함께 IBK기업은행 등 국내 금융사들이 캄보디아 진출에 공을 들였다가 헛물만 켰던 것도 전폭적인 정부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IBK기업은행 임원 출신의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당국에서는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의 해외 진출을 탐탁지 않아 하는 분위기”라며 “조준희 전 은행장이 ‘5대양 6대주’ 전략으로 현지 은행들과 업무협약을 맺는데 그친 것도 이 같은 당국의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고, 권선주 전 은행장 역시 해외 부문의 대폭적인 확대를 구상했지만 3년간 3개 국가에 지점과 사무소를 내는 데 만족해야 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IBK기업은행의 해외 진출은 다소 늦은 감이 있는데 현재 지점이나 사무소 형태 진출 등 소극적 행보로는 해외 부문 수익 비중 20% 목표는 공수표가 될 수 있다”며 “해외 부문 강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IBK기업은행과 정부당국의 쌍끌이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IBK기업은행이 적극적으로 공략하려는 인도네시아의 경우 이미 시장 자체가 블루오션이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인도네시아는 상업은행의 순이자마진(NIM)에서 한국의 3배 정도 수준인 5.39%를 기록하고 있고, 경제 성장률 5.2%, 세계 4위 규모의 인구 등을 토대로 2010년 이후 꾸준히 연간 5~6% 정도 성장을 기록하는 등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사나 샤리아금융(이슬람 금융) 등이 이미 현지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현지에 진출한 국내 은행만 해도 우리은행(우리소다라은행, 131개 지점 확보), 신한은행(신한인도네시아은행, 현지 60개 지점 확보), KEB하나은행(인도네시아 KEB하나은행, 현지 58개 지점 확보) 등 국내 은행 간 경쟁도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현지 로펌의 한 관계자는 “올해 초 HSBC 홍콩에서 뱅크 이코노미 인도네시아를 합병했으며, 샤리아계 은행들의 영향력도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인도네시아 메이저 은행들은 최근 실적이 좋아 해외에 매각될 가능성이 낮아 보이며, 라보은행 등 일부 소규모 은행에서만 외국 은행의 지분 매입설이 나도는 정도다”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환율 불안 등 금융환경의 악재도 해외 진출의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해외법인에서 이익이 발생하더라도 불안정한 환율 때문에 은행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지점에서의 리스크 발생은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에는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지난해 IBK기업은행은 삼성전자 협력업체인 플렉스컴 베트남법인이 부도나면서 80억 원 손실이 발생하는 등 불똥을 맞기도 했다.
◆비은행 부문 성장, 국책은행 정체성 흔들?
IBK기업은행이 비은행 부문의 확대를 공언한 것은 지난해 자회사 등에서 거둔 눈부신 성적이 바탕이 됐다.
IBK캐피탈은 전년 대비 26.5% 증가한 682억 원의 당기순이익으로 설립 이래 최고 수준의 실적을 냈고, IBK연금보험은 전년 대비 무려 92.7% 늘어난 341억 원의 순이익으로 전체 당기순이익 상승에서 상당한 공헌을 했다. 또 IBK투자증권은 전년 대비 5.94% 상승한 321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냈고, 중국유한공사는 2015년 3분기에 흑자 전환을 한 뒤 탄력이 붙어 지난해에는 192억 원의 순이익으로 전년 대비 405.3% 상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하지만 비은행 부문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전체 순이익에서 은행 부문이 차지하는 부분이 여전히 높다. 비은행 자회사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IBK기업은행은 별도기준으로 지난해 1조267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둬 전년 대비 0.3% 증가하는 신통치 못한 성적을 냈지만 전체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가깝다.
IBK기업은행은 이 같은 고질적인 은행 쏠림 현상을 바꾸기 위해 연초에 지주사 전환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난 1월에는 ‘IBK 중장기 발전 방안’ 컨설팅 용역을 발주하면서 지주사 전환에 대한 검토를 본격적으로 착수하기도 했다. 결국 자회사 간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내부 공감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주사 전환은 금융당국의 문턱 앞에 서지조차 못했다. 금융당국에서 “IBK기업은행의 지주사 전환 문제가 중소기업 발전이라는 명분에 맞는지 모르겠다”며 난색을 보이자 지주사 논의 자체가 급랭하고 만 것이다.
김 은행장은 지난해 12월 취임식에서 “IBK기업은행은 지주 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자회사 간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며 지주사 전환 검토 의사를 보였지만 지난 4월 6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지금 당장 지주사 전환을 추진해야 할 상황은 아니다”라며 말을 바꿨다.
그 대신 김 은행장은 비은행 부문의 강화를 위해 복합점포, 외환·IB(투자은행)·신탁 부문의 수익 강화를 추진키로 했다. 기본적으로 은행을 중심으로 한 이자수익에 한계가 온 만큼 수수료 등 비이자수익을 좀 더 강화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김 은행장은 지난 1월 17일 취임 후 첫 조직 개편에서 외환, 퇴직연금부서를 기업고객그룹에 배치하고, 현 기업고객그룹이 중소기업에 대한 영업과 지원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관, 대기업 조직을 분리해 IB그룹에 편제했다. 또 기존 IB그룹은 명칭을 CIB그룹으로 바꿔 기관, 대기업 영업과 투자 업무를 총괄하게 하는 등 조직을 다듬었다.
하지만 문제는 중소기업대출을 통한 이자수익의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는 점이다. 지난해 부문별 당기순손익을 살펴보면 기업고객 부문에서 1조2억 원의 순이익이 난 반면 개인고객은 2578억 원의 순손실이 발생했다. IB와 외환의 경우 각각 1529억 원과 1189억 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미국의 금리 인상 시기와 맞물려 중소기업들의 여신 상환 능력 및 부실채권 발생 가능성도 부담이 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등에 따르면 영업이익으로도 대출이자를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의 경우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폭증할 가능성이 더 높다. 대출금리가 1.0%포인트 오를 경우 중소기업 가운데 한계기업 비율이 33.3%로 지금보다 3%포인트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중소기업대출을 담당하는 국책은행으로서 금리 인상 시기를 앞두고 중소기업대출 리스크가 증폭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수익 개선을 위해 비은행 부문을 강화하는 것은 정체성 논란까지 불러올 수도 있다.
더불어 정권 교체 시기와 맞물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한 김 은행장의 경우 과거 정권의 인물로 여겨질 수도 있어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질 수 있다. 경북 의성 출신으로 대구 대륜고를 나온 ‘TK(대구·경북) 인사’라는 굴레는 향후 정부당국과의 교감이 강조되는 국책은행 수장 입장에서는 짐이 될 수도 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