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男 그루밍족, 색조화장을 넘보다

[트렌드 =뷰티]
남성 화장품 시장 ‘1조원 시대’…눈썹정리·피부커버까지 진화


(사진)롯데백화점 본점 에스티로더 매장에서 남성고객이 메이크업을 받고 있다.(/롯데백화점)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여성들의 몫으로 분류됐던 색조화장 영역에 진출하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외모 관리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남성을 일컫는 ‘그루밍(grooming)족’이 한 단계 진화한 것이다. 여성 못지않게 화장에 관심이 많은 남성들의 등장으로 화장품 기업들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그 남자가 ‘브로우바’에 가는 이유는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개그맨 김기수 씨는 최근 유튜브 채널을 통해 대중들과 만나고 있다. 그가 택한 콘텐츠는 ‘색조화장’이다. 웬만한 여자들도 부담스러워하는 진한 스모키(눈매를 강조하는 화장), 컨투어링(윤곽을 강조해 주는 메이크업) 등을 시연하며 ‘젠더리스 메이크업(성별 구분이 없는 화장법)’을 알리고 있다.

김기수 씨 외에도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 ‘레오제이’, ‘큐영’, ‘후니언’ 등이 영상 콘텐츠를 통해 실생활에서도 유용한 남성 메이크업을 시연하고 있다.

이는 인터넷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화장하는 남자’에 대한 시선이 관대해지며 메이크업에 관심을 갖는 일반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화장품 기업의 실적이 이를 증명한다. CJ올리브네트웍스가 운영하고 있는 헬스&뷰티(H&B) 스토어 ‘올리브영’에 따르면 남성 화장품 카테고리 매출 성장률은 3년 동안 연평균 40%에 달할 정도로 남성 소비자의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남성 메이크업 제품의 매출액은 2016년 기준 전년 대비 70%나 성장했다.

주목할 점은 남성들의 화장품 구입 패턴이 기초 화장품이나 왁스류를 넘어 색조 메이크업, 제모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코덕(화장품 덕후)’ 사이에서 혁신이라고 불렸던 ‘쿠션 파우더’의 남성용 버전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올리브영의 남성 전용 브랜드 ‘XTM 스타일옴므’에서 선보인 ‘올인원쿠션’ 제품은 스킨케어 및 메이크업 기능을 한 번에 선사하는 간편한 제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2016년 매출이 전년 대비 75%나 증가했다.

지난해 화장품 브랜드 ‘문샷’에서 남성 고객을 겨냥해 가수 지드래곤의 이름을 따 출시한 ‘GD 쿠션’은 출시한 지 2주 만에 준비된 물량 1만 개가 ‘완판’됐다.

아이오페 또한 지난해 남성 전용 에어쿠션인 ‘맨 에어쿠션’을 출시했다. 야외 활동이 많은 남성들을 위해 선블록 기능을 추가했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손에 화장품을 직접 묻히지 않아도 되고 사용이 간편하다는 장점으로 많은 남성들이 팩트형 쿠션 파운데이션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피부 보정을 넘어 최근엔 눈썹 정리에도 관심을 갖는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눈썹은 ‘얼굴의 지붕’으로, 깔끔한 눈썹을 만드는 것은 색조화장을 하기 전 필수적인 준비 단계로 꼽힌다.

화장품 브랜드 ‘베네피트’는 매장에서 직접 눈썹을 정리해 주는 ‘브로우바 뷰티 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다. 2008년 9월 베네피트가 국내에서 ‘브로우바 뷰티 라운지’의 문을 열었을 때에는 고객의 99%가 여성, 1%가 남성이었다.

하지만 2016년 브로우바 뷰티 라운지를 찾은 남성 고객 수는 약 4만 명으로, 전년 대비 약 120%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브로우바를 찾는 남성 고객들의 직업군도 직장인과 군인 등으로 다양해졌다. 연령대 또한 20대에서 50대까지 확산되고 있다.

베네피트 관계자는 “과거 브로우바를 방문한 남성 고객들이 패션모델, 연예인 지망생이었던 반면 요새는 일반 남성들의 방문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셀프로 눈썹을 정리하는 남성도 늘고 있다. 남성 전용 제품으로 작년 5월 출시된 올리브영의 ‘매너남 눈썹칼’은 지난 2월 매출이 출시 월 대비 약 4배 이상 증가했다. 이 제품에는 세 가지 타입의 눈썹 모양 플라스틱 가이드가 포함돼 있어 눈썹 손질에 익숙하지 않은 남성들도 사용하기 편하다.


(사진)올리브영의 '매너남 눈썹칼' (/CJ올리브영)

◆과감한 메이크업보다 깔끔한 인상 추구

시장조사 기관인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의 규모는 이미 1조원을 넘었다. 성장세도 빨라 조만간 1조500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화장품업계 또한 남성 화장품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루밍족이 늘어나면서 남성 고객들은 이미 화장품 업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며 “남성 화장품 시장도 스킨케어 중심에서 색조·기능성 등으로 확대·다변화하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남성 화장품 시장은 남성용 스킨로션·왁스·향수를 지나 더 세밀한 메이크업이 가능한 쿠션용 파운데이션, 눈썹 정리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일반 남성들이 립스틱·아이섀도까지 손을 댈 것이라는 전망은 회의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남성 화장품 시장의 동향을 살펴보면 꾸미기보다 ‘깔끔한 인상’을 만드는 쪽에 초점이 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젠더리스 메이크업’이 대중화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인터뷰 -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 ‘후니언’
“메이크업이 개성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됐으면”


(사진)남성 뷰티크리에이터 '후니언' (/후니언 제공)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 ‘후니언(본명 박상훈)’은 2016년 5월부터 네이버 웹캐스트·브이앱을 통해 메이크업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다음은 후니언과의 일문일답.

‘후니언’님의 콘텐츠를 구독하는 독자들 중 남성의 비율은 어느 정도입니까.

“유튜브 분석 통계에 따르면 구독자의 30%가 남성입니다.”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로서 시중에 나오는 남성 전용 화장품들에 대한 만족도는 어느 수준입니까. 또 화장품 회사에서 ‘화장하는 남자들’을 위해 내줬으면 하는 아이템은 무엇이 있습니까.

“아직까지 ‘남성화장품’은 기초 스킨케어 제품에 편중돼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화장하는 남자들’을 위해 다양한 색상의 파운데이션·컨실러가 나왔으면 좋겠고 컨투어링 제품도 좀 더 어두운 피부를 위한 ‘남성 키트’가 따로 판매됐으면 합니다.”

메이크업의 성별에 경계가 없다는 ‘젠더리스 메이크업’이 일반 남성들 사이에서 유행할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한동안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이 개방적인 사회로 변화됐다고는 하지만 보수적인 부분이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역할을 구분할 때 아직까지는 엄격한 잣대가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남성의 화장도 인정되는 ‘젠더리스 메이크업’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젠더리스 메이크업’보다 메이크업을 개인의 개성으로 인정하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화장에 관심이 많은 남성들을 위한 조언 한마디를 해주신다면.

“남자가 화장한다는 것에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이 많은데, 눈썹 다듬기부터 시작해 깨끗한 피부를 표현하는 메이크업부터 시도해 보면 어떨까요. 시작하는 순간, 잘생겨진 본인 모습에 화장 욕심이 생길 겁니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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