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내서 집 사면 망한다?" 가계 부채의 오해와 진실

SPECIAL REPORTⅡ= 집중 분석 ‘가계 부채’
대출은 자산 늘려가는 과정…‘과도한 빚’ 부르는 투기수요는 문제

한국은행이 지난해 말 발표한 국내 가계 부채 규모는 1344조원이다. 1년 전에 비해 11.7%(141조원) 늘어난 금액이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금융 당국에서 각종 통계자료를 쏟아내고 있지만 문제는 그 진단이 제각각이라는 데 있다. 어떤 통계자료를 보느냐에 따라 현재의 가계 부채 수준이 위기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가계 부채의 ‘무엇이 왜 문제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그저 ‘가계 부채는 문제다’는 식의 막연한 두려움만 쌓여 간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계 부채에 대한 진실과 오해를 짚어봤다.

◆가계 부채 오해 ① “부채는 위험하다?”
A“부채가 다 위험한 것은 아니다. 가계 부채의 증가는 금융이 발전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흔히 ‘좋은 빚’과 ‘나쁜 빚’이 있다고 말한다. 빚을 지는 것은 자산을 늘려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금융 활동의 일부분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대출로 자산을 불려 나가는 것은 생활의 질을 높이고 소비를 증진시키는 선순환으로 이어진다. 좋은 빚이다. 반면 감당하지 못하는 과도한 대출은 개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협하고 나아가 미래를 위태롭게 만들 만큼 파괴력이 크다. 나쁜 빚이다. 따라서 가계 부채의 총량이 늘어난다는 것만으로 위험신호라고 할 수는 없다.

1970~1980년대만 하더라도 ‘집 장만’은 평범한 직장인들에겐 평생의 숙원이었다. 이들은 허리띠를 졸라 매며 월급을 조금씩 모아 월세에서 전세로 집을 넓혀 가며 집을 구매했다. 이때는 ‘부채를 받아’ 집을 사는 이들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의 주택 구매에 대출해 주는 금융시장이 형성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집 장만의 순서가 달라졌다. 돈을 모은 뒤 주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시점이 되면 그동안 모은 자산에 대출을 보태 집을 산다. 그 집에서 살면서 차근차근 대출을 갚아 나가는 것이다.

순서가 조금 달라졌지만 결과적으로 두 가지 방법 모두 성공적으로 자산을 불리는 게 가능하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가계부채센터장은 “부채를 갚아 나가는 것도 큰 의미에서 자기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저축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며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유럽·일본 등 다른 선진국에서도 금융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저축’과 ‘부채’의 결정적인 차이는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저축에 비해 대출은 ‘이자’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저금리 상황에서는 이자비용이 예전에 비해 줄었다.

또 다른 차이는 ‘위기 대응력’이다. 집을 구매하기 위해 저축을 하는 동안 소득이 줄어들 만한 위기가 닥쳤을 때 저축은 위기에 대응하는 안전망 역할을 해준다. 반면 부채는 오히려 위기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매달 꼬박꼬박 갚아야 할 부채 상환액을 줄이는 것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다. 담보(대부분은 주택) 가치나 소득수준을 바탕으로 개인의 ‘무리한 대출’을 막기 위한 일종의 규제 대책인 셈이다. LTV나 DTI가 높아진다는 것은 자기 소득수준에 비해 기존보다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임 센터장은 “더욱이 금리 인상을 앞두고 있는 시점인 만큼 지금의 가계 부채가 개인들의 소비를 제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 수준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계 부채 오해 ② “가계 부채로 경제 위기가 촉발될 수 있다?”
A “현재 국내 가계 부채는 ‘금융 위기’에는 안전한 수준이다. 하지만 가계의 소비를 위축시킴으로써 ‘장기 불황’을 불러올 수 있다.”




국제 신용 평가사인 무디스는 올해 2월 ‘한국의 가계 부채가 생각만큼 큰 걱정거리는 아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가계 부채의 총량이 늘긴 했지만 국민경제 차원에서 채무 상환에 큰 무리가 없기 때문에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로 볼 수 없고 따라서 국가 차원의 위기 요인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쉽게 말해 금융 부채가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갚을 수 있는 금융자산 또한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가계 부채’로 인한 경제 위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까.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에서 시작된 ‘리먼브러더스 파산’이 신호탄이 됐다. 빚을 갚지 못하는 개인들이 늘어나면서 은행·증권과 같은 금융회사들의 자산이 부실해졌고 금융 시스템 전체가 마비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내에 가계 부채로 인해 이와 같은 비극적인 시나리오가 재연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다른 위험이 남아 있다. 금융 시스템이 무너질 위험은 줄어들었지만 채무자인 가계가 무너질 위험은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 부채비율이다. 한국은행에서 분기마다 발표하는 금융 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3분기 말을 기준으로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 부채비율은 151.1%다. 전년 동기(143.7%) 대비 7.4%포인트 상승했다. 가계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상환 부담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2012년 이후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 부채비율 추이에 따르면 국내 가계 부채 증가율은 2015년 들어 급격히 증가했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시절인 2014년 9월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목적으로 LTV와 DTI를 50%에서 각각 70%, 60%로 완화한 영향이다.

이에 비해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은 2015년 4분기 5.2%에서 2016년 3분기 3.5%로 떨어졌다. 금융 안정 보고서에서는 “2016년 이후 가계 부채의 증가율이 비슷한 수준을 이어 간 가운데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이 낮아지면서 가계의 채무 부담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계의 부채 상환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은 가계의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것”이라며 “내수 경기 활성화가 관건인 한국 경제의 상황으로 봤을 때 가계 부채로 인해 소비가 위축되는 것은 상당한 위협 요인”이라고 말했다. 한순간에 경제 시스템이 와르르 무너지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소비 위축으로 서서히 한국 경제를 좀먹으며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경고다.

◆가계 부채 오해 ③“국내 가계 부채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
A “‘풍선 효과’로 비은행권 가계 부채의 질이 악화되고 있다. 가계 부채로 은행 시스템이 무너질 위험은 없지만 저축은행 등이 가계 부채 문제로 무너질 위험은 상대적으로 커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월 금융통화위원회 후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가계 부채가 양적으로 크게 늘어났지만 부채 분포 상황이라든가 가계 금융자산, 부채 현황 등을 감안해 볼 때 가계 부채의 질이 구조적으로 개선되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고정금리·분할상환 비율이 높아지면서 1~3등급의 고신용과 상위 30%의 고소득인 우량한 차주가 금액 기준으로 65%에 이른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는 적어도 ‘은행’ 대출에 대해서는 맞는 말이다. 금융감독원이 4월 20일 발표한 금융권 가계 대출 동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은행권 가계 대출 증가액은 6조원으로 지난해 1분기(9조9000억원)보다 3조9000억원 감소했다.

지난해 초부터 금융 당국이 은행권에 적용한 여신 심사 가이드라인의 영향이다. 금융 당국은 주택 담보대출에서 소득 심사를 강화하고 원금과 이자를 나눠 갚도록 하는 여신 심사 가이드라인을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순차적으로 도입했다.

문제는 여기에 들어오지 못한 대출 희망자들이 제2금융권으로 옮겨 가는 ‘풍선 효과’다. 실제로 대출 규제 강화 이후 기타 금융회사의 가계 대출뿐만 아니라 비은행 예금 취급 기관의 가계 대출 증가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예금은행 가계 대출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2015년 4분기 15%에서 2016년 4분기 9%로 하락했다. 하지만 비은행 예금 취급기관 가계 대출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2015년 4분기 9.9%에서 2016년 4분기 17.1%로 급상승했다.

2016년 4분기 비은행권 가계 대출은 전 분기 대비 29조4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직전 분기인 3분기 증가액인 19조8000억원의 1.5배에 달한다. 비은행권 가계 대출의 증가 속도가 ‘위험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3월 비은행권에도 여신 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면서 상호금융이나 새마을금고의 대출 심사 역시 까다로워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규제 강화의 정도가 은행업권이나 보험업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는 가계 부채의 양적인 증가뿐만 아니라 질 악화 측면에서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비은행권 가계 대출은 상대적으로 은행권보다 대출금리 수준이 높고 대출 조건이 좋지 못한 것이 많다. 더욱이 부채 상환 능력이 취약한 계층을 중심으로 이와 같은 비은행 가계 부채의 대출 증가세가 지속화된다면 대출 부실화 가능성은 더 높아질 수 있다.

◆가계 부채 오해 ④“담보대출은 마이너스통장 같은 신용 대출보다 안전하다?”
“담보대출이 무담보 대출보다 안전하다는 것은 돈을 빌려 준 ‘금융회사’의 얘기다. 돈을 빌린 개인은 담보대출이든 신용 대출이든 ‘갚지 못하는 대출’은 다 위험하다.”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서 자유한국당 선거대책위원회 경제산업 제1본부장을 맡은 김종석 의원은 지난 4월 18일 국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계 부채는 양보다 질이 문제”라며 “한국의 가계 부채 대부분은 중상위 소득 계층이 갖고 있고 담보가 확보된 가계 부채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위험한 부채는 아니다”고 말했다. 문제가 되는 가계 부채는 하위 20%(5분위) 소득 계층의 약 70조원 정도로 전체 약 1400조원 중 작은 부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담보대출이 무담보 대출에 비해 ‘안전한 빚’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의 관점이다. 대출자가 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더라도 ‘담보’를 통해 일정 비율 이상 돈을 돌려받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가계 부채가 은행과 같은 금융회사에 위험하지 않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대출자는 담보대출이든 신용 대출이든 ‘갚지 못하는 대출’은 위험하다. 오히려 주택과 같은 ‘담보’마저 부채로 상환하고 나면 대출자는 생활의 질이 급속도로 하락하는 것은 물론 심각한 재정적 위기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신용 대출의 위험성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주택 담보대출은 10억원짜리 집을 담보로 7억원을 빌릴 수 있고 신용 대출은 개인마다 그 한도가 다르겠지만 최대치로 잡더라도 1000만원을 넘기가 쉽지 않다. 아주 단순하게 비교해 같은 ‘7억원’ 대출이라도 담보대출자는 1명이지만 신용 대출자는 최소 70명이 되는 셈이다.

현재 국내의 신용 대출 규모는 하위 20% 소득 계층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빠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6년 은행권의 마이너스통장 등 신용 대출 규모는 174조8562억원으로 나타났다. 2015년(161조9966억원)에 비해 1년 사이 12조8596억원(7.9%) 증가했다. 2012년 149조419억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4년여 만에 25조원 정도 늘었다.

◆가계 부채 오해 ⑤“가계 부채 위험신호 켜졌는데, 빚내서 집 사는 것은 위험하다?”
“주택 실수요자라면 적당한 대출은 권장할 만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과도한 빚’을 바탕으로 한 투기 수요다.”



흔히 가계 부채의 주범으로 꼽는 것은 ‘빚을 내 집을 사라’는 부동산 정책이라고 얘기한다. 개인의 관점에서 따져보면 굳이 ‘빚을 내 집을 사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자신이 실제로 거주할 집을 구매하는 데 어느 정도의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대출을 통해 자산을 늘려 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정책실장은 “일정한 소득이 있고 대출 후 어느 정도의 기간에 얼마만큼의 금액을 상환하겠다는 계획이 있으며 적어도 중·장기적으로 거주하고자 주택을 구매하는 것이라면 적절한 빚을 통해 주택을 구매하는 것은 권장할 만하다”고 답했다.

문제는 집값의 50~60% 이상 대출을 받아야 할 때다. 실제 한국은 2014년 8월 이후 주택 담보대출 중에서 LTV 60% 이상의 비율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KDI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8월 이후 현재까지 LTV 40% 이하의 주택 담보대출 증가율은 15%, LTV 40~50% 3.1%로 나타났고 LTV 50~60%는 마이너스 14.5%로 나타났다. 반면 LTV 60~70% 이상의 증가율은 67.3%다. LTV 70~80% 구간도 61.7% 증가했다.

송 실장은 “주택 가격 대비 대출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주택 가격이 하락할 때에는 LTV 70%를 웃도는 가구가 증가할 수 있다”며 “아파트 값 상승을 노리고 무리한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매한 이라면 금리 인상과 같은 대내외적인 변수로 가계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같은 우려를 증폭시키는 것은 주택 담보대출 가운데 집단 대출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집단 대출의 60~70%를 차지하는 아파트 중도금 대출은 아파트 분양 시장을 노리는 투기 수요의 무리한 대출을 조장하며 가계 부채의 ‘숨은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1월부터 금융 당국에서 집단 대출 규제 강화에 나섰지만 실거주 목적의 구매자들까지 대출이 제한받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며 갑론을박을 벌이는 중이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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