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부채 어디서부터 풀까…전문가 해법은

SPECIAL REPORTⅡ= 집중 분석 ‘가계 부채’
한국 ‘GDP 대비 가계 부채비율’ 90%…빚 잡으려면 ‘대출 수요’ 파악이 먼저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흔히 가계 부채를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큰 위험 요소라는 말이다. 가계 부채 문제가 심화되며 개인 파산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둘 늘어나면 소비를 위축시키고 내수 경기 침체를 가져올 수 있다. 가계 부채를 단순히 ‘금융’만의 문제로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소비와 고용, 주택 시장, 주거 안정 문제 등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이 시한폭탄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전문가들로부터 가계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제언’을 들어봤다.

◆제언 1


“주택 담보대출이라도 다 같은 주택 담보대출이 아닙니다. 실거주용인지 임대 사업 목적인지를 파악할 만한 통계가 없습니다.”

지금도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등에서는 가계 부채와 관련한 수많은 통계자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 많은 통계자료들 중에서 가계 대출 수요자들의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지표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례로 한국은행은 4월 10일 ‘한계가구 통계를 더 이상 발표하지 않겠다’고 공식화했다. 한국은행은 그동안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가 넘고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은 가구를 한계가구로 분류해 왔다.

한계가구가 국내 가계 부채의 위험성을 실질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가계의 실질적인 소득이나 실물 자산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계의 총체적인 상환 능력을 가늠하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계가구가 150만 명을 넘었다는 발표가 나왔지만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소득수준이 평균 이상 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 연구위원은 “가계 대출자의 현황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통계자료로는 가계 대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불가능하다”며 “총량 규제와 같은 방식의 ‘규제 일변도’의 대책은 은행 대출을 비은행 대출로 옮겨 가는 ‘풍선 효과’만 키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가계 부채의 증가세를 진화하기 위해서는 ‘가계 대출 수요자’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누가 빌린, 어떤 용도의 가계 부채가 얼마나 늘었는지, 이들 계층의 부채 상환 능력 및 부담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등을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각각의 상황에 맞는 대응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연령대, 소득 계층, 취업 종사자 지위 등 다양한 유형별로 가계 부채의 현황을 미시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계자료가 ‘가계 금융 복지 조사’다. 통계청·한국은행·금융감독원이 전국의 2만 표본 가구를 대상으로 1년에 한 번씩 조사해 발표한다. 다시 말해 2017년 국내 가계 부채와 관련한 자료는 2018년 초에야 공개된다는 얘기다.

조 연구위원은 “가계 부채 문제는 시시각각 악화되고 있는데 1년 전의 자료를 반영하기에는 너무 늦다”고 꼬집었다.

이 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행은 최근 신용 평가사들로부터 100만 명의 가계 부채 데이터베이스(DB)를 확보한 바 있다. 물론 이 역시도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계 부채는 ‘가계’의 단위로 살펴봐야 하지만 신용 평가사의 DB는 ‘개인’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령대나 소득 계층별 가계 대출 수요를 살펴보는 데는 유용한 자료일 수 있다. 다만 한국은행이나 금융감독원 등에서 이와 같은 DB를 확보하고 있지만 자료를 공개하는 데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조 연구위원은 “분기마다 발표하는 금융 안정 보고서 등에 일부 자료를 반영하고 있지만 부족하다”며 “보다 적극적으로 이와 같은 미시 통계자료를 발표하고 활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언 2


“국내 가계 부채는 총량, 증가 속도, 질적인 문제까지 모두 위험 수준입니다.”

국내 가계 부채에 대한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정책실장의 결론이었다. 그는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비율’을 먼저 꺼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올해 1월 발표한 ‘장기적·단기적 관점에서 가계 부채의 실질적인 영향’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GDP 대비 가계 부채비율은 상위 30개 국가 중 여덟째로 높다. 2016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89% 수준이며 올해는 90%를 웃도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는 미국 79%, 일본 62%, 유로존 58%보다 높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0%)에 비해 20%포인트나 높다. 증가 속도도 매우 빠르다. 송 박사는 “2016년 89%는 2015년에 비해 4.5%포인트 증가한 것”이라며 “BIS 가입 42개국 중 셋째로 빠른 속도”라고 설명했다.

송 실장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가계 부채의 질적 구조다. KDI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년간 가계 대출은 246조5000억원 정도 늘어났다. 문제는 이 중 집단 대출이 29조원, 제2금융권 대출이 93조원으로 전체 대출 증가액의 49.5%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주택 담보대출에서 ‘집단 대출’의 비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2016년 1~6월 중 주택 담보대출 증가 규모는 23조8000억원인데, 이 중 집단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49%다. 집단 대출은 아파트 신규 분양, 재건축 및 재개발 과정에서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개별 심사 없이 일괄 승인으로 이뤄지는 대출을 말한다.

송 실장은 “예를 들어 부모가 대학생인 자녀의 이름으로 청약통장을 대신 넣어주고 자녀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면 자동적으로 3억~4억원의 일시 대출이 가능하다”며 “이들 중 다수가 투기 수요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집단 대출은 2015년 이후 분양 시장의 호조에 힘입어 큰 폭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집단 대출이 국내 가계 부채의 ‘숨은 뇌관’으로 지목되는 것은 이처럼 대출자의 자녀와 친척 등 소득이 없는 이들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주를 목적으로 주택을 구매하는 실수요자들은 상대적으로 주택 가격에 덜 민감하다. 하지만 투기 수요자들은 금리 인상이나 주택 가격의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가계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매하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송 실장이 제안하는 가계 부채 해결의 실마리 역시 이와 같은 ‘소득이 없는’ 대출 수요, 즉 ‘투기 수요’를 잡는 것이다. 집단 대출은 물론 일반 대출에서도 이와 같은 투기 수요를 가능한 한 배제하도록 해야 한다.

지난 1월부터 집단 대출 규제를 위해 소득 증빙을 강화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그는 “현재 집단 대출은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보지 않고 있다”며 “DTI만 도입해도 ‘소득이 없는’ 자녀나 친척 명의로 대출을 받는 수요가 대부분 없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 제언 3


“한국의 집값이 떨어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자신할 수 있습니까?”

국내 가계 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묻는 질문에 한국금융연구원의 임진 가계부채센터장은 지난해 뉴욕에서 글로벌 투자은행(IB)들과 가졌던 세미나 얘기를 먼저 들려줬다. 임 센터장이 이들에게 ‘왜 한국의 가계 부채가 문제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들이 내놓은 대답이었다.

한국 정부가 아무리 주택 시장을 정책적으로 떠받친다고 하더라도 인구구조의 변화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국내 가계 부채의 대부분이 주택 담보대출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구조의 변화’가 향후 가장 큰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임 센터장은 개인 파산은 기업 파산과 근본적으로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인 만큼 파산하면 없애는 게 맞지만 개인은 파산하면 누군가 도와줘야 삶을 지속할 수 있다”며 “이때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의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변 사람이든, 은행이든, 정부든 누군가는 ‘갚지 못한 대출 비용’을 책임져야 한다. 무조건 ‘정부’가 책임을 지는 것도 온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결국 납세자의 돈으로 해결하는 것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도와줘야 할지’ 기준을 정하는 것 또한 어려운 문제다. 임 센터장은 “국민행복기금과 같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탕감 정책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라며 “결국은 법원이 일대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계 부채는 개개인들의 상황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일관된 잣대를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국민행복기금과 같은 행정명령 방식의 일관된 부채 탕감은 그만큼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본 법원의 ‘개인 파산’ 심리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개했다. 법원은 저마다의 피치 못할 사정을 들어본 뒤 개인 파산자들을 ‘과소비형’이나 ‘생계형’과 같은 방식으로 구분한다. 의료비나 교육비와 같이 피치 못할 사정이 인정되는 ‘생계형’ 파산자들은 파산 절차도 간단하고 금방 재활할 수 있도록 지원도 많이 해준다. 반면 과소비로 인한 파산으로 판명난 개인 파산자들은 굉장히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심리하는 절차도 까다롭고 오래 걸린다. 탕감 액수도 적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신용 불량자로 남아 있게 하는 식이다.

임 센터장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개인파산제도’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취약 계층의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경비즈니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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