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4개월 만에 탄핵론과 마주한 트럼프

[글로벌 현장]
FBI 국장 경질 도화선…탄핵 전제로 ‘부통령 승계설’도 수면 위로

[워싱턴(미국)=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 4개월 만에 탄핵 위기에 몰리고 있다. 측근들의 러시아 내통 의혹을 조사 중이던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지난 5월 9일(현지 시간) 전격 해임하면서부터다.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정보 당국의 수장을 경질함으로써 중대한 ‘사법절차 방해’ 행위를 저질렀다는 게 탄핵론의 핵심이다. 코미 전 국장 해임 1주일 만에 특별검사까지 임명돼 트럼프 대통령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트럼프의 사법 방해 활동 규명이 핵심

제프 세션스 미 법무장관을 대신해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총괄하고 있는 로드 로즌스타인 법무 부장관은 5월 17일 사건 수사를 담당할 특별검사(special counsel)에 로버트 뮬러 FBI 전 국장을 임명했다.

뉴욕타임스가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 중단 압력 의혹을 보도한 지 하루 만이다. 보도 후 민주당뿐만 아니라 공화당에서도 특검 임명 요구가 들끓기 시작했다.

로즌스타인 부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법무장관 대행으로서 특검을 임명하는 일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어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번 특검 결정이 범죄행위가 있었다거나 어떤 기소를 보장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특검 임명권을 가진 세션스 장관은 러시아 스캔들의 ‘몸통’으로 알려진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 대사와 지난해 대통령 선거 기간에 만난 사실을 숨겼다가 발각돼 이번 수사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뮬러 특별검사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FBI를 이끈 인물로, ‘원칙주의자’로 통한다.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던 민주당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인선”이라며 환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에서 “철저한 수사를 통해 내 선거캠프가 어떤 외국 기관과도 내통하지 않았다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 확인될 것”이라며 “이른 시일 내 결론이 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특검은 앞으로 대선 과정에 러시아가 개입했는지, 트럼프 대선 캠프 인사들이 러시아 측과 공모했는지 여부,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 개입 여부 등을 수사한다.

특검은 법무부로부터 예산과 인력을 지원받지만 법무장관에 대한 보고 의무는 없다. 하지만 법무장관은 수사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수사 결과를 공개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별검사는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 소속 판사 세 명이 임명하는 독립검사(independent counsel)와 업무 성격이 비슷하지만 법으로 훨씬 더 강한 독립성을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사법 방해 행위’가 있었는지를 밝히는 게 특검 활동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 전 국장을 해임하기 전 측근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라고 압력을 행사한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사법 방해 행위로 기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백악관은 수사 중단 요구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 중단 요구가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사법 방해에 따른 범죄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을지는 분명하지 않다. 현직 대통령을 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법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

◆공화당, 꿈쩍 안 하는 이유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한 데도 공화당 의원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분석했다. 아직 드러난 위법 사실이 없고 민주당의 정치 공세에 말려들 필요가 없으며 트럼프 대통령을 배신했다가 내년 중간선거에서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미국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 탄핵 사유는 반역죄, 뇌물죄, ‘중대한 범죄와 비행’이다. 미국 건국 이후 탄핵결의안이 발의된 것은 세 차례다. 세 차례 탄핵 결의안은 모두 ‘사법 방해’를 근거로 했다. 1868년 앤드루 존슨, 1974년 리처드 닉슨, 1998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각각 탄핵결의안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탄핵 당한 사람은 없다.

미국의 대통령 탄핵 절차는 탄핵결의안이 하원과 상원을 차례로 통과하면 끝난다. 한국처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처리한 후 헌법재판소를 거칠 필요가 없다. 하원에서는 과반 찬성으로, 상원에서는 재적 의원(100명)의 3분 2 이상(최소 67명)이 찬성하면 대통령 탄핵 절차가 마무리된다.

현재 양원 의석 구도상 하원에서 최소 24명, 상원에서 19명 이상의 공화당 이탈자가 나와야 가능하다. 현재로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그린버그는 “워터게이트 사건 때는 그것이 치명적인 사태라는 공화당 의원들의 공감대가 있었고 그것이 (닉슨 전 대통령이 사임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했다”며 “그러한 초당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전까지 대통령 탄핵 논의는 공화당 의원들의 몽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학자인 션 윌런츠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5월 11일 프로젝트신디케이트 기고문을 통해 이번 사건이 탄핵 결의로 이어지기 힘든 이유를 두 가지로 들었다.

우선 대통령이 사법 방해에 연루된 뚜렷한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공화당이 상·하원의 다수를 장악하고 있어 탄핵결의안 처리도 어렵다는 것이다.

윌런츠 교수는 “당시엔 워싱턴포스트 같은 언론이 끊임없이 닉슨 전 대통령을 압박했지만 지금은 폭스뉴스·브레이트바트뉴스와 블로거 등이 트럼프의 주장을 계속 내보내고 있다”며 달라진 언론 환경도 탄핵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전제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승계론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한 공화당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수사 중단 요구가 사실이라며 “펜스 부통령은 아마 (대통령이 되기 위한) 예행연습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는 닉슨 전 대통령 때와 똑같다”고 말했다.

미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탄핵당하거나 사임할 경우 대통령직은 부통령이 승계한다.

보수 평론가인 에릭 에릭슨은 “펜스 부통령이 대기하고 있는데, 공화당 의원들에게 그(트럼프 대통령)가 필요할 이유가 없다”며 “이제 공화당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포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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