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인사이드]
‘위험론’ 시기상조지만 ‘깜깜이 공시’ 강화해야 투자자 보호 가능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지난 3월 미국의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뉴욕증권거래소의 주식담보대출이 2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적신호’가 켜졌다고 보도했다. 2000년과 2008년 뉴욕 시장은 물론 전 세계 투자자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폭락을 연출하기 전 주식담보대출의 비율이 급격하게 높아졌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최근에는 중국 증시도 주식담보대출 급증을 경계하고 있다. JP모간체이스는 2015년 6월 중국 증시가 폭락하기 전에도 주식담보대출이 사상 최대치에 이르렀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주식담보대출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담보대출의 증가세가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0대 그룹 주식담보대출 2년 새 7000억 늘어
#1. 지난 5월 12일 눈에 띄는 공시가 있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하나금융투자로부터 롯데쇼핑의 주식 총 3만5141주를 담보로 신규 대출 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신 회장은 지난 2월에도 KEB하나은행과 롯데쇼핑 주식 112만5000주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2. 지난 3월에는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이 회사 지분 2.63%(63만9391주)를 514억원에 매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앞서 최 부회장은 매입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중인 SK D&D 지분 일부(1600만 주)를 한국투자증권에 담보로 맡기고 500억원을 대출받았다.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주식 투자자가 증권사 등에서 보유 주식을 담보로 특정 기간을 정해 현금을 빌리는 ‘주식담보대출’의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15일을 기준으로 국내의 주식담보대출(예탁증권 담보 융자) 잔액은 14조255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5월 16일 12조739억원과 비교하면 1년 사이에 18%(2조1819억원) 정도 늘어난 금액이다.
지난 4월 26일(14조6454억원)에는 총액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저 수준이었던 2008년 3조2712억원과 비교하면 4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별 ‘주식담보대출 잔액’에 대한 통계자료는 현재 발표되지 않고 있다.
위의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주식담보대출은 기업의 대주주나 최고경영자(CEO) 등이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 주식담보대출은 주식을 담보로 잡히더라도 의결권을 그대로 행사할 수 있다.
특히 대기업 오너 일가는 그룹 지배력 강화나 계열사 지원 등을 위한 자금 조달 수단으로 주식담보대출을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10대 그룹 총수의 주식담보대출액은 2015년 10월 말 약 1조3600억원 규모에서 지난 2월 약 2조600억원으로 7000억원 가까이 불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에는 코스닥 상장사 CEO들의 주식담보대출도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대 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 담보 제공 계약 체결’은 2015년 전체 상장사 중 5건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는 82건으로 급증했다. 이와 같은 추세를 봤을 때 적어도 국내 주식담보대출 잔액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현재 국내 주식담보대출 잔액을 봤을 때 국내 증시에 영향을 끼칠 만한 위험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은 “주택담보대출이 주택을 담보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식 또한 분명 담보로서 가치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특히 경영자가 자신의 경영권을 지키면서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대출을 활용하는 것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국내 증시가 모처럼 활기를 띠는 상황에서 주식담보대출이 늘어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미국과 같은 글로벌 주식시장들에 비해 국내는 이 같은 서비스가 초기 단계”라며 “미국만 하더라도 사실상 담보대출이라고 할 수 있는 환매조건부매매(RP)를 할 때 주식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는 주로 채권으로만 거래하는 수준”이라고 예를 들었다.
◆‘주식담보대출=주가 하락’은 아냐
현재 국내 코스닥과 유가증권시장을 모두 더한 시가총액은 1500조원대 정도인데 그중 주식담보대출은 14조원으로 1%가 채 못되는 수준이다.
향후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주식의 담보 가치’가 인정받을수록 이를 활용한 금융 서비스와 상품이 더욱 활성화될 여지가 크다. 결론적으로 서비스의 발전 단계와 주식담보대출의 규모로 봤을 때 우려를 표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주식담보대출 또한 ‘대출’인 만큼 늘 잠재적인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국내 증권사들과 은행은 주식이 주택에 비해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담보 가치를 더욱 보수적으로 책정한다.
국내 증권사와 은행들은 100만원짜리 주식을 대략 50만~70만원 정도만 담보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때 만약 주가가 담보권 설정가(50만~70만원) 밑으로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증권사와 은행은 담보로 잡힌 주식을 ‘반대매매’로 시장에 내놓거나 추가 담보 또는 자금 상환 계획을 대출 실행 전에 약정 받는 식으로 관리한다.
여기서 말하는 ‘반대매매’는 대출자가 빌린 돈을 약정한 만기 안에 변제하지 못할 때 증권사가 대출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식을 강제로 일괄 매도 처분하는 매매를 일컫는다. 이에 따라 반대매매를 통해 주식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면 주가가 추가로 급락할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2012~2013년 A사의 주가 폭락 사태다. 당시 A사는 공매도 비율이 35%를 넘어서면서 최대 주주인 오너 경영인이 ‘공매도와의 전쟁’을 선포하기에까지 이르렀다. 하락장에 베팅하는 공매도는 일반적으로 주가 하락의 주범으로 꼽힌다. A사의 오너 경영인은 수백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하는 등 격한 반응을 보였지만 오히려 주가는 추가 하락했다.
그런데 오너 경영인이 극단적으로 주가 방어에 집착한 이유로 꼽히는 것이 주식담보대출이다. 당시 그가 A사의 주식을 담보로 받은 대출은 대략 4100억원으로 파악되는데, 공매도로 담보 가치(주가)가 하락하면 반대매매가 들어오거나 혹은 자신이 가진 주식을 추가 담보로 더 제공해야 하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황 실장은 “대주주가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가 여러 다른 변수들로 인해 주가가 급락하게 되면 경영자는 굉장히 큰 자금 압박에 시달릴 수 있고 이것이 추가적인 주가 하락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게 사실”이라며 “다만 이와 같은 몇몇 최악의 경우를 예로 들어 ‘대주주의 주식담보대출=주가 하락’이라는 등식을 세우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개인 투자자가 이를 따져볼 정보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현재는 기업들이 대주주의 주식담보대출 계약 체결에 대해 공시하도록 돼 있지만 이 자금을 어디에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공시 의무가 없다. 따로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해 기업이나 증권사 등에 문의해도 제대로 된 답변을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면 실제로 대주주의 주식담보대출이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얼마나 될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에프앤가이드에 5월 17일을 기준으로 지난 6개월간 공시된 ‘의결권 있는 주식에 대한 담보 제공 계약’ 종목의 주가 변화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지난 6개월간 대주주의 주식담보대출 계약 체결이 공시된 건수는 모두 491건이었는데, 그중 주식담보대출 시점과 비교해 주가가 하락한 것은 208건(42%)이었다.
에프앤가이드의 분석 결과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491건 중 담보대출을 받은 시점과 5월 17일을 비교했을 때 자산 가치가 가장 크게 불어난 종목 중 증가 폭은 275.97%에 달한 반면 자산 가치가 가장 크게 하락한 폭은 마이너스 70.96%였다. 기업 오너나 CEO가 주식담보대출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면서도 자산 가치를 키우는 기업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에프앤가이드 관계자는 “주식담보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기업의 담보 가치(주가) 변화는 천차만별”이라며 “주식담보대출을 주가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주식 투자자로서는 대주주가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이 공시되는 것만으로도 해당 대주주의 재무 상황이 불안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십상이다. 이는 향후 기업의 주가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개인 대출에는 온갖 규제와 제한이 가해지는 반면 기업 대주주 등에 대한 주식담보대출에는 규제가 거의 없다”며 “주식담보대출에 대한 공시 등 안전장치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vivajh@hankyung.com
‘빚내서 투자’ 조장하는 증권사, 고리대금 장사 중?
주식담보대출 급증의 이면에는 국내 증권사들의 수익 다각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수료에 치중해 온 증권사들은 수수료 수익이 감소하면서 신용대출과 주식담보대출 등 이자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금리 시대에도 불구하고 증권사들이 ‘주식담보대출’에 대해 여전히 높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어 ‘고리대금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예탁증권 담보 융자와 신용거래 융자 이자율은 증권사마다 차이가 있고 기간·등급별로도 다르다. 5.0%에서 12.0%로 편차가 7%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투자협회 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예탁증권 담보 융자 이자율을 공시한 증권사 16곳 중 1~15일 기준으로 이자율이 가장 높은 곳은 KB증권(옛 KB투자증권)으로 11.7%를 받고 있다. KTB투자증권(8.5%)과 대신증권(8.5%) 등이 그 뒤를 잇고 있고 미래에셋대우가 6.0%로 가장 낮았다.
신용거래 융자 이자율은 국내 증권사 32곳 중 키움증권과 KB증권(구 KB투자증권)은 대출 기간 1~15일에 각각 11.8%, 11.7%로 업계 최고 수준을 받고 있다. 시중은행의 일반 신용 대출 평균 금리가 4~5%인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기준금리 수준으로 신용 융자 거래 자금을 조달하면서 고객에게는 고금리를 부과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2012년 이후 2%포인트 하락했지만 이들 증권사들의 예탁증권 담보 융자를 포함한 신용 융자 금리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최근 2년간 세 차례의 기준금리 인하 과정에서 국내 주요 증권사 32곳 가운데 23곳은 2년 전 이자율을 그대로 사용 중이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이르면 올해 증권사들의 높은 신용 융자 금리에 대한 적정성을 점검하고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신용 융자 이자율 산정 체계는 증권사별로 자율적인 문제이지만 투자자들에게 불합리하게 산정된다면 합리적 기준을 제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위험론’ 시기상조지만 ‘깜깜이 공시’ 강화해야 투자자 보호 가능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지난 3월 미국의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뉴욕증권거래소의 주식담보대출이 2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적신호’가 켜졌다고 보도했다. 2000년과 2008년 뉴욕 시장은 물론 전 세계 투자자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폭락을 연출하기 전 주식담보대출의 비율이 급격하게 높아졌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최근에는 중국 증시도 주식담보대출 급증을 경계하고 있다. JP모간체이스는 2015년 6월 중국 증시가 폭락하기 전에도 주식담보대출이 사상 최대치에 이르렀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주식담보대출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담보대출의 증가세가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0대 그룹 주식담보대출 2년 새 7000억 늘어
#1. 지난 5월 12일 눈에 띄는 공시가 있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하나금융투자로부터 롯데쇼핑의 주식 총 3만5141주를 담보로 신규 대출 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신 회장은 지난 2월에도 KEB하나은행과 롯데쇼핑 주식 112만5000주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2. 지난 3월에는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이 회사 지분 2.63%(63만9391주)를 514억원에 매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앞서 최 부회장은 매입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중인 SK D&D 지분 일부(1600만 주)를 한국투자증권에 담보로 맡기고 500억원을 대출받았다.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주식 투자자가 증권사 등에서 보유 주식을 담보로 특정 기간을 정해 현금을 빌리는 ‘주식담보대출’의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15일을 기준으로 국내의 주식담보대출(예탁증권 담보 융자) 잔액은 14조255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5월 16일 12조739억원과 비교하면 1년 사이에 18%(2조1819억원) 정도 늘어난 금액이다.
지난 4월 26일(14조6454억원)에는 총액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저 수준이었던 2008년 3조2712억원과 비교하면 4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별 ‘주식담보대출 잔액’에 대한 통계자료는 현재 발표되지 않고 있다.
위의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주식담보대출은 기업의 대주주나 최고경영자(CEO) 등이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 주식담보대출은 주식을 담보로 잡히더라도 의결권을 그대로 행사할 수 있다.
특히 대기업 오너 일가는 그룹 지배력 강화나 계열사 지원 등을 위한 자금 조달 수단으로 주식담보대출을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로 10대 그룹 총수의 주식담보대출액은 2015년 10월 말 약 1조3600억원 규모에서 지난 2월 약 2조600억원으로 7000억원 가까이 불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에는 코스닥 상장사 CEO들의 주식담보대출도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최대 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 담보 제공 계약 체결’은 2015년 전체 상장사 중 5건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는 82건으로 급증했다. 이와 같은 추세를 봤을 때 적어도 국내 주식담보대출 잔액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현재 국내 주식담보대출 잔액을 봤을 때 국내 증시에 영향을 끼칠 만한 위험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은 “주택담보대출이 주택을 담보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식 또한 분명 담보로서 가치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특히 경영자가 자신의 경영권을 지키면서 레버리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대출을 활용하는 것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국내 증시가 모처럼 활기를 띠는 상황에서 주식담보대출이 늘어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미국과 같은 글로벌 주식시장들에 비해 국내는 이 같은 서비스가 초기 단계”라며 “미국만 하더라도 사실상 담보대출이라고 할 수 있는 환매조건부매매(RP)를 할 때 주식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는 주로 채권으로만 거래하는 수준”이라고 예를 들었다.
◆‘주식담보대출=주가 하락’은 아냐
현재 국내 코스닥과 유가증권시장을 모두 더한 시가총액은 1500조원대 정도인데 그중 주식담보대출은 14조원으로 1%가 채 못되는 수준이다.
향후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주식의 담보 가치’가 인정받을수록 이를 활용한 금융 서비스와 상품이 더욱 활성화될 여지가 크다. 결론적으로 서비스의 발전 단계와 주식담보대출의 규모로 봤을 때 우려를 표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주식담보대출 또한 ‘대출’인 만큼 늘 잠재적인 위험성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국내 증권사들과 은행은 주식이 주택에 비해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담보 가치를 더욱 보수적으로 책정한다.
국내 증권사와 은행들은 100만원짜리 주식을 대략 50만~70만원 정도만 담보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때 만약 주가가 담보권 설정가(50만~70만원) 밑으로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증권사와 은행은 담보로 잡힌 주식을 ‘반대매매’로 시장에 내놓거나 추가 담보 또는 자금 상환 계획을 대출 실행 전에 약정 받는 식으로 관리한다.
여기서 말하는 ‘반대매매’는 대출자가 빌린 돈을 약정한 만기 안에 변제하지 못할 때 증권사가 대출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식을 강제로 일괄 매도 처분하는 매매를 일컫는다. 이에 따라 반대매매를 통해 주식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면 주가가 추가로 급락할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2012~2013년 A사의 주가 폭락 사태다. 당시 A사는 공매도 비율이 35%를 넘어서면서 최대 주주인 오너 경영인이 ‘공매도와의 전쟁’을 선포하기에까지 이르렀다. 하락장에 베팅하는 공매도는 일반적으로 주가 하락의 주범으로 꼽힌다. A사의 오너 경영인은 수백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하는 등 격한 반응을 보였지만 오히려 주가는 추가 하락했다.
그런데 오너 경영인이 극단적으로 주가 방어에 집착한 이유로 꼽히는 것이 주식담보대출이다. 당시 그가 A사의 주식을 담보로 받은 대출은 대략 4100억원으로 파악되는데, 공매도로 담보 가치(주가)가 하락하면 반대매매가 들어오거나 혹은 자신이 가진 주식을 추가 담보로 더 제공해야 하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
황 실장은 “대주주가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가 여러 다른 변수들로 인해 주가가 급락하게 되면 경영자는 굉장히 큰 자금 압박에 시달릴 수 있고 이것이 추가적인 주가 하락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게 사실”이라며 “다만 이와 같은 몇몇 최악의 경우를 예로 들어 ‘대주주의 주식담보대출=주가 하락’이라는 등식을 세우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개인 투자자가 이를 따져볼 정보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현재는 기업들이 대주주의 주식담보대출 계약 체결에 대해 공시하도록 돼 있지만 이 자금을 어디에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공시 의무가 없다. 따로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해 기업이나 증권사 등에 문의해도 제대로 된 답변을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면 실제로 대주주의 주식담보대출이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얼마나 될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에프앤가이드에 5월 17일을 기준으로 지난 6개월간 공시된 ‘의결권 있는 주식에 대한 담보 제공 계약’ 종목의 주가 변화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지난 6개월간 대주주의 주식담보대출 계약 체결이 공시된 건수는 모두 491건이었는데, 그중 주식담보대출 시점과 비교해 주가가 하락한 것은 208건(42%)이었다.
에프앤가이드의 분석 결과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491건 중 담보대출을 받은 시점과 5월 17일을 비교했을 때 자산 가치가 가장 크게 불어난 종목 중 증가 폭은 275.97%에 달한 반면 자산 가치가 가장 크게 하락한 폭은 마이너스 70.96%였다. 기업 오너나 CEO가 주식담보대출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면서도 자산 가치를 키우는 기업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에프앤가이드 관계자는 “주식담보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기업의 담보 가치(주가) 변화는 천차만별”이라며 “주식담보대출을 주가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주식 투자자로서는 대주주가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는 사실이 공시되는 것만으로도 해당 대주주의 재무 상황이 불안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십상이다. 이는 향후 기업의 주가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개인 대출에는 온갖 규제와 제한이 가해지는 반면 기업 대주주 등에 대한 주식담보대출에는 규제가 거의 없다”며 “주식담보대출에 대한 공시 등 안전장치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vivajh@hankyung.com
‘빚내서 투자’ 조장하는 증권사, 고리대금 장사 중?
주식담보대출 급증의 이면에는 국내 증권사들의 수익 다각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수료에 치중해 온 증권사들은 수수료 수익이 감소하면서 신용대출과 주식담보대출 등 이자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저금리 시대에도 불구하고 증권사들이 ‘주식담보대출’에 대해 여전히 높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어 ‘고리대금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예탁증권 담보 융자와 신용거래 융자 이자율은 증권사마다 차이가 있고 기간·등급별로도 다르다. 5.0%에서 12.0%로 편차가 7%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투자협회 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예탁증권 담보 융자 이자율을 공시한 증권사 16곳 중 1~15일 기준으로 이자율이 가장 높은 곳은 KB증권(옛 KB투자증권)으로 11.7%를 받고 있다. KTB투자증권(8.5%)과 대신증권(8.5%) 등이 그 뒤를 잇고 있고 미래에셋대우가 6.0%로 가장 낮았다.
신용거래 융자 이자율은 국내 증권사 32곳 중 키움증권과 KB증권(구 KB투자증권)은 대출 기간 1~15일에 각각 11.8%, 11.7%로 업계 최고 수준을 받고 있다. 시중은행의 일반 신용 대출 평균 금리가 4~5%인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기준금리 수준으로 신용 융자 거래 자금을 조달하면서 고객에게는 고금리를 부과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2012년 이후 2%포인트 하락했지만 이들 증권사들의 예탁증권 담보 융자를 포함한 신용 융자 금리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최근 2년간 세 차례의 기준금리 인하 과정에서 국내 주요 증권사 32곳 가운데 23곳은 2년 전 이자율을 그대로 사용 중이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이르면 올해 증권사들의 높은 신용 융자 금리에 대한 적정성을 점검하고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신용 융자 이자율 산정 체계는 증권사별로 자율적인 문제이지만 투자자들에게 불합리하게 산정된다면 합리적 기준을 제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