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중국, 보유 미국 국채를 매각한 것이 핵심 원인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세계경제와 국제금융 질서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달러 중심의 브레튼 우즈 체제가 급격히 약화되고 있는 것이 그중 하나다. 특히 일본에 이어 ‘트리핀 딜레마’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던 중국이 보유 미국 국채를 매각하면서 브레튼 우즈 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는 1947년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기축통화를 보유한 중심 통화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통화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대외 부채 증가로 신뢰성이 떨어져 공급된 통화가 중심 통화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순환 구조가 무너지면서 궁극적으로 중심 통화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이론이다.
브레튼 우즈 체제가 붕괴되면 아직까지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확실한 제2의 중심 통화가 없어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시각에 따라 다른 평가가 있긴 하지만 브레튼 우즈 체제에서 미국 달러화처럼 확실한 중심 통화가 구축돼야 세계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컸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통화 질서는 달러화 중심의 브레튼 우즈 체제가 지속돼 왔다. 브레튼 우즈 체제는 1944년 국제통화기금(IMF) 창립 이후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에서는 미국의 달러화만이 금과 일정한 교환 비율을 유지하고 각국의 통화는 기축통화와의 기준 환율을 설정·유지함으로써 국제무역을 증진시켰다.
◆탈달러화로 기축통화 지위 흔들려
금융 위기 이후 달러화 중심이 흔들리는 것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금융 위기 극복 과정에서 누적된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 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점으로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금융 위기 후유증에 따른 ‘낙인효과(stigma effect)’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정부 들어서는 미국이 아예 ‘강(强)달러 정책’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강세’보다 ‘약세’가 국익에 맞는다고 잇달아 말했다. 중국·일본·독일·한국 등 주요 교역 상대국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환율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미국 이외 다른 국가들의 탈(脫)달러화 조짐이 빨라지고 있는 점이다. 세계경제 중심권이 이동됨에 따라 현 국제통화 제도가 안고 있었던 문제점들이 갈수록 가시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불균형과 환율 전쟁을 줄이기 위해 논의돼 왔던 안정책들이 다시 거론되고 있지만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국제통화 제도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대부분의 학자는 최소한 불균형 조정을 강제할 수 있는 ‘국가 간 조약(예를 들어 1980년대 중반 플라자협정)’이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트럼프 정부가 과연 강한 달러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재건을 위해 뉴딜과 감세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가 확대되면 트럼프 정부의 정책 구상이 어려워져 강달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브레튼 우즈 체제가 흔들리면 한국도 문제다. 트럼프 정부 들어 국내 외환시장은 ‘원화 강세’로 요약된다. 올 들어 불과 5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90원 정도 급락했다. 다른 경쟁국 통화에 대해서도 원화 가치가 절상됐다.
모든 가격 변수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커지는 것도 문제다. 국회 예산정책처 등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하루 변동률 표준편차)은 2015년 0.41에서 2016년 이후 올해 4월 말까지 0.58로 무려 41%나 확대됐다. 경제 주체가 대응할 수 없는 수준이다.
◆외화 거래세 등 과감한 정책 필요한 때
‘특정국의 통화가치는 그 나라의 경제 실상이 반영되는 얼굴’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원화 가치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작년 성장률이 2.6%로 추락했고 최근 들어 상향 조정되고 있긴 하지만 올해 성장률이 3%를 넘어서기는 힘들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장기간 국정 혼란 속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다행히 한국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앞날과 관련해 비관론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단기적으로 연착륙과 경착륙 간의 논쟁 속에 후자에 무게를 두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중·장기적으로 지속 성장 여부와 관련해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걸릴 것이라는 경고도 함께 나온다.
문재인 정부 들어 원화 강세가 지속된다면 한국 경제도 일본처럼 ‘원화 강세 저주(curse under the safe haven)’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 어느 때보다 외환 당국의 역할이 요구된다.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에 편승해 한국의 여건과 벤치마크지수 간 괴리에서 들어오는 외국 자금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평상시에는 부과하지 않다가 과다하게 유입될 때 부과하는 ‘이원적 외화 거래세’ 도입 등 보다 과감한 정책이 요구된다.
신용 등급도 한국의 여건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높은 것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과대평가된 신용 등급으로 외국 자금이 많이 들어와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 한국 경제를 더 어렵게 하고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해져 이탈로 돌변,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과다한 경상수지 흑자를 줄여 나가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성장률도 끌어올려야 한다. 통화정책은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을 확대하는 만큼 재정정책을 보다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재정정책에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밝힌 것은 바람직하다. 국가 채무 비율이 45% 수준까지 될 정도로 재정지출을 늘려 나가더라도 문제는 없다.
중국, 보유 미국 국채를 매각한 것이 핵심 원인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세계경제와 국제금융 질서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달러 중심의 브레튼 우즈 체제가 급격히 약화되고 있는 것이 그중 하나다. 특히 일본에 이어 ‘트리핀 딜레마’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던 중국이 보유 미국 국채를 매각하면서 브레튼 우즈 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는 1947년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기축통화를 보유한 중심 통화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통화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대외 부채 증가로 신뢰성이 떨어져 공급된 통화가 중심 통화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순환 구조가 무너지면서 궁극적으로 중심 통화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이론이다.
브레튼 우즈 체제가 붕괴되면 아직까지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확실한 제2의 중심 통화가 없어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시각에 따라 다른 평가가 있긴 하지만 브레튼 우즈 체제에서 미국 달러화처럼 확실한 중심 통화가 구축돼야 세계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컸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통화 질서는 달러화 중심의 브레튼 우즈 체제가 지속돼 왔다. 브레튼 우즈 체제는 1944년 국제통화기금(IMF) 창립 이후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에서는 미국의 달러화만이 금과 일정한 교환 비율을 유지하고 각국의 통화는 기축통화와의 기준 환율을 설정·유지함으로써 국제무역을 증진시켰다.
◆탈달러화로 기축통화 지위 흔들려
금융 위기 이후 달러화 중심이 흔들리는 것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금융 위기 극복 과정에서 누적된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 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점으로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금융 위기 후유증에 따른 ‘낙인효과(stigma effect)’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 정부 들어서는 미국이 아예 ‘강(强)달러 정책’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달러 강세’보다 ‘약세’가 국익에 맞는다고 잇달아 말했다. 중국·일본·독일·한국 등 주요 교역 상대국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환율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미국 이외 다른 국가들의 탈(脫)달러화 조짐이 빨라지고 있는 점이다. 세계경제 중심권이 이동됨에 따라 현 국제통화 제도가 안고 있었던 문제점들이 갈수록 가시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불균형과 환율 전쟁을 줄이기 위해 논의돼 왔던 안정책들이 다시 거론되고 있지만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국제통화 제도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대부분의 학자는 최소한 불균형 조정을 강제할 수 있는 ‘국가 간 조약(예를 들어 1980년대 중반 플라자협정)’이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트럼프 정부가 과연 강한 달러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재건을 위해 뉴딜과 감세 정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가 확대되면 트럼프 정부의 정책 구상이 어려워져 강달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브레튼 우즈 체제가 흔들리면 한국도 문제다. 트럼프 정부 들어 국내 외환시장은 ‘원화 강세’로 요약된다. 올 들어 불과 5개월이란 짧은 기간 동안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90원 정도 급락했다. 다른 경쟁국 통화에 대해서도 원화 가치가 절상됐다.
모든 가격 변수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커지는 것도 문제다. 국회 예산정책처 등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하루 변동률 표준편차)은 2015년 0.41에서 2016년 이후 올해 4월 말까지 0.58로 무려 41%나 확대됐다. 경제 주체가 대응할 수 없는 수준이다.
◆외화 거래세 등 과감한 정책 필요한 때
‘특정국의 통화가치는 그 나라의 경제 실상이 반영되는 얼굴’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원화 가치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작년 성장률이 2.6%로 추락했고 최근 들어 상향 조정되고 있긴 하지만 올해 성장률이 3%를 넘어서기는 힘들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장기간 국정 혼란 속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다행히 한국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앞날과 관련해 비관론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단기적으로 연착륙과 경착륙 간의 논쟁 속에 후자에 무게를 두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중·장기적으로 지속 성장 여부와 관련해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걸릴 것이라는 경고도 함께 나온다.
문재인 정부 들어 원화 강세가 지속된다면 한국 경제도 일본처럼 ‘원화 강세 저주(curse under the safe haven)’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 어느 때보다 외환 당국의 역할이 요구된다.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에 편승해 한국의 여건과 벤치마크지수 간 괴리에서 들어오는 외국 자금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평상시에는 부과하지 않다가 과다하게 유입될 때 부과하는 ‘이원적 외화 거래세’ 도입 등 보다 과감한 정책이 요구된다.
신용 등급도 한국의 여건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높은 것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과대평가된 신용 등급으로 외국 자금이 많이 들어와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 한국 경제를 더 어렵게 하고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해져 이탈로 돌변,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과다한 경상수지 흑자를 줄여 나가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성장률도 끌어올려야 한다. 통화정책은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을 확대하는 만큼 재정정책을 보다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재정정책에 우선순위를 두겠다고 밝힌 것은 바람직하다. 국가 채무 비율이 45% 수준까지 될 정도로 재정지출을 늘려 나가더라도 문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