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의 실력 행사, ‘범죄’ 될 수 있다

[법으로 읽는 부동산]
임대차계약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대비해 ‘제소전 화해’ 활용해야


(사진)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단지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은 월세 물건을 행인이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 칼럼=최광석 법무법인 득아 대표 변호사] 다른 사람을 내보내는 부동산 명도(인도)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시각은 상반된다. 명도하는 데 몇 년이 걸릴 수 있다며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반면 명도 문제를 간단하게 치부해 버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간단하지 않은 명도 문제

각각의 케이스가 구체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사실 “어렵다”, “쉽다”고 일률적으로 명도 문제를 이야기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예전부터 명도 문제가 쉽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문제점을 감안해 최근 법원 실무상 부동산 명도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사건들에 비해 신속한 재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경매 사건 역시 몇 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민사집행법상 ‘부동산인도명령제도’를 통해 적법하게 점유할 권원(權原)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점유자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명도 재판을 통하지 않고도 간편하고 신속하게 명도 집행이 가능하도록 제도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도 문제는 점유자의 권익과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사건이다. 부동산을 점유하는 쪽에서는 점유하는 부동산이 주거나 생업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법이 보호하는 한도 내에서는 조금이라도 점유 기간이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 점유하는 과정에서 점유자가 들인 유익비·필요비·부속물에 대한 투자 등 비록 금액으로는 많지 않을 수 있지만 법이 보호하는 범위에서는 금전적인 보상을 당연히 희망한다. 이런 점유자의 권리는 당연히 보호돼야 한다는 점에서 명도 문제는 쉽게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재판이 아닌 불법적인 방법으로 점유자의 권리를 침탈하는 행위는 형사처분까지 받을 수 있다.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장기간 차임(借賃)을 받지 못하던 어느 건물주가 해당 임대차 목적물인 주택의 출입문 밖에서 못질을 해버려 주택 안에 갇혀 외부로 출입하지 못하게 된 세입자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한 사례도 있었다. 결국 이 건물주는 권리행사방해죄로 형사처분 받을 처지가 됐다고 전해진다.

세입자가 없을 때 출입문 자물쇠를 바꾸거나 세입자의 짐을 임의로 반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재판이 아닌 실력으로 임대차 목적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사례는 많았다. 하지만 이 사건처럼 세입자가 내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입문 외부에 못질함으로써 세입자가 갇히게 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형사처분 대상인 것은 틀림없어 보이지만 세입자가 집 안에 있는 상태에서 외부에서 문에 못질해 세입자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면 감금죄로 적용하는 것이 더 적절할 텐데 왜 권리행사방해죄가 적용되는지가 궁금하다.

아마도 ‘세입자가 집 안에 있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세입자가 집 안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차원에서 못질한 것이다’는 건물주의 변명이 있었을 것이다. 또 ‘집 안에 있었다는 사실을 당시에 건물주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세입자의 진술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마도 월세 체납으로 건물주에게 시달리는 상황에서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서도 세입자가 일부러 인기척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에 따라 건물주에 대해 감금의 고의를 인정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법 절차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입자에 대한 권리 행사의 방법으로 재판이 아닌 실력을 동원하는 것은 형사처분될 가능성이 높다.

보도된 사건과 같은 권리행사방해죄뿐만 아니라 세입자의 주거나 영업 공간에 침입하면 주거침입죄나 건조물침입죄가, 폭력적으로 업무를 방해하면 업무방해죄가 성립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런 실력 행사에는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임의 명도약정’은 원칙적 무효

재판을 하지 않고 손쉽게 임대인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 있다. 예를 들어 차임(임차료)을 3번 이상 연체하면 임대차 공간 내에서 세입자의 짐을 임의로 명도하기로 하는 약정, 이른바 ‘임의 명도약정’을 미리 임대차계약서에 넣어두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합의 역시 원칙적으로 무효로 해석되고 있다. 대법원이 2005년 3월 10일 선고한 ‘2004도341’ 업무방해죄 사건을 살펴보면 임차인이 영업하는 점포를 임의 명도약정에 따라 임대인이 임의로 자물쇠로 잠그고 임차인의 간판을 철거해 버린 사안에서 업무방해죄의 유죄를 인정했다.

따라서 임의 명도계약은 민사상으로 무효다. 그래서 이러한 약정에 따라 임의로 명도를 집행해 버리는 것은 민사상으로 불법행위, 형사상으로는 범죄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상가번영회 등 집합건물 내에서 상가 규약 등에 따라 이뤄진 단전·단수 조치에 대해 판례에서 정당행위로 판단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단전·단수 조치와 비교할 때 임의 명도 조치는 훨씬 법익 침해가 크다는 점에서 임의 명도계약은 원천적으로 무효로 판단된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현행 제도에서 차임 연체에 따른 분쟁을 간단하고 편리하게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제소전 화해’ 절차를 통해 연체 차임에 대한 금전 채무 명의와 인도 집행의 권원을 미리 확보해 두는 것이다.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그 무렵에 미리 제소전 화해를 해두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드는 차임 청구나 명도(인도) 소송을 하지 않고도 신속하게 권리 관계를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나 질병에 대비해 적절한 보험에 가입하듯이 임대차계약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비하는 조치로 제소전 화해 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용어 설명
제소전 화해 : 민사 분쟁이 생겼을 때 당사자 간의 분쟁이 소송으로까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송 전에 법관 앞에서 화해를 성립시키는 절차다. 분쟁 당사자 중 일방이 신청함으로써 시작되며 적법하다면 화해 기일이 정해지고 법관이 양 당사자를 소환, 화해가 성립되면 화해조서를 작성한다. 이 화해조서는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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