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통신비’ 공약, 이번엔 통할까?

[비즈니스 포커스=통신비]
기본료 폐지…소비자 이득 미미, 알뜰폰 사업자 울상


(사진)= 대한민국 19대 문재인 대통령이다./한국경제신문DB

[한경비즈니스=김서윤 기자] 문재인 정부의 통신비 절감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제계 관계자들은 “‘통신 기본료 완전 폐지’를 주장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시장경제 논리에 어긋난다”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규제하는 것은 ‘4차 산업혁명’ 관련 공약을 내놓으며 말했던 ‘네거티브 규제’ 정책과도 이율배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기본료 폐지가 실제로 소비자들의 이익으로 연결될지도 미지수다. 오히려 알뜰폰 사업자들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 ‘문재인표’ 통신비 공약, 실효성 있나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놓은 ‘가계 통신비 부담 절감 정책’은 통신 기본료 완전 폐지, 단말기유통법(단통법) 개정, 지원금 상한제 폐지, 단말 가격 분리 공시제 실시, 주파수 경매 시 통신비 인하 계획 추가, 데이터 요금 체제 개편(할인 및 이월 추진), 한·중·일 3국 간 로밍요금제 폐지, 공공 와이파이 설치 의무화, 취약 계층을 위한 무선 인터넷 요금제 도입 등으로 요약된다.

새 정부의 통신비 관련 정책은 2016년 봄 치러진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가계 통신비 인하 정책과 동일하다. 더불어민주당은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폐지, 기본료 폐지, 지원금 분리 공시제도 실시, 단말기 완전 자급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국민의당도 기본료 폐지에 동의했고 국회에서도 각 당이 추진하려던 정책 중 하나였다.



◆ 역대 정부도 잡지 못한 통신비 정책

하지만 미래창조과학부의 반대로 공약은 이행되지 못했다. 미래부는 소매시장의 직접 규제보다 도매시장을 규제하자는 생각이다.

미래부는 소비자들의 기본료를 일부 할인해 주는 대신 알뜰폰 시장을 확대하고 제4이통사업자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이는 역대 대통령들의 통신비 정책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가계 소비지출 중 통신비 비율은 2003년 1월 7%였던 것이 2015년 4월 5.8%로 줄었다.

역대 정부는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단골 민생 공약으로 통신비 정책을 들고나왔다. 하지만 10년 넘게 펼쳐 온 통신비 관련 정책의 효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15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 중이었던 2000년 SK텔레콤이 기본료를 11% 인하했고 2003년 음성통화 요금을 10초당 21원에서 20원으로 인하했다. 16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이전 정부에 비해 가계 지출 중 통신비가 1%포인트 줄어 6%대를 기록했다.

2005년 당시 SK텔레콤은 이동통신 가입비를 2만원 인하했고 2007년 망 내 할인을 실시했다. 정보통신부는 청소년 무선 데이터 통화료를 30% 인하하고 통신 서비스 결합 판매 제도를 실시해 통신비를 잡으려고 했다.

17대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가입비 인하와 요금 할인 등 다양한 통신비 절감 정책을 펼쳤지만 가계 통신비 지출 비율은 노무현 정부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통신비를 20% 인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기본료와 가입비를 인하하고 SMS 등 필수 부가 서비스 요금을 할인하거나 폐지하겠다고 했다.

또한 결합 상품 발매를 촉진하고 CJ헬로비전과 같은 가상이동망사업자(MVNO)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했다.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는 결합 상품 요금 할인율을 20% 수준으로 높였다.

2009년 SK텔레콤은 이동통신 가입비를 30% 인하했고 KT는 20% 인하했다. 2010년에는 SK텔레콤을 필두로 KT와 LG유플러스가 음성통화 초당 과금을 도입했다. 이전까지는 통화요금을 10초 단위로 과금했다면 이때부터는 1초단위로 과금한 것이다.

예를들어 12초간 통화했을 시 예전에는 20초에 대한 통화요금을 냈지만 이후부터는 12초에 대한 요금만 납부하면 됐다. 이통 3사는 2013년 가입비를 40% 인하했다.

이 전 대통령은 공약대로 2011년 기본료 1000원을 인하했고 무료 SMS 50건을 제공하게 함으로써 공약을 이행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통신 사업자의 실적이 악화됐고 소비자들에게 크게 이득이 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18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가계 통신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이동통신 가입비 폐지, 보조금 규제 강화, 무선인터넷전화(mVoIP) 허용, 선불요금 이용자 비율 확대, 단말기 유통 경로 다변화 및 보급형 스마트폰 가격 인하, 스마트폰 유통시장에서 이용자 간 차별 금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1996년 도입돼 20여 년간 유지됐던 이동통신 가입비는 2014년 전면 폐지됐다. 단통법 시행으로 보조금 규제와 스마트폰 이용자 차별 금지 공약도 이행했다.

미래부는 휴대전화 지원금에 상응(선택 약정)하는 요금 할인 제도를 도입했고 할인율을 12%에서 20%로 상향 조정했다.

이통사들은 데이터 요금제의 데이터 제공량을 유지한 채 1000원을 인하했다. 또한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도를 시행해 기존에 10만원대 이상이었던 요금제를 6만원대로 낮췄다.

하지만 선불요금 이용자 비중 확대, 스마트폰 유통 다변화와 보급형 제품의 가격 인하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 이동통신 업계는 곤혹스러운 분위기

문재인 정부는 가계 통신비 절감 정책에 대해 두 차례 논의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5월 25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정보통신기술(ICT) 및 연구·개발(R&D) 진흥책 △신산업 발굴 및 육성 △규제 완화 △공공 와이파이 확대 △알뜰폰 시장 활성화 △이통사 간 경쟁 촉진 △단통법 일부 개정 등의 내용을 보고한 데 이어 6월 1일 또다시 논의했다.

하지만 미래부 업무 보고 당시 기본료 폐지에 대한 현실적 어려움을 설명하자 국정기획위가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정부의 정책에 대해 이통 3사는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르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미래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기본료 폐지에 혜택을 받을 2G와 3G 통신 가입자는 약 220만 명(전체 이동통신 가입자의 4%)이다.

통신업계는 “대부분의 가입자들이 데이터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어 기본료 폐지에 따른 혜택을 보는 가입자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본료 1만1000원을 폐지하면 통신사는 매달 1596억원 정도의 매출이 줄고 1년 영업이익은 7조9000억원이 줄어 적자 경영이 불가피하다”며 “기본료 폐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통신 사업자로서는 최악의 선택지”라며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매출 및 이익의 감소로 기업의 가치 측면에서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 애널리스트는 “만약 공약이 100% 현실화된다면 통신 기업의 영업이익은 당장 적자로 전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애널리스트는 기본료 폐지는 비현실적인 공약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 현실화된다면 이통사들이 미래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CAPEX)도 줄어들어 통신업계의 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라며 “이통 3사가 매년 집행하는 CAPEX는 6조원 이상이며 마케팅 비용은 7조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주파수 경매 시 요금 인하 계획 추가’ 정책에 대해 4G 주파수가 종료되고 5G 시대를 맞은 상황에서 통신사의 요금 인하는 오히려 투자 축소로 이어져 사업자들이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 알뜰폰·4이동통신 확대, 소비자에 이득

기본료 폐지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이 필수인데 국회 통과가 힘들어 법 개정이 실현될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와 함께 통신업에 대한 정책의 방향이 제한적이어서 아쉽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알뜰폰 사업자나 제4이동통신 사업을 육성하고 확대하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당장 요금 할인 정책을 펼치는 것보다 이통 3사 외에 다양한 사업자들을 활성화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히는 것은 길게 보면 시장 경쟁을 자연스레 유도해 결국 통신비 인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알뜰폰 사업자들도 통신비 인하 정책이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알뜰폰 사업자들은 이통 3사의 기본료가 폐지되면 사실상 알뜰폰 사업자들의 경쟁력이 약화돼 고객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통 3사가 기본료 폐지가 아닌 데이터 이월 등 다른 카드를 내밀어 정부와 타협할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이통 3사는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기 위해 100여 명으로 구성된 대관 조직을 모두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기획위 측은 “통신비 인하는 우리 공약이었지만 업계 시장 상황이 있으니 종합 토론과 검토를 거친 다음 밝히겠다”며 “논의를 숙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실사구시(實事求是) 사상을 주장했다. 실사구시는 현실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해 실용적이고 합리적으로 일을 해결해 나가라는 뜻이다.

현실을 외면한 채 무작정 하고 본다는 식은 지양하고 현실의 소용에 맞게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라는 정약용의 가르침이 필요한 때다.

s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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