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만 배불리는 단통법 신고제도

[비즈니스포커스= 이동통신]
포상금 50만~500만원까지…위반 시 처벌은 미미한 수준


(사진)=서울 용산의 휴대전화 판매점들./한국경제신문DB

[한경비즈니스= 김서윤 기자] # 직장인 박설희(35·가명) 씨는 지난 5월 경기도의 한 이동통신 대리점에서 80만원대 스마트폰을 공짜로 개통했다. 조금 더 저렴하게 구매하기 위해 대리점 몇 곳을 다니며 알아본 결과 원하는 브랜드의 제품은 기기변경으로 가장 싸게 구매할 수 있는 곳이 41만원이었다. 번호이동(통신사 변경)을 해도 20만원대. 하지만 마지막으로 간 곳에서 기기변경이 아닌 번호이동을 하고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6만원대 이상을 2년 약정으로 사용하는 조건으로 스마트폰을 공짜로 주겠다고 제안해 그곳에서 개통했다. 박 씨는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갖고 싶던 스마트폰을 공짜로 구매했다고 자랑했고 남편은 대리점이 불법을 저지른 것이라며 단통법(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

이동통신 구매 계약서에는 박 씨가 스마트폰을 구매하며 현금을 지불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0만원 이상을 현금 결제했다고 표시돼 있었다.

대리점은 통신사에서 이동통신 대리점으로 지원하는 보조금과 장려금 외에 박 씨가 추가로 내야 할 기기 값을 대신 지불해 준 것이다.

이는 스마트폰 판매 실적을 올리기 위한 현금 지급 수법으로 엄연한 단통법 위반이다. 비싼 요금제를 약정으로 묶어 유지하라고 권유하는 것도 단통법 위반 신고 대상이다.

◆ 포상금 노린 악성 신고 어쩌나

단통법은 휴대전화 보조금을 규제하기 위해 2014년 10월 1일부터 시행됐다. 통신사들의 불법 보조금 차별을 없애고 요금제에 따라 최대 34만5000원까지 단말기 구매 시 보조금을 지원해 주는 제도다.

번호이동·기기변동 등 가입 유형과 나이, 가입 지역에 따라 보조금을 차별 지급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며 위반 시 처벌받게 된다.

단통법이 시행되고 네 달 뒤인 2015년 2월 단통법 위반을 신고하는 이동전화불공정행위신고센터가 탄생했다. 문제는 센터의 운영 시스템이 파파라치만 배 불리는 구조라는 점이다.

이 센터에 단통법 위반 대리점을 신고하면 신고자에게는 포상금이 지급된다. 포상금은 대리점에서 보조금 외에 추가 지원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50만~500만원으로 책정된다.

신고자는 휴대전화 구입 당시 현장 상황을 녹음한 음성 파일이나 동영상을 편집하지 않은 상태로 제출해야 한다. 공짜폰을 구입한 실수요자가 신고할 리 만무하다. 이 때문에 선량한 고객이 신고하기보다 의도적으로 포상금을 노리는 파파라치만 득실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관계자는 “휴대전화로 구매 당시 상황을 편집 없이 녹음한 음성 파일을 제출하도록 증빙 자료를 강화한 것은 대리점 보호 차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신고센터 내에 ‘이동통신 관련 근무자와 가족은 신고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지만 친구는 신고가 가능해 포상금을 노린 ‘짜고 치는 고스톱’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단통법 위반 대리점에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기 때문이다.

신고센터 관계자는 “정부에서 지급하는 포상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신고한다고 해도 법망을 피해 간다”며 “협회 측에서 대리점들에 경고하지만 딱히 강한 처벌 조항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협회 측은 “타 대리점에 타격을 주기 위해 일부러 고객으로 위장하고 구매 의향을 보이며 몰래 카메라로 촬영하는 이들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라고 답변했다.

신고자의 포상금은 이동통신 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에서 각각 지급한다. 신고는 센터에서 받지만 최종적으로 증거물을 판단하고 포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통신 3사다. 각 업체의 마케팅 비용이 포상금으로 소요되는 셈이다.

◆ 단통법 위반 신고센터에 신고된 1000곳 중 6곳만 벌금

실제로 지난해 10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성수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에서 진행하는 이통사 대리점과 판매점의 단통법 위반 모니터링 결과와 방통위의 유통점 과태료 부과 내역에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신고센터에 접수된 건수는 3만5963건인데 비해 방통위가 과태료를 부과한 내역은 230건에 불과하다. 전체 신고의 0.6%로 1000곳 중 6곳만 과태료를 물었다.

방통위의 단통법 위반 실태 점검은 2015년 3회, 2016년 2회뿐이었고 대리점에 대한 사실 조사도 2014년 1회, 2016년 2회에 그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단통법을 지키고 대리점 간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 신고센터를 운영한다는 명분을 세우고 있지만 대리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없기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협회 관계자는 “단통법 위반 대리점에 대해 아직까지 처벌 규정이 강력하지 않지만 페널티를 주는 것에 대해 상생 협력 사업으로 주기적으로 논의 중”이라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개선 회의를 열고 있다”고 답했다.

◆ 단통법 조기 폐지론 급물살

오는 9월 말 자동 폐지를 앞두고 있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조기에 폐지될지 초미의 관심사다.

단통법은 차별적인 휴대전화 지원금 지급을 금지해 휴대전화를 비싸게 사는 이들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결국 ‘정부가 앞장서 고객들이 단말기를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길을 막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단통법 시행 이후 중소 휴대전화 판매점이 3분의 1로 줄어 소상공인이 더욱 힘들어졌다는 혹평도 받았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단통법 개정안은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조기 폐지’와 ‘단말기 분리 공시제 도입’이다.

현행법상 통신사가 출고한 지 15개월이 지나지 않은 최신형 단말기에 대한 지원금을 35만원 이상 제공하는 것이 불법이다. 하지만 단통법이 폐지되면 고객들은 더 많은 보조금 혜택을 받아 싸게 구매할 수 있게 된다.

통신업계에서는 지원금 상한제가 폐지되더라도 당장 지원금을 대폭 늘리기 어렵고 오히려 마케팅 비용의 증가로 소비자의 부담이 늘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한다.

‘분리 공시제’는 단말기 보조금을 공시할 때 제조사와 이동통신사의 지원금을 구분해 공시해 단말기 가격의 거품을 빼자는 것이다. 이는 2014년 10월 논의됐지만 단말기 제조사들의 강한 반발로 무산됐다. 최근 LG전자가 ‘분리 공시제’에 동의하고 나서며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s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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