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가방도 빌려쓴다… 고상한 '신렌털족' 급증

[비즈니스포커스= 렌털 산업]
‘소유’ 아닌 ‘공유’… 렌털 산업의 진화
빌려쓰는 시대, ‘新렌털족’ 합리적 실용주의 지향



[한경비즈니스=김서윤 기자] 렌털 산업이 급성장세다. 렌털 시장의 규모는 2006년 3조30억원에서 2011년 10조원, 2016년 25조9000억원으로 10년 새 233% 증가했다.

경기 불황과 1인 가구의 증가로 소비 패턴이 소유에서 공유로 변화하는 추세이고 상품에 대한 경험에 가치를 두는 인식이 퍼지며 렌털 시장이 유망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원은 2020년 국내 렌털 시장 규모가 4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건을 소유하지 않고 이용만 하려는 소비자가 늘어가니 우리는 ‘빌려 쓰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윤경 SK증권 애널리스트는 “렌털 수요의 증가는 과거에 비해 소득수준이 높아져 소비 욕구가 증가했지만 소득 성장률이 낮은 한국 경제 상황의 결과물”이라고 분석했다.

손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고가의 상품을 구매하고 싶지만 일시불로 구매할 여력이 부족한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렌털이다.

◆ 정수기에서 명품 백까지 품목도 다양


(사진)=SK매직에서 렌털 중인 공기청정기 '슈퍼청정기 미니'다./SK네트웍스 제공

시장이 커진 만큼 취급 품목도 다양해졌다. 국내 렌털 산업은 1970년대 건설 분야에서 고가의 산업용 기계 장비나 포클레인·크레인 등 토목 건설 장비, 생산 시설을 임대해 주는 것에서 시작돼 생활 가전과 가정용품, 자동차, 각종 소비재로 확대됐다.

한국렌털협회가 추산한 국내 렌털 업체는 2만4000여 곳이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가정용품 렌털은 최근 위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요가 증가했다.

가정용품 렌털의 개척자는 코웨이다. 코웨이는 고가의 정수기를 판매하기 위해 기존 할부 제도에 청소 및 필터 교체 등 관리 서비스를 결합해 월 사용료를 받는 렌털 서비스를 도입해 업계 1위에 올랐다.

SK매직·청호나이스·쿠쿠전자는 상대적으로 효율성을 높인 제품과 가격 경쟁력으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품목은 정수기·공기청정기·비데·매트리스·인덕션 등으로 확대됐다. 글로벌 전자 기업인 LG전자도 렌털 숍을 운영하며 정수기·공기청정기 렌털 사업에 진출했다.

SK네트웍스가 인수한 SK매직은 2008년 말부터 정수기·공기청정기·비데·가스레인지·식기세척기 등 생활 가전을 렌털해 왔다. SK매직은 2015년 직수형 정수기를 저렴한 렌털료로 공급하며 신규 계정 38만 개를 기록해 누적 계정 100만 개를 달성했다.

생활 가전 및 소비재 렌털로 거둔 영업이익은 863억원, 시장점유율은 43%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코웨이와 엎치락뒤치락 순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 1위 안마의자 렌털 업체 바디프렌드는 지난해 1000억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기존의 안마 의자 상품군에서 정수기, 라텍스 매트리스 등 아이템을 추가해 매출이 15% 늘었다.



자동차 신차 렌털 사업에 이어 타이어 기업도 렌털 서비스를 시작했다. 넥센타이어는 업계 최초로 지난해 11월 타이어 렌털 서비스를 시작했다.

타이어의 비싼 교체 비용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저렴한 금액에 타이어 제품을 선택해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타이어를 렌털하며 차량 상태도 정기적으로 케어 받을 수 있다.

제조·유통업체들도 렌털 사업으로 외연을 키우고 있다.

롯데그룹은 2015년 롯데렌탈(당시 KT렌탈)을 인수하는데 1조원이 넘는 금액을 베팅했다.

롯데는 렌털 사업을 통해 유통과 금융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롯데홈쇼핑을 통해 렌터카 방송을 하고 롯데카드와 연계된 상품을 선보였다.

롯데그룹의 여행사 JTB에서는 숙박과 렌터카를 결합한 상품을 구성해 판매한다. 롯데마트에서 장을 본 고객들에게 렌터카로 실어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롯데렌탈은 롯데손해보험에 가입해 보험금을 지불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2015년 현대렌탈케어를 설립하고 현대리바트가 운영하는 스타일 숍과 현대홈쇼핑 TV 방송을 통해 정수기(큐밍)·공기청정기·비데 등 가정용품을 렌털하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매트리스, 안마의자, 영유아 가구 렌털 서비스도 선보일 계획이다.


(사진)=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월드타워점 패션 렌털 숍 '살롱 드 샬롯' 2호점이다./한국경제신문DB

백화점업계 1위인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7월 업계 최초로 본점에 오프라인 패션 렌털 숍 ‘살롱 드 샬롯’의 문을 열었다.

‘살롱 드 샬롯’은 명품과 프리미엄 브랜드를 중심으로 드레스·정장·주얼리·핸드백·액세서리 등 자주 착용하지 않지만 가격대가 높은 상품들을 빌려주는 전문 매장이다. 스타일링 서비스와 메이크업도 연계했다.

까르띠에·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와 이탈리아 수제 정장 브랜드 ‘다사르토’, 디자이너 브랜드 ‘장민영’ 등 상품도 대여한다. 이곳에서는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백을 7만~8만원이면 빌릴 수 있다.

의류 렌털 시장도 성장세다. SK플래닛은 지난해 9월 ‘프로젝트 앤’을 론칭하고 월정액제로 옷과 가방 등을 빌려준다.

온라인 상에서 의류 렌털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리본즈’, ‘더클로젯’도 월 이용료를 결제하고 입고 싶은 옷을 마음껏 빌려 입을 수 있다. 오픈 마켓 11번가는 렌털 전문 숍 ‘생활플러스’에서 280여 가지 상품을 렌털한다.

◆ 인터뷰 - 김영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렌털’은 경제적 합리화 추구하는 소비 패턴… ‘아나바다’의 연장선


최근 렌털 산업이 뜨는 사회현상은 ‘아비투스(habitus)의 어미변화’라고 명명할 수 있다.

아비투스는 같은 집단이나 계급의 구성원들이 공통적인 인지와 행동양식 등 관행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며 지속적으로 생성력이 있는 원칙들을 말한다.

역사적·사회적으로 위치된 조건에 의해 정해지는 아비투스가 새로운 형식과 양식을 허용하듯이 대중은 돈과 목표 중심에서 가치와 비전 그리고 과정 중심으로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켰다. 아주 자연스럽고 지극히 당연하게 개념의 변화를 꾀한 것이다.

인문학에서 ‘다름과 차이·초월·노마드·탈영토화’ 등 탈경계를 표상하는 은유가 새로운 담론으로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모든 영역(시스템·주체·문화 등)에서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굳건하다고 믿었던 토대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것들이 세워지면서 우리네 삶의 지형도까지 바뀌어 가고 있다.

그중 하나가 경제적 합리화를 추구하는 소비 패턴 변화의 패러다임이다. 이는 어제의 신지식과 신기술이 내일이면 낡은 것으로 전락해 버리는 오늘날의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렌털 트렌드는 물자를 절약하고 재활용하자는 취지로 한때 붐이 일었던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운동’의 연장선이자 확장으로 볼 수 있다.

‘아나바다’는 국가 차원에서 주도한 것이 아닌 대중이 이끈 운동으로, 지금에 와서 새롭게 부상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렌털 산업의 급부상’은 총체적 난국에 빠진 불황 속에서 대중이 찾은 대안이다.

청년실업, 분배 구조의 문제, 시대착오적인 교육 시스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다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제성장이 멈춰 선 작금의 대한민국을 사는 대중이 자발적으로 내린 철학적 지혜의 소산이다.

빌려 쓴다는, 그래서 조금은 추레하다는 뉘앙스로 들리는 ‘렌털’이라는 낱말을 ‘공유하는 것’이라는 고상하면서도 실용적인 개념어로 승격시킨 것이다.

생활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는 렌털 산업은 이제 친환경적이고 합리적 경제 문화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소비 패턴을 지향하는 고상한 ‘신렌털족’의 출현은 개인적 삶의 성장을 넘어 경제사회와 실용주의를 융합한 새로운 철학을 제시한 것에 다름 아니다.

s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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