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읽는 부동산]
재개발 추진 시 ‘출석부’라고 거짓말하기도…‘부동산 불패’ 사라지며 피해자 속출
[김향훈 법무법인 센트로 대표 변호사] 누군가를 위해 연대보증을 설 때 보증인에게 유리한 것이 있을까. 채무자는 돈을 받아 시원하게 쓰기라도 했지만 보증인은 쓰지도 못하고 돈을 갚아야 한다.
주 채무자에게 돈이 있건 없건 채권자가 연대보증인에게 돈을 받아내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되면 주저 없이 연대보증인에게 먼저 쳐들어온다. 연대보증인은 이에 대해 법적으로 항변할 수 없다. 그게 ‘연대’의 의미다.
◆신중한 확인이 필요한 ‘연대보증’
특정 개인이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는 것에 대해 연대보증할 때는 보증인은 자신이 지금 누구를 위해 어떠한 금액을 보증하는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채무를 부담한다. 하지만 재개발(재건축을 포함) 연대보증은 우왕좌왕 어수선한 상태에서 도대체 그게 보증인지 뭔지도 모르고 이뤄지는 게 태반이다.
조합 설립을 위한 준비 단계인 추진위원회에서는 각종 자금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추진위원회라는 단체는 각종 업체로부터 돈을 빌려 쓰고 이때 추진위원장과 주요 추진위원들이 연대보증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거의 사기나 다름없는 기만적인 방법으로 연대보증이 이뤄지기도 한다.
일례로 추진위원회 회의에서 협력업체를 선정하고 선정된 업체에서 일정액의 돈을 빌리기로 의결한다. 이때 회의 참석자들에게 종이를 내밀면서 참석자들의 서명을 받는다. 참석자들은 그저 ‘출석부’인 줄 알고 서명할 수도 있고 주요 추진위원으로서 ‘업체 선정 결과를 확인’하는 절차라는 설명을 듣고 사인하기도 한다.
때로는 여러 장의 계약서 중 앞장을 넘기면서 접는데 이때 뒷장의 윗부분에 쓰여 있는 ‘OO계약에 대한 연대보증인’이라는 문구가 보이지 않게끔 접어놓고 아랫부분에 사인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심지어 출석부처럼 이름이 쓰여 있는 종이를 프린터에 넣어 윗부분에 ‘연대보증인’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기도 한다. 그리고 보증의 대상이 되는 계약서에 도대체 얼마를 보증하게 되는지 ‘최고 액수’에 대한 명시도 없고 심지어 ‘뒷장에 서명한 자들이 이 계약상의 채무를 보증한다’는 보증 문구 조항이 없는 것도 있다.
다만 맨 뒤의 종이 윗부분에 ‘이 계약에 대한 연대보증인’이라는 문구만 덜렁 있을 뿐이다. 계약서 앞·뒷장의 간인(함께 묶인 서류의 종잇장 사이에 걸쳐 도장을 찍음)이 없는 보증에 대해 유효성을 인정하는 판결 사례도 있다.
조합이 설립된 이후에는 이사들에게 연대보증을 하게 하는데 멋모르고 보증을 섰다가 사업이 무산되면서 수십억원의 보증채무를 지게 되는 이사들도 꽤 있다. 연대보증의 무서움이라기보다 함부로 서명날인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서울 일원동 개포8단지 공무원아파트. (/한국경제신문)
◆재개발 무산 시 떨어지는 보증채무 폭탄
과거에는 이렇게 보증하더라도 그 보증채무가 현실화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부동산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재개발 사업이 결국 진행되고 모든 아파트가 분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도에 사업을 포기하는 현장에 많은 돈을 투자한 협력업체나 건설회사가 연대보증인들에게 자금을 회수하면서 보증 채무의 무서움이 현실화되고 있다.
채권자가 연대보증 채무를 청구해 들어올 태세가 보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산을 빼돌리거나 배우자 명의로 돌려놓고 이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형법상 강제집행면탈죄가 될 수 있고 민사적으로는 사해행위로 취소의 대상이 돼 다시 재산이 보증인에게 복귀되고 채권자에게 강제집행당할 수 있다.
채권자의 이러한 조치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민형사상 위험을 감수하고 이를 진행할 것인지는 각 당사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다른 연대보증과 달리 재개발 재건축 연대보증은 보증인으로서도 참으로 억울한 점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재산 은닉 행위를 감행하는 이가 많다.
이들은 말이 조합 이사지 그저 동네의 평범한 아저씨 아주머니거나 노인이고 직업도 세탁소·문구점 등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은행에서 돈 빌릴 때는 지금 자신이 얼마의 채무에 대해 연대보증하는지 명확히 설명해 준다.
하지만 재개발·재건축 연대보증은 어수선한 장터 분위기에서 이뤄진다. 명시하거나 설명해 주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의 보증 계약을 만연히 인정해 주는 법원도 문제가 많다.
연대보증인들은 자신이 보증 계약서에 날인했다는 사실도 모르다가 소송을 당해 격렬히 저항한다. 채권자인 건설사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고려해 소송 도중 적당한 금액으로 협의하고 조정하기도 한다.
2008년 제정된 ‘보증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에서는 ‘보증채무의 최고액을 서면으로 특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서는 ‘기업의 대표자·이사·무한책임사원·과점주주 또는 기업의 경영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가 그 기업의 채무에 대해 보증채무를 부담하는 경우’에는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지만 재개발조합의 이사는 ‘기업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본다.
이 법 제1조에서는 ‘아무런 대가 없이 호의로 이뤄지는 보증으로 인한 보증인의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방지하고’라고 입법 목적을 밝히고 있다. 재개발조합의 이사들은 거의 아무런 대가없이 이사라는 이유만으로 보증을 서고 있어 호의 없이 보증을 서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연대보증인으로 날인할 때의 추진위원회와 해산될 때의 추진위원회가 그 실체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책임이 없다는 판례도 있다.
즉, 재판부는 ‘시공사와 계약을 체결한 추진위원회와 해산된 추진위원회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해산된 추진위원회에 소비대차계약의 효력이 미치지 않고 연대보증 책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어찌됐든 연대보증은 할 일이 못된다. 요즘처럼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깨진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재개발 추진 시 ‘출석부’라고 거짓말하기도…‘부동산 불패’ 사라지며 피해자 속출
[김향훈 법무법인 센트로 대표 변호사] 누군가를 위해 연대보증을 설 때 보증인에게 유리한 것이 있을까. 채무자는 돈을 받아 시원하게 쓰기라도 했지만 보증인은 쓰지도 못하고 돈을 갚아야 한다.
주 채무자에게 돈이 있건 없건 채권자가 연대보증인에게 돈을 받아내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되면 주저 없이 연대보증인에게 먼저 쳐들어온다. 연대보증인은 이에 대해 법적으로 항변할 수 없다. 그게 ‘연대’의 의미다.
◆신중한 확인이 필요한 ‘연대보증’
특정 개인이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는 것에 대해 연대보증할 때는 보증인은 자신이 지금 누구를 위해 어떠한 금액을 보증하는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채무를 부담한다. 하지만 재개발(재건축을 포함) 연대보증은 우왕좌왕 어수선한 상태에서 도대체 그게 보증인지 뭔지도 모르고 이뤄지는 게 태반이다.
조합 설립을 위한 준비 단계인 추진위원회에서는 각종 자금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추진위원회라는 단체는 각종 업체로부터 돈을 빌려 쓰고 이때 추진위원장과 주요 추진위원들이 연대보증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거의 사기나 다름없는 기만적인 방법으로 연대보증이 이뤄지기도 한다.
일례로 추진위원회 회의에서 협력업체를 선정하고 선정된 업체에서 일정액의 돈을 빌리기로 의결한다. 이때 회의 참석자들에게 종이를 내밀면서 참석자들의 서명을 받는다. 참석자들은 그저 ‘출석부’인 줄 알고 서명할 수도 있고 주요 추진위원으로서 ‘업체 선정 결과를 확인’하는 절차라는 설명을 듣고 사인하기도 한다.
때로는 여러 장의 계약서 중 앞장을 넘기면서 접는데 이때 뒷장의 윗부분에 쓰여 있는 ‘OO계약에 대한 연대보증인’이라는 문구가 보이지 않게끔 접어놓고 아랫부분에 사인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심지어 출석부처럼 이름이 쓰여 있는 종이를 프린터에 넣어 윗부분에 ‘연대보증인’이라는 문구를 새겨 넣기도 한다. 그리고 보증의 대상이 되는 계약서에 도대체 얼마를 보증하게 되는지 ‘최고 액수’에 대한 명시도 없고 심지어 ‘뒷장에 서명한 자들이 이 계약상의 채무를 보증한다’는 보증 문구 조항이 없는 것도 있다.
다만 맨 뒤의 종이 윗부분에 ‘이 계약에 대한 연대보증인’이라는 문구만 덜렁 있을 뿐이다. 계약서 앞·뒷장의 간인(함께 묶인 서류의 종잇장 사이에 걸쳐 도장을 찍음)이 없는 보증에 대해 유효성을 인정하는 판결 사례도 있다.
조합이 설립된 이후에는 이사들에게 연대보증을 하게 하는데 멋모르고 보증을 섰다가 사업이 무산되면서 수십억원의 보증채무를 지게 되는 이사들도 꽤 있다. 연대보증의 무서움이라기보다 함부로 서명날인하는 것에 대한 무서움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서울 일원동 개포8단지 공무원아파트. (/한국경제신문)
◆재개발 무산 시 떨어지는 보증채무 폭탄
과거에는 이렇게 보증하더라도 그 보증채무가 현실화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부동산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재개발 사업이 결국 진행되고 모든 아파트가 분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도에 사업을 포기하는 현장에 많은 돈을 투자한 협력업체나 건설회사가 연대보증인들에게 자금을 회수하면서 보증 채무의 무서움이 현실화되고 있다.
채권자가 연대보증 채무를 청구해 들어올 태세가 보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재산을 빼돌리거나 배우자 명의로 돌려놓고 이혼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형법상 강제집행면탈죄가 될 수 있고 민사적으로는 사해행위로 취소의 대상이 돼 다시 재산이 보증인에게 복귀되고 채권자에게 강제집행당할 수 있다.
채권자의 이러한 조치가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민형사상 위험을 감수하고 이를 진행할 것인지는 각 당사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다른 연대보증과 달리 재개발 재건축 연대보증은 보증인으로서도 참으로 억울한 점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재산 은닉 행위를 감행하는 이가 많다.
이들은 말이 조합 이사지 그저 동네의 평범한 아저씨 아주머니거나 노인이고 직업도 세탁소·문구점 등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은행에서 돈 빌릴 때는 지금 자신이 얼마의 채무에 대해 연대보증하는지 명확히 설명해 준다.
하지만 재개발·재건축 연대보증은 어수선한 장터 분위기에서 이뤄진다. 명시하거나 설명해 주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의 보증 계약을 만연히 인정해 주는 법원도 문제가 많다.
연대보증인들은 자신이 보증 계약서에 날인했다는 사실도 모르다가 소송을 당해 격렬히 저항한다. 채권자인 건설사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고려해 소송 도중 적당한 금액으로 협의하고 조정하기도 한다.
2008년 제정된 ‘보증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에서는 ‘보증채무의 최고액을 서면으로 특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서는 ‘기업의 대표자·이사·무한책임사원·과점주주 또는 기업의 경영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가 그 기업의 채무에 대해 보증채무를 부담하는 경우’에는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지만 재개발조합의 이사는 ‘기업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라고 보기 어렵다고 본다.
이 법 제1조에서는 ‘아무런 대가 없이 호의로 이뤄지는 보증으로 인한 보증인의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방지하고’라고 입법 목적을 밝히고 있다. 재개발조합의 이사들은 거의 아무런 대가없이 이사라는 이유만으로 보증을 서고 있어 호의 없이 보증을 서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연대보증인으로 날인할 때의 추진위원회와 해산될 때의 추진위원회가 그 실체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책임이 없다는 판례도 있다.
즉, 재판부는 ‘시공사와 계약을 체결한 추진위원회와 해산된 추진위원회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해산된 추진위원회에 소비대차계약의 효력이 미치지 않고 연대보증 책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어찌됐든 연대보증은 할 일이 못된다. 요즘처럼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깨진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