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Ⅱ- 스튜어드십 코드]
국민연금 및 4대 자산운용사 참여…고배당주·자사주·지주사주 ‘3대 키워드’
[한경비즈니스= 이정흔 기자 ] 올해 증권업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 ‘스튜어드십 코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쉽게 말해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경영 활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사결정 행사 지침’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 되고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으로 달라질 변화와 유망주를 짚어봤다.
스튜어드의 어원은 예전 서구 지역에서 부유층의 집안을 돌보는 ‘집사(steward)’라는 단어에서 왔다. 단순히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수동적인 역할이 아니라 집 안 구석구석을 돌보는 것을 넘어 때로는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기관투자가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 기업 대상의 의사결정에 관여하고 감시할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사진) 2017년 2월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스튜어드십코드 참여예정기관 간담회’에서 참여 운용사 관계자들이 뜨거운 토론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전 세계 11개국 ‘스튜어드십’ 도입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됐다. 탄생 배경은 2008년 금융 위기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에서는 모건스탠리의 회장이었던 데이비드 워커의 주도로 영국 금융회사의 문제를 진단한 ‘워커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금융 위기의 원인을 은행과 금융회사의 위험관리 부실에서 시작됐다고 진단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안했다.
그중 하나가 기관투자가들을 포함한 영국인 주주의 전통적인 방관주의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스튜어드십 원칙(stewardship principles)이다. 보고서는 펀드매니저들은 이 원칙에 서명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재무보고위원회(FRC)가 2010년 기관투자가 협의체인 ISC가 2009년 제정한 ‘기관투자가 책임 규범(Code on the Responsibilities of Institutional Investor)’을 정식으로 도입해 현재 영국의 스튜어드십 코드(The UK Stewardship Code)가 탄생됐다.
이후 영국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기반으로 캐나다·이탈리아·일본·말레이시아 등이 잇따라 자국의 상황에 맞춘 스튜어드십 코드를 개발, 채택했다. 2017년 5월을 기준으로 현재 총 11개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시행 중이다.
미국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정된 상태이지만 시행은 2018년 1월로 예정돼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연기금 등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나라 중 하나다. 주주행동주의는 기관투자가들이 주주로서 기업의 경영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투자 이익을 추구하고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만 주주행동주의와 비교해 ‘스튜어드십’은 기업 경영의 리스크가 있을 때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지향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추진 배경은 해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처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말 무렵이다. 신제윤 당시 금융위원장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주주총회 발전 방안’ 국제 심포지엄에서 “기관투자가들의 책임 있는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주식시장 발전 방안’ 중 기관투자가 역할 강화의 일환으로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이 포함됐다.
2015년 3월 금융위원회의 주도로 구성된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위원회는 같은 해 12월 공청회에서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초안을 발표했다. 각계각층의 전문가 및 이해관계인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1년 뒤인 2016년 12월 19일 최종안인 ‘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공표했다.
초창기만 해도 지지부진했던 스튜어드십 도입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은 지난해 말 불거진 ‘삼성물산 논란’이었다.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국민연금의 찬성 의견을 두고 국민연금이 재벌 오너의 심정을 대변한 ‘거수기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심화되며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필요성이 부각됐다.
실제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분석에 따르면 정기 주주총회에서 기관투자가가 반대한 안건 비율은 2013년 0.7%, 2014년 1.5%, 2015년 1.5%에 불과하다. 그만큼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가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12월 공표된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최종안에 포함된 원칙은 모두 7가지다. 구체적으로 △수탁자 책임 정책 공개 △이해 상충 방지 정책 공개 △투자 대상 회사의 지속 점검 △수탁자 책임 활동 수행에 관한 내부 지침 마련 △의결권 정책, 의결권 행사 내역과 그 사유 공개 △의결권 행사, 수탁자 책임 이행 활동 보고 △수탁자 책임의 효과적 이행을 위한 역량·전문성 확보 등이다.
◆급물살 탄 국민연금 도입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현재까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선언한 기관은 JLK파트너스를 시작으로 모두 38곳(투자 자문사 1곳 포함)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삼성자산운용·한국투자신탁운용·KB자산운용·한화자산운용 등이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를 공식화하고 계획서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제출했다. 국내 자산운용사만 200여 곳에 육박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까지 참여가 활발하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558조원(지난해 말 기준)의 돈을 굴리고 있는 국민연금의 행보가 빨라지며 향후 국내에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분위기가 무르익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6월 28일 열린 2017년도 제5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에서 보건복지부 성과평가보상전문위원회가 “국민연금기금에 적합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통해 장기 투자자로서 기업 가치 제고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 관련 제약 요인을 고려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연금은 6월 27일 ‘국민연금 책임 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에 관한 연구’에 대한 입찰 공고를 낸 상태다. 2차례 유찰된 이후 세 번째 공고다. 용역 기간은 계약 체결 후 5개월이다. 10월쯤 연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면 이를 기반으로 11월쯤 도입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잰걸음을 걸으면서 증권업계에서도 이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최근 코스피지수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며 강세장을 이어 가고 있지만 해외 주요 증시에 비해 밸류에이션 지표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그만큼 저평가돼 있다는 얘기다.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증권업계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확산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자연스럽게 해소되면서 중·장기적으로 코스피지수를 더 높이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를 비롯해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그중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국내 기업들의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저배당성향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관투자가가 적극적인 주주 활동에 나선다면 주주 환원과 소액주주의 권리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기관투자가의 지나친 의사결정 참여가 경영 활동을 위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단기 차익을 노리는 기관투자가가 장기적인 기업 이익에 반하는 결정에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한다면 결국 기업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따라 국내에서도 수혜주를 찾는 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해외 증시의 사례를 봤을 때 키워드는 세 개로 모아진다. ‘고배당주, 자사주, 지주사주’다.
영국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주주 친화 정책 중심의 ‘고배당주’와 ‘환경·사회·지배구조(ESG)지수’가 상대적으로 각광받았다. ESG지수는 개별 종목들의 환경(E)·사회(S)·지배구조(G) 평가를 통해 높은 수치의 ESG 점수를 받은 종목을 선정해 구성한다. 2010~2013년 영국 고배당주지수가 29% 상승하며 유럽의 14%를 압도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감↑
일본은 배당과 자사주 매입이 크게 증가했다.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일본 기업은 자사주 매입, 배당 등 주주 환원 정책을 크게 강화했다. 2015년 배당금은 565억 달러, 2016년 자사주 매입 금액은 301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 토픽스(TOPIX)지수의 배당성향과 배당수익률은 2013년 각각 1.6%와 26%에서 2016년 2.1%와 34%로 개선됐다.
지난해 6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대만에서는 지주회사들의 주가수익률(PER)이 그동안의 ‘디스카운트’를 벗어나며 빠르게 재평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만증권거래소의 대표 지수인 가권지수와 대만 거버넌스100지수에 속한 기업들의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대만 3대 지주회사의 가권지수 상대 PER이 2016년 74% 수준에서 2017년 96% 수준까지 높아졌다”며 “대만 기업 거버넌스100지수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스튜어드십 코드 활성화가 가시화되면서 국내 증시에서도 ‘대주주 지분율이 낮고 자사주가 많은 기업’이 투자 일순위로 대두되며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지속되고 있다. 제일기획·대우건설·삼성엔지니어링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거래소와 코스콤에 따르면 자사주 12%를 보유하고 있는 제일기획의 외국인 보유 지분율은 올해 초 25%대에서 6월 15일 기준으로 30%대까지 크게 늘었다. 또 2010년부터 현금 배당성향 제로를 이어 가고 있는 대우건설의 외국인 보유 지분율은 올 초 6%대에서 현재 13%대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재만 연구원은 “스튜어드십 코드 활성화로 배당성향이 낮은 국내 증시들은 자사주 소각을 통해 지분 가치의 상승을 견인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해당 기업들의 투자 매력을 높이고 있다”며 “특히 타 국가 대비 배당성향이 낮은 국내 상장사 현황을 고려하면 향후 지주회사의 현금 흐름 개선 여력이 보다 부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과 일본의 ‘스튜어드십 코드’ 어떻게 운영되나
최초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영국은 2012년 현실과 맞지 않는 점을 감안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다시 개정했다. 김열매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10년 처음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때만 해도 투자 기업에 대한 주주들의 참여 범위를 ‘의결권에 한정’하는 모습이었다”며 “2012년 이후 ‘기업의 전략, 업적, 리스크, 자본과 지배구조 등을 모두 포괄’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거의 모든 경우 내부 방침에 대해 공개적으로 공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스튜어드십 활동 사항과 결과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사진) 영국 증권거래소 / 연합뉴스
영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제정과 관리 운영을 맡고 있는 재무보고위원회(FRC)는 일종의 준공공기관이다. 기업 지배구조를 강화하고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보고 활동을 담당하는 ‘독립적인 규제 기관’으로서 역할하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강제 조항은 아니다. 하지만 FRC는 해마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서명한 기관투자가의 코드 이행 수준을 평가해 3단계로 구분한 검토 보고서를 공시하고 있다. 세계적인 자산운용사인 블랙록·뱅가드·BNP파리바 등이 가장 높은 이행 수준인 1등급(Tier1)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기관들이다.
한국과 가장 비슷한 환경인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경제 재건을 목표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아베 정부는 일본 기업이 보수적인 지배구조로 인해 상대적으로 기업 가치가 저평가돼 있고 해외 자금 유입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문제 인식에서 일본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그 결과 일본에는 투자자를 고려하는 경영이 보편화됐다는 평가다. 상장 기업 중 자기자본이익률(ROE)이 10%를 초과하는 기업도 2013년 전체 기업의 4분의 1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3분의 1 수준으로 늘었다. 여러 명의 독립 사외이사를 선임한 상장 기업도 크게 늘었다.
일본 스튜어드십 코드가 다른 국가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기관투자가의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한 전문 지식 확보와 전문 지식을 통한 건설적인 대화를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김열매 애널리스트는 “전통적으로 일본 기업들이 폐쇄적이고 기업 경영과 관련한 외부의 간섭을 선호하지 않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며 “기관투자가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조치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세계 최대 연기금인 정부투자연기금(GPIF)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채택함으로써 다른 기관투자가들에게도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2016년 말을 기준으로 공적 연기금 14개(공무원공제·사학교직원공제·지방공무원공제 등), 사적 연금기금 8개(기업연금연합회 및 퇴직연금 등), 해외 연기금 4개, 보험회사 22개, 은행 7개 등 총 214개 기관투자가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있다.
vivajh@hankyung.com
국민연금 및 4대 자산운용사 참여…고배당주·자사주·지주사주 ‘3대 키워드’
[한경비즈니스= 이정흔 기자 ] 올해 증권업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 ‘스튜어드십 코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쉽게 말해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가가 기업의 경영 활동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사결정 행사 지침’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 되고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으로 달라질 변화와 유망주를 짚어봤다.
스튜어드의 어원은 예전 서구 지역에서 부유층의 집안을 돌보는 ‘집사(steward)’라는 단어에서 왔다. 단순히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수동적인 역할이 아니라 집 안 구석구석을 돌보는 것을 넘어 때로는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기관투자가 역시 이와 마찬가지로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 기업 대상의 의사결정에 관여하고 감시할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사진) 2017년 2월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스튜어드십코드 참여예정기관 간담회’에서 참여 운용사 관계자들이 뜨거운 토론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전 세계 11개국 ‘스튜어드십’ 도입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됐다. 탄생 배경은 2008년 금융 위기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에서는 모건스탠리의 회장이었던 데이비드 워커의 주도로 영국 금융회사의 문제를 진단한 ‘워커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금융 위기의 원인을 은행과 금융회사의 위험관리 부실에서 시작됐다고 진단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안했다.
그중 하나가 기관투자가들을 포함한 영국인 주주의 전통적인 방관주의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스튜어드십 원칙(stewardship principles)이다. 보고서는 펀드매니저들은 이 원칙에 서명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재무보고위원회(FRC)가 2010년 기관투자가 협의체인 ISC가 2009년 제정한 ‘기관투자가 책임 규범(Code on the Responsibilities of Institutional Investor)’을 정식으로 도입해 현재 영국의 스튜어드십 코드(The UK Stewardship Code)가 탄생됐다.
이후 영국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기반으로 캐나다·이탈리아·일본·말레이시아 등이 잇따라 자국의 상황에 맞춘 스튜어드십 코드를 개발, 채택했다. 2017년 5월을 기준으로 현재 총 11개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시행 중이다.
미국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정된 상태이지만 시행은 2018년 1월로 예정돼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연기금 등 주주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나라 중 하나다. 주주행동주의는 기관투자가들이 주주로서 기업의 경영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투자 이익을 추구하고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행위를 말한다. 다만 주주행동주의와 비교해 ‘스튜어드십’은 기업 경영의 리스크가 있을 때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것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지향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추진 배경은 해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처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말 무렵이다. 신제윤 당시 금융위원장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주주총회 발전 방안’ 국제 심포지엄에서 “기관투자가들의 책임 있는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주식시장 발전 방안’ 중 기관투자가 역할 강화의 일환으로 ‘한국판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이 포함됐다.
2015년 3월 금융위원회의 주도로 구성된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위원회는 같은 해 12월 공청회에서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초안을 발표했다. 각계각층의 전문가 및 이해관계인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1년 뒤인 2016년 12월 19일 최종안인 ‘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을 공표했다.
초창기만 해도 지지부진했던 스튜어드십 도입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은 지난해 말 불거진 ‘삼성물산 논란’이었다.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국민연금의 찬성 의견을 두고 국민연금이 재벌 오너의 심정을 대변한 ‘거수기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심화되며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필요성이 부각됐다.
실제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분석에 따르면 정기 주주총회에서 기관투자가가 반대한 안건 비율은 2013년 0.7%, 2014년 1.5%, 2015년 1.5%에 불과하다. 그만큼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가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12월 공표된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최종안에 포함된 원칙은 모두 7가지다. 구체적으로 △수탁자 책임 정책 공개 △이해 상충 방지 정책 공개 △투자 대상 회사의 지속 점검 △수탁자 책임 활동 수행에 관한 내부 지침 마련 △의결권 정책, 의결권 행사 내역과 그 사유 공개 △의결권 행사, 수탁자 책임 이행 활동 보고 △수탁자 책임의 효과적 이행을 위한 역량·전문성 확보 등이다.
◆급물살 탄 국민연금 도입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현재까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선언한 기관은 JLK파트너스를 시작으로 모두 38곳(투자 자문사 1곳 포함)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삼성자산운용·한국투자신탁운용·KB자산운용·한화자산운용 등이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를 공식화하고 계획서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제출했다. 국내 자산운용사만 200여 곳에 육박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까지 참여가 활발하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558조원(지난해 말 기준)의 돈을 굴리고 있는 국민연금의 행보가 빨라지며 향후 국내에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분위기가 무르익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6월 28일 열린 2017년도 제5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에서 보건복지부 성과평가보상전문위원회가 “국민연금기금에 적합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통해 장기 투자자로서 기업 가치 제고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국민연금 관련 제약 요인을 고려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연금은 6월 27일 ‘국민연금 책임 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에 관한 연구’에 대한 입찰 공고를 낸 상태다. 2차례 유찰된 이후 세 번째 공고다. 용역 기간은 계약 체결 후 5개월이다. 10월쯤 연구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면 이를 기반으로 11월쯤 도입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잰걸음을 걸으면서 증권업계에서도 이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최근 코스피지수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며 강세장을 이어 가고 있지만 해외 주요 증시에 비해 밸류에이션 지표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그만큼 저평가돼 있다는 얘기다.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증권업계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확산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자연스럽게 해소되면서 중·장기적으로 코스피지수를 더 높이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를 비롯해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그중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국내 기업들의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저배당성향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관투자가가 적극적인 주주 활동에 나선다면 주주 환원과 소액주주의 권리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기관투자가의 지나친 의사결정 참여가 경영 활동을 위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단기 차익을 노리는 기관투자가가 장기적인 기업 이익에 반하는 결정에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한다면 결국 기업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따라 국내에서도 수혜주를 찾는 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해외 증시의 사례를 봤을 때 키워드는 세 개로 모아진다. ‘고배당주, 자사주, 지주사주’다.
영국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주주 친화 정책 중심의 ‘고배당주’와 ‘환경·사회·지배구조(ESG)지수’가 상대적으로 각광받았다. ESG지수는 개별 종목들의 환경(E)·사회(S)·지배구조(G) 평가를 통해 높은 수치의 ESG 점수를 받은 종목을 선정해 구성한다. 2010~2013년 영국 고배당주지수가 29% 상승하며 유럽의 14%를 압도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감↑
일본은 배당과 자사주 매입이 크게 증가했다.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일본 기업은 자사주 매입, 배당 등 주주 환원 정책을 크게 강화했다. 2015년 배당금은 565억 달러, 2016년 자사주 매입 금액은 301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 토픽스(TOPIX)지수의 배당성향과 배당수익률은 2013년 각각 1.6%와 26%에서 2016년 2.1%와 34%로 개선됐다.
지난해 6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대만에서는 지주회사들의 주가수익률(PER)이 그동안의 ‘디스카운트’를 벗어나며 빠르게 재평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만증권거래소의 대표 지수인 가권지수와 대만 거버넌스100지수에 속한 기업들의 랠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대만 3대 지주회사의 가권지수 상대 PER이 2016년 74% 수준에서 2017년 96% 수준까지 높아졌다”며 “대만 기업 거버넌스100지수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스튜어드십 코드 활성화가 가시화되면서 국내 증시에서도 ‘대주주 지분율이 낮고 자사주가 많은 기업’이 투자 일순위로 대두되며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지속되고 있다. 제일기획·대우건설·삼성엔지니어링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거래소와 코스콤에 따르면 자사주 12%를 보유하고 있는 제일기획의 외국인 보유 지분율은 올해 초 25%대에서 6월 15일 기준으로 30%대까지 크게 늘었다. 또 2010년부터 현금 배당성향 제로를 이어 가고 있는 대우건설의 외국인 보유 지분율은 올 초 6%대에서 현재 13%대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재만 연구원은 “스튜어드십 코드 활성화로 배당성향이 낮은 국내 증시들은 자사주 소각을 통해 지분 가치의 상승을 견인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해당 기업들의 투자 매력을 높이고 있다”며 “특히 타 국가 대비 배당성향이 낮은 국내 상장사 현황을 고려하면 향후 지주회사의 현금 흐름 개선 여력이 보다 부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과 일본의 ‘스튜어드십 코드’ 어떻게 운영되나
최초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영국은 2012년 현실과 맞지 않는 점을 감안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다시 개정했다. 김열매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10년 처음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때만 해도 투자 기업에 대한 주주들의 참여 범위를 ‘의결권에 한정’하는 모습이었다”며 “2012년 이후 ‘기업의 전략, 업적, 리스크, 자본과 지배구조 등을 모두 포괄’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거의 모든 경우 내부 방침에 대해 공개적으로 공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스튜어드십 활동 사항과 결과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사진) 영국 증권거래소 / 연합뉴스
영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제정과 관리 운영을 맡고 있는 재무보고위원회(FRC)는 일종의 준공공기관이다. 기업 지배구조를 강화하고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보고 활동을 담당하는 ‘독립적인 규제 기관’으로서 역할하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강제 조항은 아니다. 하지만 FRC는 해마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서명한 기관투자가의 코드 이행 수준을 평가해 3단계로 구분한 검토 보고서를 공시하고 있다. 세계적인 자산운용사인 블랙록·뱅가드·BNP파리바 등이 가장 높은 이행 수준인 1등급(Tier1)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기관들이다.
한국과 가장 비슷한 환경인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경제 재건을 목표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아베 정부는 일본 기업이 보수적인 지배구조로 인해 상대적으로 기업 가치가 저평가돼 있고 해외 자금 유입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문제 인식에서 일본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그 결과 일본에는 투자자를 고려하는 경영이 보편화됐다는 평가다. 상장 기업 중 자기자본이익률(ROE)이 10%를 초과하는 기업도 2013년 전체 기업의 4분의 1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3분의 1 수준으로 늘었다. 여러 명의 독립 사외이사를 선임한 상장 기업도 크게 늘었다.
일본 스튜어드십 코드가 다른 국가들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기관투자가의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한 전문 지식 확보와 전문 지식을 통한 건설적인 대화를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김열매 애널리스트는 “전통적으로 일본 기업들이 폐쇄적이고 기업 경영과 관련한 외부의 간섭을 선호하지 않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며 “기관투자가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조치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세계 최대 연기금인 정부투자연기금(GPIF)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채택함으로써 다른 기관투자가들에게도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2016년 말을 기준으로 공적 연기금 14개(공무원공제·사학교직원공제·지방공무원공제 등), 사적 연금기금 8개(기업연금연합회 및 퇴직연금 등), 해외 연기금 4개, 보험회사 22개, 은행 7개 등 총 214개 기관투자가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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