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커스:혁신 공기업 탐방① - 한국시설안전공단] 공공기관 경영 평가 최초로 4계단 등급 상승...원인 집중 분석
정부에서 매년 실시하는 공공기관 경영 평가는 공공기관의 경영 상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표다. 공공기관별로 최고 S등급부터 최하 E등급까지 등급을 부여한다. 결과에 따라 각각의 공공기관들은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상위 등급을 받은 공공기관은 한 해 농사를 잘 마무리한 기관으로 평가받고 최대 150%에 달하는 성과급 잔치를 벌일 수 있게 된다. 반대로 하위권에 자리하면 방만하다는 지적과 함께 성과급은 고사하고 기관장이 해임되기도 한다. 매년 공공기관들이 평가를 잘 받기 위해 혈안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공공기관 경영 평가 결과가 나오면서 공공기관들의 명암이 갈리는 모습이다. 과연 상위권 등급을 받은 공공기관들은 어떤 방법으로 좋은 평가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 한경비즈니스는 이번 공공기관 경영 평가 결과를 토대로 상위권에 포진한 공공기관의 성공 비결을 시리즈로 분석할 예정이다. 첫째 주인공은 한국시설안전공단이다.
(사진) 한국시설안전공단 직원이 부산 광안대교의 안전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한국시설안전공단 제공.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6 공공기관 경영 평가 결과’는 전년과 비교할 때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다. 최고 등급인 S를 받은 기관은 올해도 나오지 않았다. 2012년 이후 5년 연속이다.
종합 등급 A를 받은 기관도 총 16곳으로 전년 20곳보다 줄었다. 이는 전체 119개 평가 대상 기관 중 13.4%에 불과하다. A등급을 획득하기가 이전보다 훨씬 까다로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으로는 A등급 공기업이 얼마나 우수한 기관인지도 가늠해 볼 수 있다.
A등급 중에서도 가장 이목이 쏠리는 곳은 단연 시설안전공단이다. 이전까지 2년 연속 E등급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던 시설안전공단은 이번에 A등급을 획득하며 1등 공공기관으로 도약하는 반전 드라마를 썼다. 공공기관이 2년 연속으로 E등급을 받았던 적도 없지만 한 번에 4계단이나 등급이 오른 것은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이에 따라 경남 진주에 자리한 시설안전공단을 직접 찾아가 최고의 공공기관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비결을 들어봤다.
◆업무량 늘어나면서 암흑기 맞아
시설안전공단은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후 안전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만들어진 준정부기관이다. 당시 성수대교 붕괴가 사회에 미친 충격은 대단했다.
이전까지는 건설된 시설물들이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성수대교 붕괴 이후 인식이 달라졌다. 사람도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 것처럼 시설물의 관리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고 결국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시특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시설안전공단은 시특법에 기반 해 성수대교 붕괴 이듬해인 1995년 설립됐다.
설립 초기만 하더라도 시설안전공단의 주된 임무는 완공 시설물을 안전하게 유지·관리하기 위해 정밀 안전 진단, 진단 기술 연구 개발 및 지도 보급, 진단 기술자 교육, 시설물 정보 체계 구축 등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4년 전부터 매년 업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4년도부터 건설 과정에서의 사고가 빈번해지자 여기에 대한 안전도 책임지게 됐다. 2015년에는 싱크홀 문제가 불거짐에 따라 ‘지하안전법’이 만들어졌는데 이를 예방하는 상당수 기능이 공단 안으로 들어왔다. 작년에는 경주 지진이 발생하면서 내진 안전까지 공단의 몫이 돼버렸다.
과거에는 단순히 완공된 시설물만 관리하던 공단이 현재는 대한민국의 안전과 관련된 대부분을 책임지게 된 셈이다.
업무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공단의 암흑기도 시작됐다. 내부 직원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임직원 수의 증가가 늘어나는 업무량을 따라가기엔 턱없이 모자랐다고 입을 모은다. 각 부문별로 바쁜 업무에 치이다 보니 자연스레 소통이 줄어들었고 정기적인 실적 관리도 미흡했다는 설명이다.
결국 경영 평가 성적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2013년까지만 해도 2년 연속 B등급이었지만 2014년부터 최하위인 E등급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2015년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하위 E등급이 지속됐다. 평가 점수는 전년보다 10% 높아졌지만 다른 기관도 점수가 높아져 공단은 결국 등급을 끌어올리는데 실패했다.
이랬던 시설안전공단은 2016년 1월 강영종 9대 이사장이 취임하면서부터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다. 강 이사장은 토목건축공학과 교수 출신으로, 약 6년 만에 국토교통부 출신이 아닌 민간 전문가가 공단 이사장직에 오르게 됐다.
일반적으로 교수 출신이라고 하면 이론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만 경영 능력은 다소 미흡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취임 이후 경영 평가 등급 상승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공단 경영 전반에 대한 혁신에 돌입했다.
◆비결1. 정체성 재정립… “공익이 최우선”
계기는 이렇다. 이사장 취임 초반만 해도 그는 주로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시설안전공단에 대한 지원 확대를 요청하는 데 주력했다. 대한민국 경제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체계적인 시설물 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시설물의 수명이 약 40년이라고 본다. 한국은 1970년대부터 지난 40년 동안 시설물 건설에 주력해 온 만큼 이제는 건설보다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였다. 또한 당시에는 ‘세월호 사고’ 등으로 국민 안전 의식이 높아진 상황이기도 했다.
강 이사장은 시설안전공단이 보다 전문성 높은 안전 진단과 시기적절한 사전 안전조치를 취하기 위해 정부의 지원 확대가 절실하다고 느낀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경영 평가 등급 2년 연속 E등급인 시설안전공단의 초라한 성적표가 항상 걸림돌로 작용했다. 꼴찌 공공기관에 아무런 명분 없이 정부가 지원을 늘리기 어렵다는 답변이 매번 돌아왔다. 강 이사장은 이때부터 공단의 발전을 위해 경영 평가등급을 올려야겠다고 결심하고 직접 개혁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런 마음을 먹은 뒤 그가 내부 직원들에게 가장 먼저 주문한 것은 정체성의 재정립이다. 시설안전공단은 정확하게 성격을 분류하면 ‘위탁 집행형 준정부기관’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위탁받아 기능을 수행하는 이른바 ‘공익’을 위해 만들어졌다. 국가의 주요 시설물에 대한 정밀 안전 진단을 하고 비용을 받는 것이 시설안전공단 본연의 업무다.
하지만 시설안전공단은 일부 직원들이 이를 등한시하고 편익을 취하기 위해 비리를 저지르다 적발된 경우가 종종 발생해 왔다. 이로 인해 기관 신뢰도가 추락했고 경영 평가에서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강 이사장은 직원들에게 오로지 본연의 업무인 공익만 추구할 것을 강조하면서 조직 쇄신에 앞장섰다.
◆비결2. 조직 통폐합으로 소통 극대화
이런 과정을 거쳐 시설안전공단의 정체성을 다잡아 나감과 동시에 조직 내부에도 혁신의 칼을 빼들었다. 바로 조직 개편을 통해서다. 세분화된 여러 부서를 통폐합해 절반 정도로 축소했다. 20개가 넘었던 실 단위의 부서를 11개로 줄였다.
부서를 축소하면서 얻은 가장 큰 효과는 소통을 통한 직원들의 업무 이해도 향상이다. 한 공단 관계자는 “이전에는 직원 5~6명 정도의 실이 많아 업무가 발생하면 한 개 실의 모든 인원이 현장에 투입돼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했다”며 “각 실 간에도 서로가 정확히 어떤 업무를 하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대화할 시간조차 없었다”고 설명했다.
업무가 중복되는 실을 통폐합하면서 이 같은 문제는 말끔히 해소됐다. 그는 “여러 부서가 하나로 묶이면서 그동안 몰랐던 서로의 업무를 알게 되고 소통을 통한 업무 효율성 증대도 꾀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강 이사장 역시 “조직 개편 전에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자기 실에서 자기 일만 했었다면 최근에는 소통을 통해 공단 전체의 미션을 이해하고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고 자평했다.
실 단위 부서가 축소되면서 회의 방식에도 변화가 왔다. 이전까지 시설안전공단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실장들끼리 모여 회의를 했는데, 주로 형식적인 보고가 대부분이었다는 전언이다. 강 이사장은 2주에 한 번씩 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직원들과 소통하고 각 실별로 철저한 목표 관리를 주문했다.
◆비결3. 철저한 목표 관리
공단에서 공공기관 경영 평가 등 외부 평가 대비 체제를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매달 한 번씩 회의에서 각 실별로 목표 이행 여부를 확인했다.
공공기관 경영 평가는 크게 수치상으로 나타나는 정량적 평가와 경영이념·경영능력·사회공헌 등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 정성적 평가로 구분된다. 시설안전공단의 정량 평가 항목에는 제도 개선 및 안전 진단 할당 건수, 안전 관리 계획서 평가 등이 있다.
이런 정량적인 실적은 연말에 가서 부족하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매달 이를 관리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이와 함께 외부 컨설팅, 우수 기관 벤치마킹 등을 실행하며 정성적 평가 향상에도 박차를 가했다.
(사진) 경북 구미시 경부고속철도 금오터널 내부를 한국시설안전공단 직원들이 점검하고 있다. /한국시설안전공단 제공.
공공기관 경영 평가를 받기 위해 기획재정부에 내야 하는 보고서 작성 방식도 수정했다. 시설안전공단은 이전까지 경영 평가 보고서를 공단 내 경영평가실에서 작성해 왔다. 강 이사장은 경영평가실을 없애고 각 실에서 직접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교수 출신답게 그가 제시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아무리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더라도 정작 답안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각자 업무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실별로 이를 작성하면 보다 정확한 업무 내용 및 실적이 보고서에 담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배경을 밝혔다.
전략들은 주효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시설안전공단은 최고의 공공기관 중 하나로 우뚝 올라설 수 있었다. 아직 정확한 항목별 평가 점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정량적 평가 부문에서는 만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시설안전공단의 목표는 내년도 공공기관 평가에서도 최상위 등급을 유지하는 것이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미 평가 준비에 박차를 가하며 자리 굳히기에 매진 중이다.
enyou@hankyung.com
◆돋보기-역대 이사장 살펴보니 ‘민간 출신’ 호평
한국시설안전공단은 국토교통부 산하의 유일한 안전 전문 공공기관이다. 여느 부처의 산하기관과 마찬가지로 그간 상급 기관인 국토부 출신들이 대거 이사장 자리를 꿰차 왔다.
역대 이사장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시설안전공단을 이끈 총 9명의 이사장 중 6명이 공직자 출신이다. 국토부 출신이 5명, 서울시 출신이 1명이다.
아직까지 내부 인사가 이사장이 된 사례는 없다. 그래도 타 기관에 비해 꾸준히 민간 전문가들이 이사장직에 오른 것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2004년 송금실 제4대 이사장이 시설안전공단 최초의 민간 전문가 출신이다.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뒤 고려개발과 대림산업 등을 거쳐 이사장직에 올랐다.
2008년 취임한 신방웅 제6대 이사장도 민간 출신 전문가로 이사장이 됐다. 그 역시 한양대 토목공학과 출신으로, 충북대 토목공학과 교수와 충북대 총장 등을 역임한 뒤 전문성을 인정받아 공단을 이끌었다.
2010년부터는 한동안 국토부 출신들이 계속 내정됐다. 그러다 2016년 강영종 9대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다시 한 번 민간 출신 이사장의 계보를 이어 가게 됐다.
그가 이번에 시설안전공단을 공공기관 경영 평가 A등급으로 이끌면서 내부에서도 전문성을 겸비한 민간 출신 이사장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