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뱅크·케이뱅크'가 가져온 금융 혁신

[스페셜리포트 : 금융 혁신]
은행 점포 10년간 403개 감소…인터넷 전문은행 등장, 전통 은행 대응 주목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2017년, 금융을 사용하는 방법이 완전히 달라졌다. 아직까지 영업점 창구에 앉아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면 당신은 ‘디지털 금융’의 진짜를 맛보지 못했다. 이제 재직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공인인증서 없이도 계좌를 개설하고 인터넷뱅킹을 실행할 수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가져온 금융 혁신이다.

거리 풍경도 바뀌었다. 비(非)대면 서비스가 강화되면서 영업점 점포가 통폐합되고 행원 수도 급감하고 있다. 종이 통장도 9월이면 단계적으로 자취를 감출 전망이다. 달라진 금융, 당신은 어디까지 누리고 있을까. 인터넷 전문은행의 등장과 함께 달라진 신(新)금융 사용법을 알아봤다.

“종이 통장 발급해 드릴까요.”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은행을 방문한 A 씨는 영업점 직원의 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연히 발급해 주는 것 아니에요.” 직원은 “9월부터 고객의 별다른 의사 표명이 없으면 종이 통장을 발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A 씨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최근 몇 년 사이 종이 통장을 들여다본 기억이 없는 것을 깨달았다.

◆지점 감소, 종이 통장 수수료 부과

가상 인물 A 씨를 통해 본 9월 이후의 은행 영업점 풍경이다. 금융감독원은 9월부터 금융회사가 종이 통장을 발행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으로만 발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고객이 60세 이상 또는 금융거래 기록 관리 등의 사유로 종이 통장을 희망하는 것을 제외하면 종이 통장을 발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은행은 2020년 9월 이후 종이 통장 발행을 요청하는 고객(60세 이상 어르신과 기존 고객의 갱신 발급 사례 제외)에게 통장 발행에 소요되는 원가의 일부를 청구할 수 있다. 종이 통장 발행 원가는 은행마다 다르지만 약 5000원에서 1만8000원 사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비용 청구 여부는 은행 자율에 맡겼다.

이에 따라 1897년 한성은행(옛 조흥은행의 전신)을 시작으로 120년간 유지돼 온 은행의 종이 통장은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미국·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금융거래의 전산화로 이미 오래전에 재래식 통장 거래 관행이 사라졌다”며 “종이 통장 미발행으로 금융 소비자와 금융회사 모두 불필요한 비용 발생과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종이 통장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금융거래 전산화로 영업점을 방문하지 않고 거래하는 비대면 거래가 확산되면서 금융에 일대 변혁이 일고 있다. 한국은행의 금융 서비스 전달 채널별 업무 처리 비율을 보면 국내 은행의 영업점 창구와 현금자동지급기(ATM·CD) 거래를 합산한 오프라인 거래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46.6%다.

이 중 영업점 창구 거래는 10.9%에 불과하다. 2006년에는 영업점 창구 거래 비율이 27.0%에 달했다. 10년 사이에 지점 거래가 16.1%포인트 줄어든 것이다. 이 사이 텔레뱅킹(11.3%)과 인터넷뱅킹(42.1%)을 합산한 온라인 거래는 53.4%로 절반을 넘어섰다.

창구 거래가 줄자 점포도 사라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개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한국SC·한국씨티은행)의 국내 영업 점포(지점 및 출장소) 수는 2006년 말 4547개에서 지난해 말 4144개로 10년 새 403개 줄었다. 영업점 수가 가장 많았던 2008년 말(4780개)과 비교하면 636개가 통폐합됐다.



앞으로도 대면 영업에 대한 수요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시중은행은 늘어난 비대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모바일뱅킹을 강화, 비대면 상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금융 당국 또한 더 나은 비대면 서비스를 위해 1992년 평화은행 인가 이후 24년 만에 은행 신설을 허가했다. 올 한 해 금융 판을 뒤흔들고 있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출범이다.

◆공인인증서 없이 365일, 24시간

‘계좌 개설 7분, 소액 대출 60초.’ 7월 27일 문을 연 인터넷 전문은행 카카오뱅크가 내건 핵심 서비스의 평균 소요 시간이다. 카카오뱅크는 이날 출범식에서 기존 은행과 ‘같은 은행’이지만 고객의 관점에서 혜택과 서비스를 혁신하는 ‘다른 은행’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 출범해 돌풍을 일으킨 인터넷 전문은행 1호 ‘케이뱅크’에 이은 둘째 출항이다.

‘같지만 다른 은행’은 무얼 의미할까. 인터넷 전문은행은 제1금융권이다. 여수신 원리는 기존 시중은행과 동일하고 한국은행에 쌓는 지급준비금 의무도 시중은행과 동일하게 적용받는다. 만에 하나 인터넷 전문은행이 파산하더라도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예금자 1인당 보호 금융 상품의 원금과 소정의 이자를 합해 최고 5000만원까지 보호받을 수 있다.

반면 ‘365일, 24시간 열린 은행’은 인터넷 전문은행의 핵심 콘셉트다(※인터넷 전문은행 1호 케이뱅크의 경우 모든 업무에서 365일, 24시간 열린 은행을 지향한다. 카카오뱅크는 '대출' 업무에 한해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시간 제한이 있다.) 스마트폰에서 비대면 실명 확인을 통해 계좌 개설부터 수신·여신, 체크카드, 해외 송금 등 은행의 주요 상품과 서비스를 시간에 이용할 수 있다.

특히 빠른 서비스를 위해 대출을 제외한 모든 업무에서 공인인증서를 걷어냈다. 카카오뱅크는 휴대전화 본인 인증, 신분증 인증(주민등록증·운전면허증), 타행 계좌 이체 방식으로 본인 인증을 대신하며 주요 인증은 인증 비밀번호(핀 번호)를 사용한다.

계좌 개설에 걸리는 시간은 7분 남짓이다. 이는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한 기존 은행 서비스에 비하면 편의성을 크게 높인 것이다.

최근에는 시중은행도 모바일 거래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영업점 방문 없이 비대면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시중은행에서 첫 계좌를 개설하려면 오후 4시 이전까지 영업점을 방문해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특히 대포통장 때문에 통장 개설이 까다로워져 주민등록등본과 재직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심지어 계모임용 통장을 만들 때에도 모임을 증명하는 서류가 필요하다.

여기에 인터넷 뱅킹까지 가입하면 공인인증서가 필수다. 영업점 방문 후 3영업일 이내에 PC 온라인에서 공인인증서 아이디를 등록해야 모든 절차가 끝이 난다. 계좌 개설과 함께 인터넷뱅킹을 이용하려면 최장 3일이 소요되는 셈이다.

간편 송금도 카카오뱅크의 무기다. 4000만 국민이 이용하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에서 받는 사람을 선택해 인증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계좌번호 없이도 이체가 완료된다. ATM 수수료도 공짜다.

카카오뱅크는 이체 수수료와 ATM 수수료, 알림 수수료 등 은행의 3대 수수료를 2017년 말까지 면제한다. 전국에 지점을 가진 일반(시중·지방)은행과 편의점, 지하철 역사 내 ATM 등 총 11만4000여 대에서 무료로 현금을 입출금할 수 있다. 자체 지점은 없지만 거리 곳곳에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셈이다.

반면 시중은행은 타 은행의 ATM 이용 시 조건에 따라 수수료를 부과한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3대 수수료 면제는 어떠한 은행도 하지 않은 시도”라며 “이용 현황에 따라 올해 연말에 내년도 이용 조건을 결정할 예정인데 고객이 불편하지 않게 제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점포비용 절감으로 금리 경쟁력도 갖췄다. 카카오뱅크 적금과 정기예금 금리는 연 2.0%(1년 만기, 세전)로 케이뱅크와 같거나 살짝 낮은 수준이다. 시중은행은 평균 1% 중·후반대 금리를 제공한다.

대출 상품 또한 신속함과 편의성을 강조했다. 카카오뱅크 신용 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대출은 한도가 최대 1억5000만원으로 시중 모바일 대출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금리는 최저 연 2.86%로 동일하다.

소액 대출은 만 19세 이상, 8등급 저신용자까지 최대 300만원 대출이 가능하다. 대출 신청에서 실행까지 소요 시간은 평균 60초, 금리는 3.35%다.

해외 송금 수수료는 시중은행의 1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 송금액 기준으로 5000달러 이하는 5000원, 5000달러 초과는 1만원이다.



◆미래의 도전, 전통의 반격

‘같지만 다른 은행’에 보인 금융 소비자의 반응은 뜨거웠다. 카카오뱅크에 따르면 출범 하루 만에 앱 다운로드 수는 65만, 신규 계좌 개설 수는 30만500계좌를 돌파했다. 대출 실행 금액(여신)은 500억원, 예·적금 금액(수신)은 740억원이다.

이는 케이뱅크의 서비스 첫날 기록과도 비교가 안 된다. 앞서 케이뱅크의 첫날 신규 계좌 개설 수는 4월 3일 오후 6시 30분 기준으로 2만 건을 넘었다. 이 역시 2015년 12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1년간 16개 은행의 월평균 비대면 계좌 개설 합산 건수인 1만2000건보다 2배 정도 많은 것이다. 카카오뱅크는 무려 30배의 성과를 냈다.

하지만 축포를 쏘긴 아직 이르다. 인터넷 전문은행의 최대 걸림돌인 은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 분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행 은행법상 금융회사가 아닌 산업자본은 은행 지분을 10%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의결권은 이 중 4% 내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

자본금 2500억원으로 출발한 케이뱅크는 출범 100일 만에 누적 예금과 대출 모두 6000억원을 돌파하며 출범 당시 올해 목표 금액(예금 5000억원, 대출 4000억원)을 넘어서는 인기를 누렸지만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은행의 위험 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기 위해 3개월 만에 일부 신용 대출 상품의 판매를 중단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증자해야 하는데 최대 주주가 KT인 케이뱅크는 은산분리가 완화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카카오뱅크는 최대 주주가 금융자본인 한국투자금융지주여서 10% 지분 제한이 없다. 따라서 자본금과 이에 연계된 대출 규모를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이용우 카카오뱅크 공동대표는 “은산분리 완화를 원하지만, 법이 개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카카오뱅크는 최대 주주인 한국투자금융지주가 58%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 증자가 가능하다”며 “대출 상품의 인기로 자금이 더 필요하다면 우리는 충분히 증자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전문은행의 영향력은 ‘돌풍’을 넘어 ‘태풍’에 비견된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그간 예대 마진에 의존해 수익을 올려온 기존 은행업계에 ‘메기 효과’를 톡톡히 가져 왔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은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출범에 대비해 모바일 전용 플랫폼을 구축하고 모바일 신용 대출 한도를 늘리거나 해외 송금 수수료를 인하하는 등 인터넷 전문은행 서비스를 겨냥한 비대면 서비스를 연신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도 인터넷 전문은행을 매개로 한 금융 혁신은 계속될 전망이다. 세계경제포럼이 발간한 ‘금융 서비스의 미래’에 따르면 금융 소비자들은 금융 서비스에 대해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는 만큼 은행은 이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 금융회사는 금융 상품의 판매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금융 상품이나 고객 맞춤형 상품 개발에 치중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시중은행은 오프라인 지점을 무조건 줄이기보다 자문 서비스 기능을 강화하고 온라인 채널과 함께 키우는 다채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비대면 채널의 증가에도 많은 고객들은 여전히 은행 점원과의 대면 거래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만큼 은행의 자문 역할이 강조될 것이란 분석이다.

인터넷 전문은행의 핵심인 정보기술(IT) 기업 역시 금융 상품 판매에 따른 규제 불확실성에 놓여 있다.

이용우 대표는 “미국의 초기 인터넷 은행 넷뱅크는 급격한 예금 유치와 자산 증가로 눈길을 끌었지만 결국 리스크와 비용 관리를 감당하지 못해 사라졌다”며 “카카오뱅크는 이를 반면교사 삼아 서비스 출시 초기 정량적 목표에 매달리기보다 진정한 모바일 은행을 통해 고객의 만족도를 최우선으로 염두에 둘 것”이라고 말했다.

심성훈 케이뱅크 행장 또한 “한국은 현재 모바일 보급률이 90%에 육박한 상황인 만큼 핀테크가 꽃피우기 좋은 토양이 마련돼 있다”며 “모바일 시대에 인터넷 전문은행이 출범했고 앞으로도 보다 나은 금융 서비스를 위한 혁신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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